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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④ 1부 발포를 거부하다
안호재 | 2021-08-26 11:07: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영웅 안병하 대위
경찰청이 선정한 경찰영웅 1호 인권경찰 안병하 치안감

● 군 지역 경찰 동원해 시위 사전 대비

안병하 국장은 치안과 질서 유지를 위해 사전 예방활동에 철저했다. 민주화 요구와 더불어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980년 4월에는 기존 경찰력에다 기동대 1개중대를 추가로 증설했다. 5월 17일 현재 전남도경에서 시위 현장에 직접 투입 운용할 수 있는 경찰의 규모는 기동대 1·2·3중대와 118전경대 728명이었다.*16 여기에 전남대를 담당하던 서부경찰서 215명(간부와 일반경찰 각각11/204), 조선대 담당 광주경찰서 270명(13/257) 등 485명(24/461), 그리고 도경 본국의 진압부대 95명(8/87)까지 합치면 모두 1,308명(46/1,262)이었다.

안병하 국장은 5월 3일부터 대학생들의 학내시위가 예정돼 있는 날에는 광주 인접지역 경찰서 근무자들을 조금씩 광주로 올라와 지원토록 조치했다.*17 5월 14일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시내로 진출하자 지방에서 차출인원을 대폭 늘렸다. 광산, 화순, 구례, 광양, 함평 등 전남지역 각 경찰서에서 30~60여 명씩 모두 528명(21/507, 13개 경찰서)을 순차적으로 동원했다. 13개 군 지역의 경찰서에서 차출돼 광주에 올라온 경찰들은 여관이나 친인척 집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사서 먹었다. 불편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어쩔 수 엇었다. 광산, 나주, 화순, 담양, 장성 등 광주와 인접한 지역에서 차출된 경찰들은 그나마 나았다. 해당 군의 경찰서에서 매일 차량으로 식사를 날라다 주었다. 밤에는 시위가 없었기 때문에 시내 혹은 시외버스를 타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침 일찍 광주로 출근했다. 각 군에서 올라온 경찰들은 5월 16일 야간 횃불집회가 끝나고, 당분간 학생시위가 없을 것이라는 안병하 국장의 판단에 따라 대부분 자신의 소속 경찰서로 돌아갔다.*18

또한 그동안 시위에 동원된 부대에 대해서는 특박을 내보내는 등 모처럼 휴식시간을 갖도록 했다. “학생들의 대규모 시내 횃불집회가 끝나자 부대 특박이 떨어져서 고향인 무안으로 갔다.”(모00 2기동대) “5월 16일 집회가 끝나고 부대원끼리 장성 백양사로 야유회를 갈 정도로 치안엔 문제가 없었다.”(최00 3기동대)

●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5월 17일 토요일 자정 무렵, 도경국장 관사 비상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남편이 잠든 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은 듯싶었다. 곤히 잠든 남편이 벌떡 일어났다. 열이틀 만에 집에 돌아와 겨우 2시간 정도 잠을 자고 있는데 ‘비상’이라니.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집에서 나가면 또 언제 돌아올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군대 시절부터 경찰 생활로 이어지는 기간 내내 남편의 일정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예측이 어려웠다.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평소 그랬듯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쓴 다음 대문을 나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내 전임순은 불안한 마음에 그날 밤 뜬눈으로 날을 샜다.

안 국장은 상무관 앞 분수대를 가로질러 도청 뒤편에 있는 경찰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월 중순이지만 밤공기가 싸늘했다. 눈을 올려다보니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관사에서 도청 안에 있는 경찰국까지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가 서늘한 공기에 섞여 폐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가면서 시원함이 느껴졌다. 안 국장은 잠시지만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지금 ‘비상’이다. 여태까지도 비상계엄 상태였었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전국확대’로 바뀌면서 어쩐지 전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휘관으로서 정확한 상황파악과 판단이 필요했다.

안 국장은 어젯밤 퇴근할 때 자신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서울 치안본부의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서울 시내를 휩쓸었던 학생시위가 이어졌지만 16일 저녁 야간 횃불시위를 끝으로 그쳤다. 광주지역 학생지도부는 서울과 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이었다. 어젯밤 광주 상황을 종합해서 전화로 보고할 때만 해도 며칠 전과 달리 치안본부의 분위기가 다소 느긋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학생들은 그동안 ‘비상계엄해제’ ‘유신헌법철폐’ 개헌일정단축‘ 등 민주화를 위한 정치 현안 해결을 요구하면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는데 마침내 정부와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당분간 지켜보기로 하며 시위를 중단했다. 임시국회 소집에도 각 정당의 합의가 이뤄졌다. 5월 20일 ’비상계엄해제‘를 의결하기 위해서였다. 중동을 순방 중이던 최규하 대통령은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여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전국대학총학생회장단은 더 이상 정치권을 압박하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한껏 높아졌던 긴장 국면이 순식간에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비상계엄 확대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이 쉽지 않았다.

안 국장의 생각은 더욱 빠르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난해 10·26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비상계엄이 내려졌다. 그때부터 비상계엄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긴장감이 점차 엷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 사이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회 각계의 바람이 풍선처럼 부풀어갔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다 고통을 겪은 학생이나 일부 국민 사이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선에서 치안유지를 맡고 있 경찰로서는 이런 정치상황이 부담스러웠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질서를 유지하면서 차근차근 풀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정치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에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12·12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던가.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던 중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갑자기 연행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이유는 그가 박정희 대통령 사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살해범으로 의심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뭔가 석연치 않은 정승화의 10·26 당일 행적을 합수부장인 전두환 자신이 직접 조사해야겠다는 것이 연행의 이유였다. 언론보도를 통해 12·12사건 소식을 접한 안병하는 바짝 긴장했다. 평소 자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연행되었기 때문이다.*19 사건의 깊은 내막이야 알 수는 없지만 군 내부에서 알력이 심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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