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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⑪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안호재 | 2021-07-06 08:41: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 사망, 그리고 청문회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성공했고, 전두환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12∙12군사반란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노태우가 전두환의 지원 아래 1988년에 후임 대통령이 됐다. 노태우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5∙18을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그해 4월 26일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졌다. 총의석 299석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125석으로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다. 평민당 등 야당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5∙18진상규명을 위한 국정감사와 국회 청문회를 추진했다. 5∙18진상규명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병상에 있던 안병하 국장은 평민당(평화민주당. 대표 김대중, 1987. 10. 창당)으로부터 입당 제의를 받았다. 평민당에 입당해서 5∙18의 억울했던 과정을 밝혀보자는 제의였다. 평민당은 이때 5∙18관련 상징성이 큰 인사들을 영입했다. 정웅(당시 31사단장)을 비롯, 정상용(당시 도청 최후 항쟁지도부 외무부위원장) 등도 이때 영입돼 국회에서 5∙18청문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안병하 국장에게 입당제의가 들어오자 아내 전임순 여사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느냐며 남편에게 수락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하지만 안 국장은 그런 제의를 거절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경찰로서 본분을 다한 것인데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고무 후유증으로 인한 병의 상태가 너무 악화됐던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여적餘滴-안병하인권학교 안호재 대표 회고

사진 두 번째 좌측은 80년 5월 당시 전남경찰국 양성우 경무과장님, 우측은 안병하 국장의 3남 안호재 씨다. “양성우 경무과장님은 경무관 진급을 앞두고 있는 최고참 총경이었다.

80년 당시 상황을 면밀하게 말씀해주셨다. 비록 강제해직을 당하셨지만 80년 전남경찰관이라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계셨다. 본인도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셨는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 청문회 증언 준비, 육필 비망록 정리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최초로 안병하에 주목한 것은 당시 《광주일보》에 근무하던 나의갑 기자였다. 나 기자는 5∙18 당시 전남도경 출입 기자였다. 그 인연으로 자신이 알고 지내던 경찰들에게 안병하 국장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마침내 전화번호를 찾아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어려웠다. 겨우 연락이 닿았을 때 안 국장은 반가워했다.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당장 병원으로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병상에서 주사바늘을 팔목에 꽂은 채 누워 있는 수척한 모습은 언론에 노출된 그의 마지막 이미지였다. 그때 안병하 국장은 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만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공수부대가 투입되지 않았다면 광주의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197

안병하 경찰국장이 당시 직접 목격하고 당했던 일들은 5∙18진상에서 반드시 규명돼야 할 핵심적인 사항들이었다. ‘초기 시위 시작단계에서 경찰이 진압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는지? 계엄군의 초기 과잉진압 실상은 어느 정도였는지? 경찰은 왜 무장과 발포를 거부했는지? 군경이 광주시내에서 철수한 뒤 재점령할 때까지 광주시내 치안상황은 어떤 수준이었는지? 등등. 이와 같은 쟁점 하나하나가 모두 안병하 국장의 증언 내용에 따라 평가가 뒤집힐 수 있는 예민한 주제들이었다. 그만큼 그가 견뎌야 할 심리적 부담은 크고 버거웠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일으킬 파장은 당시 정치상황에서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의 성공과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전두환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가 5∙18을 ‘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고 선언했지만 가해자 집단인 신군부의 위세는 여전했다. 진상규명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가해자 집단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텐데 그 사람들이 육군참모총장 직을 비롯하여 정치권에서는 여당인 민정당 핵심 당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안들인데 방해공작이 얼마나 극심할 지는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안병하 국장이 투병생활 중 수시로 ‘죽고 싶다’는 말을 쏟아냈던 것은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넘어선 문제였다. 자신이 직접 겪고, 목격했던 ‘광주의 비밀’은 엄청났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고, 온전히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197 나의갑, 안병하 병상인터뷰. 《월간 예향》, 1988. 나의갑 기자는 자신이 취재한 안병하 국장 인터뷰 내용을 당시 윤재걸 기자에게 미리 알려줘 《한겨레신문》(1988. 7. 26일 자)에서 먼저 보도되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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