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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人才를 얻는 것은 어렵다.
이정랑 | 2021-04-14 11:21: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마주 馬周, 풍당 馮唐】 잘 찾아 쓰면 모두가 인재다

잘 쓰면 모두가 인재요 내치면 모두가 무용지물이다.

성당(盛唐-중국 역사의 시기 구분에 있어서 당나라를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으로 구분하는데, 이 시기에 시문학이 가장 융성했다) 시기에는 최대로 확장된 영토와 무수한 인재라는 두 가지 시대적 특성이 있었다. 확장된 영토가 없었다면 무수한 인재가 확보되지 못했을 것이고, 뛰어난 인재들이 없었다면 영토의 확장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명한 재상이었던 마주(馬周)의 경력에서 우리는 당 태종이 인재들을 어떻게 예우했는지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 정관 5년 전국에 대기근이 닥치자 이세민은 초조한 마음으로 좌불안석이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천재지변은 조정의 정치에 문제가 있어 하늘이 경고를 내리는 것으로 간주 됐기 때문에 황제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검증해야 했다. 태종은 즉시 조서를 내려 문무백관들에게 황제를 비롯하여 조정 전체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책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

관료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제각기 자기 식견과 주장을 담은 상소를 올렸다. 이때 한 사람만이 머리를 쥐어 싼 채 난처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중랑장(中郎將) 상하(常何)였다. 상하는 무관으로서 꽤 높은 관직에 있었으나 학식이 깊지 못해 조정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태종이 상하의 상소를 접하게 되었다. 상하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태종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의 성의를 생각하여 상소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금세 의미심장한 의견에 빨려들어 갔다. 거기에는 대단히 조리 있는 문체로 스무 가지가 넘는, 지적과 건의가 담겨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유용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태종은 기쁜 마음에 흥분이 되면서도 상하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그를 불러들여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상하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몰라 몹시 긴장된 마음으로 태종 앞으로 나아갔다.

“그대가 올린 주장은 아주 훌륭하더군. 한데 그대가 직접 쓴 글이오?”

상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게 그런 글재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제 문객인 마주가 대신 써준 것입니다.”

마주는 산동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혼자 자랐다. 가난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이리저리 유랑하다가 신풍으로 흘러들어와 시장을 전전하며 근근이 연명했다. 물론 그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랑을 계속하던 그는 마침내 장안으로 가서 상하의 문객이 되었다.

어느 날 상하가 수심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본 마주는 자신이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상하가 사정을 설명하자 마주는 그 자리에서 상소문을 대신 써주겠다고 흔쾌히 제안했다.

신하들의 능력을 귀히 여기는 태종은 상하의 설명을 듣고는 즉시 마주를 황궁으로 불러들이도록 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마주가 입궁하지 않자 태종은 또다시 사자를 보내 재촉했다. 마침내 마주가 도착하여 태종과의 대담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종은 노기를 완전히 풀고 당장 그를 문하성의 관리로 발탁했다. 그 뒤로 승승장구한 마주는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덕분에 상하도 실사구시의 정신을 인정받아 마주같이 훌륭한 인재를 구해준 공로로 비단 3백 필을 상으로 받았다.

마주의 운명은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당대에는 큰 뜻을 품고 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한 인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중당의 시인 이하(李賀)는 마주를 몹시 부러워하면서 “마주는 한때 신풍의 떠돌이였고 천하에 그를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었네 馬周昔作新豊客 天荒地老無人識.”라고 읊었고, 자신도 마주처럼 하루아침에 황제에게 중용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쓸쓸하게 초라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중국 역사에는 무수한 황제들이 있었지만 그럴듯한 발자취를 남긴 황제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가운데 전한 시대의 문제(文帝)는 제법 훌륭한 황제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했고 수많은 봉건 군주들 가운데 군계일학의 풍모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아량을 보였다. 이처럼 남다른 품성이 그를 훌륭한 군주로 만든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한나라는 북방 소수민족들과의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화친의 시기도 있었지만, 항상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한 고조 유방은 직접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일주일 동안이나 포위되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이때부터 한나라는 흉노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문제에 이르러서도 흉노는 빈번히 국경을 침범해 노략질을 일삼곤 해서 여전히 북방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문제는 용기와 지모를 겸비한 훌륭한 장수를 선발하여 변방에 주둔시켜야 했다.

하루는 조정에 아무 일도 없어 수레를 몰고 순시에 나섰는데 낭서 앞을 지나다가 한 노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제는 수레를 세워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 이곳에 계신 걸 보니 낭서의 관원이신 것 같은데 고향은 어디 시오?”

“소신은 성이 풍(馮)이요, 이름은 당(唐)이라 합니다. 조상은 원래 조(趙)나라 사람인데 부친 때부터 대 지방으로 이주했지요.”

문제는 즉위하기 전에 대의 분봉왕으로 여러 해 동안 그곳을 다스린 바 있던 터라 노인이 대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되물었다.

“내가 대에 있을 때 상식감(尙食監) 고거상(高袪常)이 전국시대 조나라 장수 이제(李齊)와 진나라 장군 왕리(王離)가 기록에서 싸우던 얘기를 해주었는데 둘 다 대단히 용맹한 장수들이었다고 하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장수들이 있다면 흉노를 두려워할 일이 어디 있겠소? 혹시 노인장께선 이런 장수들을 알고 계시오?”

풍당이 말했다.

“이제가 용맹하긴 하지만 조나라의 명장 염파와 이목에겐 비할 바 아니지요.”

“맞소! 내게 염파와 이목 같은 장수들이 있다면 흉노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 같소.”

풍당은 이렇게 말하는 문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하께서는 염파나 이목을 얻더라도 이들을 중용하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문제 곁에 있던 신하가 이 말을 듣고는 버럭 화를 냈다. 풍당이 이처럼 여러 사람 앞에서 황제를 질책한 것은 멸문의 화를 면하기 어려운 대죄였다. 그러나 도량이 크고 생각이 트인 문제는 다소 불쾌하긴 했으나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서둘러 수레를 돌려 황궁으로 돌아왔다.

황궁으로 돌아와 깊이 생각에 잠긴 문제는 풍당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문제는 내시를 시켜 풍당을 불러다 직접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부름을 받고 즉시 달려온 풍당은 노기를 띤 문제의 표정을 보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우선 예를 갖추어 절을 올린 그는 한쪽에 서서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제가 그를 질책하며 말했다.

“공은 어째서 짐을 능욕했는지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풍당은 문제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는 황급히 대답했다.

“소신은 충정만 알았지 삼가는 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부디 폐하께서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공은 무슨 근거로 짐이 염파나 이목 같은 장수를, 중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는지 말해보시오.”

문제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도록 할 의도였던 풍당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고대의 현명한 군주들은 장수를 출정 보낼 때 매우 정중하게 예우했고, 직접 성문 앞에 나와 고개를 숙이면서 ‘조정에서는 과인의 명을 듣지만, 조문 밖에선 모두 장군의 명을 따르게 하고 군공과 상록도 모두 장군의 처리에 맡기겠다’라고 공언했다 합니다. 그러나 이목이 처음 조나라 장군이 되었을 때는 변방의 조세를 거둬들여 임의로 사용했고 병사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를 마음대로 처리하면서 조정에 보고하지 않아 통제가 불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목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북으로는 흉노를 몰아내고 서로는 강대한 진에 맞섰으며 남으로는 한(韓)과 위(魏)에 대항하고 동으로는 담림(澹林)을 멸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쭙건대 폐하께서도 이처럼 장수들을 신임하실 수 있는지요?”

풍당은 문제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최근에 위상(魏尙)이 운중을 지키면서 거둬들인 조세로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제 주머니를 털어서 군리와 사인(舍人)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자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힘을 모아 변방을 지켰고, 흉노가 참범했을 때에도 무수한 오랑캐 병사들이 위상의 군대에 격퇴당해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보고가 충실하지 않고 적의 사상자 수가 여섯 명이나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위상을 잡아들여 투옥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는 상은 가볍고 벌은 과중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조목조목 짚어내는 풍당의 말은 한 군데도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결국 풍당의 솔직함을 질책하는 대신 그에게 운중군으로 가서 위상을 사면하고 그를 다시 운중수로 임명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아울러 명장을 천거한 공을 인정하여 군기도위(軍騎都尉)라는 관직을 하사했다.

흉노는 위상이 다시 복권되어 변방을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용맹과 지략을 두려워하여 더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고, 한나라 변방은 한동안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는 많은 인재로 하여 언젠가는 자신들도 풍당 같은 지기와 문제 같은 명군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나라에 공헌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송대의 대시인이었던 소동파(蘇東坡)도 「강성자 江城子」란 제목의 시문에서 호방한 필치로 풍당의 이야기를 노래한 바 있다. 어쩌면 그의 시는 풍당의 이야기를 빌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 중국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져 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시운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봉건제도라는 체제에 의해 운명이 결정됐던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얻는 것도, 어렵지만 인재를 얻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주위에 널린 것이 인재들이다. 천리마는 어디에도 있지만 이를 알아볼 수 있는 백낙(伯樂-‘인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주(周)나라 때 말 감정을 잘했던 백낙의 이름에서 유래함)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인제 활용의 어려움이 있다. 잘 찾아 쓰기만 하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인재이지만 버려두면 모두가 무용지물인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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