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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의 역사적 문맥과 정치적 논리 ②
NATO ‘동방확대’란 뭔가?
김종익 | 2022-05-18 09:49: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우크라이나 침공의 역사적 문맥과 정치적 논리

한국 언론의 보도와는 다른 문맥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글입니다.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2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시오카와 노무아키鹽川伸明
1948년생. 도쿄 대학 명 예교수.
『다민족 국가 소련의 흥망』 『민족과 nation – 내셔널리즘이라는 難問』 『역사 속의 러시아 혁명과 소련』 등의 저서가 있다.

■ NATO ‘동방확대’란 뭔가?

- 이번 침공에 이른 배경으로, NATO의 동방 확대 움직임이 지적되고 있어요.

시오카와
배경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확인해 둬야 하는 것은, 러시아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공격은 정당화할 여지가 없는 만행이며, 러시아 국내를 포함한 세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강한 비난은 당연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확인한 다음, 겸하여 긴장 격화 배경에 대해 생각하면, 이 점에서는 NATO와 러시아 쌍방에 각자 할 말이 있고, 또 각자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어요. 현재의 전쟁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시작한 이상, 오로지 러시아에 책임이 있지만, 여기에 이르는 배경은 좀 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최근에도 논쟁이 다시 되풀이 되는 논점으로, 1990년 독일 통일 교섭 시에 미국은 NATO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한쪽이 “미국은 NATO 불확대를 약속했었는데, 그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런 약속 따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는 구도의 논쟁입니다.

과열된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까지 쌓아 온 연구자들의 논의를 돌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점이 확인됩니다. 바로, 정식 약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로 말하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암시는 있었어요.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1990년 2월, 고르바초프와 회담했을 때에 말한, “1인치도 동방으로 진출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입니다. 이 발언의 의미를 둘러싸고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며, 논의가 갈라지고 있어요. 어쨌든 그런 애매한 발언이 있었기에, “약속이 있었던 거다”라고 믿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푸틴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 좋은 고르바초프가 애매한 구두 약속을 믿었던 실수를 바탕으로, 이번은 명확한 약속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원래 베이커의 이 발언은 1990년 2월 시점의 발언이며, 고르바초프가 통일 독일의 NATO 귀속을 인정하는 7월까지는, 아직 몇 개의 곡절이 있기에, 2월 시점에서의 의견 교환만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성급했어요.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1989년 말의 몰타 회담에 이른 미․소 교섭 중에도, ‘냉전 종언’을 둘러싼 고르바초프와 부시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어요. 통설에 따르면, 이때 미․소가 공동으로 냉전 종언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몰타에서 냉전 종언을 이야기한 사람은 고르바초프뿐이고, 부시는 냉전 종언을 언급하지 않았어요. 두 사람의 공동 기자 회견에서 고르바초프가 그렇게 말했을 때 부시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마치 고르바초프의 발언을 묵인한 듯한 인상을 낳았고, 그런 점이 “몰타에서 미․소는 공동으로 냉전 종언을 선언했다”라는 통설의 바탕이 되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부시는 고르바초프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사실이, 그 직후에 밝혀졌어요.

고르바초프가 이 시기에 중시한 것은, 냉전이 끝난 후에는 NATO도 바르샤바 조약 기구도 동시에 필요하지 않게 되어, 쌍방의 변용을 통해 새로운 유럽 전체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독일 통일도 바로 이런 유럽 전체 기구를 만드는 과정에 따라 자리매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어요.

여기에 비해, 미국은 어디까지나 NATO를 가장 중요시하며, 통일 독일은 NATO에 귀속하는 이외의 결론은 있을 수 없다는 방침을 끝까지 고수했어요. 이러한 미․소의 입장 차이가 독일 통일 교섭의 핵심이며, 1990년 2월의 베이커 발언도 그런 혼미 가운데 하나였지만, 권력 관계power relationship에 열세인 고르바초프는 결과적으로 부시에 눌리는 모습이 되어요.

소련 해체 후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분기점은, 1999년에 시작되는 수차례에 걸친 NATO의 동방 확대입니다. 이때, 미국의 베테랑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만년에 유언 비슷한 발언으로, 동방 확대는 러시아를 도발하는 위험한 선택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어요. 그러나 이 경고는 클린턴 정권에 의해 무시되었어요.

한편, 러시아의 어떤 리버럴한 논자는, 당시, NATO의 동방 확대로 자신들의 국내 기반은 극도로 협소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러시아 리버럴의 숨통을 끊는 짓이라고 토로했어요. 이 암울한 예감의 실현이, 그 후의 흐름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같은 1999년에는, 코소보 문제를 계기로 NATO의 세르비아 공습이 있었고, 이때 미․러 관계는 극도로 긴장되었어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일이지만, 이때 옐친은 TV에서 “미국은 러시아가 핵 대국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을러대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오늘날, 푸틴이 핵 위협을 하는 것을 전대미문의 일로 믿는 사람이 많은 듯한데, 사실은 옐친이 20년 이상 전에 선례를 만들었던 셈인 거죠.

그리고 이것 또한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2000년에 들어서면 푸틴이라는 새로운 대통령 체제하에서, 미․러 관계는 옐친 말기보다도 긴장 완화로 향하고 있었어요. 푸틴은 대통령 취임 직전의 발언에서, “러시아가 NATO에 가입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또한 2010년 9․11 직후에도, 푸틴은 재빠르게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협력할 태도를 표명했어요. 같은 해 12월에 미국이 ABM(탄도탄 요격 미사일) 제한 조약에서 일방적 탈퇴를 통고했을 때도, 굳이 강하게 항의하는 일은 하지 않고, 대미 협조 노선을 지속했어요. 이처럼 푸틴 정권은, 출발에서는 미․러 협조를 중시했지만, 그 후 미․러 관계는 점차 긴장으로 향해 갔어요.

이런 일들을 돌아보면, 1990년 2월 시점에서 ‘약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다투기보다, 1990년대 말에 미국 정권이 케넌과 같은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했던 것은 왤까, 21세기 초반 시점의 푸틴은 대미 협조 노선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소실된 것은 왤까, 같은 점을 좀 더 논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우크라이나의 NATO 가맹도,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문제화되어 가는 셈이네요.

시오카와
거슬러 올라가면, 우크라이나는 원래 독립 시점의 목표로 ‘중립’을 내걸고 있으며, NATO에도 가입하지 않고, 러시아 중심의 독립국가공동체집단안보체제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어요. 물론 이런저런 정치가들이 NATO 가맹론을 내건 적은 있지만, 그것이 국가적 방침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어요. 커다란 전기가 된 것은, 2019년의 우크라이나 헌법 개정으로, NATO 가맹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헌법에 담긴 것입니다. 이 개헌의 배후 사정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국으로부터 강한 작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오간 흥정의 실태야 어떻든, 좌우간 이것은 정치 세계의 동향이고, 여론과는 달라요.

일반 국민의 여론으로는, 러시아의 강경책에 자극을 받아, 시간과 함께 점차 NATO 가맹 찬성론이 상승 경향을 보인다고는 해도, 비교적 최근까지, “EU에는 가입하고 싶지만, NATO 가맹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라는 것이 대략적인 추세였어요.
그런데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 여론을 단숨에 NATO쪽으로 만들었어요. 얄궂게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맹을 막을 작정인데, 오히려 NATO 쪽으로 결정적으로 몰아가는 꼴이 되었어요.

■ 푸틴의 오산 – 왜 침공은 잘 안 될까?
 
- 러시아의 침공 개시 결단의 합리성도 포함해, 이번 전쟁은 많은 점에서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시오카와
전쟁 직전까지, 중장기적 문맥에서 긴장 격화라는 추세는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불가피하다”라는 정세에 이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러시아의 개전 결단은 그때까지 긴장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비약을 의미하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이런 비약이 있었기 때문에, 그 후의 결과에 관해서도, 몇 가지 예상 밖의 사태가 생겼어요.

첫째, 우크라이나의 응전 능력과 항전 의욕이 예상외로 높게 나타났었어요. 애당초 다양한 내부 갈래를 지닌 우크라이나는, 느슨한 국민 통합은 가능해도, 반석처럼 단단한 단결은 하기 어렵다고 여겨졌어요.

그런데 개전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내분 갈래는 단숨에 묻히고, 마치 강고한 전국민적 단결이 있는 듯한 양상을 드러내기에 이르렀어요. 얄궂게도, 푸틴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단결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확립되지 않았던 ‘Nation’을 확립하게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 러시아의 반전/전쟁 혐오 분위기, 정부 비판 행동의 확산이 밝혀졌어요.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의 어떤 전쟁이든, 개전 직후 시점에서는 거국적으로 일치된 전쟁 지지 분위기가 퍼지며, 소수자만의 반전론은 고립되는 법이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희생의 규모를 느끼게 된 뒤에, 서서히 전쟁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퍼지는 것이 통상의 패턴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어쩐지 처음부터 열광적인 전쟁 지지는 그다지 느낄 수 없고, 일찍부터 전쟁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이런 점은 2월 24일 이후의 전쟁이, 많은 러시아 국민의 예상을 넘었던 것에 유래하는 거지요.

2월 중순 무렵까지만 해도, “서방의 도발”에 반발하는 정서에 기반한 정부 지지 분위기가 상당히 있었던 거죠. 그 후에도 ‘인민공화국’ 승인을 지지하는, 또 한정적 군사 행동은 ‘부득이’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전면 공세가 됨으로써,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라는 생각이 퍼진 게 아닐까요.

러시아군이 상당한 규모의 희생을 내는 것도 거기에 박차를 가했어요. 러시아 정부가 아무리 언론 통제를 강화해도, 러시아 병사의 많은 사체가 돌아오면, 어려워지는 현실은 좋든 싫든 알아차리게 되겠지요.

다만, 러시아의 반전/전쟁 혐오 태도는 한 종류만이 아니며, 거기에는 다양한 요소가 흘러들었다는 사실을 짚고 가야 합니다. 우리에 비교적 쉽게 와 닿은 것은, 지식인들의 격조 높은 호소입니다. 또 시민 집회‧데모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러시아에도 정권과는 다른 태도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렇다고 하지만, 반전/전쟁 혐오 움직임은 그런 것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좀 더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정치적 입장에 대해 말하자면, 본시 정권의 통치 수법에 비판적이었던 리버럴 쪽 사람들만이 아니라, 원래는 정권을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전쟁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부분의 등장이야말로 정권의 안정도를 좌우할지도 몰라요.

한편, 올리가르히oligarch(신흥 재벌 집단)로 불리는 재벌 수장들의 동향이 주목됩니다. 그들은 일면으로 정권과 유착되어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정치권력과 대항하는 일도 있어요. 이제까지 푸틴 정권하에서 정권의 눈 밖에 난 몇 사람의 올리가르히는 해외로 도망했지만, 그 후에도 국내에 머무는 올리가르히는 기본적으로 정권에 가까운 입장입니다.

이번에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시작되었다고 보도되고 있어요. 이것은 인도적인 고려에서 나온 반전론이라는 것이 아니고, 경제 제재가 그들을 직격하기에, “이런 손해나는 짓은 그만둬”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재벌이 정권을 떠받치는 기둥의 하나를 이룬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요.

또한 군 내부에서도 동요가 시작될 가능성이 나돌고 있어요. 이른 시기에 선풍을 일으킨 것은, 퇴역 장교 이바소프Ivashov가, 1월 말에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겁니다. 이것은 애국주의적 입장에서의 전쟁 비판이며, 이른바 리버럴한 입장의 비판은 아닙니다. 이것을 바로 군 전체의 동향으로 보는 것은 성급하겠지만, ‘조기 승리’라는 전망을 벗어나 곤경에 처한다면, 군사적 현실주의에서의 비판이 늘어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FSB(러시아연방보안청) 내부에서도 불온한 동향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고요. 그 진위는 판정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신경이 쓰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나아가 러시아공산당의 국회의원 내부에서도 반전론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러시아공산당이 ‘인민공화국’ 승인의 주도권을 쥔 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모양입니다. 일본에서는, 러시아공산당은 야당이 아니라 오히려 여당이라는 해설이 성행했지만, 때로 정권과 야합하는 어중간한 야당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일본에도 마찬가지 ‘야당’이 있지요. 그들은 철저한 반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이제까지는 정부를 지원해 왔지만, 그런 부분에서도 동요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권의 안정도를 점치는 데는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요.

이렇게 보면, 푸틴은 커다란 오산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우크라이나의 반응도, 자국 내에서의 반응도, 모두 예상을 크게 웃도는 상황이지요.

■ 해방된 폭력의 행방

- 그러한 러시아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어떠한 전개가 있을 수 있을까요?

시오카와
먼저 우크라이나에서는, 개전 후 새로운 동향으로, 3월 8일 우크라이나 여당인 ‘시민의 종’이 꼭 NATO 가맹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표명하고, 정권 자신도 러시아와 교섭에서 ‘중립’이라는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표명을 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그간의 단기적 문맥으로 말하자면 ‘중립화’는 러시아 쪽의 요구이며, 그것을 수용한 것은 우크라이나의 커다란 양보인 셈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돌이켜 말하자면, 독립 후 오랫동안 ‘중립’이 기본 방침이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2019년 헌법 개정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데 불과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간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이상, 단순히 원래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중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해도, 그것은 어떤 중립인가, 관계하는 국가들이 ‘중립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까가 문제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관계국 간에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정전 교섭의 또 하나 초점은, 크리미아 및 돈바스 두 주의 지위입니다. 이 점에서도 추상적으로 말하면, 타협적 결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고도의 자치’와 같은 방식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어떻게 보증할까에 이르면, 이 또한 매우 곤란하지요.

러시아에 대해서는, 앞으로, 전쟁 반대 움직임이 어느 정도 고조될까, 정권을 흔드는 데까지 이를까 말까는, 당장에는 판단할 수 없어요. 굳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정권이 반전 움직임을 억누르며, 고자세로 전쟁을 계속하는 시나리오가 어두운 쪽이고요. 아쉽지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을까 해요.

한편, 전황 악화를 본 정권이, 반전/전쟁 혐오 분위기의 고조를 고려해, 태도를 유연하게 바꿔, 타협적 정전으로 향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어요. 타협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것은 덮어놓고 환영할 수만은 없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나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말한 것은 푸틴 정권 자신이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인 데요, 그것과는 별도로, 일종의 쿠데타로 푸틴 정권이 넘어지고, 다음 정권이 정전, 그리고 나아가 평화로 향한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쿠데타의 중심이 되는 것은, 리버럴 지식인이 아니고,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해 온 사람들이, 애국주의와 군사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푸틴을 배제한다는 것이며, 그 후계 정권이 자유와 민주주의로 향한다는 보증은 전혀 없어요. 그렇기는커녕, 일단 해방된 대량 폭력이, 정권이 바뀌든 아니든 관계없이, 각지에서 자기 증식을 해 간다는 어두운 전망도 배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들 가운데에서 두 번째 것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할 수 있고, 그것도 덮어놓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어두운 시나리오도 있다고 치면, 별로 좋지 않을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을 기운을 돋우기는커녕 점점 침울하게 만드는 듯한 생각이 들어, 기가 죽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어두운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끝>
(『世界』, 202205월호에서)
 
홀로도모르는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련의 자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으로 250만명에서 350만명 사이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말미암은 치사”라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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