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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18. 3부 군인에서 경찰로
육사 8기 입교. 반공, 민주주의, 책임의식 형성
안호재 | 2021-07-19 13:30:5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육사 8기 입교

청년 안병하는 21세 때인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 *228 8기로 입교했다. 그가 입교했을 때는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였다. 정부 수립 이전에는 미군정이 통치했다. 미국정기 동안 한국사회는 대구, 여수, 순천 및 제주 등지에서 극심한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거쳤고,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체제가 강화되면서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졌다. *229 이 시기에 남한에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정착되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때 육사는 젊고, 총명하며, 야망에 찬 유능한 청년들에게는 국가 형성에 기여하고 개인적 성공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그가 입교할 때 육사의 입시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육사 8기생 입교시험 경쟁률은 10대 1이었다. 정부 수립 직후였기 때문에 한국군의 초급 간부 수요가 컸다. 정부가 부족한 군 병력을 채우기 위해 강제 징집령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기왕 군 복무를 할 바에는 장교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다한 사람들이 많았다. 8기의 입교생 숫자는 1천 명이었는데 졸업생은 1,263명으로 늘었다. 졸업할 무렵 특과 후보생 335명이 추가된 것이다. *230

육사 8기생은 숫자가 많아서 2개 대대로 나눴다. 제1대대는 1, 2, 3중대, 제2대대는 5, 6, 7중대로 구분됐다. 8기생에는 다른 육사 기수와 달리 특별반이 있었다. 8기의 특별반은 4개반으로 편성됐는데 광복군, 독립군, 출신들이었다.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했던 까닭에 40~60세의 고령자들이 주를 이뤘다. 이보다 앞선 육사 2, 3, 4기에는 광복군뿐만 아니라 중국군, 만주군, 일본군 출신마저 혼재돼 있었던 것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육사 8기 특별4반에 입교한 광복군과 독립군 출신들은 오랜 독립투쟁기간 중 가슴에 간직했던 그들의 염원을 풀기 위해 육사에 입교한 것이다. 1940년대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든 광복군 출신이 많았다. 그들은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 뽑는 육사생도가 됐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컸다. 부자지간, 장인과 사위가 동시에 입학한 사례도 있었다. *231 특별1반은 1948년 12월 7일 11명이 입교했다. 이들은 3주간만 훈련을 받고 1949년 1월 1일자로 대위에서 대령까지 각각 다른 계급으로 임관했다. 특별반 출신들은 과거 군사경력이 많았던 만큼 6·25전쟁 때는 사단장 등 대부분 고급지휘관 역할을 맡았다. 일부는 제주도와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전했고, 웅진전투, 안강, 기계전투에서는 중대장, 대대장 요원으로 활약했다. 첩보부대(HID)와 특무대(CIC), 군사정보대(MIG) 등에서도 활동했다.

건국 초기 경찰 예비대로 출발한 군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군사원조 아래 약 55만 명 규모로 급팽창했다. 이에 따라 군은 해방 후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이 큰 집단이 됐다. 그 정점에는 육사 출신의 장교들이 포진했다. 5·16군사정변을 주도했던 박정희는 육사 2기였고, 그를 도와 정변을 성공시켰던 군부 내 주도세력은 육사 8기였다. 김종필(전 국무총리)을 비롯, 김형욱(전 중앙정보부장), 강창성(전 보안사령관), 윤필용(전 수경사령관), 유학성(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이희성(전 육군참모총장), 차규헌(전 수도군단장), 진종채(전 2군사령관), 등 군사정권시절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들이 모두 육사 8기 출신들이었다. *232

안병하가 육사에서 교육을 받은 기간은 총22주, 즉 5개월 반에 불과했다. 육사에서 10기까지 단기사관이다. 이때까지는 초급 간부 수요를 맞추기 위해 교육기간을 짧게 운영했다. 교육기간은 짧았지만 안병하의 인생에서 8기 동기생들과 교분을 맺게 되는 육사 생도시절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가 한국사회의 지배엘리트 그룹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육사였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인연은 살아가면서 좋게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악연이 되기도 하면서 좋든 싫든 평생 동안 이어졌다.

*228 육군사관학교는 1945년 12월 5일 미군정 아래서 미국식 군사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 필요한 고급 군사 인력양성을 위해 ‘군사영어학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했다.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이름을 바꾼 뒤 6월 15일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개명했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8년 9월 9일 ‘육군사관학교’로 바뀌었다.
*229 정부 수립 이전까지 대한민국 군대는 독립군 출신에다 일본군 및 일제 경찰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데다 이념대립이 극심하던 때라 군 내부에서도 좌우익 갈등이 잠재돼 있었다.
*230 『육군사관학교 30년사』, 1978.
*231 「육사 8기 특별4반 한 독립군의 기록」, 《주간 조선》 2307호, 2018. 8. 17.
*232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2015. 박정희가 5·16군사정변을 일으킬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들은 육사 8기 출신들이었다. 박정희와 육사 8기생들의 만남은 육군본부 전투정보국(국장 백선엽 대령)에서 시작됐다. 백선엽의 도움으로 남로당 사건에서 빠져나온 박정희는 육본 정보국에서 문관으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육사 8기 졸업생 중 성적이 좋은 15명이 정보국에 배치된다. 김종필, 최영택, 이영근, 석정선 소위 등이 여기서 박정희와 인연을 맺어 제3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박정희는 이곳에서 당시 전투정보과장이던 이후락 소령과도 만났다. 이후락은 이때 인연으로 중앙정보부장과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반공, 민주주의, 책임의식 형성

육사는 안병하의 성장 궤적에서 그의 ‘사고(思考)’ 형성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가르칠 사람도 부족했고 교육 내용도, 재원도 미흡했던 시절이지만 미국의 군사교육과정을 모방한 육사의 교육은 흡수력이 빠른 시기의 젊은이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으로 보였다. 당시 미·소간의 냉전 갈등이 깊어지던 시절인지라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에 반대하는 미국의 전략은 군사엘리트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안병하의 경우 육사에서 고위급 군사 교육을 통해 형성된 반공이념이 6·25전쟁에서 실전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아직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않았을 때 육사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익혔을 가능성도 크다. 책임과 의무, 인권과 권리 의식을 바탕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항에 대해서 끊임없는 설득과정을 통해 민주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을 것이다. 경찰 재직 시에 그가 학생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가급적 시위 학생들을 설득했고, 설득에 실패하면 폭력 보다는 시위대의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시위관리에 중점을 뒀던 것도 이와 같은 민주적 원칙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5·18 당시 그가 신군부의 강압적인 시위진압 압력에 굴하지 않고 발포를 거부했던 것은 공직자로서 강한 책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부에서 지시하는 사항이라고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 그 지시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한 다음 행동했다. 자기의 위치에서 책임과 직무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후 그 원칙에 맞게 움직였던 것이다. 개인과 가족의 희생을 무릅쓰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길을 택한 것도 이런 정신적 바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시기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나이 지긋한 독립군, 광복군 출신의 동기생들과 생활하면서 그들로부터 받은 정신적 영향도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그의 군이나 경찰 생활에서 드러나듯이 철저한 자기절제와 희생정신, 책임감, 청렴함 등은 공직자로서 보기 드물게 모범적이었다. 이런 특성은 일반적으로 유년시절 가정교육과 집안 어른들, 혹은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통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안병하의 경우 육사시절 이들 독립군과 함께 같은 생활공간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크게 영향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방 직후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이들은 조국 해방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 때문에 국가 성립에 대한 기여도나 명분에서 일제에 충성했던 일본군 출신과 비교할 수 없었다. 상해나 충칭의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기라성 같은 존재들이었다. 이들과 부대끼면서 안병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공직자로서 헌신성을 키웠을 것이다.

1949년 5월, 안병하는 22세 때 육사를 졸업하고 군번 14562번을 받아 육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전방에 배치됐다. 동기생 간운데 우등생 20여 명만 육군본부에 배치됐고, *233 대부분은 일선 전투부대 소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뒤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발발하자 안병하를 비롯하여 육사 8기 동기생들은 소대장, 중대 부관, 대대참모 등으로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육사 8기 졸업생 가운데 3분의 1인 367명이 전사하고, 35명이 실종되는 비운을 겪었다. 육사 8기는 시기적으로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기수였다.

* 233 육사8기 중 김종필, 김형욱 등 육군본부 전투정보국에 배치된 몇 명이 당시 그곳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던 박정희와 만나 후일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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