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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⑫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안호재 | 2021-07-07 08:57: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 진실을 밝히려는 자, 진실을 덮으려는 자

평민당 입당 제의를 거절했지만 그는 이때 8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침묵했던 자신이 겪은 5∙18의 진실을 밝혀야 할 때가 도래했다고 판단했다. 삶을 지탱해온 운명의 시각이 종점을 향해 재깍재깍 달려가고 있었다. 그 시각이 다 끝나기 전에 진실을 밝힐 수 있을 만큼 건강상태가 허락될지는 미지수였다.

5∙18은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의 작전 측면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시민항쟁 관점에서도 대규모무장투쟁 양상을 보였다. 한국사회가 군사독재에서 민주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5∙18은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5∙18은 단지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시민적 항쟁 자체로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 이후 지난했던 진상규명 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폭동’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동력원은 5∙18진상규명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1988년은 5∙18진상규명에서 기념비적인 해였다. 6월항쟁 때 용암처럼 분출됐던 혁명적인 변화 요구의 밑바탕에는 5∙18진상규명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1988년 6월 27일, ‘여소야대’ 국회는 마침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5∙18진상조사특위) 구성을 의결했다. 사회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과 덮으려는 자들의 거대한 결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육군본부와 국방부 측에서도 이런 상황이 닥칠 것에 대비하여 1988년 1월부터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군의 입장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을 군 통수권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시인해 버렸다. 5∙18을 ‘폭동’이라고 할 때는 계엄군의 진압행위가 정당성을 가졌다. 하지만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면 진압작전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은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그해 1월 말 ‘육군위원회’(육군대책위원회)를 비밀리에 편성했다. 육군위원회는 ‘계엄군의 적법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5∙18 당시 군의 작전자료를 수집하여 ‘재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시행된 진압작전을 재정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부터 잘못된 군의 작전을 ‘적법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게 재정리’한다는 것은 ‘군 작전자료의 체계적인 왜곡’을 의미했다.

육군위원회는 치밀하게 5∙18 관련 군 작전자료 가운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예민한 부분들을 낱낱이 뜯어 고쳤다. 그리고 원본 문서는 소각 파기시켜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5∙18 관련 군 작전자료는 이때 육군위원회가 재정리한 것들이다. 또한 육군위원회는 5∙18 당시 상무충정작전 *198 에 참가한 군인들의 체험담을 통하여 ‘재정리된 작전자료’를 증언으로 보완토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0년 5월 광주 진압작전의 실체적 진실은 사라져버렸고, 군 작전의 ‘적법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게 재정리’한 군 자료만 남았다.

육군위원회가 재정리한 군 자료들은 1988년 5월 11일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회를 통해 국회 청문회용으로 다듬어진 다음 국회에서 선보였다. 5∙18문제에 대한 창구역할은 국방부가 맡았다. 국방부는 5월 11일 당정협의회 끝나자 곧바로 그 날짜를 따서 ‘511연구위원회’(이하 511위원회)를 만들었다. 육군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역시 비밀리에 만든 5∙18 대책 조직이었다. 국방부가 설치한 511위원회는 육군위원회에서 가공한 5∙18 작전자료와 거기에 맞춰 작전참가자들의 수기를 국회 답변용으로 정교하게 가다듬는 일을 했다. 이때 보안사도 ‘511분석반’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1980년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했던 일들을 다시 정리했다. 정무적 감각으로 논리를 세우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김대중 내란음모와 5∙18의 연결 부분’뿐만 아니라 당시 공작차원에서 조작했던 ‘간첩 사건’ 등이었다. 이렇게 군과 국방부, 민정당의 모든 역량을 모아서 5∙18에 대한 ‘국회답변 자료’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 자료는 결국 5∙18 당시 계엄군의 진압작전은 ‘적법한 범위’에서 진행됐고,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객관성을 갖춘 것’이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부의 5∙18 작전자료는 5∙18 왜곡의 역사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하다.

이렇듯 군과 국방부의 체계적인 5∙18 청문회 대비에 비하여 야당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야당은 군에 비해 부족한 전문 인력과 군사기밀을 이유로 ‘군 자료 비공개’라는 벽에 부닥쳤다. 야당으로서는 피해자인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강경진압에 비판적이었던 31사단장 및 전교사 소속 일부 군인들, 그리고 상부의 발포 압력을 거부한 경찰국장의 증언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병하 국장의 국회증언은 전체 청문회 판을 뒤흔들만한 잠재적인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직무유기’ 때문에 처벌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경찰의 발포지시 거부에 대해서 취해진 신군부의 보복 조치라는 점이 드러나게 될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신군부의 공수부대 투입 및 강경진압의 정당성이 원천적으로 설 자리를 잃을 터였다.

*198 육군은 1970년대부터 위수령이나 비상계엄이 발령될 경우 군의 시위 진압작전을 ‘충정작전’이라 불렀다. 평소 충정작전은 육본 직할부대인 ‘20사단’과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공수특전부대’를 주축으로 편성 운용했다. ‘상무충정작전’은 전남북계엄분소가 설치된 전투교육사령부의 소재지가 광주 상무대였기 때문에 ‘충정작전’에다 ‘상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다.

■ 경찰의 5∙18권리장전, 안병하 비망록

안병하 국장은 홀로 병상에 누워서 앞으로 다가올 큰 변화를 감지하면서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시기에 남긴 육필 비망록은 바로 이런 역사적인 국면에서 경찰 안병하의 생각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아쉽게도 이 비망록은 미완성이다. 운명의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기력이 다해가는 상황이었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한 조각의 힘을 다 짜내서 비망록을 정리했다. 쇠잔해지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것을 볼펜으로 정리하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비망록의 첫 부분과 달리 뒤로 갈수록 글씨가 흔들린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그의 비망록은 죽음을 앞둔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써내려간 역사적인 증언이다.

이 비망록은 개인의 생각을 적은, 미처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경찰의 5∙18권리장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1689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의 결과로 이루어진 인권선언이다. 의회가 정한 법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체포, 구금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롯하여 시민의 자유권을 명문화함으로써 절대군주의 권리를 제한하고 주권이 국왕으로부터 의회로 옮겨지는 첫걸음이 되었다. 영국의 권리장전은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의 인권선언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민주화된 나라들의 헌법에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들로 구체화되었다.

그의 비망록은 군사독재의 한계가 어디까지이고, 국민과 경찰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망록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정당한 권리라고 여긴다. 경찰의 역할은 시위대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 통제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군이 무제한 폭력을 사용하여 정당한 의사표현마저 억제하자 시위가 폭력화되고 경찰의 통제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군은 경찰에게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시위를 제압하라고 강요했지만 그는 강력사건도 아닌데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경찰은 부상을 입은 연행자들에 대한 치료 등 시민의 안전 보장에 최선을 다했다. 경찰의 무장이 불러올 우발적인 발포나 시위대에게 무기를 빼앗겨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기를 군부대로 미리 대피시켰다. 군의 발포에 희생자가 발생하자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여 대항했으며, 군경이 퇴각한 뒤 시민들이 나서서 질서를 회복했다. 경찰의 치안 부재에도 불구하고 강력사건 발생률은 평소보다 훨씬 낮았고, 시민들은 높은 질서의식을 보였다. 시민은 적이 아니고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본분을 지켰던 경찰에 대하여 시민들은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경찰을 보호했다. 철수할 때 시민들은 경찰을 도왔고, 경찰의 치안기능이 중지된 기간에는 스스로 질서를 유지했으며, 심지어 경찰서를 지켜주기도 했다.

비망록에 담긴 안병하 경찰국장의 생각과 행동은 경찰의 참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꾸밈없이 보여준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힘들고 버거운 상황에서 경찰 지휘관이 보여준 의로운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담았다. 비망록은 개인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 경찰의 보편적 권리와 의무를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 5월 안병하 국장과 전남경찰관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했다. 경찰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비망록은 ‘경찰의 권리장전’에 담겨야 할 기본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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