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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⑧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안호재 | 2021-07-01 08:20: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죽고 싶다”는 말만 주술처럼 반복”

합동수사본부는 거칠었다. 안병하 국장은 합수부에서 풀려 난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전깃불을 이마에 비추며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약 8일간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가 정말 참기 힘들었던 것은 ‘치욕’이었을 것이다. 신군부를 주도한 자들은 육군사관학교 후배들이었다. 그들에게 당한 수모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너무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건강했던 그의 육신을 피폐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때 겪은 자괴감은 그의 내면에 너무나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던 것이다.

트라우마,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미국의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갑작스런 사고나 극심한 고문을 겪은 사람들이 체험하는 증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말문을 막히게 한다.” *195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면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거나 아예 굳어 버리는 정지 상태가 된다. 사람을 이해력의 한계로 몰고 가서 언어 표현을 차단해버리는 것이 트라우마의 본질이다. 콜크 박사는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의 뇌 영상을 촬영해 보면 뇌 속에서 격렬한 변화와 반응이 발견된다고 한다. 가장 큰 반응은 인간의 말하기를 담당하는 좌뇌 전두엽 피질 중 ‘브로카’ 영역이 밝은 점으로 나타나면서 활성이 크게 감소한다.

뇌졸중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이다. 뇌혈관이 막혀 이 ‘브로카’ 부위에 혈액 공급이 차단되면서 결국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트라우마는 뇌졸중과 같이 인간의 뇌 속에서 브로카 영역이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어 생각과 기분을 논리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들며 우뇌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오른쪽에 있는 우뇌는 인간의 직관, 감정, 시각, 공간, 감각을 담당한다. 또한 트라우마는 과도하게 흥분 상태에 빠지게 한다. 이런 감정적인 흥분 상태는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경험한 이미지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나서 우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인지하는 기능은 인간의 뇌에서 뒤쪽에 있는 “시각 피질 영역(전문용어로는 ‘브로드만 영역19’라고 부른다. 뇌에 외부에서 이미지가 처음 들어오는 순간 그 이미지를 인지하는 영역이다)”이 담당한다. 정상인의 경우 가공되지 않는 이미지를 이곳에서 신속하게 뇌의 다른 부분으로 보내서 방금 눈으로 본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감각을 접하면 과거가 재현되어 그때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눈에 비치는 이미지가 기억의 창고에 저장돼 있던 과거 트라우마 상황의 이미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과거의 이미지가 우뇌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우리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증가한다. 아드레날린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하나다. 아드레날린 호르몬의 증가는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급격하게 높인다. 트라우마가 심할 경우 급격하게 증가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신체의 장기 가운데 취약한 부분을 과도하게 자극함으로써 손상시킨다. 트라우마 증상이 단순히 정신적 고통에만 머물지 않고 합병증으로 전이되는 것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병하 국장은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전기 불빛에 노출된 채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겪었다. 잠을 못 자면 뇌의 뒷부분에 위치한 ‘시각피질 영역’을 지속적으로 자극함으로써 과도한 아드레날린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신경화학적, 생리학적 혼란 상태가 반복되면서 안병하 국장은 말을 잃었고, 단지 ‘죽고 싶다’는 한마디만 주술처럼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트라우마가 일으킨 합병증”

안병하 국장은 치안본부에서 6월 13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2시 곧바로 병원부터 찾았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00침구한방의원에서 3개월간 침뜸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이 몸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 집에서는 워낙 말이 없어서 ‘우울증’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해 9월 서울 종로구 교북동 00의원에서 진찰 경과 만성담낭염 (당뇨, 고혈압, 신장병)으로 합병증세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1981년, 1983~1986년 사이에도 수시로 통원치료를 받았다.

1980년 12월 안 국장은 아내와 함께 친척의 도움으로 독일과 미국 여행을 떠났다. 1960년대 광부로 독일에 갔던 처남이 그곳에서 병원 사무직원으로 근무했다. 처남의 도움으로 독일 병원에서 검진 결과 신체 여러 기관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진단서를 받았다. 독일에서 겨울 1달 체류한 뒤 미국 LA로 건너가 3개월을 더 머물렀다. 그의 동생 2명과 누님이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4개월간 독일과 미국을 여행하면서 친척들의 위로 등으로 1981년 4월 초 귀국할 무렵 우울증 증세가 상당 정도 호전됐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 그의 병세는 다시 도졌다.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그에게는 트라우마의 악몽을 수시로 떠올리게 하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어떤 일과 관련된 신체 감각이나 감정, 이미지, 냄새, 소리가 재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뇌 속에 그 일에 관한 기억이 선명하게 시각 이미지로 저장돼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자극이 있어도 그 일을 전부 떠올리면서 뇌 속에서 다시 ‘경험’한다. 일종의 환각에 시달리는 것이다.

투병을 하는 동안 그는 외부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일부러 그를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대부분 공직자였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의 감시 아래서 그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할 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중에도 간혹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남에서 경찰국장 시절 함께 피해를 입은 참모들이었다. 강제 해직된 안수택 전 전남도경 작전과장은 안 국장이 병원에 다닐 때 만나 몇 차례 식사를 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거의 말이 없었다. 안수택이 “무슨 일로 병원에 다니냐”고 물으면 그는 짤막하게 “전두환 병 때문”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수록 가슴 아픈 기억만 떠올리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무렵 고향 강원도 양양에 자주 내려갔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렸다. 건강 상태 때문에 혼자 갈 수 없어서 주로 셋째 아들 안호재가 동행했다. 친구들과 만나 남대천에서 낚시나 투망질해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곤 했다. 그럴 때면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고향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그에게 안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혈액 투석을 했기 때문에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계속>

*195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 박사는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고, 보훈병원에서 참전 군인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 연구했으며, 자신이 직접 트라우마 센터를 설립했다. 트라우마(PTSD)가 뇌신경에 일으키는 변화를 영상으로 직접 촬영해서 관찰함으로써 새 치료법을 개척했다. 신경생물학, 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현재 트라우마 치료의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몸은 기억한』(2014)는 그의 저서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로 트라우마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바꿔 놓았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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