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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15,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안호재 | 2021-07-12 09:09:2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3.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기까지

○ 경찰청, 안병하 명예회복 나서

하지만 고 안병하 국장의 명예회복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광주민주유공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경찰공무원으로서 명예가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경찰공무원으로서 명예회복은 ‘순직군경’으로 인정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돼야 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법률 제9079호)’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고,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군경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기르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법 제1조)으로 한다. 이에 다라 ‘그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여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 보장되도록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념(법 제2조)이다. 이 법 제4조 5항은 ‘적용대상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순직군경으로 직무수행 중 상이를 입고 전역하거나 퇴직한 후 등록신청 이전에 그 상이로 인하여 사망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자”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안 국장의 경우 아직 여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의 순직 인정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동안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경험한 유족은 이 문제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쉽게 나설 수 없었다.

2005년 초 어느 날 유족에게 ‘뜬금없이’ 경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경찰 창설 60주년을 맞아 ‘경찰을 빛낸 인물’로 안병하 국장이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경찰청 차원에서 안병하 국장 문제에 관심을 표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유족은 경찰청의 소식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인의 명예회복 문제를 경찰청이 직접 나선다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경찰청이 안병하 국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평범한 경찰관 한 명의 개인적 관심과 적극적인 행동이 가져온 결과였다. 당시 경기도 구리경찰서 형사과장 조종일 경사는 그때까지 안병하 국장 유족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언론을 통해 5∙18 때 전남도경국장이 신군부에게 직무유기라는 누명을 쓰고 불명예스럽게 퇴직한 뒤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했는데 순직처리가 안 돼 유족이 연금도 못 받고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사실 관계는 정확히 잘 몰랐지만 경찰에 그런 훌륭한 분이 있다면 묻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냈다. 경찰청 내부 전자통신망 ‘청장과의 대화’에 안병하 국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다음과 같은 취지로 건의했다. “5∙18 당시 신군부에 맞서던 군 지휘관 장태완 소장(수경사령관, 국회의원 역임), 정웅 소장(31사단장, 국회의원 역임) 등은 모두 명예회복이 된 데 반해 안병하 전 전남국장은 명예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청에서는 안 전 국장에 대한 명예회복과 후배 경찰관은 물론, 온 국민이 존경하도록 하는 방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209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조종일 경사에게 경찰청장이 직접 전화를 했다. 경찰청이 과거사진상규명 차원에서 이 문제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때마침 2005년은 국립경찰 창설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게다가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기간 3년을 정해놓고 2004년 11월 18일에 출범한 상황이었다. 지난 60년 동안 경찰이 저지른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규명하고 반성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관권선거 개입, 민간인 불법사찰, 용공조작, 고문가혹 행위 등 역사적 의혹이 컸던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210 경찰뿐 아니라 검찰, 국정원, 국방부 등 국가권력기관의 과거사 청산은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추진됐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211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6월 13일 안병하 전 전남국장 건을 ‘민원 조사대상 사건’으로 채택했다. 곧바로 경찰청 보안과와 전남지방경찰청에 태스크포스 팀이 만들어졌다. *212

*209 조종일 필자와 인터뷰 증언, 2020.02.20
*210 경찰청 과거사진상위원회(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 2004.11.~2007.11)는 민간 전문가 7명과 경찰청의 차장 및 수사, 경비, 정보, 보안국장이 경찰위원으로 참가하여 합동위원회를 구성, 10개 사건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조사했다. 조사대상은 불법선거개입 의혹, 민간이 불법사찰 의혹, 용공조작 의혹 등 3개의 포괄분야와 더불어 개별사건으로 서울대 깃발사건(1985),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1985).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1991),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1979), 보도연맹원 학살의혹 사건(한국전쟁). 대구 10.1 사건(1946), 나주부대 민간인 피해 의혹사건(1950)등이였다.
*211 「경찰청 과거진상규명위원회 백서」, 경찰청, 2007.11
*212 「전남경찰의 역할」1쪽, 2017. 당시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은 3년간 총 44건이었는데 위원회가 직접 조사한 사건은 ‘전남경찰국장 안병하 경무관’ 사건을 비롯해서 18건이었다

○ 마침내 국가보훈처 순직 인정, 국립현충원 안장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는 1980년 당시 시위진압에 참가했던 경찰관 29명과 정수만 등 5∙18 관련자 21명, 그리고 의사 5명, 유가족 및 지인 등의 증언을 광범위하게 수집 정리했다. 이들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의 발단과 전개 과정, 5∙18 전후 경찰경력의 동원, 진압과 철수 상황, 경찰의 무기휴대 금지 및 소산 상황, 시위진압 경찰관 및 5∙18 관련자들의 안병하 전 국장에 대한 여론, 사망에 이르게 된 의학적 소견 등 순직관련 자료를 집중 조사했다. ‘안병하 전 전남국장 5∙18 관련 순직 진상조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 계엄군에 의한 유혈 과잉진압과 발포에 대비되는 안 전 국장의 온건진압 지침은 유혈 사태의 확산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에 해당될 뿐 아니라,
● 더 나아가 ‘민주화운동’ 범주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의원면직 처분은 강제해직에 해당하며,
●직무와 관련하여 불법 구금 및 혹독한 심문의 후유증으로 투병 중 사망한 사실이 명백하므로 국가유공자(순직경찰관)로 등록되어야 할 것임. *213

이 진상조사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경찰청은 곧바로 안병하 국장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1년 뒤인 2006년 8월 23일 국가보훈처는 엄밀한 심사를 거쳐 고 안병하 국장을 순직경찰로 인정하여 등록했다. 그 사이에 2005년 9월 6일 공원묘지에 묻혀 있던 고인의 유해를 국립현충원 경찰묘역에다 안장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국가유공자로 바뀌면서 순직에 해당하는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동안에 불과했다. 유족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쳤다.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에 따라 지급된 생계지원금을 반환하라는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보훈처는 경찰이나 군은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의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했다. 유족은 생계지원 및 위로금으로 받은 1억여 원을 투병생활 중 쌓인 빚 갚는 데 써버린 지 오래였다. 게다가 생계지원금으로 받은 보상금을 반환하라는 국가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었다.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8월 20일, 1심 서울행정법원은 “5∙18 보상법은 국가가 관련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며 생활이 안정되도록 돕는 배상의 성격이 있는 데 반해, 국가유공자법은 유공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미 국가유공자로 보훈급여를 받는 사람이 5∙18 보상법으로 이중 지원을 받는 것을 막는 규정은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아래서 진행된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중보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여 결국 유족이 패소했다.

유족 측은 반환할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여전히 이 판결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1980년 6월 해직부터 2005년 여름 연금지급이 개시될 때까지 25년간 받지 못했던 고인의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고인의 경우 순직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해직된 뒤 투병 기간 8년에 해당하는 급여가 지급됐어야 한다. 하지만 이 기간 중 급여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 1988년 사망 이후 2005년까지 17년간의 연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만약 2003년 지급된 보상금 반환을 요구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한 국가의 보상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1997년 대법원은 ‘생계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국가의 보상금 지급 의무를 판시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법원은 그때와 다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둘째, 왜 보상금 반환을 수령자인 미망인에 한정하지 않고 자식들에게까지 청구하는가도 납득이 어려웠다. 물론 보상금 수령자 명단에 가족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 보상금은 미망인의 생계지원금인데다 고인의 투병생활에서 비롯된 빚을 갚는 데 모두 소진되었다.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편 2009년 11월 25일 경찰인재개발원에 ‘안병하홀’이 들어섰다. 인천 부평에 있던 경찰종합학교가 충남 아산으로 이전 개원하면서 450석 규모의 강당에 안병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당시 박종환 경찰종합학교장(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의 제안으로 만든 것이다. *214

*213 「전남경찰의 역할」, 3쪽, 2017. 2005년 9월에 경찰청 내부결재를 받은 ‘안병하 전 전남국장 5∙18 관련 순직 진상조사 보고’ 참조. 본 보고서는 총 187쪽으로 전남지방경찰청이 2005년 9월에 책자로 묶어서 단행본으로 간행했고,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에 순직 신청자료로 제출됐다.
*214 경찰인재개발원에는 안병하홀 외에도 차일혁, 최규식, 정종수홀 등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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