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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4
강진욱  | 등록:2021-04-09 12:53:02 | 최종:2021-04-09 13:14: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4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4. 이범석은 왜 버마에 가지 않으려 몸부림쳤을까

‘1983 버마 사건’으로 장.차관급 4명을 포함해 17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유독 버마에 가지 않으려 몸부림친 이가 있다. 외무장관 이범석.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 버마 일정 추가 지시를 받은 5월 20일부터 10월 9일 버마 아웅 산 묘소에서 목숨을 잃을 때까지 넉 달 스무 날 동안 그는 사신(死身)의 부름에 저항했다. 최 전 대사는 이를 ‘이범석 외무장관의 버마 기피증’이라고 소제목을 달아 책에 썼다. 그가 버마에 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를 캐야 할 일을 ‘기피증’이라니 ...  

전통(全統)의 버마 행각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5월 20일 이 장관은 실무진이 완성한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안을 들고 대통령에게 갔다. 이미 청와대 비서진과의 사전 협의를 거쳤고 총리(김상협) 결제까지 받은 다음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퇴짜를 놓고는 버마 방문 일정을 추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 지시에 이범석이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일언반구 증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 보고 자리에는 함병춘 비서실장이 배석했을 것이나 그는 이범석과 함께 아웅 산 묘소에서 폭사할 운명이었다.(그 외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법한 이들은 장세동 경호실장 및 그와 육사 동기(16)인 정순덕(鄭順德) 정무1수석 등이다).

이범석은 아마도 버마행을 갑자기 지시한 이유를 물었을 것이고 전두환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자신의 지시 이행을 강요했을 것이다. 이범석은 외무부로 돌아와서는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한다. 사신(死神)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제1신(scene).

( 최병효 책 51쪽)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 장관이 서류를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도 최 전 대사의 책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안다. 지금까지 ‘1983 버마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들 모두가 쉬쉬 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는 모두가 쉬쉬하고 있다. 말을 하고 싶은 이들은 뭣인가가 두려웠을 것이고, 또 어떤 자들은 자기들만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쉬쉬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 전 대사가 전하는 이 놀라운 이야기도 상황 묘사가 충분치 않다. 이 장관이 서류만 집어던졌을까. “에잇 ... ” 하는 말 정도는 했을 것이다. 평안도 사투리를 섞어 쓰는 그는 대가 센 사내였다.

이 장관의 이런 모습을 그의 보좌관(김성엽)으로부터 전해들은 최병효 서기관이 송민순 서기관(훗날 외교부장관)과 함께 씁쓸하게 웃은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겠나(2편). 장관이 서류를 집어던질 정도로 대통령의 버마 방문 지시에 불만을 표시하니 부하들도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계철 버마대사에게 대통령 방문 추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달아 회신해 줄 것을 요청하려고까지 한 것 아닌가.

사신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저항의 몸짓을 보인 것은 버마행을 여드레 앞둔 9월 30일이었다. 자신을 버마에 보내려던 자들을 가리켜 “개새끼들”이라고 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미국 뉴욕 한인 식당에서 현지 공관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5월 20일 서류를 집어던진 이후 넉 달 열흘 동안 이범석 장관은 전통의 버마 방문 계획에 대해 누구에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껏 이에 대한 증언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가 뉴욕에 간 이유는 9월 1일 대한항공(KAL) 007기가 소련 캄차카반도 인근 영공에 들어갔다 소련 공군기가 쏜 미사일에 격추된 끔찍한 사건 때문이었다.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한 이 사건은 미국 CIA가 항공촬영 목적으로 남한 여객기를 소련 군사기지 밀집지에 들이밀어 빚어진 참사였지만, 한.미 양국은 소련을 악마화(demonize)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외무장관 이범석도 유엔 무대에서 소련을 ‘악의 축’으로 모는 외교전에 나서야 했던 것.

엿새간의 힘든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기 전날 공관원들과 함께 뉴욕 맨해튼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당시 이 장관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이들은 김경원(金瓊元) 주유엔대사, 박수길(朴秀吉) 공사, 김세진(金世珍) 뉴욕총영사 셋이었다. 이런저런 대화 속에 여드레 뒤에 시작되는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순방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자 이 장관은 화를 참지 못하고 “개새끼들 때문에 버마까지 가게 됐어”라며 말해 버린 것이다.

( 허영섭 책 56쪽)

( 최병효 책 52쪽)

이 이야기는 이 대사의 부인 이정숙 씨가 1994년에 펴낸 사부곡『슬픔을 가슴에 묻고』에 처음 나오는 얘기다. 그는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왜 남편이 버마에 가지 않으려 했는지, 그런데도 왜 따라가야만 했는지를 알아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이 귀중한 에피소드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알아낸 이야기였지만 이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19년이 지난 2013년,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30주년에 맞춰 여러 책들이 새로 또는 재출간되면서 이 이야기가 다시 회자됐다. 라종일의『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과 박창석의『아웅산 다시보기』가 그 상황을 전했다. 한 해 전인 2012년 송영식 전 참사가 회고록『나의 이야기』를 출간했지만 이 이야기는 싣지 않았다.

이어 2017년 나온 필자의 책『1983 버마』가 이 “개새끼들” 이야기 등을 재해석해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전두환네와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규정했고, 2019년 나온 허영섭의 책『초강 이범석 평전』과 2020년 나온 최 전 대사 책은 이 대사의 욕지기를 인용하면서 1983 버마 사건을 ‘북괴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신의 부름을 피하려는 이범석의 세 번째 몸부림은 대통령과의 대면이었다. 뉴욕에서 돌아온 직후 전두환에게 이 치료 후유증을 호소하며 버마 행각에서 첫날 하루만 빼 줄 것을 간청했다. 몸부림이라기보다 차라리 호소였다. 이범석은 자신이 마주한 이가 바로 사신의 현신(現身)인 줄을 몰랐을 것이다.

( 최병효 책 52쪽)

사신 앞에 선 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 이가 아파 하루만 늦게 가겠다는 그에게 전두환은 ‘뭘 그깟 일로 ... ’ 하며 기어코 이범석을 자신의 버마 행각에 끌고 갔다. 정말 하루만 늦게 갔더라면 ... 그 ‘하루’는 이범석을 살리려는 그의 수호신이 내민 최후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이 장관은 버마에 억지로 가야만 하는 심정을 여러 사람에게 토로했지만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할 운명이었다.   

( 최병효 책 52쪽)

10월 8일 오전 10시 경 김포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 참석한 이 장관의 표정은 사뭇 침울했다. <조선일보> 임동명 기자의 전언이었다.

( 사진 허영섭 책 40쪽. 출전은 <월간조선> 1983년 11월호)

버마에 도착한 뒤에는 기분이 좀 달라졌겠지만, 이 장관은 호텔로 가는 길에 기자들에게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또 드러냈다. 이때는 이미 사신에 대한 저항을 포기한 뒤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 사진 허영섭 책 43쪽)

문제는 모두가 이런 에피소드를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행이 이범석 장관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된 정황’으로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이해력이 모자란 것인지 너그러운 것인지, 아니면 감이 무딘 것인지. 이범석 장관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통령 순방 일정에 버마가 추가됐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자들을 가리켜 ‘개새끼들’이라고 했을까? 그랬을 리가 없다. 난데없이 버마에 가겠다는 이유가 석연찮았고, 마땅찮은 이유로 버마행을 강행하려는 자들의 행동거지가 수상했기 때문 아니겠다.

이 장관이 버마에 가지 않으려 몸부림 친 것은 일제 시절 버마에 사업차 갔던 부친의 객사(1943년) 등 사적 악연도 있었겠지만(이 장관의 부친은 평양의 조선인 실업계를 대표하는  부자였다), 그것은 저돌적으로 버마 방문을 추진하는 전두환네의 수상쩍은 행동이 유발한 거부반응이자 생명체 본연의 보호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 전 대사는 이범석이 버마에 가지 않으려 했던 것은 북한과 버마가 친한 정황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최병효 책 53쪽)

“그가 경멸했던 북한 체제와 비견될 수밖에 없는 그런 나라에 우리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그걸 못 받아들여서 서류를 집어던지고 ‘개새끼들’이라고 욕을 했을까?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순진무구한 해설을 늘어놓고 있다.

또 버마가 북한과 같은 형편없는 나라여서 버마에 가는 것을 이 장관이 못마땅해 했을까? 아니다! 당시 남한은 미국과 손잡고 소위 비동맹외교에 ‘올 인’하고 있었다. 왜 미국에 사사건건 대드는 이북(북한)을 제압하기 위해서! 그래서 제3세계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증진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형편없는 나라들’만 골라 찾아다녔다. 이 장관은 한 해 전 케냐와 나이지리아 가봉 등 전통의 아프리카 순방 때도 따라갔었다.

최 전 대사는 당시 비동맹권 순방 외교의 목적과 내막을 전혀 모른 채, 단지 버마가 이북과 친해서 이 장관이 버마에 가지 않으려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장관이 대사를 지낸 인도가 버마와 붙어있다느니 사회주의에 독재인 버마가 ‘북한처럼 형편없는 나라’라느니 하는 사족을 붙이면서. 이 장관이 인도에서 대사를 지냈다는 사실과 북한과 버마가 친하다는 사실이 대체 무슨 상관인가. 최 전 대사는 ‘이북이 절친 국가 버마에서 남한 대통령을 시해하려는 테러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망상에 근거해 책을 쓴 것이다.  

최 전 대사가 이 장관이 마치 이북을 “경멸”한 것처럼 쓴 것도 사실 왜곡이다. 이 장관은 그저 남한의 외교관으로서 남한이 적대시하는 이북을 상대했을 뿐이다. 그는 북한을 경멸하는 언동을 한 적이 없다. 남한의 외교관으로서 이북 체제를 용인하지는 않았겠지만 - 또 때로는 이북을 비난하고 비판도 했겠지만 - 그가 이북을 경멸할 이유는 없다.

“이 장관이 북한 체제를 경멸했다”는 최 전 대사의 주장은 북측이 이범석을 죽여 놓고 환호작약했다는 끔찍한 상상으로 비약한다. 서로가 미워하다 저쪽에게 당했다는 그럴듯한 각본! 
 

( 최병효 책 279쪽)

( 허영섭 책 49쪽)

우선 최 전 대사가 “이범석이 대북전략을 잘 세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북측이 “그를 죽인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봤다”고 쓴 것은 거짓이다. 1970년대 이범석이 참여한 남북적십자회담 전략은 모두 중앙정보부가 짰다. 이범석은 그저 협상에 주요 멤버였을 뿐이다. 그가 마치 모든 남북회담 전략을 짜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 남북대화에서 그가 북측을 무던히 애를 먹였던 것처럼 쓴 것은 조작이다. 또한 그가 인용한 <월간조선> 1998년 7월호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 <월간조선> 1998년 7월호 인터뷰 표지. 왼쪽에「아웅산 폭파는 이범석 장관을 제거한 것을 성공작으로 평가」라는 소제목이 보인다.)

( <월간조선> 1998년 7월호 226쪽)

허영섭의 책은 <월간조선> 글을 원문대로 인용한 반면, 최 전 대사는 누구로부턴가 ‘황장엽의 썰’에 대한 추가적 해설을 들은 것이 분명하다. “이범석이 대북전략을 잘 세운 사람이라 그를 죽여 놓고 ... ” 이런 식으로 이북의 공작으로 이범석이 사망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황장엽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다.

위 두 책 저자들은 ‘월간조선의 황장엽 이야기’를 100% 신뢰하기에 자신들의 책에서 버젓이 인용했을 것이나 필자는 ‘월간조선의 황장엽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는다. ‘아웅산 폭파 사건’에 대한 문답 바로 직전의 문답부터가 수상쩍다. “김일성이 가장 겁을 냈던 것이 전두환 대통령 아니었습니까?”(문) “김일성은 군사독재를 싫어했습니다. 간첩 파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답)

이 문답은 ‘김일성 주석이 전두환 대통령을 싫어해서 죽이려 했다’는 ‘안기부 각본’에 따른 것이다. 이 각본은 ‘북한이 남한 대통령을 시해하고 사회 혼란이 조성되면 곧바로 군대를 내려보내(남침) 적화통일을 이루려 한다’는, 이승만.박정희 시절부터 지긋지긋하게 써먹던 여론 조작질의 연장이었다. 1993년 12월 ‘북한 강성산 총리의 사위’를 자처하는 강명도라는 이가 남한으로 넘어온 뒤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먼 훗날『전두환 회고록』(2017)에도 버젓이 등장한다.

(『전두환 회고록』 490쪽)

(사진 32-8 :『전두환 회고록』 491쪽)

강명도가 썼다는 책『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는 1995년 6월 <중앙일보> 계열의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전두환이 회고록을 쓴 이듬해인 2018년『천국과 지옥』으로 재출간됐다. 안기부 각본에 따라 쓰인 이 책 저 책이 서로 호응하고 인용하며 서로의 판매 부수를 늘려가는 모양새다. 

다음은 황장엽이 거명했다는 ‘임선태’를 보자. 그 이름이 처음 거명된 것은 1997년 8월 15일 천도교 교령 오익제(68세) 씨가 월북한 뒤 13일 만인 8월 28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였다. 이날 나온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 기사「吳益濟(오익제) 수사사건 중간수사 상황」말미에 아래와 같은 이상한 글귀가 붙어 있었다.

[※정신혁(75세. 본명 정신영)은 황장엽과 김일성대 대학원 동창생으로 북한 대남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거쳐 ‘천도교 청우당’과 ‘조선 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비종교인 출신이며, 또 다른 부위원장인 임선태는 노동당 작전부장 당시 버마 아웅산 테러 폭발사건을 계획, 실행한 바 있음]

기사 말미에 이런 식으로 글을 붙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안기부의 공식 발표자료가 아닌 ‘수사 참고자료’ 또는 ‘보도 참고자료’를 부기한 보인다. 안기부가 오 씨 월북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황장엽과 친분이 있는(?) 임선태”라는 식으로 그를 슬쩍 끼워 넣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등장한 수상한 이름이 1년 뒤 <월간조선>의 황장엽 인터뷰 글로 또 한 번 거명된 것이다.

그러면 ‘월간조선의 임선태와 아웅 산 묘소 테러’ 이야기의 신빙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 이야기가 그래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면 이후 어느 매체 또는 누군가는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과 관련해 이야기하면서 ‘임선태 이야기’를 한 번 쯤은 거론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후 수 십 년 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1983 버마 사건의 명령자가 김(일성) 주석이네 김(정일) 위원장이네, 김중린 비서네 누구네 하며 온갖 설(說)을 조작해 퍼뜨릴 때도 임선태는 거명된 적이 없다.

심지어 <월간조선> 1998년 7월호 인터뷰 기사가 나온 지 넉 달 뒤인 그 해 12월 출간된『황장엽 회고록』에서 이 이야기를 재탕할 때도 임선태라는 이름은 빠져 있었다.

(『황장엽 회고록』252쪽)

(『황장엽 회고록』표지)

결국 황장엽이 했다는 ‘임선태와 아웅 산 테러 이야기’는 그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안기부와 <월간조선>의 주장이었다는 말이다. <월간조선> 인터뷰 글 이후 어느 매체도 ‘황장엽의 임선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없다면 ‘황장엽을 내세운 임선태 이야기’는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북측에게 뒤집어씌우는 수많은 대북(대남)심리전 스토리의 하나였다고 봐야 한다.

이런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인양 책에 인용하는 것은 저자들이 안기부 등의 대북(대남) 심리전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에 있을 때 꽤 높은 직위에 있었던 탈북자를 앞세워 없는 이야기를 마구 지어내 대북적개심을 드높이는 대남심리전의 ‘대표선수’가 바로 황장엽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기부의 대남심리전 요원으로 활용되던 황 씨는 이북에서 ‘황장엽 암살조’를 내려보냈다느니 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퍼지는 가운데 욕조에 누운 채 사망했고(2010), 그 뒤에는 고영환 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1991년 9월 망명)이 ‘안기부.국정원의 대표선수’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위 책 저자들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최 전 대사의 책에는 이런 터무니없는 ‘고영환 이야기’도 버젓이 등장한다).

고 씨는 1982년 아프리카 가봉에서도 북측이 전두환 대통령을 시해하려 했다며, “글쎄, 그때 내가 데리고 갔던 암살자들이 바로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의 범인들이었지 뭡니까∼”하고 한동안 떠벌리고 다녔다. 고 씨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앞장서 퍼뜨린 것은 <동아TV> <조선TV> 등 반북극우 매체들이었다.

( <동아TV> ‘쾌도난마’에 출연한 고영환)

(사진 32-12 : <동아TV>)

만약 고 씨의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가 망명한 직후인 1991년 9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 때부터 그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특히 1991년 2월 미얀마 최고재판소 최종판결문 요지가 국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3월 초에는 북측이 이를 ‘남조선의 정치 자작극’이라고 반박하는 등 아웅 산 묘소 테러를 둘러싼 남북 간 공방이 계속될 때였다. 만약 고 씨의 ‘썰’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는 일약 대스타가 됐을 것이다. 또 이때까지 아웅 산 묘소 테러의 책임을 북한에게 뒤집어씌우려 안달복달하던 안기부는 고 씨의 ‘폭탄선언’에 만세삼창을 했을 것이다. 고 씨의 ‘썰’로 -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 또 한 번 대북심리전에서 한판승을 거뒀을 것이다. 그 뿐이겠나. 그 후 십 수 년 동안 고영환은 최소 수 십 차례 ‘1983 버마 사건’을 거론하며 안기부로부터 섭섭잖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 좋은 재료를 안기부.국정원이 그냥 묵혔을 리 없잖은가. 그런데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러다 2017년 2월 갑자기 그가 국정원(안기부 후신) 소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 나타나 “버마 테러, 사실은 내가 먼저 할려고 했어요∼” 한 것이다. 갑자기 그럴듯한 직함을 달고 나타나 생전 안 하던 말을 하는데 “아, 그래요?” 하면 되겠나. “그 이야기를 왜 지금에 와서 하냐, 국정원이 그러라고 시키더냐?”하고 되물어야 할 일이다. 그가 갑자기 무슨 부원장 직함을 달고 극우 성향의 종편TV에 나타난 때는 바로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이 살해된 직후였다(이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과 미 CIA가 벌인 조작극이다.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4622 https://www.youtube.com/watch?v=SORk4qFT-Gs 독자들도 한 번 판단해 보시라.)

북측이 이범석 장관 죽여 환호했다는 ‘황장엽 이야기’의 진위를 밝히려다 글이 길어졌다. 앞글에서도 밝혔지만 버마 주재 이계철 대사나 이범석 외무장관이 우려하고 걱정한 것은 이북으로부터의 어떤 공격 또는 테러 징후가 아니었다. 그런 징후는 아.예. 없.었.다. 어떤 테러의 징후도 없었고 이 장관이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두려움을 표시한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사와 이 장관 등이 북한의 공격을 우려했고 그 공격에 당한 것처럼 쓰는 것은 사실 왜곡이고 사자 명예훼손이다. 그렇게 사실을 왜곡해 놓고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순국’이라 칭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P.S.

이범석의 죽음에 대해 북측이 ‘전두환은 못 죽였지만 대신 이범석을 죽인데 위안을 삼았다’는 식의 언설은 사람의 입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나의 반쪽인 동족에 대한 적의가 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분단체제의 모순이 더 심화되면 이 사회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사고와 이성이 마마될 것이고, 급기야 적의와 비리(非理)로 세상을 보는 괴물들이 양산될 것이다. 특정 그룹 또는 특정 세력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그 시궁창같은 이야기를 한 가락 했다는 이들이 이 책 저 책에 마구 퍼 나르면 머잖아 온 사회가 곪아 썩어들어가지 않을까. 

‘황장엽의 이범석 이야기’는 이렇게 본다. ‘1983 버마 사건’ 직후 황 씨도 임선태든 누구든 북측 인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동족인 남녘에서 장차관급 4명을 포함해 17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왜 말이 없었겠나.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런 짓을 ... 거 미제놈들하고 전두환 패당 하는 짓이 어째 수상쩍다 했지 ... 그 중에 저어 이범석이라고 ... 외무장관이라는 ... 북남적십자회담에 자주 나왔던 사람인데 ... 여기 평양고보(평양고등보통학교) 나왔고, 친척들도 여기 많이 있지 ... 기래요? ... 키도 훤칠하고 인물 좋고 언변도 뛰어나고 ... 그 인잰(人才)데 ... 아깝구만 ... 차암 ...” 황 씨는 이런 이야기를 전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이범석이라도 죽였느니 잘 됐다고 떠들더라’는 식으로 조작했을 것이다. (5편에서 계속)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11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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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정당지지도, 민주당·국민의힘 각 ...
                                                 
육군 제보자 보복징계 금지법? 육...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부동산 투기대책에 등장한 ‘친일...
                                                 
돈으로 김어준을 쫓아내고 싶다고?
                                                 
[이정랑의 고전소통]人物論 사람을...
                                                 
전두환 비서출신 이용섭 사건 재정...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중국에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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