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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육사 12기 선두주자 박세직의 ‘위장 예편’
강진욱  | 등록:2021-05-03 14:33:55 | 최종:2021-05-03 16:04: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7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7. 육사 12기 선두주자 박세직의 ‘위장 예편’

‘1983 버마 사건’이 일어나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버마와 한국 양쪽에서 동시에 실현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중 하나가 버마 지도자 네 윈의 갑작스런 양위 발표와 육사 12기들이 주도했다는 ‘812 계획’이다. 이 ‘812 계획’이 대통령 보고 문건도 손으로 쓰고 보고한 문건은 즉시 파기할 정도로 그 방식이 은밀했다면, 이 공작에 육사 12기들이 동원되는 모양새는 기상천외했다.

흡사 스파이 소설 줄거리를 방불케 하는 그 이야기는 육사 12기의 선두주자로 꼽히던 박세직(朴世直) 수도경비사령관(육군 소장)의 갑작스러운 강제예편으로 시작된다. 그가 강제로 예편당했다는 발표가 나온 것은 버마 지도자 네 윈이 양위 계획을 발표하기(1981.8.8) 이틀 전, ‘812 계획’의 연원일(1981.8.12) 엿새 전인 1981년 8월 6일이었다.

버마에서 갑자기 네 윈이 양위 의사를 밝힌 것도 수수께끼고 박세직 수도경비사령관이 갑자기 강제 예편당하는 것 역시 수수께끼다. 버마와 한국에서 동시에 수수께끼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812 계획’이 시작됐고 이 계획은 3년 뒤 버마 사건을 마무리하는 다대포 작전으로 종결됐다. 하나하나가 모두 수수께끼인 이들 사건의 맥락을 찾으면 ‘1983 버마 공작’의 윤곽이 그려진다. 박세직 사령관의 강제예편 소식은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았다.

[(1981년 8월) 6일 박종식 국방부 대변인은 “재미 육사 동기생의 사업 지원을 위해 청탁을 한 박세직 수도경비사령관을 해임했다”고 발표 ... “박 장군은 수도 방위의 중책을 맡은 지휘관으로서 그 본부에 충실하고 정부 시책인 청탁 행위 배격 운동에 솔선수범해야함에도 이를 망각 ... 80년 12월 방미 시 이규환(李揆煥. 육사 12기 동기생)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사업 지원을 약속, 지난[81년] 6월 모 국책은행에 50만 달러를 이[규환]에게 융자해주도록 청탁 ... 관계장관.청장.국영기업체장 등에게 이[규환]에 대한 사업 협조를 청탁하는 등 정부 시책 위배는 물론 월권과 본분 이탈을 자행, 새 시대의 군인상과 군의 위신을 실추케 하는 결과를 초래 ... ”](「권력 박후 6공 정치드라마의 이면사 - 36 박세직 ‘대권 야심’ 불경죄로 도중 하차」 <경향신문> 1993.12.11)

육사 12기의 선두주자 박세직과 동기 이규환.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육사 12기들이 ‘벌초계획’(812 계획)을 주도했다”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벌초계획’(812계획)을 육사 12기들이 주도했다는 의미는 매우 심대하다.

박세직은 아웅 산 묘소 테러 다음날 안기부 2차장 직함을 달고 ‘진상조사단’ 단장 자격으로 버마로 날아가 이 사건을 ‘북괴의 소행’으로 만든 인물이다. 안기부 2차장 이후 그의 이력은 더 화려하다. 1985년 2월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총무처장관이 되고 이후 체육부장관 겸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장(1986.1∼1986.5),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1986.5∼1988.12), 안기부장(1988.12∼1989.7), 서울시장(1990.12∼1991.2)으로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다 14.15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영어와 불어 등 몇 개 나라 말에 능통하다는 말도 있고 10.26 직후에는 전두환의 거사 이유를 미국 측에 잘 이야기했다는 말도 떠돈다. 박세직이 미국과 어떤 연이 닿아 있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만약 김영삼.김대중같은 인물만 없었더라면 육사 11기인 전두환과 노태우에 이어 후임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른다.

훗날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더라도 박세직의 강제예편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통령 전두환을 보위하는 수도경비사령관의 갑작스런 관직삭탈! 사건 발표 당일 석간과 다음날 조간 신문 1면 톱을 차지할만 했다.

( 1981년 8월 6일 자 <경향신문> )

1981년 8월 6일 자 <동아일보>

8월 7일 자 <조선일보>

“부정 청탁 등 정부시책 위배는 물론 월권과 본분 이탈을 자행, 새 시대의 군인상과 군의 위신을 실추케 하는 결과를 초래 ... ” 거의 대역죄인이란 소리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두들 궁금해 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구국의 결단’ 운운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그 수수께끼의 내막을 아는 이는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에게 씌워진 갖가지 혐의 가운데 확인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박세직 사령관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러 강제로 예편당한 것처럼 상황을 조작했다는 말이다. 우선 박세직 사령관을 조사한 박준병 당시 보안사령관도 박세직의 강제예편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을 부인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를[박세직] 전격적으로 자르게 된 진짜 이유는 박 씨가 어떤 자리에서 “넥스트 이즈 마인”(전 대통령 다음은 나)라고 장담했던 얘기가 전 전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전 전 대통령이 박 씨를 지칭 “상 차린 놈은 따로 있는데 감히 어디다 대고 젓가락질이야”라고 불쾌해했다는 얘기 등 ... 하지만 박준병 전 보안사령관(현 민자당 의원)은 “그런 얘기(전 대통령 다음은 나)를 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수사를 했으나 별다른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 ] (「권력막후 6공 정치드라마 이면사 <36> 박세직 ‘대권 야심’ 불경죄로 도중 하차」<경향신문> 1993.12.11)

박준병 보안사령관도 육사 12기였다. 박준병 씨는 또 “이규환이가 뇌물을 쓸 만큼 여유가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면서 “수사를 해 본 결과 별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세직이 무슨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모두가 떠벌렸지만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가 50만 달러를 융자해 주도록 청탁했다고 신문.방송이 떠들어댔지만 실제로는 1원짜리 한 개 오간 것이 없었다.  

그러면 대체 박세직 수도경비사령관의 갑작스런 강제예편은 뭐란 말인가. 왜 없는 사실을 만들어 그의 군복을 벗겼을까. ... ... 우리는 그 이유를 육사 12기들이 주도한 ‘812 계획’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의 ‘강제 예편’은 이 특수한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위장 예편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판단은 아래 세 가지 사실에 근거한다.

①그의 강제 예편 직후 육사 12기들이 ‘812 계획’이라는 이름의 특수공작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 계획은 2년 뒤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우는 ‘다대포 작전’으로 종결된다.
②박세직은 예편 뒤 - 안기부에 갔다는 말조차 없다가 - 버마 사건이 일어나자 안기부 2차장 직함을 달고 나타나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
③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하기 위한 ‘다대포 간첩(?) 체포 작전’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박세직 등 육사 12기들이라는 사실이 이 작전에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해 아주 먼 훗날에야 밝혀진다.

(사진 37-9 : <월간조선> 2007년 6월호 글「핵심 장교들의 최초 증언 - HID 대북작전 비사」)

정보사령관 이상연이 또 박세직 안기부 2차장과 육사 12기 동시였다. 정보사령부는 우리네가 모르는 북파공작 등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때로는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들을 상태로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저들 조직은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이런 류의 테러를 태연스레 ‘내수공작’이라고 불렀다. (*‘내수공작’은 1960년대 정보사령부의 전신인 육군방첩대 시절 이진삼(훗날 육군참모총장, 체육부장관, 자유선진당 의원)이 ‘방첩대장 직속 605특공대’ 대장이었던 시절과 그 및 그의 동생인 이진백이 연거푸 정보사령관을 지냈던 1980년대가 특히 심했다.)

박세직 안기부 2차장이 이상연 정보사령관과 다대포작전을 모의한 시점은 불분명하지만,  그 시점은 아마도 ‘1983 버마 공작’의 시초인 ‘벌초계획’(일명 812 계획)을 수립할 때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육사 12기들이 ‘812 계획’을 주도했다”는 증언(<주간조선> 2010.4.12)과 이 계획의 마무리작전인 다대포 작전을 박세직과 이상연이 짰다는 증언은 1981년 8월 수립된 ‘812 계획’과 1983 버마 테러 및 다대포작전은 각각 별개 사건이 아니라 ‘1983 버마 공작’을 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결론(앞글 6편)을 뒷받침한다.

또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일어난 그 시각 박세직 전 수도경비사령관과 박준병 보안사령관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자.

( 박세직 회고록『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50쪽)

( 박세직 회고록『하늘과 땅, 동서가 하나로』51쪽)

지금까지 등장한 육사 12기 4인(박세직.이규환.박준병.이상연) 가운데 단연 그 중심에는 박세직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있다. 그의 강제 예편 드라마의 조연이 이규환과 박준병이었고, 다대포공작은 그가 총연출하고 이상연 정보사령관이 그를 보조했다고 볼 수 있다. 다대포공작의 총연출자가 그였음을 상징하는 사진이 있다.

위 사진은 박세직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다대포 작전에 투입되는 ‘설악개발단’ 소속 특수공작원들을 격려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떠도는 사진에 아래 ‘1983년’이라고 명기돼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안기부 해외담당차장(2차장) 직함을 달고 있을 때로 추정된다. 그 때가 언제건 그가 어떤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해외담당 안기부 차장이 특수공작부대를 시찰했다는 사실 자체가 의구심을 자아낼 일이다.

이처럼 박세직이 매우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을 시기에 안기부장(노신영)은 일종의 ‘바지사장’ 즉, 허수아비같은 존재였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사진 37-13 : 박철언 회고록『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95쪽)

무슨 말일까. 노신영이 종교인들을 만나고 다니며 우아한 안기부장님 행세를 하고 다니는 동안 박세직 안기부 2차장 등 육사 12기들이 중심이 된 ‘812 대북공작’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말 아닌가? 1982년 10월 22일은 노신영 외무장관을 안기부장으로 보내고 그의 자리에 이범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앉힌 지 넉 달여 만이다. 이때쯤이면 ‘1983 버마 공작 각본’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을 것이다. 여기에 버마를 끼워 넣어 버마에서의 자작테러 각본을 완성한 것이다. 1983년 5월 버마 군 정보국장이 갑자기 숙청돼 정보국 업무가 마비되는 때 전두환이 이범석에게 버마를 순방 일정에 넣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은 앞서 밝혔다. 전두환은 아웅 산 묘소 테러 19일 뒤인 1983년 10월 28일에도 노신영을 대놓고 칭찬했다.

[10월 28일, 프라자호텔에서 현홍주 안기부 차장과 식사 중에 청와대 서재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점심을 그치고 급히 도착하니 전 대통령은 약간 피곤한 표정이었다. 나는 금융 부정 관련자 등에 대한 처벌 법규 보완을 위한 입법계획안을 간략히 보고했다. 선 채로 보고를 마치니 앉으라고 했다. 함께 앉아 제5공화국의 대통령 비상조치권과 위기 극복 및 국가 안정을 위한 현행법상의 제도를 보고하고, 마이클 노박이 쓴『민주자본주의 정신』과 문공부에서 발행한 <국가와 교회> 뉴스레터 1호를 참고로 드렸다. 대통령은 당과 잘 협의하여 회기 내에 특별법안을 처리하라고 하면서 ... 대통령은 종교 문제는 노신영 부장이 헌신적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고영근, 윤반웅, 문익환, 이문영, 함세웅, 박형규 등 많은 종교인들을 만나 7-8시간 씩 잠도 식사도 거르고 수 차례 설득하여 대화한 결과 조금씩 회유되고 있다는 노 부장의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박철언 회고록『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115-116쪽)

이어지는 전두환의 말에 뼈가 있었다.

(사진 37-14 : 박철언 회고록『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1』116쪽)

‘2차장’은 바로 박세직이었다. ‘812 계획’(1981.8.12)으로부터 ‘1983 버마 사건’(1983.10.9)과 ‘다대포 작전’(1983.12.3)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이 세 개 사건을 관류하는 이름 박세직. 그가 안기부 2차장으로 있을 때 안기부장은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면 박세직의 강제 예편은 ‘1983 버마 공작’을 위한 위장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을까.

그래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박세직은 강제예편 후 3개월여가 지난 1982년 1월 6일자로 동력자원부 정책자문위원에 위촉된다. 그랬으려니 했다. 수도경비사령관 자리에서 쫓아내긴 했지만 그래도 제 식구니 한 자리 챙겨 주나보다 했다. 당시 동자부 정책자문위원은 박 씨 등 신임 6명을 포함해 총 78명으로 그냥 놀고먹는 인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박세직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1982년 2월 1일 그는 약 한 달 일정으로 “유럽과 미주 지역 원자력발전 등 에너지 관련 시설을 돌아보기 위해” 출국했다 3월 4일 귀국한다.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의 발전 시설을 돌아봤다는 짤막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지만 그가 어디에서 가서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박세직 동자부 자문위원이 유럽과 미주 지역 원자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한다는 기사를 <동아일보>가 연 이틀 연속 ‘경제단신’에 실었다.)

박 씨는 해외에 나갔다 온 지 열흘 여 뒤인 3월 15일 한국전력 부사장에 임명된다. 동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지 20일 만에 한 달 간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국영기업 부사장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때도 5공 정권의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그가 다시 출세가도를 달렸나보다 했을 것이다.

당시는 전라남도 영광에 짓는 고리 원자력발전 11.12호기 건설 공사를 놓고 세계 각국의 원자력 건설업체들이 각축을 벌일 때였다. <매일경제신문>은 1982년 3월 24일 자 「원전 11.12호기 8개국 15강자 대결」기사에서 “한전은 이번 11.12호기 발주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현재 발전소 공정 수주액 등의 산정 방식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지난달 구미 지역 원자력 발전 현황을 둘러 본 박세직 부사장 및 전 임직원이 우리나라에 유리한 기종 선택에 부심하고 있다”고 썼다.

(사진 37-20 : 매일경제신문 1982.3.24)

이상하지 않은가. 한전에서 잔뼈가 굵은 성락정(成樂正) 사장을 제치고 박세직 부사장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다는 뉘앙스다. 마치 그가 이 나라 원자력 산업을 두 어깨에 걸머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처럼 언론은 박세직의 일거수일투족을 쫒아 그의 건재를 전하기에 바빴다. 억지로 박세직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려는 듯 했다. 박 씨와 성 씨가 한전 부사장과 사장에 임명될 때부터 그랬다. 그 다음날인 3월 16일 <경향신문>에 실린 큼직한 박 씨의 프로필 기사. “한전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장이 계시기 때문에 마음 든든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에 내 몸을 바치는 각오로 일하겠습니다.” 박스기사 제목도「한전 부사장 박세직 씨 문무 겸비 “나라에 내 몸 바칠 각오”」였다.

( 경향신문 1982.3.16)

“마지막으로 나라에 내 몸을 바친다는 각오로 일하겠다.” 5공 정권 권력 서열 3.4위에 꼽힐 수도경비사령관을 지낸 이가 그깟 국영기업 부사장 자리에 이리 감격할까? 물론 그가 엄청난 부정을 저지르고 관직삭탈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뒤 굴신하다 한 자리 얻은데 감지덕지하며 눈물바람에 애절하게 충성을 다짐했다고 봐 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웅 산 묘소 테러 직후 그가 갑자기 안기부 2차장 직함을 달고 나타나고 또 그가 1981년 8월 시작된 ‘812 계획’과 그 ‘계획’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대포 작전에도 그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 아주 먼 훗날 - 드러난 이상 그의 한전 부사장 임명 소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나라에 몸을 바친다”는 위장된 언설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 비장한 각오에 합당한 행위는 그깟 공기업 부사장 자리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보하고 보고한 서류는 즉시 파기하는 무시무시한 계획(육사 12기들의 812 계획)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 

두 달여 뒤인 1982년 5월 29일 박 씨는 태평양원자력회의 준비위원장이 된다. 미국 원자력학회가 후원하는 태평양연안국 원자력회의(PNBC, Pacific Basin Nuclear Conference)를 개최하기 위해 열린 준비위원회 회의에서였다. 한전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장은 뭐하고 왜 부사장이 계속 행세를 할까? 박세직은 원자력 전문가도 아니었다.

( 매일경제신문 1982.5.29)

태평양원자력회의는 3년 뒤인 1985년 5월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것으로 이미 결정돼 있었다. 무슨 올림픽 준비도 아니고 3년 전부터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는 회의도 있나? 이 또한 박세직에게 어떤 임무를 부여하기 위한 위장이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박세직은 한전 부사장에 임명될 때(1982.3.15) 안기부 내 위장 직책과 어떤 비밀 임무가 주어졌을 것이고 그로부터 두 달 뒤 그가 어떤 회의 준비위원장이 될 때(1982.5.29) 그 비밀 임무에 본격 착수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그가 강제로 예편을 당했을 때부터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 1981년 8월 6일 고위층 청탁 행위라는 이유로 해임과 동시에 강제예편 당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무혐의로 판정 받아 예편 이후 공직에 복직, [강조]1981년 8월 동력자원부 정책자문위원 겸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되었다.[강조] 이후 1982년 1월 15일 동력자원부 자문관, 1982년 3월 15일 한국전력공사 부사장, 수석부사장을 거쳐 [강조]11월 30일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보[강조], 1983년 1월 안기부 제2차장 등을 역임했다. 안기부 제2차장 재직 중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이 터지자 조사단장으로서 버마에 파견, 아웅산 문제 관련 버마 측의 의혹을 해소하였으며 사태를 수습하고 돌아왔다.] (인터넷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 위키피디아)

위에 또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1982년 11월 30일 안기부 차장보에 임명됐다는 것. 날짜까지 명시한 것으로 보아 사실일 것이다. 그가 ‘투 잡’을 뛰었으리라고 상상하지 않는다면 박세직이 한전 부사장으로 재직한 기간은 이때가지 8개월에 불과하다. 또 그가 강제로 예편당하고 3개월 여 만에 동자부 자문위원이 되는 때(1982.1)부터 한전 부사장으로 재직한 기간을 합쳐 봐야 10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그가 안기부 차장보가 된 때부터(1982.11.30) 안기부 2차장에서 물러나 총무처장관이 될 때까지(1985.2)의 기간 2년 3개월에 비해서도 훨씬 짧다. 그의 동자부 자문위원 또는 한전 부사장 이력 및 그 기간에 그가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한 행위들은 모두 안기부 내에서 특수 공작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위장이었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그가 강제 예편과 동시에 안기부장 특보가 됐다는 위 기록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의 동자부 및 한전에서의 직책과 업무는 모두 위장이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또 특기할 사실이 있다. 박세직이 태평양원자력회의 준비위원장이 된 ‘1982년 5월 말’은 안기부장 자리에 ‘허수아비’(노신영)을 앉히는 ‘인사 공작’이 벌어진 때였다는 것. 이 또한 박세직의 ‘위장 취업’을 의심해야 하는 정황이다. ‘1983 버마 공작’을 꾸민 자들은 1982년 3월 박세직을 한전 부사장에 임명한데 이어 그를 안기부에 박아 넣으면서 안기부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인사공작을 꾸몄을 것이다.

P.S.

박철언 씨는 회고록에서, 1982년 10월 22일과 1983년 10월 28일 두 번이나 대통령 전두환에게서 노신영 안기부장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썼다. 왜 그랬을까. 만약 박 씨가 전통의 칭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그 이야기를 날짜까지 박아 두 번이나 기록할 이유가 없다. 그는 차마 글로 밝힐 수 없는 무엇인가를 행간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 최고의 책사(策士)였던 그는 전두환이 노신영 외무장관을 안기부장 자리에 앉힌(1982.6.2)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신영이 넉 달 째 시답잖은 일로 소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두환에게 직언했을 것이다. “외무직만 평생 해 온 노신영을 안기부장 자리에 계속 둬서는 안 됩니다” 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전두환에게 직언할 수 있는 최측근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그저 노신영을 칭찬할 뿐이었다. “종교인들을 만나고 다니며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니 신경 쓰지 마.)” ...

그렇게 넘어갔는데 1년이 지난 뒤 버마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정상인의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안기부장이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있는 중에 안기부 해외담당 차장(2차장)이 된 박세직은 그동안 뭣을 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1983 버마 사건’은 안기부장과 해외담당 차장이 모두 헛짓을 하지 않는 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석고대죄 해야 할 안기부장은 계속 자리를 보전하고 있고, 역시 밥값을 못 해 희대의 끔찍한 테러를 당한 해외담당 차장은 테러 다음 날 진상조사단장이 돼 버마에 가 계속 죽치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박철언은 수상한 이 시추에이션에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고 여기저기 물었을 것이다. 그러다 같은 검찰 인맥인 현홍주 안기부 1차장을 따로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철언이 노신영과 박세직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궁금해 하며 여기저기 묻고 다닌다는 사실을 눈여겨보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마침내 박철언이 현홍주 안기부 1차장을 따로 불러내 점심을 먹고 있다는 정보보고가 전두환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전두환은 곧바로 둘의 대화를 중단시키고 박철언을 청와대로 부른 것이다. 급한 일도 없으면서 ...

[점심을 그치고 급히 도착하니 전 대통령은 약간 피곤한 표정 ... 나는 금융 부정 관련자 등에 대한 처벌 법규 보완을 위한 입법계획안을 간략히 보고 ... 선 채로 보고를 마치니 앉으라고 ... 함께 앉아 제5공화국의 대통령 비상조치권과 위기 극복 및 국가 안정을 위한 현행법상의 제도를 보고하고, 마이클 노박이 쓴『민주자본주의 정신』과 문공부에서 발행한 <국가와 교회> 뉴스레터 1호를 참고로 드렸다. 대통령은 당과 잘 협의하여 회기 내에 특별법안을 처리하라고 하면서 ...]

박철언이 점심 먹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급히 청와대로 달려가 보고한 내용이 허접한 것들뿐이다. 급히 불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전두환은 그저 박철언이 노신영이나 박세직의 행적을 캐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을 뿐이다. 또 단단히 이르려 했을 것이다. 그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노 부장은 국제외교관계에 밝아 2차장 말은 보고를 안 들어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국내 문제에만 진력하고 있다.” 박철언의 명석한 두뇌는 이 말을 ‘노신영의 안기부나 박세직 2차장의 일에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또 전두환은 ‘피곤한 표정’이 아니라 ‘약간 노기 띤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8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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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stevan  2021년5월4일 20시39분    
매우 귀중한 글을 통해서 군부독재의 속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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