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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③ 1부 발포를 거부하다
계엄당국, 폭력상황 강조
안호재 | 2021-08-23 10:08: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영웅 안병하 대위
경찰청이 선정한 경찰영웅 1호 인권경찰 안병하 치안감

● 계엄당국, 폭력상황 강조

학생들의 폭력시위가 5·17 조치를 불러왔다는 계엄당국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은 당시 군 당국의 문서에서도 확인된다.*10 이틀 전인 5월 14일 오후 2시에 이미 7공수여단의 전남대 투입을 위한 병력 수송방안 등을 논의했었다. 이날 「학생가두시위대책 합동작전회의」는 광주 상무대에 위치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이하 ‘전교사’)의 전남북계엄분소장실에서 윤흥정 전교사령관, 신우식 7공수여단장, 정웅 31사단장 등이 참석하여 극비리에 열렸다.

특히 계엄당국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광주지역에서 발생한 폭력시위가 김대중의 정권 장악 목적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5·17 조치 이전까지 서울이나 전주, 대구 등지와 달리 광주에서 폭력시위는 없었다. 계엄당국은 5·17 이전 광주 학생시위가 혼란스럽고 폭력적이었다고 반복해서 거짓 사실을 강조했다. 1982년 국방부는 ‘광주사태’에 대하여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종합 정리하여 발표했다. 이 문서에도 그런 거짓 사실은 반복되고 있다.

5월 16일에도 오후부터 전남대학 등 각 대학교 학생 1만여 명이 도청 앞 광장에 집결하여 성토대회 후 “비상계엄해제”, “정치일정 단축”, “유신잔당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였고, 야간에는 고교생까지 가세한 1만여 명의 데모대가 횃불시위를 벌이는 등 소요는 눈덩이처럼 규모가 커져갔다. 2,000여 명의 기동경찰대가 이들의 시위저지를 위하여 간헐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으나 중과부적이었고, 광주시내는 곳곳에서 교통이 마비되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전국적인 학원소요와 관련하여 계엄당국은 5월 17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하고 사태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결의했고, 국방장관의 건의에 의해 최 대통령은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소위 말하는 ‘5·17조치’를 공포했다.*11

위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 5월 16일 열린 야간 횃불시위는 당시 실제 광주시내 시위 상황과 전혀 다르게 묘사돼 있다. 적어도 안병하와 박관현 두 사람의 회동 이후 벌어진 16일 집회에서 “기동경찰대는 시위저지를 위하여 간헐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한 적이 전혀 없었다. “광주시내 곳곳에서 교통이 마비되는 등 혼란의 연속”이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사실을 괘곡한 것이다. 이 문서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가 마치 5월 16일 광주에서 열린 혼란스런 야간 횃불시위 때문인 것처럼 호도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민주화 요구를 담은 정치적 의사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경찰의 엑스코트를 받으며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 평화롭게 횃불시위를 했다. 안병하 국장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했다. 그 결과 혼란이나 폭력사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갔고 전국적인 상황변화를 지켜본 후 다음 행동 방침을 정하자고 결의했던 것이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학생시위를 지혜롭게 잘 해결하는 전문가로 경찰 내부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12 이런 평가는 그가 1970년 7월 마흔 두 살 때 서울 서대문경찰서장으로 1년 5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생겨났다. 그때는 1969년 박정희 정권이 ‘삼선개헌’을 강행한 이후 1972년 10월 ‘유신헌법’ 선포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군사독재의 장기집권 음모라며 정권연장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의 저항은 박정희 정권의 행보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으며 정권은 유신체제 정착을 위해 경찰력을 강화했다. 이 무렵부터 경찰은 절도나 폭력 등 강력사건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반적인 치안 업무보다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일이 더 많았다.

● “시위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

서대문경찰서 관할 지역은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이 자리 잡은 신촌으로 서울 시내에서 학생 시위가 가장 잦았다. 경찰서장들 사이에서는 내심 근무를 기피하는 지역이었다. 강제 진압과정에서 경찰과 학생들의 충돌로 부상자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하지만 안병하 서대문경찰서장은 이 지역에서 과거에는 폭력적이기 일쑤이던 시위 행태를 평화스런 모양으로 바꿨다. 인내심을 가지고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대표와 만나 대화를 통해 설득했다. 학생 시위 자체가 폭력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여 교통 혼란이 초래되는 등 불가피 하게 강제 진압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그럴 때조차도 그는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이 최루탄이나 진압봉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토록 지시했다. 그 결과 당시 전국에서 시위가 가장 빈발한 지역으로 꼽히던 서대문경찰서 관내에서는 시위로 인한 불상사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가 서대문경찰서장으로 발령 나던 날 처음 만났던 《경우신보》 기자 이정남은 1988년 10월 안병하의 사망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을 남겼다.

소제가 당신을 처음 뵙게 된 것은 70년 7월 20일 서대문경찰서장으로 부임하여 햇병아리 기자를 따뜻이 맞이해준 때입니다. 그때 당신은 청렴결백과 대간첩 소탕의 일인자라는 소문이 한창이었습니다. 깔끔한 외모와는 달리 아주 서민적이고 인정이 넘쳤던 그 시절, 당신은 올챙이 기자였던 소제에게 항상 다정한 격려와 매서운 비판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을 소제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떠올리고는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추진하시던 당신… 남보다 먼저 출근하고 뒤늦게 퇴근하는 경찰간부가 되셨습니다.*13

당시 안병하 서장의 셋째 아들 안호재는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자주 근무지를 옮겨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귈 시간이 별로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아버지가 있는 경찰서에 들러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서대문경찰서에도 자주 놀러갔고 경찰아저씨들과 친구처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무렵 안호재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일상은 경찰서장실에서 간부들과 모여 회의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무실 여기저기를 들락거리다 심심하면 서장실 귀퉁이에 앉아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시위 진압할 때 경찰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학생들이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었다. 어린 생각에도 시민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14

평소 시민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안병하의 자세는 전남경찰국장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1980년 5월 그와 함께 근무했던 경찰간부들이 회상하는 당시 안병하 국장에 대한 기억도 비슷하다. 시위진압이 경찰 일상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지휘부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도 항상 ‘안전한 집회 관리’를 강조했고, ‘시위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반복함으로써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15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5&table=c_hojae&uid=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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