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21.12.02 13:19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뉴스홈 > 정치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1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공작과 은폐의 내막
강진욱  | 등록:2021-11-13 08:47:02 | 최종:2021-11-13 09:23: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1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21.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공작과 은폐의 내막

대통령 전두환의 버마 방문이 결정되는 내막을 한 꺼풀 더 벗겨보자. 1983년 5월 20일 대통령 전두환이 이범석 장관에게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을 지시하기 전, 버마를 대통령 순방 일정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버마 방문을 지시한 것은 여타의 방법으로 버마를 순방 일정에 끼워넣는 일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 아니겠나. 사실 전통(全統)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은 노신영 외무장관 재임 시기에 이미 결정돼 대통령 재가까지 받았다. 

(『노신영 회고록』309쪽)

이렇게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등 4개국 순방 일정이 짜이고 대통령 재가까지 받은 상태에서 노신영을 안기부장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이범석을 앉혔고(1982년 6월 2일 인사공작), 그 뒤 버마를 순방 일정에 끼워 넣으려는 기도가 여러 번 있었다. 노신영의 안기부장 발령이 버마를 순방 일정에 끼워 넣기 위한 것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그와 무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노신영 회고록』309쪽)

이범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외무장관이 된 뒤 외무부가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을 다시 짠 것은 이듬해인 1983년 초였다. 새로 짜인 순방 계획안에는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3개국만 들어 있었다. 노신영 장관 시절 짜였던 4개국 순방안에서 파푸아뉴기니만 뺀 것이다. 새로 짠 계획안은 1983년 2월 15일 대통령 전두환의 재가를 받는다.

[1983.2.15 전두환 대통령이 서명한 ‘대통령 각하 인도, 호주 및 뉴질랜드 방문’ 문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도 방문 일자가 확정됨에 따라 이미 방문이 결정된 호주, 뉴질랜드 외에 추가로 방문할 서남아 국가를 검토하게 되었다. 1983.3월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후보로 선정하고 이들 국가의 국내 정세, 우리와의 관계 등을 검토한 후에 서남아 지역에서는 스리랑카만 추가로 방문함이 좋겠다는 외무부의 의견을 청와대에 보고하게 되었다.] (최병효 책 17쪽)

위 인용문 중간에 “2월 15일 대통령 서명 후 방문국 추가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1983년 3월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를 후보지로 정하고 검토했을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스리랑카를 추가하기로 해 다시 4개국(+1국 경유) 순방안을 청와대에 5월 20일 보고하게 됐을 것이다.

[나는[최병효] 1983.3월 주영국대사관 공사로 떠난 최동진 아주국장 후임으로 부임한 김병연 국장의 지시로, 1983.5월 중순 대통령 재가를 위한 문서로 인도, 스리랑카, 호주, 뉴질랜드(홍콩 경우 귀국)를 방문하는 ‘서남아-대양주 대통령 순방 기본 계획서안’을 만들었다. ... 순방계획안은 외무장관-국무총리-대통령만 결재하도록 된 중요한 문서라서 장기 보관용으로 일반 A4 용지가 아닌 두꺼운 종이를 사용하였다.] (최병효 책 19쪽)

최 전 대사는 자신이 만든 계획안을 자신이 직접 총리실에 들고 가 결재를 받아다 이범석 장관실에 가져갔고 이 장관은 이 최종계획안을 전두환에게 들고 갔다 ‘버마 추가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스리랑카가 확정된 뒤”의 상황에 대한 또 다른 해설을 덧붙인다.

[박창석은[코리아타임스 기자] 이 장관 측근의 말을 인용하여 “인도.스리랑카.호주.뉴질랜드가 확정된 후, 장관이 한 나라 정도 더 추가해야겠는데 PNG[파푸아뉴기니]가 어떤지 우문기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라고 ... 우 대사로부터 ... 가급적 피해 줄 것을 요청 ... ] (최병효 책 19쪽)

최 전 대사가 짠 ‘4개국 순방안’이 한 차례 퇴짜를 맞아 여기에 다시 한 나라를 추가하려 했다는 말일까? 대통령 재가 전 총리 결재 과정에서 누군가 개입했을 수 있다. 그래서 4개국 순방안에 노신영 장관 당시의 최초 순방안에 포함됐던 파푸아뉴기니를 다시 추가하려다 그만두고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 스리랑카 등 4개국 순방(+홍콩 경유)안으로 총리 결재를 거쳐 5월 20일 대통령 결재를 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8월 5일 모든 언론에 일제히 발표되는 ‘대통령 각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에는 브루나이가 포함돼 총 6개국 순방으로 돼 있다. 브루나이 추가가 버마 끼워넣기 전인지 후인지 확실하지 않다.

[6월에는 버마.인도.스리랑카.호주.뉴질랜드.홍콩. 그러다가 7월에 가서는 홍콩 대신에 마지막 기착지를 괌으로 했습니다. 9월에 막상 떠날 때는 브루나이가 포함됐어요. 저는 7월에 브라질로 부임했으니, 9월 최종 단계 때는 아마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공로명 구술 『한국 외교와 외교관』154쪽)

김병연 당시 아주국장은 조금 달리 기억하는 모양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김병연 아주국장의 증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당초 방문 예정국은 인도, 호주, 뉴질랜드 3개국이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스리랑카, 브루나이가 포함됐고 마지막에 미얀마까지 확대되는 일이 일어났으니 ... 외무부도 모르는 사이에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영섭『초강 이범석 평전』52∼-53쪽)

전통의 순방 대상국이 어떻게 정했는지를 알아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스무고개’를 해야 할 판이다. 순방 계획안을 직접 작성한 최병효 전 대사조차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최 전 대사가 만든 최종 순방계획안도 사라져버렸다.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1983.5월 중순에 내가 기안하여 총리 결재를 받은 후, 이범석 장관이 5.20 대통령 결재를 받으러 갔었던, 버마가 포함되지 않은 ‘서남아 순방 계획안’ 문서를 외교사료관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왜 그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국무총리까지 결재한 문서를 없앴을까 의문으로 남는다.] (최병효 책 22쪽)

그는 책 출간 직후인 2020년 10월 초 월간지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외교부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봤으나 사라졌다. 전직 외교관들에게 수소문해도 그 문서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없애기라도 한 것인지…”라고 아쉬워했다(「아웅산 사건 당시 담당 서기관 최병효 前대사 증언」<신동아> 2020.10.5).

전두환의 버마행은 그렇게 매우 수상한 방식으로, 혹시 남겨질 문건조차 없애면서 은밀하게 결정됐다. 이런 은폐와 조작, 그로인해 빚어진 혼란은 전두환네와 미국이 버마에서 자작테러를 벌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지만 정작 대통령 순방 주무 부서인 외무부는 버마를 순방 안에 포함시킬 생각조차 못하는 해괴한 상황에서 연유한다. 저들은 외무부장관조차 모르게 버마 공작을 추진하면서도 외무부 스스로 버마를 택하도록 여러 번 순방국을 끼워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외무부는 버마를 순방 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저들에게는 이미 눈엣가시였던 이범석은 저들이 꾸미는 ‘버마 공작 시나리오’의 마무리 단계에서도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셈이다. 잘못하면 2년 간 은밀하게 벌인 버마 공작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저들은 어떻게 했을까. 빨리 그를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만 저들은 하수(下手)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버마를 순방 일정에 끼워 넣으려다 끝내 말을 듣지 않는 이범석을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뒷말이 나올 것이고, 버마 사건은 곧바로 전두환 패거리의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샀을 것이다.

저들로서는 어떻게든 이범석으로 하여금 버마를 방문지로 택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게 버마를 포함한 여러 서남아 국가들을 거명하면서 은연중 버마 방문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그래야 ‘버마 공작’을 ‘스무스하게’ 또는 ‘모냥 좋게’ 추진할 수 있다. 저들이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이 이범석을 어르고 달랬을 법한 정황이 있다.

앞글(17편)에서 이범석 장관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버마 답방을 피했을 것이나 아쉽게도 이에 대한 증언 한 마디 정황 한 개 드러난 것이 없다고 지적했었다. 그런데 여럼풋이나마 그와 관련됐을 법한 정황을 찾을 수 있었다. ‘버마 사건’을 획책하는 측에서 이범석 장관으로 하여금 버마를 답방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전두환의 순방 일정에 버마가 포함되도록 작업을 했을 법한 정황이다. 1983년 초부터 주한미국대사 리처드 워커(Richard L. Walker)가 뻔질나게 이 장관 집무실에 드나들고 이어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 왔다 가고, 또 두 달여 뒤 이범석을 미국으로 부른 것이 그것이다.

[최근 들어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의 외무부 방문이 부쩍 잦아져 외교가에서는 “한미 간에 어떤 현안이 생긴 게 아니냐”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외무부 당국은 계속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방한과 관련된 문제들이 협의됐다고만 설명. 워커 대사는 이범석 외무장관이 인도 방문 기간 중인 지난달 20일 이례적으로 노재원(盧載源) 외무차관을 방문했고, 이 장관의 귀국 직후인 28일 오후에 이어 31일에도 잇달아 이 장관과 장시간 요담. 이 장관과 워커 대사의 요담이 끝나면 박건우(朴建雨) 미주국장은 의례 “슐츠 장관의 방문과 관련, 의제 및 일정 등을 협의하기 위한 요담이다. 슐츠 장관이 경제통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기 포부를 얘기하고 싶은 모양”이라고 [강조]방향이 잡히지 않은 브리핑만 계속[강조]. 외교 관측통들은 “슐츠 장관의 방문 일정이나 외무장관 회담 의제를 놓고 초청자인 [강조]이 장관과 워커 대사 간에 몇 차례 씩 협의한다는 것은 모양이 좀 어색[강조]하다”면서 “뭔가 양측의 사전 견해 조정이 필요한 현안이 새롭게 발생한 것 같다”고 추측.] (「워커 대사 외무부 방문 부쩍 잦아져」<동아일보> 1983.2.1)

그렇게 2월 초 슐츠가 내한했다. 그런데 슐츠는 두 달여 뒤인 4월 말 이범석을 미국으로 초청한다.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에 다녀간 지 두 달 만에 한국 외무장관을 다시 미국에 부를 만큼 급한 현안이 있었을까? 없었다. 4월 12일 이 장관의 방미 소식을 전하는 글에는 그 어떤 시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외무장관은 오는 29일 슐츠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정치 군사 외교 정세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 전반 및 국제정세 ▲한국의 통일정책과 한반도 평화정책 방안 ▲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 ▲ 한미 양국 간 경제협력 문제 등을 협의할 예정 ... 이 장관은 방미 중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을 포함, 미 행정부 고위 인사와도 접촉하며 의회와 언론계 지도자들과도 만나 상호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 ... 귀국길에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세계문제협의회에서 한반도 정세에 관해 연설하고 5월 8일 귀국할 예정 ... ] (「한미 외상회담 29일 미서 개최 - 남북 교차승인 등 협의」<동아일보> 1983.4.12)

늘 해 오던 얘기를 또 하기 위해 이 장관을 또 미국에 부를까? 남북교차 승인 어쩌고 하는 얘기는 모두 헛소리였다. 미국은 지금도 조선(북한)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외무부 당국자는 이날 “이 장관의 방미는 한미 외무장관이 흉금을 터놓고 궁금한 문제 전반에 걸쳐 협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장관을 초청한 슐츠는 중동에 출장을 가 버렸다.

미국 측의 이런 무례한 처사에 이 장관 측은 분명 방미 계획을 재고했을 것이다. 새로운 현안도 없었고 자신을 초청한 미 국무장관이 자리를 비운다면 굳이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측의 재고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장관은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가야했다.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오는 27일 미국을 방문, 슐츠 장관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던 이범석 외무장관은 슐츠 장관이 중동에 급파됨으로써 이-슐츠 회담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방미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 23일 외무부 소식통이 ... 그러나 미국 정부는 23일 슐츠 장관의 중동 파견에도 불구하고 이 장관의 미 행정부 고위 인사 면담 일정과 미 의회 지도자들과의 접촉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통보해 왔으며, 슐츠 장관이 없더라도 케네드 댐 국무장관 대리와 회담하는 방안도 있으므로 이 장관의 방미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슐츠 장관은 ... 5월 중순 쯤이나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 (「이 외무 방미 재검토 - 슐츠 중동 방문으로」<조선일보> 1983.4.24)

결국 “큰 의의가 있다”며 요란하게 선전했던 한미 외무장관 회담은 미 국무장관 대리와의 회동으로(4월 29일) 대체됐고, ‘남북교차 승인 시기상조’라는 빤한 합의를 봤다. 남북 교차 승인에 앞서 전두환 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최고당국자회담이 먼저 열려야 한다는 시답잖은 결론을 내려고 이 장관을 미국에 불렀을까.

이상했던 것은 이범석은 7박 8일 방미 기간에 미국 정.관계 인사 40여 명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매일 평균 5∼6명을 상대했다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국무장관 대리 외에 국방장관(캐스퍼 와인버거, Caspar Weinberger), 상원 임시의장(스트럼 서몬드 Strom Thurmond),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 (하워드 베이커, Howard Baker),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짐 라이트 Jim Wright), 상원 군사위원장(존 타워, John Tower), 하원 군사위원장(데이비드 프라이스 David Price) 등등 ...

( 경향신문 1983.5.3)

( 동아일보 1983.5.4)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에 다녀간 지 두 달여 뒤 한국 외무장관을 미국에 불러다 이렇게 많은 이들을 만나게 한 것은 매우, 극히 이례적이다. 교황 전하가 납신 것도 아니고 미국 유력 인사들이 왜 이범석 장관을 만나려 저리 법석을 떨었을까. 또 이상했던 것은 이범석의 연설.

( 이영섭 책『초강 이범석 평전』473쪽 / 이영섭은 “워싱턴 매디슨 호텔에서 미 상하 의원을 포함한 유력 인사들 150여 명을 초청한 만찬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썼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괘한 먼 걸음을 해야만 했던 약소국 장관은 이렇게 아양을 떨어서라도 어색함을 감추려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별 이유 없이 태평양을 건너오게 만들어 놓고 7박 8일 동안 40여 명이 돌아가며 그의 혼을 쏙 뻰 까닭이 무엇일까. 그렇게 정신없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5월 8일 귀국한 그를 엿새 뒤인 5월 14일 주한미국대사 워커가 또 찾아가 30분 간 ‘요담’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범석 장관은 ... 오전 11시 워커 주한미국대사의 방문을 받고 약 30분 간 요담했는데, 워커 대사는 외무장관실을 나오며 ... “이 장관의 방미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고 코멘트.] (<조선일보> 1983.5.15)

거짓말로 둘러댄 것이다. 이 장관이 미국에 갔다 온 일에 대해 주한미국대사가 직접 이 장관을 찾아와 더 물을 것이 무에 있나. 그것도 미국에 갔다 온 지 엿새가 지나서! 앞서 외교부도 미 국무장관 슐츠 내한 전 워커의 잦은 외무부 방문에 대해 “슐츠의 방한을 앞둔 협의”니 “슐츠가 경제 전문가라서 ... ” 하며 둘러댔었다. 주한미국대사 워커가 뻔질나게 한국 외무부 문턱을 넘나든 것은 슐츠 방한이나 이범석의 방미 관련이 아니다. 공개할 수 없는 밀담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한미 간 최대 현안은 극비로 진행된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계획이었다.

슐츠가 한국에 왔다 간 지 약 열흘 뒤인 2월 15일 대통령 전두환이 ‘대통령 각하 인도, 호주 및 뉴질랜드 방문’ 문건에 서명했고, 그 후 별 현안도 없이 슐츠가 이범석을 미국으로 초청했고, 그가 미국에 다녀온 지 엿새 뒤 워커가 찾아와 그를 만나 ‘요담’했으며, 그로부터 또 엿새 만인 5월 20일 이범석은 순방 계획을 다시 짜 전두환에게 갔다. 이처럼 주한미국대사가 이범석을 빈번하게 접촉하고 미 국무장관이 방한하고 또 이범석이 미국에 가 수많은 이들과 만난 때는 한국 외무부가 대통령의 서남아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상부의 결재를 받는 때였다.

이범석 장관이 미국에 갔다 오고부터 전두환 대통령 자신이 이 장관에게 직접 버마 방문 지시를 내리기까지의 12일 기간은 저들이 이범석에게 은밀히 그의 버마 방문 또는 대통령 순방에 버마를 끼워넣을 것을 종용하고, 이범석은 저들의 수작을 끝내 거부하는 마지막 밀당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범석은 저들의 수작을 뿌리치고 버마가 빠진 순방 계획안을 내놓자 저들은 전두환의 직접 지시라는 마지막 카드를 써야 했던 것이다.

저들은 전두환의 순방 일정에 버마를 끼워 넣으려했던 은밀한 수작을 영원히 비밀로 남겨놓고 싶었을 것이다. ‘대체 왜 버마에 갔냐’는 세간의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저들은 어떻게 했을까. 갈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나라에 가야만했던 것은 전두환의 지시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려 했을 것이다. 실제로 저들은 전두환의 버마행을 이범석 장관이 결정한 것처럼 상황을 조작하려 했다. 사건 발생 10주년인 1993년 <중앙일보> 특집기사가 그 첫 번째 정황 증거다. 

[이 장관 측근들은 이 장관이 버마 행에 수동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청와대와 안기부 출신들은 버마 행을 외무부 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장관의 부친이 일제시대 버마에 사업차 방문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객사해 이 장관이 더 찜찜해 했다는 얘기도 외무부에 전해 오고 있으나 이 장관의 부친은 실은 만주에서 숨졌다고 한다. 외무부 관계자 Z씨의 증언.“버마가 추가된 것은 기왕 갈 바에 한나라를 더 끼워 넣자는, 좀 더 짜임새 있는 정상 외교를 하자는 취지에서 들어간 겁니다. 전 대통령과 이 장관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추가 문제가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씨 ‘나들이 병’ 겹친 과잉 외교”」<중앙일보>1993.8,13)

( 중앙일보 1993.8.13)

( 중앙일보 1993.8.13)

‘외무부 관계자 Z’. 누구일까. 이 자는 왜 문제의 버마행이 전두환과 이범석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결정됐다는 식으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까. ‘Z’는 외무부 관계자가 아니라 십중팔구 안기부 관계자일 것이다. 버마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자들은 이범석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식으로 상황을 조작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우려 한 것이다.

다행히 이듬해인 1994년 이범석 장관의 부인 이정숙 씨가 사부곡『슬픔을 가슴에 묻고』를 출간해 이 장관이 여러 사람에게 버마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으며, 자신을 버마에 가게 만든 자들을 가리켜 ‘개새끼들’이라는 말까지 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놀라운 이야기다. 이는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었지만,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그 내막을 만천하에 공개하려는 노력은 전무했다. 반대로 이때까지 11년 간 사건의 내막을 은폐해 온 자들은 이 씨의 책이 자칫 자신들에게 쏠리는 세간의 의혹을 키우지 않을까 심히 우려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한 해 뒤인 1995년 사건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장세동 씨가『일해재단』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버마 방문 일정이 갑자기 짜였다는 사실 자체가 언급돼 있지 않다. 아무런 문제, 아무런 잡음 없이 자연스럽게 버마에 가게 된 것처럼 쓴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덮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2000년 3월, 극우 월간지가 ‘한국 외교가의 이단아’ 소리를 듣는다는 이장춘(李長春) 전 대사의 맥락 없는 주장을 실었다. 

[“1983년 아웅산 사태를 맞은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은 처음에 어느 부서에서 기획하고 건의했는지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수께끼입니다. 국가 원수의 외국 방문은 당연히 외무부가 그 목적 등에 관한 건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당시 외무부는 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대통령이 거기를 갔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사고 후 청와대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도 않았습니다.”] (「이장춘 대사의 직(職)을 건 한국 외교 직격 비판 - 구멍가게만도 못한 외교부 인사」<월간조선> 2000년 3월호)

극우 진영을 대표하는 잡지가 대사를 지낸 이의 주장을 대서특필한 것은, 비록 일과성에 그쳤지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때까지 전두환의 버마 방문 결정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돌출 발언은 추가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전 대사의 주장이 ‘버마 사건’에 대한 체계적 연구나 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 때문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넉 달 뒤인 2000년 7월 출간된『노신영 회고록』. 사건 당시 안기부장이었고 자신이 대통령 순방 일정을 짰던 노신영이 전두환의 버마행 내막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도 ‘전두환의 지시’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계획이 크게 수정되었다’고 눙쳤다. 이후 노 씨의 언급은 더 모호해진다. 2011년 <연합뉴스> 인터뷰.

[ - 안기부장 재직시인 1983년 북한에 의한 아웅산 테러가 일어났는데. ▲전혀 몰랐다. 대통령도 모르고 버마(현 미얀마)에 갔다. 경천동지했지. 참 놀랬다. 퇴근하고 있는데 테러 보고를 받았다. 머리카락이 이렇게 뻗칠 만큼(머리에 손을 댔다가 멀리 하늘로 향하는 모습을 보이며) 놀랬다. 조금 있다 대통령이 무사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무리 못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남의 성지에 들어가 폭파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국정원50주년 인터뷰> 노신영 前총리ㆍ안기부장」<연합뉴스> 2011.6.6)

( <연합뉴스> 2011.6.6)

( <연합뉴스> 2011.6.6)

버마 방문 결정의 내막을 아는 이들이 모르쇠 하는 태도는 2012년 4월 1일 출간된 송영식 전 버마주재 한국대사관 참사의 회고록『나의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전두환의 버마행 지시 당시 버마에 있었던 그도 전두환의 버마행 지시를 빼고 ‘본국에서 온 이범석 장관의 명의의 친전(親電)’만 이야기했다.

그렇게 모두들 눙치고 넘어가더니 이듬해인 2013년(버마 사건 30주년)에는 새 책이 출간되거나 이전 책들이 재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범석 책임론’이 제기된다.

[1983년 남한 정부는 대통령의 서남아시아 순방을 계획했다. ... 당연히 주무부처는 외교부였고, 특히 이범석 장관이 처음부터 이 계획을 기획하고 주관했다. 이 장관은 특히 인도와의 관계를 중시 ... 자신이 인도대사로 근무할 때부터 총리인 간디 여사와 여러 중요 인사들과 교분을 맺어 ... ] (라종일『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66∼67쪽)

회고록에서는 말을 아끼던 노신영도 이때부터 ‘이범석 책임론’에 가세했다. 그는 2013년 5월 13일 KBS-1TV 다큐극장 3화「아웅산 그리고 2013」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순방을 내가 다 계획을 했어요. 그런데 내 후임자가 와서는 일정을 바꿨습니다. 수개 국을 돈다 할 때는 제일 큰 나라 즉, 우리하고 제일 이해관계가 많은 나라를 먼저 가는 게 상식 아닙니까? 그런데 버마부터 먼저 들어간다는 거예요.”] (KBS-1TV 다큐 극장「아웅산 그리고 2013」(https://www.youtube.com/watch?v=kv4aNsmBg68) / 이 KBS 다큐도 “버마는 가장 나중에 결정된 나라”라고만 할 뿐, 버마가 전두환의 지시로 추가됐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 KBS 노신영 인터뷰)

자신이 짠 계획을 후임 장관 이범석이 다 바꿨고, 그것도 순방외교 관례에 맞지 않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버마를 첫 방문국으로 정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투다. 후임자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송영식 전 참사도 한 해 전 책을 낼 때는 언급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며 ‘이범석 책임론’에 편승했다. 그는 2013년 1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해 5월 청와대를 다녀 온 이범석 외무장관이 공로명 당시 차관보에게 ‘버마가 경제협력 잠재성이 크기 때문에 순방국에 추가됐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공 전 장관으로부터 최근 들었다”고 밝혔다(「[외교열전]‘대참사’ 아웅산 폭탄테러의 전말」<연합뉴스> 2013.1.28).
 

( 연합뉴스 2013.1.28)

( 연합뉴스 2013.1.28)

공 전 장관이 왜, 어떤 계제에 송 전 대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혹시 버마 사건 발생 30주년에 즈음해 버마행의 책임을 이범석 장관에게 돌리려는 조직적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코리아타임스> 기자였던 박창석 씨는 1992년 공로명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책에 썼다.  

[“나는 1981년 1월부터 1983년 7월까지 외무부 정무 제1차관보로 있었고 ... 이범석[노신영] 장관을 모시고 1983[1982]년 6월까지 일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인도.호주.뉴질랜드만 결정되고 다른 나라는 거론이 안 됐습니다. 그 후 이범석 장관이 부임한 뒤에 스리랑카가 검토되기 시작 ... 미얀마는 외무부 실무진에서는 검토된 바가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병연 아주국장이 미얀마를 추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며 법석을 떨었습니다. ... 미얀마가 막판에 추가된 것은 외무부 차원이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 어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고려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리서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창석『아웅산 다시보기』112쪽)

“역사적으로 리서치되어야 할 사항 ... ” 당시 서남아과 서기관(최병효 전 대사)과 그 옆 자리의 송민순(훗날 외교통상부 장관)도 알고 있었던 것을 정무차관보인 그만 몰랐을까. 2013년 송영식 전 대사에게 버마 방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까지도 대통령 전두환이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그래서 김병연 아주국장이 ‘법석을 떨었다’고 얼버무리면서 ‘역사적 리서치’ 운운한 것인가. 2019년 4월 국립외교원이 출간한 책『한국 외교와 외교관』 -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에서도 공 씨는 똑같은 말을 되뇄고 또 긴 사족(사족)을 달았다.

[1차 순방할 곳으로 생각한 국가는 인도 ... 비동맹 세계 맹주가 인도였거든요. ... 인도를 커버한 다음에 우리의 전통 우방인 호주.뉴질랜드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범석 장관이 호주.뉴질랜드,인도 안을 가지고 청와대에 다녀오면서 “버마를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갑자기 버마냐?” 물었더니 “대통령께서 정주영 씨를 면담하셨는데, 정주영 씨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대통령께서 버마에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으니까 가 보시겠다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버마를 가시게 되면 스리랑카를 넣읍시다. 같은 비동맹이니까”라고 했죠. ... 그때 큰 프로젝트라고 하면 버마나 그 아래 지역에서 원유가 나온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어요. ... 최근에 당시 버마에 근무했던 임성준(任晟準) 대사[훗날 - 대사 역임]에게 ... 당시 현대가 관여했던 큰 프로젝트가 뭔가 물었더니, 킨다댐 사업이에요. 만델레이에서 남동쪽으로 110km 떨어진 판라웅 리버에 ... 현대가 이 다목적댐의 건설과 엔지니어링을 맡았어요. ... 이범석 장관이 청와대에 다녀와서는 버마에 가게 됐다고 하면서 “버마에서 사실 우리 선친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 그러니까 부자가 버마에서 돌아가신 거죠.] (위 책 154∼155쪽)

‘버마 방문 추가 지시’를 이범석 장관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했다가 김병연 아주국장에게서 들었다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나이 탓인지 노회한 외교관의 수사인지, 아니면 정말로 ‘전두환의 지시’에 대해 하는 바가 없는지 그는 시종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전두환의 지시로 시작된 버마행의 내막을 은폐하고 고인이 된 이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듯한 거짓 증언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때가 버마 사건 발생 30주년인 2013년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극우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면서 이북에 대한 적대감을 급피치로 끌어올릴 때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북한의 공작’으로 정리된 사건을 널리 선전함으로써 다시 한 번 대북 적대의 쇠말뚝을 때려 박은 것이다.

P.S.

그렇게 뒤틀린 역사를 재차 뒤트는 작업이 근년에 재연되고 있다. 2017년 6월『1983 버마』가 출간돼 ‘1983 버마 사건’을 전두환네와 미국의 자작테러로 새롭게 정의했지만, 2018년 9월에는 이영섭의『초강 이범석 평전』, 2019년 4월에는『한국 외교와 외교관』 -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이 출간됐고, 2013년 5월 제작된 KBS - 1TV의 아웅산 다큐가 2019년 유튜브에 등재됐다. 또 2020년 11월에는 최 전 대사의 책이 나왔다. 모두 이 사건에 대한 조작된 정의에 입각한 저작물들이다.

뿐만 아니라 KBS와 SBS 및 케이블 방송들이 딴따라 역사 프로를 만들어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을 제 멋대로 다루며 희화화하고 있다. 조작되고 왜곡된 한국현대사를 천박한 연예물로 만들어 일상에서 대북 적의를 확산시키려는 수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프로에 국립외교원장(홍현익)이 출연하는가 하면 소위 ‘진보’ 역사학자라는 이들이(한홍구, 박태균) 이런 프로를 가리켜 ‘훌륭하고’ ‘유익하다’며 추켜세운다. 언론과 정부기관 및 학계가 한통속이 돼 역사 왜곡에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는 모양새라 딱하기 짝이 없다. (22편으로 계속)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171&table=byple_news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068500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1/1]   파르티쟌  2021년11월13일 10시46분    
강진욱 기자님 좋은분석글 잘읽었습니다~~~
(0) (0)
5477 잠자는 호랑이 ‘박지원’을 건든 ...
3575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 ...
2633 윤석열, 전두환 옹호발언 ‘개-사...
2582 ‘똥별’의 조건
2113 우리가 노태우 죽음을 애도할 수 ...
2035 미 안보보좌관 “종전선언, 한미가...
1987 궁지에 몰린 자의 승부수
1965 노태우의 국가장… 민주화영령들이...
1949 [이정랑의 고전소통] 일능노지(逸...
1919 [오영수 시] 3.1절, 제헌절, 광복...
                                                 
民草가 주인인 中原, 제3지대를 위...
                                                 
[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
                                                 
종전선언까지 반대하는 후보를 지...
                                                 
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바이든, 차기 미 연준 의장에 ‘제...
                                                 
[연재] 지금, 이 혹성에서 일어나...
                                                 
[김해 장유소각장 ③] 소각시설로 ...
                                                 
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윤석열, 오락가락 정치행보에 신진...
                                                 
분노유발자 윤석열? 최저임금 ‘망...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지평선
                                                 
언론의 뒤틀린 ‘역지사지’
                                                 
[이정랑의 고전소통] 착미장(ė...
                                                 
참고 기다린다, 경찰청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⑩ 1부 ...
                                                 
[오영수 시] 3.1절, 제헌절, 광복...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인:신상철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마기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등록일 2012.02.02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