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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② 1부 발포를 거부하다
5월 16일, 대학생 평화시위 허락
안호재 | 2021-08-17 14:46:3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영웅 안병하 대위
경찰청이 선정한 경찰영웅 1호 인권경찰 안병하 치안감

● 5월 16일, 대학생 평화시위 허락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총무부장 양강섭 등 총학생회 간부 3명이 경찰국장실로 찾아간 것은 15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총학생회 간부들은 14일 오후 도청 앞에서 열린 ‘민주화성회 비상학생회의 시국성토 대회’가 성공적이었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시민들의 호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전남대 총학생회 지도부는 가급적 평화 집회를 원했다. 하지만 14일 대학 울타리를 처음 벗어날 때 전남대 정문과 후문을 지키던 경찰들과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결과 양측 모두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남대를 빙 둘러싼 담벼락을 허물고 밖으로 빠져나온 학생들은 약 3킬로미터를 뛰다 걷다 하면서 도청 앞 분수대에 도착했다. 교문을 벗어날 때까지 경찰은 학생 시위대열을 강력하게 막았으나 시내로 진입하자 더 이상 제지하지 않았다. 도청 앞 집회가 끝난 후 총학생회 간부는 “경찰과 충돌하면서 희생자를 낼 필요가 없으니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보장하라고 직접 경찰국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자”고 의견을 모았다. 경찰국장에게 그런 제안을 하자고는 했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학생들은 전북대나 서울의 일부 대학들에서도 평화시위를 보장 받기 위해 총학생회가 경찰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했는데 거부당했다는 소식을 이미 듣고 있었다. 비록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목소리가 온 나라에 넘실거렸지만 아직은 비상계엄 상황이었다. 전남대 총학생회는 유신정권을 지탱했던 군부세력이 호시탐탐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언제 어떻게 계엄군이 전면에 나설지 몰랐다. 군, 특히 보안사령부가 뒤에서 경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광주지역의 치안을 책임진 경찰국장이라 할지라도 시위를 허용한다는 것은 선뜻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가 비밀에 운영하던 기획실의 책임자였던 송선태는 그때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2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휠씬 뛰어 넘었어요. 그때 내가 직접 경찰국장실에 박관현 총학생회장과 함께 가지는 않았습니다만 경찰국장을 만났던 학생회 간부들이 곧바로 돌아와 저와 함게 회의를 했었지요. 경찰국장과 만나서 나눴던 이야기와 반응을 자세히 들었는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당시 안병하 국장은 우리의 제안에 대하여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청 앞 집회를 평화적으로만 진행한다면 경찰이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어요.”

안 국장은 도경 정보과장의 안내로 찾아온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주의 깊게 살폈다. 경찰 보고에 따르면 그가 대중 설득력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했다. 안 국장은 그의 제안을 들으면서 ‘과감하고 당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눈빛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듣던 대로 박관현의 언변은 뛰어났다. 그렇다고 학생시위를 무조건 허락했다가 만약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경찰의 처지가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계엄 상황이라 학생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된 상태였다. 더구나 야간에 횃불시위를 허락한다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치안본부와 계엄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14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서울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시내로 쏟아져 나와 광화문과 종로, 청계천, 영등포, 서울역 등 주요 도심을 마비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시각 전주에서는 전북대생 3천여 명이 가두시위를 벌이다 학생 61명, 경찰 43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구에서도 계명대, 영남대 등 학생 2천여 명이 파출소를 부수고 경찰차 1대에 불을 질러 전소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와 같은 보고가 경찰정보망을 통해 접수되던 참이다.*3 광주 역시 14일 전남대생 2천여 명이 학교 밖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경찰 부상자만 66명이 발생했을 만큼 격렬했다.*4

이런 상황인지라 광주에서 학생시위가 안전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이 섣부르게 집회를 허용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곤혹스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 국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론을 내렸다. 총학생회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시위방법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것을 조건으로 야간 횃불시위를 허락했다. 이때 학생이나 경찰은 서로 일방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적절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협상을 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 목적은 민주화 요구였다. 안병하 국장은 무조건 강압적인 진압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오히려 학생들을 신뢰하는 데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치안책임자로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 국장은 그 자리에서 김형수 서부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전남대는 광주 서부경찰서가 맡고 있었다. 가급적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게 박관현 총학생회장을 만나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안병하 국장님의 지시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이 횃불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데 방화나 화염병을 투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학생처장의 협조 하에 경찰복을 입고 학내에 들어가 정문에서 박관현을 만나 횃불시위에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받아서 안 국장님에게 전달한 적이 있어요.”*5

경찰국장의 뜻을 확인한 서장들의 시위 대응 태도는 크게 바뀌었다. 횃불집회와 행진을 자극하지 않았다. 윤형용 광주경찰서장은 분수대 앞 집회 현장에서 대학생 대표 2명을 만나 야간의 횃불행진 대열을 경찰이 에스코트해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광주경찰서 경찰차가 선두에서 에스코트를 하고, 금남로 중앙을 행진하는 시위대를 기동대가 좌우에서 보호해주면서 평화적인 시위를 유도했습니다. 학생들도 스스로 질서를 지키려 했으며, 경찰이 충분히 시위를 관리할 수 있었지요.”*6

● 야간 횃불행진 무사히 마쳐

16일까지 사흘간 이어진 광주지역 학생시위 분위기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1980년 5월 17일 자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등 서울시내 23개 대학과 지방의 인천공전 등 24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15일 밤 12시부터 16일 아침 6시까지 고려대 학생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지난 13일부터 계속됐던 가두시위를 일단 중지하고 정상수업을 받기로 결의했다.*7

[광주]전남대, 조선대, 광주교육대, 동신실업전문, 송원전문, 성인경상전문, 기독병원간호전문, 서강전문대 등 광주시내 9개 대학생 2만여 명은 16일 오후 3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성토대회를 벌였다.…(밤 8시부터) 학생들은 준비한 2백여 개의 횃불과 각종 구호를 쓴 플래카드, 피킷을 들고 조선대를 선두로 한 1개조는 금남로~유동삼거리~복개상가~중앙여고~현대극장을 거쳐 금남로로 되돌아왔고, 전남대를 선두호 한 1개조는 광주체신청~산장입구~산수동 5거리~동명파출소~노동청을 거쳐 출발지인 도청 앞 광장에 1시간 30분 만에 되돌아와 밤 10시 30분 자진해산했다.*8

또 같은 날짜 《동아일보》는 이와 같은 학생시위의 중단 배경이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시국수습’ 움직임 때문이라는 사실도 보도했다.

대학생들의 대규모 가두시위로 위험수위를 맞고 있는 정국은 최규하 대통령이 16일 밤 중동 순방으로부터 급거 귀국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으며, 이와 함께 공화, 유정 측도 최 대통령, 김종필 공화당 총재, 최영희 유정회 의장이 동석하는 3자 요담을 통해 시국 수습을 위한 정부의 결단을 촉구할 방침으로 있어 임시국회를 앞둔 내주 초가 수습의 고비로 될 것 같다.*9

5월 16일 오전 안병하 국장이 내린 결단과 그 결과로 횃불행진이 불상사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은 5·18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계엄당국은 ‘5·17 조치’, 즉 ‘비상계엄 전국확대’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폭력성을 띄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취하게 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즉 대학생들의 폭력시위가 5·17 조치를 불러왔고, 공수부대 배치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엄당국의 이런 주장은 실제 사실과 달랐다. 안병하 전남도경국장과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의 만남과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이를 반증하고 있다. 두 사람의 약속으로 5월 16일 밤 광주에서 학생들의 야간 횃불집회 및 시위가 경찰의 보호 아래 아무런 사고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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