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 CMS후원
2021.12.05 16:21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세계  |  미디어  |  칼럼  |  서팡게시판  |  여행게시판
 
칼럼홈 > 전체

4·16참사 7주기를 다시 맞으며…
김용택 | 2021-04-16 13:53: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다시 4·16이다. 7년 전 2014년 4월 16일 오후 4시. 달력에서 아니 역사에 차라리 4월16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참사...? 이날을 어떻게 참사라는 두 글자로 그 뜻을 다 표현할 수 있는가? 참혹하고 비참하고...그런 단어 몇 개로 표현이 되겠는가? 한글 자음과 모음 24자로 못 만들 단어가 없다지만, 2014년 4·16일의 비참하고 참혹하고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모두 합한 말보다 더 슬프고 아픈 날이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4·16은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그날의 아리고 슬픈 고통이 떠올라 이땅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모든 국민들은 하나같이 죄인이 된다. 벌써 7주년...2,556일 째다.

진실만 밝혀졌다면 이렇게 괴롭고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이날이 다시 돌아오면 대한민국의 수사관, 정치인, 해양수산부인지 해양경찰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무능이 새삼스럽게 밉다. 2014년 4월 16일 경기도 안산시의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별이 된 날... 그날의 참사를 기억하고, 교훈 삼아 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행사가 치러진다. 진실만 밝혀졌다면 이런 추념식 행사가 왜 의미가 없겠느냐마는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힘 있는 정치인들이 진실을 인양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그 어떤 진실 한 조각도 건져내지 못하고 또 다시 7년을 맞는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청해진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에 승선한 476명의 승객 중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색 작업 종료를 발표한 2014년 11월 11일까지 총 209일간 계속되었지만 끝내 단원고 학생 250명, 교사 11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침몰하는 세월호 주변에는 수상오토바이, 제트보트, 헬기, 민간 어선, 주변의 외국선박까지 있었지만 모두가 구경꾼이 됐을 뿐, “살려주세요!”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7시간 동안 메아리치다 끝내 세월호와 함께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밝혀내지 못한 그들이 밉고 원망스럽다.
 

아,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table=yt_kim&uid=1271 









      



모바일 기기에서도 댓글 작성이 가능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현재 아이폰 기기까지 테스트 완료하였습니다.)


닉네임  비밀번호  847945  (스팸등록방지:빨간숫자만입력)

 [1/3]   의문?  2021년4월18일 06시23분    
배가 기운다고한지 3일동안 도대체왜 해군은 협조가 막히고 민간구조선을 막았는지? 유디틴지 선수들을 동원하지안했는지 의문투성이다. 사이비 딸년의오방굿에 취해 22년 형받은 년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의문투성이다. 아! 가엾 간 불쌍한 영혼들 ! 부디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35) (-19)
 [2/3]   만기출소  2021년4월18일 10시45분    
는작은 사기꾼과 순실을 총리보다 이꼈던 년은 만기출소가 답이다.
(35) (-27)
 [3/3]   불초자  2021년4월18일 11시09분    
왜 박근혜인가,라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구조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국가의 몫입니다. 이로써 일단은 박근혜 청와대에 대한 비난은 정당성을 얻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을 구하는 데 힘을 다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논쟁의 핵심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무슨 이유로 급변침이 있었고, 선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만을 따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수한 음모설만 난무하면서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규명은 그만큼 멀어지게 됩니다.
구하지 못한 것이냐, 구하지 않은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해야 우리가 정확한 맥을 짚으며 한눈을 팔지 않습니다.
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병든 구조의 문제이므로 누구 하나 벌한다고 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하지 않은 것이라는 정황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전 9시 30분경, 45도로 기울어진 사고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첫번째로 한 일은,
배 중간에 나와 대기하고 있던 기관부 선원 전부를 구명보트를 이용해 해경정으로 승선시키고,
다음으로, 조타실에 모여있던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을 직접 해경정을 갖다대고 승선케한 일이 전부입니다. 이상하게도 선원들은 선원복을 벗어버리고 사복으로 모두 갈아입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를 더욱 분노케하는 것은,
많은 학생들이 구조를 바라면서 창문을 큰 소리로 두드렸을 바로 앞의 다인실(50인)을 뻔히 보았으면서도, 망치 한 두 번 내리치면 그 학생들을 모두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이내 시선을 거두어, (오래돼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주변 어딘가에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었던 두 명의 남녀 승객을 구하고 현장을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영상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45도로 기울긴 했지만,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오전 11시 18분경 우현이 잠겼고, 이틀 후 오후 1시경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해경이 한 일은, 선장과 선원을 구한 다음, 물에 떠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25명의 탈출에 성공한 생존자들을 구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부들과 다른 배의 선원들은 도착 즉시 선미로 가서 90명의 인명을 구했습니다. 세월호 172명의 생존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을 구조한 것은 이분들이었습니다. 오히려 해경은 구조를 위해 접근하는 어선들과 선박들을 통제하면서 접근할 때마다 통제선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그곳에 모여있던 어부들과 선원들을 향해 안전하게 배에 올라 우현과 좌현의 창문을 모두 깨고 신속하게 사람들을 구하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혹자는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하겠지만, 그 시간대 세월호는 45도에서 급격한 기울기 없이 서서히 잠기고 있었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주변을 휩쓸고 끌고들어갈 정도로 잠긴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혹 잠기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질서유지를 먼저 생각하는 해경의 그 두뇌는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선과 선박들에는 구조 장비와 훈련된 인력이 있었고, 그들은 물에 빠져도 제 힘으로 헤엄쳐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해경이 한 것은, 바로 앞이 바다여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는 선장과 선원들을 도착 즉시 제일 먼저 구하고, 다음으로 탈출에 성공한 25명의 생존자들을 건져올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 구조를 위해 접근하는 어선들과 선박들을 통제선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이것을 무능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그날 해경의 행동은 인간의 행동이라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해경에게 이런 명령<선장과 선원만 구조하라!>을 내릴 수 있는 윗선은 어디란 말인가!>>

그날 구조에 투입됐던 123해경정 정장은 탈출방송을 했다고 했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윗선의 지시에 의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실토한 바가 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법정에서 유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벌어진 한 여성 선박직 승무원의 폭로였습니다. 수술용 마스크와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외신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용감한 분이었지만, 결국 그분의 신원은 끝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승객들을 배에 그대로 둔 채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국내언론은 이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 역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순간 일제히 더는 이 소식을 세상에 알려오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청와대는 외신기자들에게 압력을 가했고, 그 때문에 그들과 충돌을 했던 정권이었습니다.

<<해경 현장구조 책임자에게 거짓기자 회견을 시키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야 하는 선원들에게 배를 버리라고 명령했다면,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람들입니다.>>

해수부 역시 처음에는 항적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가 호통을 받고 항적을 내놓았고, 그것도 엉터리 항적임이 드러났고, 그들은 '언딘'이라는 민간인양 업체를 미리 선정해놓고, 사람들에게는 전문 구조업체들을 모집해 이 가운데서 유능한 업체를 뽑겠다고 해놓고서, 다른 구난업체들이 이 일에 끼어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비록 침몰한 후라고 해도, 구난을 먼저 하고나서 인양을 하는 것이 순리인데, 해수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양을 하는데 더 생각이 가 있었습니다. 구조보다는 그 참사의 흔적을 지우자는 생각이 강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일을 기획한 그 윗선은 어디였을까,
후에 밝혀진 바로는, 언딘은 해경과 이해관계가 있는 조직임이 드러났습니다.
해상에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잠수부들을 통제하고, 그 등록절차를 주관하는 역할을 한국해양구조협회에서 진행합니다. 한국해양구조협회의 구성은 전직 해경 고위간부들과 해경에서 근무했던 퇴직 공무원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협회의 부총재 중 한 명이 언딘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사람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언딘은 사용처를 알 수 없는 5,500만 원으로 홍역을 치룬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돈이 잘 봐달라는 명목으로 해경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해양구조협회에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양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해경은 청해진 해운에게 이 언딘의 임원 중 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 것이 KBS취재 결과 드러났습니다. 그렇지만 해경은 언딘을 택한 것은 청해진 해운이었고, 자신들은 그에 따라 그 업체를 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에 뛰어든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그래서 구난과 인양의 경력과 경험이 전무했으며, 매출실적도 형편 없어 이 부문에서 퇴출대상이 되어야 했던, 그래서 기술과 인력과 관리 면에서 이 일에 오래 투신해온 베테랑급 업체들<인양과 구난을 함께 해 온>과 경쟁 상대도 되지 않는 이 부실한 기업을, 국가가 최고 구난인양업체로 선발했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더구나 이들은 생계를 뒤로 미루고, 구조현장에 달려와 이제나 저제나 투입을 기다리고 있던 베테랑 민간 잠수부들을 통제하고<비밀 각서>, 이분들의 자리를 자신들의 잠수부로 점차 채우고 밀어내면서 결국에는 강제로 현장에서 쫓아버렸습니다.
과연 국가 행정기관도 아니면서 이런 전권을 누가 행사하도록 이들에게 힘을 주었단 말인가! 일개 기업체가 국가기관이 지휘하고 통솔해야 하는 구조의 임무를 전권을 쥐며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닙니다!
수난구호법 13조에는 인명구조, 인양을 포함해 모든 전권을 중앙구조본부의 장이 갖습니다. 여기서는 해경청장이 됩니다. 특정업체가 사고현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난구호법 어디에도 한 업체만을 선정해 구조활동을 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구조현장에서 특정 업체만 선정해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구난행위입니다. 여러 업체들을 통솔하고 다툼이 일지 않게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날 해경에게 주어진 국가의 구조임무였습니다.
허나 해경은 언딘만을 끌어들였고, 자신의 모든 권한을 그들에게 맡겼으며, 되려 언딘의 시중을 들며, 민간 잠수부들에게 각서를 쓰게하고, 현장에 이분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막는 이상한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언딘이 한 일은 구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은 아니었을까, 세월호에는 유독 많은 구멍이 뚫려있고, 납땜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많은 곳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부식이 진행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무튼 이 언딘이라는 집단은 외부세계에 그들의 활동이 알려지는 것을 무척 꺼려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것을 구난업체라고 부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야릇한 집단을 비호했던 해경, 그럼에도 역시 이런 해경을 통솔하고 그들의 보고를 받는 것은 국가권력입니다!

<<이 언딘에게 전권을 준 사람들은 역시 이 일을 기획하고 통제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세월호는 새벽 1시경 군산 변산반도 앞바다를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충격으로 15도로 기울었다가 복원되긴 했지만 정상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시간에 닿지 못할 것이 염려되어 잘 가지 않던 맹골수도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증언은 전에 배를 많이 타봐서 누구보다 배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고 했던 해병대 출신이었던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15도로 갑자기 기울었다가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왔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갑판으로 나가 보았더니 날씨는 쾌청하고 바다는 조용해서, 시계를 보니 그때가 새벽 1시였고, 배는 군산 변산반도 앞바다를 지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15도는 세월호와 같은 큰 배라면 (내부가 됐든 외부가 됐든) 큰 충격이 전제돼야 이룰 수 있는 경사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눈치재치 못한 것은, 그 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났고,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는 보통의 경우 깊은 잠에 빠질 시간대입니다.
증언한 분도 당시의 <순간적 기움>은 배를 많이 경험해보고, 그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군산 앞 바다에서 크게 기울었던 것일까, 여기에 우리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는 군산 앞 바다에서 이미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제 시간에 닿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인지 세월호는 그날 잘 가지 않던 맹골수도로 들어갔습니다.
신상철 선생님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맹골수도로 진입하기 전 이미 기관 고장으로 통제에 이상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침 7시 50분경, 아침 8시 10분경에도 기관실의 사람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식당에서는 음식물이 접시에서 떨어질 정도로 세월호는 급격하게 기울었고, 그때마다 AIS의 전원이 차단됐습니다.
AIS는 전원코드를 뽑지 않는 한 자동으로는 꺼질 수 없게 설계되어 있는 선박에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은 장비입니다. 침수시에도 가장 늦게 작동을 멈추는 것이 이 장비입니다.
세 번이나 크게 기울때마다<새벽 1시경/ 아침 7시 50분경/ 아침 8시 10분경> 꺼졌다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휴게실의 TV와 자동판매기는 정상 작동했습니다. 전기가 차단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가장 늦게 작동을 멈춰야할> 이 장비가 꺼졌다면 누군가 세월호의 현재 위치와 상태를 숨기기 위해 손을 댔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도그럴것이 배가 복원되자 다시 작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상실된 세 구간은 김어준 씨가 해외 항적 사이트를 찾아내 복원을 합니다. 놀랍게도 그 시간대는 세월호가 크게 기울었던 그 시간대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갑자기 기울어진 탓에 공구가 굴러다니고, 음식물이 떨어지고,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목격자들이 진술한 그 시간대를 항적에 대입해 보니, 그때가 바로 AIS가 꺼진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군산 변산반도 앞바다에서 15도 기울었던 그 시간대와 AIS의 항적이 사라졌던 순간이 일치했고,
더욱 놀라운 점은, 해수부는 세월호가 유일하게 영해를 벗어난 때가 새벽 3시 40분경이었다고 했는데, 그 시간대에 또 AIS항적이 사라졌음이 밝혀졌습니다.
AIS 기기는 아무리 영해를 벗어나 공해 상에 있다고 해도, 출항해서 입항이 완료될 때까지는 절대 끄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알려오고 있습니다.
만일 세월호가 공해 상에 있을 때, 역시 AIS를 고의로 끄고 세월호로 접근하는 어떤 배가 있다면, 그 이후 어떤 일이 세월호를 둘러싸고 공해상에서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1개 사단병력이 세월호에 몰래 접근해 승선한다고 해도 어떤 정보도 없기에 그 시간대는 미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연안을 벗어나 인간세상의 모든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그 시간대에 왜 AIS의 항적이 사라졌는지 이에 대한 속시원한 해명이 없다면, 음모론(폭파물 잔해수거▶▶▶공작요원 하선▶▶▶CCTV녹화장치 및 녹화물 수거▶▶▶도주)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어느 누구도 이런 소리를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의 잠꼬대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진도와 제주의 VTS는 편집.조작됐음이 드러났고,
이 모든 항적관련 정보들을 기록하고 보관하고 있어야할 대전통합센터의 컴퓨터는 세월호에 문제가 발생한 그 시간대에 정확히 전원이 나갔습니다(소프트 다운).
이것만 제대로 작동했어도 세월호의 문제가 정확히 어디에서 발생했고, 그날 진도/제주 관제센터와 정말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다른 배들에게 구조요청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그 시각은 언제였는지<세월호의 진짜 사고발생 시각>, 공해상에서 얼만큼 머물렀고, 혹 국정원의 지시를 받지는 않았는지, 곧 출항해서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우리가 세월호를 타고가면서 선내의 상황과 항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1분 1초 단위로 복기해볼 수가 있습니다. 진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반대의 움직임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허나 우리에게 지금 그 기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책임을 져야할 자들이 주는 자료와 진술만으로 유추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항적도도 정말 그날의 그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부들과 방송, 행정당국의 보도자료와 문건,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사고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아침에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역시 그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처음의 것과는 다르게 덧칠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과연 단순한 해상사고입니까?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솔직해지십시오!

나누고 싶은 말이 무수히 가슴에 쌓여있습니다.
그날 이후 세월호를 잊어본 적이 없고, 늘 노란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세월호는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이 되어 있습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놀라운 힘을 그 안에 잉태하고 있고, 인류가 미래의 문 앞에 서서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려라! 참깨입니다.
아이들은 귀한 목숨값으로 그 길을 마련해 주고 바람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늘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우리 대한의 가족들이 인양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우리의 앞길을 막아설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는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민족의 선언이자, 인류의 미래입니다. 누구도 그것을 거래로 만들거나 희석할 권한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는 하늘을 대신해 그런 사람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새겨들으십시오!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34) (-28)
                                                 
民草가 주인인 中原, 제3지대를 위...
                                                 
[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홍콩...
                                                 
종전선언까지 반대하는 후보를 지...
                                                 
김사복, 5.18 진상을 세상에 알리...
                                                 
왜 당신은 계란을 바위에 던지시나...
                                                 
공기업 적자, 정치인-자본-관료의 ...
                                                 
바이든, 차기 미 연준 의장에 ‘제...
                                                 
‘새로운 자본주의’를 논하다
                                                 
[김해 장유소각장 ③] 소각시설로 ...
                                                 
청소노동자의 외침 “차별받아도 ...
                                                 
NBS 여론조사, 지지율 李 33% 尹 3...
                                                 
문준용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지평선
                                                 
언론의 뒤틀린 ‘역지사지’
                                                 
[이정랑의 고전소통] 착미장(ė...
                                                 
참고 기다린다, 경찰청
                                                 
“귀환” KAL858기 사건 33주기 추...
                                                 
[연재II] 故 안병하 평전 ⑩ 1부 ...
                                                 
[오영수 시] 3.1절, 제헌절, 광복...
5858 잠자는 호랑이 ‘박지원’을 건든 ...
2786 윤석열, 전두환 옹호발언 ‘개-사...
2325 우리가 노태우 죽음을 애도할 수 ...
2203 미 안보보좌관 “종전선언, 한미가...
2145 [이정랑의 고전소통] 일능노지(逸...
2063 궁지에 몰린 자의 승부수
2040 노태우의 국가장… 민주화영령들이...
2034 [오영수 시] 3.1절, 제헌절, 광복...
1991 이재명 ‘음식점 총량제‘와 백종...
1842 이재명 후보가 소시오패스?...원희...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930호 (주)민진미디어 | 발행.편집인:신상철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마기선 | 등록번호: 서울 아01961
등록일 2012.02.02 | 발행일: 2012.02.15 | 이메일: poweroftruth@daum.net | 사업자번호: 107-87-60009 | 대표전화: 02-761-1678 | 팩스: 02-6442-0472
회사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방침 | 광고/사업제휴문의 | 기사제보 | 칼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