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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t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 ①
Rent 자본주의와 『자본론』의 거리
김종익 | 2022-06-16 10:13: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Rent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 ①
- Rent 자본주의와 『자본론』의 거리 -

사사키 류지佐佐木隆治
1974년생. 릿쿄立敎 대학 경제학부 교수. 『칼 마르크스』, 『마르크스 자본론』, 『마르크스의 물상화론物象化論』 등의 저서가 있다.


■ 대두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기시다岸田 수상이 “경제를 재생해야 할 필요”를 들면서 내거는 “새로운 자본주의”는, 요컨대 분배 강화를 통한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아베노믹스’에 필적하는 영향은 가질 수 없다. 디지털화와 ‘사람에 대한 투자’는 기존 정책의 재탕에 불과하고, 탈탄소도 엉거주춤한 상태이며, 중요한 분배 정책도, 금융 소득 과세가 보류되고, 재난 지원금을 둘러싸고 혼미를 거듭하는 등, 벌써 중단 전망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잘 돼 간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명시적으로 비판하며(제208회 국회 시정 방침 연설), 자본주의 그 자체의 존재 방식을 묻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주 자본주의로부터 탈각을 내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와 환경과 사회를 중시하는 ‘ESG 투자’, 나아가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목표로 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 등, 자본주의의 방향 전환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기시다 정권의 ‘새로운 자본주의’도 또한, ‘신자유주의’와 금융 완화 정책의 한계에 직면한 일본 자본주의가 마침내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 가고 있는 징후로 봐야 하리라.

물론, 사이토 고헤이斎藤幸平(1987년생, 철학자. 도쿄대학 부교수 - 역주)가 말하듯이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는 아편이기도 하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ESG 투자’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호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타당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것들은, 현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형태 변화를 반영한 것들이기도 하다.

실제, 많은 논자가 지적하듯이, ‘감시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 ‘테크노 봉건제Techno-Feudalism’ ‘네오 소유주의’ ‘Rent 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가 대두하고 있다. 이 새로운 형태는, 그 특징적인 현상現象 형태만 주목하면, 디지털․플랫폼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Technology를 사용해 데이터를 추출해 독점함으로써 실현하는, ‘Rent’(생산 조건의 독점으로 취득 가능한 수익) 징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디지털 기업의 거대화, 고수익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와 가전 등의 제조업, 교육․의료‧돌봄․보육 등 복지 노동Care Work, 나아가 상업과 금융 등, 모든 영역에서 데이터 독점을 위한 산업 구조 및 업계 구조의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의 대량 생산 방식Fordism에서, 자동차 산업의 대량 생산․대량 소비 모델이 자본 축적 체제의 전형을 이루었듯이, 현대의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서는, 디지털 거대 기업의 데이터 독점 모델이 새로운 Rent 징수 체제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야흐로 ‘새로운 자본주의’인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로의 자본주의의 변용은 코로나 재난과 기후 위기하에서 디지털화와 탈탄소화의 압력을 배경으로 삼아, 나아가서는 현재의 인플레를 좋은 기회로 삼아 한층 더 추진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문제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며, 우리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와 ‘Green New Deal’에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것은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를 통해 성장의 과실을 우리에게 가져와서, 좀 더 풍요롭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고전적인 좌파가 생각하듯이, 역시 새로운 형태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지속하는 데 불과하고, 디지털화와 자동화에 의해 한층 실업 증대를 초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 질문을, 필자가 전공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자본주의 구조 전환과 마르크스주의

먼저 이 물음을 생각하는 데 즈음해 중요한 것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근년의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대두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라는 장기적 추세의 귀결이라고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 시사적인 것이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Rolfe Graeber(1961~2020년. 미국의 인류학자, 아나키스트 – 역주)의 Bullshit Jobs(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될까)의 증식에 관한 논의이다. 주1)

그레이버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재수정과 재조정에 그치지 않는 구조적인 변화는, 금융 부문이 대두한 1970년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 이후,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묘사해 낸 노동력의 효율적인 착취를 주축으로 하는 것에서, 오히려 중세 봉건제에 유사한 ‘Rent 취득 시스템’으로 변모를 이루어 왔다고 한다. 예전 자본주의의 ‘내적 논리’와 모순되는 듯한, 명백하게 무용한 일자리 바로 ‘Bullshit Jobs’의 증식은, 바야흐로 이 구조 전환에 수반하는 ‘내적 논리’ 변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는 ‘장기 침체’에 빠졌지만, 그런데도, 자본은 더욱더 강력하게 되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고수익을 올려 왔다. ‘Bullshit Jobs’이란, 이 방대하게 불어난 이익을 분배하는 방법(광고 대리점과 인재 파견 회사의 정부와 유착)이며, 그것을 강탈하는 수단(사기적인 광고와 영업)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그레이버의 분석이 정당한 분석이라면, ‘테크노 봉건제’와 ‘플랫폼 자본주의’라고 일컬어지는 근년의 ‘새로운 자본주의’로의 변용에서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해명한 산업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것과는 다른 ‘내적 논리’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것을 뒷받침하는 양, 많은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는 ‘Bullshit Jobs’의 증식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로의 변용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도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리라. 1970년대 이후, 이윤율의 뚜렷한 저하와 시장의 성숙이 현실 자본의 축적(실물 경제의 경제 규모 확대. 이하 간단히 ‘자본 축적’이라 한다) 정체를 초래하고, 그것에 따라 생긴 화폐 자본(잉여 자금)의 과잉 축적이 자본주의의 금융화를 초래한 것은 자주 지적되었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그들은, 자본 축적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권력이 강대해지고 좌파 침체라는 새로운 사태에 주목할 수 없었다. 주2)
 
그들은, ‘자본 축적의 막다른 길 → 자본주의 붕괴 내지 쇠퇴’라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본 명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 축적의 정체에서 자본주의 위기와 좌파의 호기를 본 것이다. 이리하여,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을 직시하지 못하고, 예전부터 내려오는 볼셰비즘적 전략(정치주의적 혁명론)과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제도주의적 개량론)을 계속 고집하며, 한층 마르크스파의 몰락을 초래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에 따라 작용하게 된 새로운 ‘내적 논리’란, 어떤 것일까. 이것을 해명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이 물상화物象化와 ‘탈산업화’다.

■ 物象化와 ‘제국적 생활양식

예전부터 『자본론』 체계는 ‘공황론’ 체계로 읽히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은 자본 축적의 곤란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공황으로 늘 극복한다. 그러나 이 곤란을 낳는,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의 모순 그 자체를 해소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생산력의 증대와 시장의 확대와 함께 이 모순은 심화해 가며, 그것은 이윽고 제어 불능한 공황, 바로 위기를 초래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해석은, 전후 상대적으로 안정된 Fordism적 자본 축적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공황으로 그 유효성을 확증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해석은 난관에 봉착했다.

그 대신에 대두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의 ‘세계 체제론’은, 항상 모순을 외부화하는 제국주의적 수탈 구조를 적확하게 설명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자본 축적의 진행이 필연적으로 고임금을 초래하고, 외부의 상실을 통해 위기를 발생시킨다는 모델에 기초한 한에는, 역시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본론』 체계에는 이 구조 전환을 파악하기 위한 이론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자본론』 체계의 진정한 주제를 이루는 물상화론物象化論인 것이다.

일본에서 物象化(Versachlichung)론 이라고 하면, 현재까지도 히로마쓰 와타루廣松涉(1933~1994년. 철학자. 도쿄대 교수 - 역주)에 의한 현상학적 해석과 고도 성장기의 정신적인 ‘소외’를 강조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물화物化(Verdinglichung)론의 이미지가 뿌리 깊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어 권력의 원천은 뭔가, 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주3)

물상화는 단순히 착취를 은폐하거나, 정신적인 ‘소외’를 낳거나 하는 것만 아니다. 화폐와 자본의 권력 작용을 낳고, 물상(Sache)과 인격(Person)의 관계를 뒤엎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인간들이 일정한 양식으로 행동을 계속하는 바에서 상품, 화폐, 자본과 같은 물상에 부여되는 힘이며,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이미지에 가깝다. 여기서는 인간들은 상품과 화폐 없이는 서로 경제적 관계를 맺을 수 없고(생산 관계의 물상화), 인간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위해, 자본의 이윤을 위해 생산하게 되어(생산 과정의 물상화), 애당초 자본이 이윤을 올릴 수 없으면 생산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살아갈 양식인 고용도 상실된다(재생산 과정=생활 과정의 물상화).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뒤엎어지고, 인간들이 영위하는 생산 관계, 생산 과정, 생활 과정의 총체를 물상 권력이 지배하고, 변용시켜 버린다. 임금 노동자의 형편이 가장 좋은, 자본 축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에서조차, 노동자를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예속하는 자본 권력이 더욱더 증대하는 것에 마르크스가 주의를 촉구한 까닭이다.

이 물상화론의 시각으로 보면, 바야흐로 자본 축적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어 상품 경제가 급속히 확대된 고도 성장기야말로,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을 준비했던 게 된다. 활발한 자본 축적이 과잉된 생산 능력과 시장의 성숙을 초래하고, 고도성장의 조건을 뭉개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생활을 상품 경제로 포섭하고,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내구 소비재와 소비 활동으로서의 레저를 침투시켜, 울리히 브랜드Ulrich Brand와 마르쿠스 위센Markus Wissen이 말하는 바의 “제국적 생활양식”을 정착시킴으로써 자본 권력을 증대한 것이다.

이 생활양식은 Global South(현대 자본주의의 글로벌화에 의해 마이너스 영향을 받는 전 세계의 장소와 사람들. 이 글에서는 주로 남반구에 편재해 있는 개발도상국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역주)를 대상으로 한 노동력의 가혹한 착취와 자원의 수탈, 나아가서는 환경 파괴를 통해 비로소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바로 ‘제국적’인 것인데, 그런데도, Global North(주로 북반구에 편재한 선진국 - 역주)에서 생활하는 많은 인간이 ‘보통’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풍요함’의 기준이 되어 왔다. 이러한 ‘제국적 생활양식’에 대한 욕망의 규범화, 바로 ‘생활양식의 전체주의全體主義’(후지타 쇼조藤田省三)야말로, 가장 강력하게 인간들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옭아매어, 그것에 저항하는 것을 곤란하게 해 온 것이다.

■ 탈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

그리고 증대한 자본 권력 아래에서, 자본주의의 구조 전환을 촉진한 것이 ‘탈산업화’였다.
1960년대 말 이후,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던 조건이 뭉개지자 자본 축적이 정체되어, 케인스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신자유주의’가 대두하고, 자본은 각종 사회 보장의 삭감, 규제 완화, 민영화(사유화), 노동조합에 대한 맹공격 등으로 고임금 체제를 파괴하고, 잉여가치율=착취율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그런데도 자본 축적은 예전 같은 규모와 활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자본은 이미 착취한 잉여가치를 자국에서 산업자본으로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Global South에 투하하든가, 금융 부문 등 비산업적 영역에 투하하여, 미증유의 고수익을 실현했다. 아론 베나나프Aaron Benanav가 지적하듯이 ‘장기 침체’는 ‘탈산업화’를 초래했고, 그것에 의해 노동력 수요가 저하하고, 노동운동은 노동력의 집단 거래라는 교섭력의 원천을 상실하게 되었다. 주4)

결국, 1970년대 이후, 산업자본주의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 축적을 위한 조건이 상실되는 가운데, 자본은 물상화로 강대하게 된 자신의 권력을 배경으로 하면서, 잉여가치의 생산에 기생하는 파생적인 수익 형태를 대두시킴으로써, 새로운 수탈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게다가, 거기에서는, 노동력 상품의 중요성이 대폭 저하하고, 노동조합 운동에 기초를 두었던 좌파의 전략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리하여, 예전의 산업자본의 잉여가치 생산 최대화라는 ‘운동 법칙’은 Global South와 불안정 고용 노동자로 주변화되고, 오히려 비산업적 영역에 대한 투자와 자산 소유를 통한 잉여가치의 수탈이야말로 중핵적인 ‘내적 논리’로서 대두하기에 이르렀다. 토마 피케티가 발견한 “r(자본수익률) > g(경제성장률)”은 바로 이 ‘내적 논리’의 수학적 표현이었다.

이 새로운 ‘내적 논리’는 주로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긴축 정책과 세금의 역진성(소득이 낮을수록 부담이 많고, 소득이 높을수록 부담이 적은 상황 - 역주) 증대, 업무 위탁에 따른 중간 과정 생략 등, 국가를 매개로 한 임금 노동자로부터의 수탈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면에서 시장을 수축시키는 효과를 낳기 때문에, 자본 축적의 활성화를 곤란하게 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두 번째는 상업 자본의 변용이다. 유통 업계 재편에 따른 비용과 시간의 절감과 광고에 의한 수요의 인위적 창출에 그치지 않고, 마케팅에 의한 수요 예측과 유도를 통한 시장 확대, 브랜드화에 의한 사용 가치의 인위적 희소화를 통한 시장 가치의 인상이 추구되었다. ‘장기 침체’에서는 시장 쟁탈을 위한 활동이 한층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어, 산업 그 자체가 이러한 상업 논리에 의해 편성되게 되었다(‘포스트 포디즘’). 하지만, 이것도 상품의 사용 가치와 그것에 대한 욕망의 개입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이 두 가지의 한계를 돌파한 것이 바로 제3의 형태인 자본주의의 금융화다. 산업자본의 발전을 안정시키기 위한 금융 부문의 규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리스크를 창출함으로써, ‘장기 침체’하에서 과잉된 화폐 자본을 금융 부문에 투하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일을 가능케 했다. 이에 따라 주가가 경기 지표가 되어, 산업자본 그 자체가 금융 시장에 종속되어 갔다. 한편, 노동자 계급은, 긴축 정책과 저임금화 속에서 주택자금 대출과 학자금 대출을 부담하게 되어, ‘제국적 생활양식’ 유지를 금융 시장의 자산 가치 상승에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와도 맞물려, 점점 반자본주의적 상상력을 상실해 갔다. 또한 지식인과 활동가 사이에서도 ‘좌익 멜랑콜리’가 지배적으로 되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계속 혼미했다. 주5)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전기가 찾아온다. 2008년 리만 쇼크를 계기로 한 세계 금융 공황이다.

주1)
『Bullshit Jobs: A Theory』,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Rolfe Graeber

주2)
지면 관계로 자세히 논할 수 없지만, 중요한 예외로서, 푸코의 권력론과 통치론, 그리고 들뢰즈의 관리사회론을 계승한 마르크스주의자(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등)의 업적이 있다.

주3)
자세한 마르크스의 물상화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의 물상화론』(2021년, 佐佐木隆治)을 보라.

주4)
『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022. 04. Aaron Benanav

주5)
「Resisting Left Melancholy」. boundary2, 26(3), 1999. Wendy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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