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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⑤ 1부 발포를 거부하다
안호재 | 2021-09-03 09:16:2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영웅 안병하 대위
경찰청이 선정한 경찰영웅 1호 인권경찰 안병하 치안감

● 밤중에야 ‘비상’ 연락 받아

정치에 대해서는 일체 개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평소 그의 신조였다. 1961년 5·16쿠테타 때도 그랬다. 육사 8기인 자신의 동기들이 5·16의 중심세력을 이루었다. 그들이 ‘혁명대열’에 함께하자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안병하는 거절했다. 지금의 혼란스런 정치 상황도 그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속으로만 짐작할 따름이었다. 군이 주도하는 비상계엄 아래서는 평소와 달리 경찰의 위치가 군의 치안 유지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12·12 이후 군 내부에서 실권자로 알려진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1980년 4월 14일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취임하면서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전두환의 행보에 더욱 집중됐지만 그는 여간해서 여러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5월 들어 학생 시위 규모가 커지면서 긴장이 고조될수록 군부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관심사였다.

그가 도청 정문을 통과할 무렵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떠올랐다. 사흘 전인 5월 14일 오후 전남대생들이 그동안 학교 안에서만 하던 교내시위를 박차고 시내로 쏟아져 나오던 날이었다.*20 이날 오전 10시 45분부터 11시 20분까지 도지사실에서 ‘학원사태 대책회의’가 열렸다. 장형태 전남지사, 정웅 31사단장, 전남대 및 조선대 총장, 정석환 중앙정보부 지부장, 이재우 전남합동수사단장(505보안부대장) 등 지역의 치안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한 자리였다. 안병하 국장이 학원소요사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참석자들에게 보고했다. 그때 뭔가 군 당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전남북계엄분소가 위치한 상무대의 전교사에서는 광주지역 진압작전에 대비한 ‘학생 가두시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군 관계자들만의 작전회의가 은밀하게 열렸다.*21 물론 안병하 국장은 이날 오후 전교사에서 열린 회의뿐 아니라 그 이전에 계엄사에서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계엄사는 이미 5월 7일부터 2군 및 수도권지역 계엄군의 소요진압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소위 충정훈련(소요진압훈련) 계획에 따른 것이다.*22

밤중이지만 경찰국은 부산했다. 환하게 켜진 전등 불빛 아래 안병하 국장이 실내에 들어서자 그를 향해 경례를 하는 소리들이 이어졌다. 주말에 외박을 내보낸 기동대원과 전경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비상연락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소리가 시끄러웠다. 전남도경과 서부경찰서, 광주경찰서 등에서 각각 정보과 요원 10명씩 모두 30명을 차출하여 광주505보안부대에 긴급 파견을 보냈다는 사후조치 보고도 들어왔다. 지난 밤 안 국장이 퇴근한 후 갑자기 보안부대에서 대학을 담당하는 정보과 소속 경찰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23

● “공수부대 투입 요청하지 않았다”

17일 자정을 전후해서 전남대와 조선대에 공수부대 2개 대대가 배치됐다는 보고를 받았다.*24 사흘 전 도지사실에서 ‘학원사태 대책회의’가 열렸을 때까지만 해도 31사단장은 계엄군 투입에 대해 도경국장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다만 14일 저녁 7시경 31사단장이 광주시내 KBS, MBC, CBS, 전일방송국 등 언론사가 위치한 건물의 안전을 염려하여 31사단 병력 85명(장교 5, 사병 80)을 배치했다는 사실만 파악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14일 낮부터 학생시위가 교내를 벗어나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언론사 등 주요 공공기관 건물에 경계병을 미리 배치하는 것은 예방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그때와 달랐다. 적지 않은 규모의 공수부대가 한밤중에 전남대와 조선대 운동장에 은밀하게 진주한 것이다. 전남경찰국에서는 31사단이나 전교사에 계엄군의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어젯밤 퇴근 무렵 치안본부에 확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치안본부 상황 역시 별다른 게 없었다. 이로 미루어 분명 치안본부에서도 계엄군 투입을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됐다.

왜 이렇게 갑자기 공수부대를 대학에다 배치했을까? 광주에서 마지막 학생시위는 하루 전인 5월 16일 밤 10시경 경찰의 보호 아래 횃불행진으로 평화롭게 마무리 됐다. 학생들은 당분간 더 이상 시위를 하지 않기로 경찰국장인 자신에게 약속까지 했었다. 보통의 경우 시위를 막다가 경찰력만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경찰이 먼저 군의 지원을 요청한다. 그럴 경우에 계엄군 투입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밤중에 기습적으로 공수부대가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계엄군의 배치나 이동은 상황이 급박할 경우 계엄사령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시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엄 당국의 판단에 따라 계엄군을 투입한다 해도 최소한 현지 치안책임자의 의견과 판단을 미리 들어보는 게 상식적이다. 더군다나 최정예부대로 알려진 공수부대를 배치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랬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안 국장은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부하 경찰들을 지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현지 치안책임자인 경찰국장을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동안 줄곧 상황을 공유해왔던 31사단 관계자들을 향해서도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범한 윤흥정 전남북계엄사령관에게도 서운한 감정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은 몰랐다 할지라도 육사 동기생이던 윤흥정 사령관은 아마 이 상황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한번 해줬을 범한데 그러지 않았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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