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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2
83년 7월, 실수로 ‘버마 공작’을 노출했다!
강진욱  | 등록:2021-12-21 14:39:14 | 최종:2022-01-04 09:59: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2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22. 83년 7월, 실수로 ‘버마 공작’을 노출했다!

( 조선일보 1983.5.28 / 레이건 친서)

1983년 5월 말 전두환패와 레이건패는 ‘북한의 비정규전 도발’ 운운하는 친서를 주고받으며 전두환의 버마 국빈방문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버마 음모’의 얼개를 짰다. 이때부터 10월 9일 ‘버마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넉 달 기간은 저들이 음모의 세부 계획을 다듬고 외장을 치는 기간이었다.

이 기간은 8월 5일 ‘전두환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 발표를 기점으로 앞뒤 두 달 씩 둘로 나뉜다. 5월말부터 8월 5일까지의 두 달여 기간에 아웅 산 묘소 앞에 세울 이들의 명부 (살생부) 작성과 버마에 보낼 공작원 선발, 대통령 전두환이 묘소에 도착한 것처럼 연출하기 위한 동선 조작 등 세부 계획이 마련됐을 것이고, 8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두 달 기간에는 세부 계획을 더 다듬으면서 아웅 산 묘소 폭파를 위한 예행연습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밀하게 자신들이 벌일 엄청난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저들은 그만 마각을 드러내고 만다. ‘가해자의 예비적 행위’를 노출한 것이다. 아웅 산 묘소 테러 두 달 전인 1983년 7월 13일 안기부가 떠벌린 ‘3개 간첩망 6명 검거 사건’에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의 얼개가 들어 있었다.

전두환 패거리가 국내 지식인과 학생,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등 죄 없는 이들을 잡아다 밀실에서 고문하며 ‘간첩을 만드는’ 일은 거의 일상이었지만, 버마 음모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설 즈음부터 저들은 특히 재일동포 2세들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데 혈안이었다. 그 이유는 일본에 있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총련)와 만경봉호의 존재와 관련이 있었다. 

[안기부는 이번에 검거된 간첩들을 통해 ▲북괴가 해외 무역상사와 외교 공관에 대남공작 전담 요원을 위장 배치해 [강조]해외 공관을 대남공작 전초기지로 이용[강조], 해외 취업자 여행자 등을 교묘히 포섭하여 제3국 우회간첩 활동을 강화하고 있고... [강조]일본을 수시 왕래하는 만경봉호를 이동 공작 기지로 이용, 간첩 교육과 함께 공작 활동 직접 지휘 감독하고[강조] ...] (「안기부 발표 ... 간첩 3개 망 6명 검거」<동아일보> 1983.7.13)
 

( 조선일보 1983.7.14)

‘북괴의 해외 공관’과 ‘만경봉호’는 버마 공작 시나리오의 주요 얼개를 구성하는 ‘버마 주재 조선 대사관’과 ‘동건애국호’의 풍유(諷諭)적 예시였다. (* 원관념(元觀念)을 뒤에 숨기고 보조관념(補助觀念)만으로 숨겨진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수사법을 풍유법이라 한다.) 이렇게 저들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준비하면서 이 사건의 책임을 북측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심리전을 전개했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안기부의 보도자료를 토대로「“북괴 공관 대남 공작 거점화”」라는 제목을 뽑았다.

( 조선일보 1983.7.14)

이렇게 만들어진 선동적 선전 문구는 석 달 뒤 저들이 ‘버마 사건’을 조작한 뒤 반복적으로 띄워진다. 

( 경향신문 1983.12.19)

저들이 ‘동건애국호’를 빌미로 끔찍한 음모를 꾸미면서 ‘만경봉호’를 앞세운 이유는 그에 관한 매우 달콤한 추억 때문이다. 9년 전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대남 테러공작의 거점’으로, 만경봉호를 ‘무장 공작원 운반선’으로 선전하며 ‘문세광 사건’(1974.8.15)을 조작해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 아직도 문세광이 육영수를 죽였다고 믿는 어리석은 백성이 쌔고쌨으니 저들은 지금도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박정희네 중앙정보부는 문세광 사건을 조작해 놓고 문을 ‘조총련의 사주를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던 북한 공작원’으로, 그와 면식이 있는 일본인을 ‘만경봉호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자’로 선전했다. 그렇게 중정에서 대북 공작을 일삼던 자들이 - 일제치하 고문 경찰관들이 미 군정 치하로 고스란히 넘어왔듯 - 전두환 정권으로 넘어왔을 것이고, 그 방식 그대로 아웅 산 묘소 테러 각본을 짰을 것이다.

전두환네는 - 또한 전두환네와 한 패인 레이건패는 - 동건애국호가 “일본에도 자주 들러 일본의 수출 상품 등을 운반했으며, 작년[1982년] 10월에는 일본 측이 수출한 7백여 대의 트럭을 요코하마항에서 선적해 간”(<동아일보> 1983.10.19)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들은 이 배가 곧 버마 랭군항에 오는 스케줄을 미리 파악했을 것이고, ‘북괴 공작원이 동건애국호를 타고 버마에 잠입’하는 각본을 만든 것이다.

다만, ‘북괴 공작선 동건애국호가 대남 공작을(테러를) 벌이려 한다’고 했다가는 ‘전두환 대통령이 버마를 국빈방문했다 갑자기 당했다’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부득이 만경봉호를 내세운 것이다.

전두환네가 아웅 산 묘소 테러를 획책하며 만경봉호를 심리전 공작의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11월 ‘재일동포 자수 간첩(?) 양달진’ 사건을 발표할 때부터였다. 동건애국호가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일본이 조선에 수출한 7백여 대의 트럭을 싣고 간 지 한 달 뒤 ‘양달진 사건’을 기획해 만경봉호를 띄운 것이다. 먼저 ‘만경봉호의 총책 김관섭’ 운운하며 이 배를 ‘대남 공작선’ ‘이동 공작기지’로 만들려 무진 애를 썼다.
 
[일본 거점 우회 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북괴 이동공작기지인 만경봉호 및 삼지연호 승선 지도 총책인 김관섭의 정체 ... 54세인 김은 평남 출신으로 65년부터 북송선 단장을 만경봉호.삼지연호에 교대로 승선, 조총련 조직 및 공작 현지 지도 임무를 전담 ... 김정일의 직계인 김은 북괴 당 고위층에 뇌물을 상납해 자리를 굳히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 교포사회에서는 ‘지옥의 사자’로 공포의 대상[?] ... 대외적으로는 ‘북한적십자대표’ 또는 ‘대외무역회사 고문’ 등의 직함과 김상일(金相一)이라는 가명을 사용 ... 만경봉호와 삼지연호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군림[?] ... 조총련 간부 등을 만경봉호로 소환, 그들의 활동 상황을 보고받고 사상 검열도[?] ... 김정일의 직계를 자처하면서 재일동포들을 수탈[?] ... 조총련의 한덕수(韓德洙) [단장]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과시할 목적으로[?] 북송 연고 교포들로부터 차용이란 이름 아래 약 25억 엔을 뜯어내[?] ... 조총련 상공인 이 모에게 김일성을 면담케 한 뒤 평양중앙병원 설립금조로 20억 엔을 받아 ...] (「만경봉호 총책 김관섭은 조총련 거점 간첩」<경향신문> 1982.11.12)

( 경향신문 1982.11.12)

11월 13일과 17일에는 ‘자수 간첩 양달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는 “니가타항에 입항한 만경봉호에서 세 차례 북괴 지도원으로부터 대남 공작 활동과 관련된 사상 교육과 교양 학습을 받았다”고 떠벌렸고, <조선일보>는 그 소식을 전하면서 만경봉호를 ‘이동 공작 기지’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1982.11.13)

( 조선일보 1982.11.18 / “만경봉호와 함께 교포 북송 및 북괴의 ‘이동공작기지’로 이용되고 있는 삼지연(三池淵)호 ... ”라는 사진설명이 붙어 있다.)

‘양달진 사건’ 발표 한 달 뒤인 1982년 12월 11일에는 <연합통신>이 만경봉호를 집중 조명했다. 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대남 적화 해상 전진기지 만경봉호의 정체 - 북괴.조총련 연결 교량 역할, ‘북송’ 간판 간첩 아지트」.

[북한과 일본을 왕래하는 북괴의 이른바 ‘화물여객선’ 만경봉호. ... 전장 120m에 폭 15m 높이 7.8m의 이 북송선은 ... 72년부터 재일동포들을 북송시키는데 투입되기 시작 ... 주요 임무는 북송자 수송에 있다기보다는 북괴의 정치적 목적을 포함하여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데 두어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이 북송선의 정체를 드러내는 관건이 된다. ... 조총련계 교포들의 북한 왕래, 재일동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 교육 및 대남 적화 책동을 위한 비밀 아지트 ...조총련과 일본 거점 간첩들에게 지령과 교육을 시키는 간첩 전진기지로서 혹은 북괴 공작 지도원과 조총련 간부의 회의 장소 ... 북의 꾐에 빠진 하수인들이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 장소로 이용되기도 ... 단순한 북한의 화물 여객선이 아니라 재일 조총련과 북한 노동당 지도부를 연결하는 교량인 동시에 대남 적화 야욕을 달성하는 해상 이동식 전진기지 ... 만경봉호가 일본의 항구에 입항하면 조총련 조직의 각급 간부들이 조를 짜서 이배에 승선 ... 북괴 당국이 파견한 지도원으로부터 그들의 일본 내에서의 활동 방향 및 대남 활동 지침에 관한 지시를 받는 것 ... 이러한 사실은 문세광(文世光) 사건에 관한 조사 결과에 의해서도 적나라하게 폭로된 바 있다.]

그러나 위 글 내용 중 ‘문세광 사건’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글 전체가 악의적 왜곡과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이어지는 문세광 사건에 대한 내용 역시 모조리 ‘거짓부렁’이다.

[만경봉호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드러내준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 국민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던져준 74년 8월 15일의 박 대통령 저격 음모 사건 ... 이 사건은 바로 만경봉호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박 대통령 저격 음모 사건의 범인 문세광은 조총련 간부인 김호룡(金浩龍)의 직접 지령에 의해 74년 5월 4일 오사까항에 정박 중이던 만경봉호에 승선, 선내 식당에서 북괴 공작원으로부터 “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 대통령을 저격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기록에 의거 당시의 상황을 다시 살펴보면 문세광은 74년 5월 3일 오후 김호룡으로부터 만경봉호에 승선하라는 지시를 받고 5월 4일 하오 8시쯤 조총련 맹원 2명과 함께 ... 만경봉호에 밤 10시에 승선, 식당에서 앞머리가 벗겨진 40대의 정 모라는 북괴 공작 지도원을 만나 저격 음모 지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이 때 북에서 온 이 지도원은 문에게 과자 한 상자를 주며 “김일성 주석이 보낸 선물”임을 강조하면서 문의 충성을 촉구하여 이 배가 김일성의 직접 지휘를 받는 최고의 공작선임을 입증해 주었다.] (80년대 초 전두환네와 레이건 패거리의 발광에 못 이긴 척 일본이 만경봉호 관계자의 하선을 금지한 뒤 총련계 인사들과 재일동포들이 이 배에 승선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 총련계도 아닌 한국계 민단 출신 문세광이 만경봉호에 승선해 뭔 지령을 받을 까닭이 있나. 문세광은 반정부 시위 때마다 앞에 나서 과격한 구호를 외치다 중정 파견 요원의 눈에 띄어 오랜 기간 중정의 ‘관리 대상’이었다. 그렇게 관리를 받다 결국 중정의 공작에 넘어간 것이다. 2005년 3월 27일 방영된 <MBC>의「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육영수와  문세광」을 제작한 조준묵 PD는 “사건 직전까지 문세광과 늘 붙어 다니던 인물이 있었는데 사건 직후 사라졌다. 중정 측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며 “취재할수록 문세광의 소영웅주의를 누군가 이용했다는 판단이 든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05.3.24). 지금 당장 유튜브에 ‘문세광’을 쳐 보시라. 올라오는 거의 모든 영상물은 이 사건이 박정희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임을 강력 시사한다. 특히 <조갑제TV>의「박정희 전기 11 - 미국 기자가 본 육영수 사살 사건」(2020.7.2)은 이 사건을 박정희가 직접 지시했다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이어 1983년 4월 17일 만경봉호가 일본 니가타항에 들어오자 <조선일보> 기자가 이곳으로 급파돼 만경봉호를 또 집중 조명했다. 뜬금없는 ‘니가타 르포’.

( 조선일보 1983.4.14)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 중앙 부두. 봄샘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한 척의 화물선이 정박하고 있다. 데크에는 화물인[?] 군용색 트럭 3대가 보이고, 그 주변을 파커 차림의 부두 노동자들과 선원들이 서성거리고 ... 출항 3시간을 앞두고 화물 적재는 이미 완료 ... 선수 폭에 검은색 페인트로 쓰인 배 이름 ‘만경봉’. 일본인 안내인과 함께 차를 멀리 세워 두고 선미 쪽에서부터 선수, 그리고 다시 선미 부분까지 1백여m를 천천히 걸어봤을 때, 뒤통수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배 위를 올려다보자 검은 제복 차림의 경비원인 듯한 자가 내려다보고 ... 줄곧 응시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섬뜩한 느낌이 ... 지난달 18일 오전, 10여 년 간 조총련 관계를 담당하고 있다는 일본 법무성 사무관 P씨(38)와 함께 찾아본 만경봉호의 모습이다. 총t수 3,573t, 길이 102m, 폭 14m, 속력 13노트, 승무원 70∼110명, 71년 4월 폴란드서 여객 및 화물 수송선으로 건조, 취항 개시 71년 8월 18일, 취항 항로 청진-니가타, 청진-아오모리, 청진-요코하마. 이것이 일본의 출입국 관리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만경봉호의 제원이다. 니가타는 일본-북괴의 교역항이자 재일교포 북송의 거점 ... ] (<조선일보> 1983.4.14 / ‘일본 법무성 사무관 P씨’의 등장은 버마 아웅 산 공작의 예비 단계에서부터 일본이 관여했음을 시사한다. 한국에서 신문기자 한 명이 취재 목적으로 일본에 가는 경우 일본 법무성 사무관이 따라나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위 르포는 한일 정부 또는 정보기관의 개입과 협조 아래 주문 제작됐을 것이다. 이 시기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숱한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도 일본의 공안 조직과 손잡고 벌인 일이다.)

이처럼 만경봉호를 연이어 조명한 이유는 이 배를 ‘대남공작선’ ‘이동 작전기지’로 형상화해 장차 벌어질 어마어마한 사건을 예시(豫示)하는 것 외 다른 것일 수 없다. 그것 말고는 1983년 이 배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전두환네는 마침내 ‘파괴 공작’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동경=연합】북괴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IPU(국제의회연맹) 총회를 방해하기 위한 재일 특수공작 책임자를 새로 일본에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경에서 발행되는 교포 일간 <통일일보>는 17일 L대좌로 알려진 새 책임자가 6월 초 수 명의 수행원과 함께 일본에 잠입, 오는 [강조]8월께 한국 각지에서 일제히 파괴 활동을 전개[강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독려하고 있다고 보도 ...] (「북괴, IPU 방해 공작 책임자 일본에 파견」<매일경제신문> 1983.6.17)

“L대좌로 알려진 새 책임자가 일본에 잠입”해 8월에 한국 각지에서 파괴 활동을 시작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통일일보>는 박정희 시절부터 중앙정보부 대북공작 조직의 심리전 매체로 온갖 거짓말을 퍼뜨리며 대북 적개심을 부추겨왔다. 위 글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겠지만, 이처럼 ‘말이 안 되는 말’ 속에도 화자의 속내가 담겨 있는 법이다.

‘1983 버마 공작’은 육사 12기들이 은밀히 벌인 ‘북파공작 812 계획’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본 대로다. 1983년 6월 중순이면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계획이 확정된 직후다. 그러면 이때쯤 아웅 산 묘소 폭파 공작이 구체화되고 공작 실행조가 짜였을 것이다. ‘L대좌와 그의 수행원들이 일본에 잠입했다’는 말은 그 공작 조직의 실무 책임자와 그 조직이 활동을 개시했다는 말이 아닐까. 12일 뒤인 6월 29일 <통일일보>가 또 ‘격렬한 대남 침투 파괴 공작’을 호언했다.

( 경향신문 1983.6.29)

[【동경=김용술 특파원】북한의 김정일은 최근 재일 특수공작 지도부에 긴급 특별 지시를 내려 앞으로 [강조]더욱 격렬한 대남 침투 파괴 공작[강조]을 전개, 오는 [강조]10월의 서울 IPU(국제의회연맹) 총회를 유산시키도록[강조] 지시했다고 ... 통일일보가 29일 보도 ... [강조]일본 내 대남 공작 요원을 총동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국 침투를 감행, 휴전선을 넘어오는 북괴의 특공부대와 합류해서 오는 8월 중으로 한국 내에서 사회 혼란을 일으키도록 계획하고[강조]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재일 공작 지도부에 대남 파괴 활동 8월 감행 지령방해」<경향신문> 1983.6.29)

‘통일일보 소설’에 감명을 받았는지 <경향신문>은 7월 2일「시한폭탄 같은 조총련」이란 섬뜩한 제목의 사설에서 “북괴는 지금까지 측면 부대 역할에 머물렀던 조총련 조직을 ‘공격 부대’로 전환시켜 보다 치밀한 대남 공작 임무를 수행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떠벌렸다.
이 신문은 또 북측이 “일본 등지에서 특수 훈련을 받은 2천500여 명의 핵심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켜 반미 감정과 무장 봉기를 선동하도록 획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북측이 제2 한국전쟁을 촉발하려 한다는 헛소리였다. 전두환 패거리가 내지르는 대북 적대의 언사가 이처럼 광기를 띤 것은 자신들이 획책하는 버마 테러 공작을 앞둔 초조와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들은 이렇게 광기를 발산해 오다 7월 13일 ‘3개 간첩망(?) 일망타진 사건’을 조작해 만경봉호를 ‘대남 공작선’ ‘이동 공작 기지’로 형상화한 것이고, 3개월 뒤 ‘1983 버마 사건’을 벌이면서 북측이 동건애국호를 이용해 사건을 벌인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이 배는[동건애국호]는 고도의 무선 장비를 갖추고 있어 중계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평양과 교신할 수 있는 특수 선박 ... 만경봉호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생각되는 이 화물선은 지난달 말 랭군항에도 정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 (「랭군의 붉은 테러 전모 - 버마 공식 발표만 남았다」<경향신문> 1983.10.14)

[【랭군=연합】버마 수사 당국은 16일 지난달 랭군항에 입항한 북괴 화물선 동건호가 북괴 특수 공작 요원을 랭군에 침투시킨 공작 모선으로 심증을 굳히고, 아웅 산 폭발 사건을 전후한 이 선박의 행적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고 ...] (「「북괴 동건호가 특수공작 모선 - 버마 수사 당국」<매일경제신문> 1983.10.17)

이처럼 ‘버마 자작 테러 시나리오’를 짜면서 만경봉호를 ‘이동 공작 기지’로, 일본 총련을 ‘해외 공작 거점 공관’ ‘재일 특수공작부’로 형상화했다면, ‘이동 공작 기지’를 통해 ‘해외 공작 거점 공관’에 모종의 지시를 내리는 ‘공작 사령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 저들은 일찌감치 ‘북괴 5인 위원회’를 띄워 놓고 있었다. 역시 <통일일보>를 통해서였다.

[【도쿄=이문호 특파원】통일일보가 13일 ... 북괴와 특수 관계에 있는 소식통을 인용, ... 대남 공작의 전권을 장악한 5인 위원회가 김정일을 비롯, 직계의 당 및 군 간부 5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래의 대남 특수 침공 부대와 공작망을 근본적으로 개편 ... 오는 9∼10월 사이 한국 각지에서 소란 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이미 파괴 공작원을 대량 남파 ... 일본에 5∼6개소의 공작센터를 설치 ... 이 일본 기지를 거점으로 부산 등 남해안 각지에 침투시킨 공작원으로 하여금 공공기관이나 산업 시설 파괴를 기도 ... 사회 혼란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북괴, 대남 침투 파괴 공작 기구화 방침 변경... 김정일 위원장 ‘5인 위원회’ 신설」<연합통신> 1982.7.13)

당시 대북 심리전 매체였던 <통일일보>가 ‘북한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의 5인 위원회’ 운운했다면 그 자체가 100% 날조다. 북측 최고지도부의 움직임을 이렇게 제 손바닥 보듯 아는 ‘북한 관계 소식통’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저들은 아예 없는 것을 상상해 ‘5인 위원회’를 창작했을까. 저들은 그런 가짜뉴스를 조작하는 일을 밥 먹듯 했지만, 위 ‘5인 위원회’는 전두환네가 꾸미는 음모를 이북의 것으로 역선전한 것으로 보인다.

연재 글을 찬찬히 읽은 독자들은 이 ‘5인 위원회’란 표현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1981년 8월 개시한 ‘북파공작 812 계획’(일명 벌초계획)을 주도한 박세직(朴世直) 안기부 2차장과 박준병(朴俊炳) 보안사령관, 이상연(李相淵)정보사령관 등 3인과 이들이 육사 12기라는 사실.

여기에 이들 3인을 휘하에 거느린 대통령 전두환, 그리고 그의 분신과 같은 어떤 이를 합치면 ‘5인 위원회’가 된다. ‘김정일을 비롯, 직계의 당 및 군 간부 5인으로 구성’됐다는 말이 그 말일 것이다. 박정희 시절에도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좌지우지했던 소위 ‘4인방’이 있었기에 전두환의 5인 위원회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 ‘4인방’은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경호실장 박종규, 보안사령관 김재규,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었다.) ‘812 계획’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으며, 보고 문건도 손으로 직접 썼고 보고 즉시 파기했다는 어떤 이의 증언(6편 글)은 ‘전두환과 그의 수하 + 육사 12기 3인’의 은밀한 움직임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추론이 맞는다면 ‘전두환네 5인 위원회’가 구성된 시점은 1981년 8월일 것이다. 박세직 수도경비사령관의 관직 삭탈 쇼가 벌어지고(8월 6일 각 신문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 7편 참조) - 이후 그가 안기부장 특보 또는 안기부 차장보 등의 직함을 갖고 위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 그를 포함한 육사 12기 3인이 ‘북파공작 812 계획’에 착수한 때다.

<통일일보>가 5인 위원회를 처음 띄운 시점(1982년 7월)은 안기부장에 ‘허수아비’(노신영)를 앉힌 직후로(1982.6.2 인사발령), 그와 동시에 비밀리에 박세직을 해외담당 2차장에 임명해 그가 안기부장을 거치지 않고 자유롭게 공작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때일 것이다. 전두환이 ‘선배 대접’을 하는 유학성 대신 ‘허수아비’를 안기부장 자리에 앉히면서 비로소 명실상부 ‘5인 위원회’가 성립됐을 것이다. <연합통신> 도쿄 특파원이 <통일일보>의 같잖은 글을 베껴 쓴 7월 13일, 대통령 전두환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북괴의 대남 정책을 강경 자세 전환” 운운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3일 “북괴는 최근 그들의 기구와 사람을 크게 바꾸는 등 대남 정책을 강경 자세로 전환할 것 같다”고 지적하고 ... “모든 안보태세에 완벽을 기하도록 하라”고 지시 ... 하절기는 비정규전 활동 위험이 증대되는 시기이며 ...] (「전 대통령, 국무회의서 안보태세 완벽 기하도록 지시」<매일경제신문> 1982.7.13)

( 매일경제신문 1982.7.13 / 1982년 7월 북측이 대남 강경 자세로 전환했다는 전두환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은 이즈음 북측이 남측 어선 ‘제5 마산호’를 끌어간 사건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배는 나포된 지 78일 만인 9월 29일 귀환한다. 1970.80년대 남측 어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갔다 북측 해경에 끌려가고 두어 달 뒤 돌아오는 예는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건을 두고 ‘북측의 새로운 대남 도발’ 운운하는 것은 북측에게 뒤집어씌울 일을 꾸미기 위한 핑곗거리가 없었다는 말이다. 1982년 7월 시점에 북측의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두환네와 레이건-나카소네 패거리의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나. 북측은 당시 1981년 시작한 서해갑문 공사(1986년 완공) 현장에 1군단 소속 장병들과 주민 등 수 만 명을 동원할 때로 미국과 남측을 자극해 전쟁을 촉발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1982년 7월 전두환네가 <통일일보>를 통해 ‘5인위원회’라는 것을 띄운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달 (8월)로 예정된 전두환의 아프리카 3국 순방 때 ‘북괴의 전두환 암살 기도 사건’을 조작하려는 음모와 관련이 있다. 앞서 설명한 ‘가봉 테러 시나리오’(17편 글 참조)가 그것이다. 그의 순방 출국 11일 전인 1982년 8월 6일 <통일일보>에 실린 수상한 글이 그 방증이다.

[【도쿄=이문호 특파원】북괴는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강조]아프리카 순방 기간 중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강조]하는 한편 적당한 항공기를 납치, 그 교환 조건으로 김대중 구출을 획책하고 있다고 ... 통일일보는 6일 대남 파괴 공작을 주관하는 김정일의 [강조]5인 위원회가 한국의 내부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전 대통령 암살을 획책[강조]하고 있다고 보도 ... [강조]‘김정일 5인 위원회’의 첫 사업으로 전 대통령 암살과 김대중 구출을 동시에 단행[강조]함으로써 한국의 정치적 타격을 기도 ...] (「북괴, 전 대통령 아주(阿洲) 순방 기간 암살 획책 - <통일일보> 보도」<연합통신> 1982.8.6 / 보통은 <통일일보>가 쓰면 통신사인 <연합통신> 도쿄 특파원이 받아쓰고, 이를 신문과 방송이 퍼 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위 글은 국내 신문 어디에서 실리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면서 같잖은 글을 통째로 옮겨 써 온 신문들도 위 글만은 도저히 베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통의 아프리카 순방 때 그를 암살하고 비행기를 납치한다느니, - 그 승객들을 인질로 잡고 - 전두환이 내란 음모 혐의를 씌워 옥에 가둔 김대중 씨를 석방시킨다느니 하는 말은 왜곡이니 과장이니 하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쓰레기다. 저들은 이런 같잖은 언사를 남발하며 가봉에서 ‘전두환 암살 모의극’을 꾸미려했던 것이다.

<통일일보>가 ‘북괴의 5인 위원회’를 띄운 지 4개월 뒤 안기부가 직접 이를 거론하며 ‘북괴의 대남 침투’ 여론 조작에 나섰다.

[안기부는 북괴는 최근 김정일 세습 왕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평화적인 대북 제의를 거부하면서 대남 모략 비방과 간첩 등 불순분자들을 사주, 우리의 안정 기반을 파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밝히고, 이제 북괴의 대남 남침 수법은 성별과 연령, 직업에 관계없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광역화되고 공작 수법 또한 더욱 교활해지고 있음을 직시, 투철한 대공의식으로 사전 저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 또 [강조]북괴가 최근 ‘대남공작 5인 위원회’와 같은 특별 기구를 만들어 특공부대 침투 훈련을 강화하고 대남 폭력 공작을 기도하는[강조] 한편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조총련을 비롯한 해외 불순분자들의 합법을 가장한 우회침투 공작을 벌이고 ... ] (「안기부, “북괴 대남공작특위 설치, 특공부대 침투 경계해야”」<동아일보> 1982.11.12 / <조선일보>는 안기부의 조작질에 편승해 “북괴가 최근 ‘대남 파괴 공작 5인위원회’와 같은 특별 공작 기구를 설치해 특공부대 침투 훈련을 강화하고 있음을 안기부가 일깨웠다”고 썼다(「“대남 침투 특공부대 경계를” - 안기부 당부」<조선일보> 1982.11.13).)

( 조선일보 1982.11.13)

당시 북측이 무슨 ‘특공 부대 침투 훈련을 강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두환네가 ‘812 계획’에 따라 은밀하게 특공 부대원들을 집중 양성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대남 공작 5인 위원회’는 전두환네 것이라야 맞는다. 그랬던 것을 ‘북괴의 5인 위원회’라고 선전하고, ‘만경봉호’를 ‘이동 공작 기지’로, 재일 총련을 ‘대남 공작 거점으로서의 해외 공관’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그러다 버마에서 일을 벌여 ‘북괴가 이동공작선(동건애국호)에 테러리스트를 실어 보내 버마 주재 대사관에 숨겨 놓고 있다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자행했다’는 각본을 완성한 것이다.

 (23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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