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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바이든의 선택
뉴스프로 | 2021-05-28 09:22: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NYT,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바이든의 선택
– 대유행이 세계 민주주의 후퇴 시켜, 정체성에 혼란
– 다수로 선출된 신독재, 반민주주의가 민주주의 행세
– 바이든, 인도 터키 진정한 민주주의로 견인해야

이반 크라스테브는 5월12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 Biden Can’t Decide What Counts as a ‘Democracy’ (바이든은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라는 기고문에서 바이든은 궁지에 몰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려 한다고 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여러 국가들의 민주주의 연합을 구상한다는 계획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앞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미국이 민주주의를 독점해 뭔가를 새롭게 정의하겠다는 계획은 포기하라고 말한다. 너무 제한적이고 미국을 위선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반은 스웨덴의 뷔 뎀 연구소의 ‘전 세계 2020년 민주주의 수준이 1990년 말 정도로 전락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인도, 터키의 예를 들어 새로운 독재의 탄생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이 새로운 독재는 냉전시대의 군부정권과도 다르게,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이반은 말한다.

그는, 이와 같이 오늘날의 비민주국가는 상당수가 예전에는 민주국가였다면서, 이들이 비민주국가가 된 이유는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자신들만을 위해 작동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독재적이고 인기 영합주의자들에게 투표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면서, 인도는 현재 방역에 무참히 실패했지만 바로 직전 모디 국무총리의 신임도는 미국이나 유럽 국민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았고 말하고 있다.

또, 이러한 새로운 독재주의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하는 진짜 민주주의인 양 행세한다고 말하고 신독재주의자들이 민주주의적 자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미국인과 프랑스인의 대다수는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반은 그 이유가 지난 일 년 동안의 봉쇄 정책 및 그에 관한 제한이 원인임을 제시하면서 사회가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뒤덮인 상태에서 민주적 통치에 대한 인식에 혼란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유행과 싸우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구별이 흐려졌으며 각 국가의 정체가 대유행에 얼마나 잘 대응할지 또는 그 반대일지를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민주주의 국가 뿐만 아니라 중국 같은 독재 국가도 대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말하면서, 어떤 정권의 유형이 시민의 자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할지, 어떤 경제정책을 채택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언급한다. 그는, 정치철학자 데이비드 런치만의 말을 빌어 “봉쇄 조치 하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정치 체제와의 공통점을 보여주는데, 정치는 결국 권력과 질서” 라고 간단히 말한다.

또,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의 모호한 경계가 국제 정치 측면에서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면서, 바이든이 프리덤 하우스(루스벨트의 후원 하에 설립, 전 세계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시장 및 국제 언론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비영리 인권단체_편집자 주)나 뷔 뎀의 연구 결과를 따른다면 인도 같은 나라는 민주주의 동맹에 낄 수 없을 것이며, 바이든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충실하다면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바이든 정부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제안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나 터키 같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로 행세하는 것을 눈감아 주든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면서도 세계의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역할을 따로 맡든지 하라는 것이다. 이반은 후자를 택할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민주적 정부의 국제적 정당성은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언급하고 있다.(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nyti.ms/3ycoTxQ

Biden Can’t Decide What Counts as a ‘Democracy’

바이든은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May 12, 2021

By Ivan Krastev

Mr. Krastev is a contributing Opinion writer who focuses on international politics.

이반 크라스테브는 국제 정치에 주안점을 둔 사설 기고가이다.

Democracy is on the ropes, and President Biden says he wants to fight back. He plans to call a summit of democracies and to mobilize a broad coalition of democratic governments to contain the rise of authoritarian powers like China and Russia. That appears eminently sensible. It also resonates with the progressive moment in the United States, as many Americans are determined to repair their democracy, making it fairer and more inclusive.

민주주의가 궁지에 몰린 상태이며,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고 말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독재 정권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담 개최와 민주주의 정부 간의 광범위한 연합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마침 많은 미국인들이 더 공정하고 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바로잡기로 다짐함에 따라 점진적인 시기와도 반향을 일으켰다.

But there’s a snag: To succeed in building a democratic coalition against the authoritarians, the United States will need to jettison its monopoly on defining who counts as “democratic.” If it doesn’t, it will end up with either a coalition that is too limited to serve America’s strategic interests or a coalition making Washington look indefensibly hypocritical.

하지만 문제가 있다: 독재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연합 구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홀로 독점해서 누가 “민주주의”인지 정의하는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이 행보는 너무 제한적이라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기여할 수 없는 연합이 되거나 미국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위선적인 국가로 보이게 만드는 연합이 되어버릴 수 있다.

In a report published in March, the Swedish research organization V Dem posits that “the level of democracy enjoyed by the average global citizen in 2020 is down to the levels last found around 1990.” In V Dem’s judgment, the elected autocracy — a political regime in which democracy is reduced to the unconstrained power of a majority — is today’s most common regime type. India, Turkey and Hungary are exemplars. These new authoritarians are very different from their Cold War-era relatives, which were often military regimes. They cross the borders between democracy and authoritarianism almost as frequently as smugglers cross state borders.

3월 출간된 보고서에서, 스웨덴의 연구기관인 비 뎀(V Dem,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은 “2020년 일반적인 전세계 시민이 누렸던 민주주의 수준이 1990년 경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던 수준으로 하락했다”라고 상정한다. 브이뎀의 판단에 따르면, 선출된 독재 정권이 — 민주주의가 다수의 제약 없는 권력으로 격하된 정치 체제 — 오늘날 가장 흔한 유형이다. 인도, 터키 및 헝가리가 그 예이다. 이러한 새로운 독재자들은 종종 군부 정권도 있었던 냉전시대의 독재자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들은 밀수업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만큼이나 빈번하게 민주주의와 독재주의의 경계를 넘나든다.

Many of today’s new non-democracies are in fact former democracies. And in many of these countries, citizens voted for authoritarian populists specifically in the hope of making democracy work for them. The government’s supporters in electoral autocracies like India and Hungary or electoral democracies like Poland, countries that organizations like V Dem and its American counterpart Freedom House countenance as democratic backsliders, will insist that they live in democracies. As of January, the percentage of Indians who trusted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was far higher than the number of Americans or Europeans who trusted their leaders. (To be fair, Mr. Modi’s popularity has taken a serious hit over the past month as Covid-19 has raged across India in large part because of what many describe as the starkest failure of governance since the country’s independence.)

오늘날 신규 비 민주국가들의 상당수는 사실은 예전에는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이들 국가 중 상당수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특히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희망으로 독재적인 인기 영합주의자들에게 투표했다. 인도나 헝가리 같은 선거 독재국가들, 폴란드 같은 선거 민주국가들, 비 뎀이나 이와 비슷한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 같은 기관이 민주주의가 퇴보한 것으로 보는 국가들의 정부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1월 현재 기준, 인도의 나란드라 모디 국무총리를 신뢰하는 국민의 비율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신뢰하는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의 수치 보다 훨씬 더 높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묘사했듯 인도 독립 이후 가장 명백한 통치 실패로 인해 코로나19가 인도에서 광범위하게 맹위를 떨침에 따라 모디 총리의 인기는 지난 한 달간 심한 타격을 입었다.)

The new authoritarianism fashions itself not as an alternative to democracy but as a real democracy, one in which a majority governs. The concept of “backsliding” that is so frequently used in the State Department has blinded many in the American government to the fact that a simple Cold War continuum with democracy on one end and authoritarianism on the other no longer suffices. “Backsliding,” a concept introduced by missionaries to explain how recently converted Christians “slid back” into their pre-Christian habits, confuses rather than clarifies because for missionaries, backsliders were worse than infidels.

새로운 독재주의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하는 진짜 민주주의인 양 행세한다. 국무부에서 빈번하게 사용된 “퇴보”라는 개념은 미국 정부 내 수많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려서 한 쪽에는 민주주의, 다른 쪽에는 독재주의를 둔 단순한 냉전의 연속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퇴보”는 선교사들이 어떻게 최근 개종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전 습성으로 “퇴보”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개념이며, 선교사들에게는 퇴보가 신앙심이 없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쁘기 때문에 이 개념은 명확하게 하기 보다는 헷갈리게 만든다.

The world’s liberal democracies have lost their monopoly to define what democracy is, not simply because the new authoritarians claim democratic credentials (they have won free if not always fair elections), but also because — as a recent study conducted by Pew Research demonstrated — a vast majority of Americans and French are deeply disappointed with their own political system. Some are unconvinced they even still live in a democracy. This is true for many other European countries, as well.

신 독재주의자들이 민주주의적 자격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항상 공정한 선거는 아니었더라도 자유 선거에서 당선되긴 했다), 퓨 리서치가 실시한 최근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인과 프랑스인 대다수가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할 독점권을 상실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기타 많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What has happened? I suspect that part of it is a year of lockdown and related restrictions. The perception of what constitutes democratic governance has been scrambled as societies have been infected with fear and uncertainty. The past year of battling the pandemic in many places has made democracies and authoritarian regimes less distinguishable than they used to be. One can no longer glean from a county’s regime type how well (or how poorly) it will respond to the pandemic. It is democracies like South Korea and New Zealand but also autocracies like China that have handled it successfully. Regime type also won’t predict what restrictions on citizen freedoms or what kind of economic policies a government will adopt. In the words of the political philosopher David Runciman, “Under a lockdown, democracies reveal what they have in common with other political regimes: here too politics is ultimately about power and order.”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지난 일 년 동안의 봉쇄 및 봉쇄 관련 제한이 그 이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뒤덮히며 민주적 통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해 대유행과 싸우는 많은 곳들에서 민주주의 국가들과 독재 정권들에 대한 구별은 예전보다 흐려졌다. 한 국가의 정권이 대유행병에 얼마나 잘 대응할 것인가(또는 얼마나 형편없을 것인가)를 더 이상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민주주의 국가 뿐 아니라 중국과 같은 독재 국가도 대우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 또한 어떤 정권 유형이 시민의 자유에 대해 어떤 제한을 가할지 혹은 정부가 어떤 종류의 경제 정책을 채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철학자인 데이비드 런치만은 “봉쇄 조치 하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정치 체제와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여기서 역시 정치는 궁극적으로 권력과 질서이다”라고 말했다.

The blurring of the border between democracies and non-democracies has far-reaching consequences when it comes to international politics. If the Biden administration is to be guided by the ratings of a Freedom House or V Dem, countries like India have no place in its alliance. Yet if it is guided by America’s strategic interests, India is of paramount importance for any Western attempt to contain China’s influence in Asia.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국제 정치 측면에서 방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바이든 정권이 프리덤하우스나 비 뎀의 연구결과를 따른다면 인도 같은 나라는 동맹에 낄 자리가 없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따른다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서방 국가의 어떤 시도에서도 인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So, Washington has a choice. It should either hypocritically pretend that for the purpose of containing China, countries like India and Turkey are democracies or rhetorically decouple its efforts to contain China and Russia from its efforts to revive global democracy. I suggest the Biden administration take the second road. In our social-media-saturated world, hypocrisy is the ultimate vice. And while the legitimacy of democratic activists comes from speaking truth to power, the international legitimacy of democratic governments comes from speaking truth about power.

이제 바이든 정부는 선택할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나 터키같은 국가들이 마치 민주주의 국가인 양 위선을 무릅쓰고 눈감아주든지, 아니면 수사학적으로나마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세계 민주주의를 소생시키려는 노력을 따로 분리시키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바이든 행정부가 두 번째 길을 택할 것을 제안한다. 소셜 미디어로 포화된 세계에서 위선은 궁극적 악이다. 민주적 활동가의 정당성은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데서 나오지만, 민주적 정부의 국제적 정당성은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데서 나온다.

Ivan Krastev is a contributing Opinion writer, the chairman of the Center for Liberal Strategies, a permanent fellow at the Institute for Human Sciences in Vienna and the author, most recently, of “Is It Tomorrow Yet?: Paradoxes of the Pandemic.”

이반 크라스테브는 오피니언 기고 작가이자 자유주의 전략 센터의 회장이며 비엔나에 있는 인간과학연구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가장 최근 저작으로 “내일은 아직인가? 대유행의 역설”이 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table=c_sangchu&uid=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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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불초자  2021년6월2일 13시34분    
주제에서 벗어난 글을 올려 뉴스프로 가족 여러분께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대로 끝난다면 대한민국은 소생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붓을 들게 만들었군요.
우리가 정민 군 사건에 분개하는 것은,
그 안에서 제2의 세월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든 분들이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경찰은 성찰해야 한다!
경찰의 불공정함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는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목격자의 진술을 왜곡해 전혀 다른 것으로 수사결과라며 발표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까치발 사진을 찍은 목격자는 정민 군 부친과 경찰, 양측에 동시에 사진을 제보했고, 그 사진을 찍은 경위 역시 설명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분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 자신의 진술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을 알고, 왜 경찰이 그런 발표를 했는지 분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기사 내용을 올린다.
왜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정민 군 부친이 경찰과 각을 세웠는지 여러분도 이제 보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이면 어느 누구도 경찰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언론 역시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이런 사실이 금방 드러날 텐데도 경찰의 내용을 받아, 우리 안방에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빴다.

https://news.v.daum.net/v/20210530103627396
(주머니 뒤척인 것이 깨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요? 그건 전혀 깨우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냥 차라리 저랑 한 대화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ㅠㅠ )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경찰은 실족사에 무게를 두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론을 미리 지어놓으면, 아무리 잘된 수사라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진실에서 그만큼 멀어질 위험이 도사리게 된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은 타살의 정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인과는 관련이 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되고 있을 뿐이다.
단 한번의 가격으로도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급소가, 경동맥이 지나는 목 부위에 노출돼있다는 것을 우리는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에서 다시한번 확인한 바 있다. 정민 군의 혈액이 이곳에서 흘러나왔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왜 우리 경찰이 이래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신이 물살에 휩쓸려다니는 상황에서, 시신을 건져올리는 과정에서 이런 상처가 났을 수 있다는 발표가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뺨 근육 파열도 마찬가지다. A군이 정민 군을 깨우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근육이 파열될 정도라면 살인미수에 가깝다. 이것을 전문수사기관이라고 하는 경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는 것이 정말 그들이 수사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지 묻게 된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모든 것을 모른다는 A군에 대해 경찰은 과분할 정도의 태도를 취한다. A군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가 취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정황들이 더 많이 포착된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경찰 발표보다도 CCTV에 집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경찰의 기본은 의심나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취조한다는 것에 있어야 한다. A군 한 사람만을 놓고 사건을 구성하니 결론은 무혐의로 끝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누가 사람이 들락거리는 장소에서 대범한 행동을 하겠는가!
허나 <조력자>라는 또다른 변수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강력한 변수가 있음에도 경찰은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넣으면 이 사건은 다른 차원으로 전개가 된다.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A군의 그날의 복장과 동선은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더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 경찰이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하기가 어렵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놓치고 있다는 것은, '검찰의 경찰 죽이기'라는 음모론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는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드는 것을 방어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였다.
SBS는 그런 상황이라면 프로파일러들이 아닌 알콜 전문가들을 섭외해 정말 그런지 여기에 대한 실험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공정>이고 <객관>이고 <공영>이다. 섭외가 편파적이라는 반증이다.
사인을 실족사로 고정하고, <조력자>라는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변수는 외면한 채, 공정한 척 했다. 방송이 비난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차단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런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강 의대생 실종사건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점이 많은 사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상적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정의로움에 조금이라도 눈뜬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다.
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인을 실족으로 인한 익사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의 구성을 짜고, 인원을 섭외하였다는 인상을 방송 내내 주었다.
보통, 평범한 서민들이 진솔한 얼굴모습을 하고 등장해, 평상시 같이 대화하듯 인터뷰를 하고, 그런 인물들이 프로그램 내내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전문가들의 소견들을 효과음과 조명 등의 편집된 영상과 함께 내보내면 사람들은 대개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방송언론의 심각성은, 그런 극적 연출을 여러 양식으로 극대화하여, 자신들이 이미 결론을 낸 방향으로 자원을 소집하고 시청자들을 통제한다는 데 있다. 생각할 기회를 주는 듯 싶지만, 방송을 보는 내내 생각은 차단당하고, 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계몽인간이 된다.
이런 연출을 보았기에, 앞으로 더 많은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들이 같은 방향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 만일 효과음, 배경음악, 조명, 화면 구성 등 모든 조작된 연출을 빼버리고, 현장 위주의 방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들은 대번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 분위기를 타고 반론을 제기하는 프로파일러들도 다수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이 대중에게 가하는 착시현상이고, 집단광기를 유발하는 무서움이며, 어떤 권력도 갖지 못한 언론의 파괴적 힘이다. 이 착시현상으로 언론은 무수히 우리 인류를 파괴해왔다.

(북한의 핵 폐기는 말하면서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인 '세상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상의 비핵화가 제 궤도에 오르면 혈육인 북한도 핵을 가질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는 진리를 외면함으로써, 핵독점으로 인한 더 위험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민 군 아버지 편에서 싸우는 전문가, 목격자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날 초대받지 못했다.
그날 방송은 의도적으로 시위대와 추모객들 가운데서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들 위주로 인터뷰를 진행해 마치 태극기 부대의 광기를 보는 듯한 상황을 연출했다.
방송의 끝무렵에는 프로파일러를 다시 등장시켜 유튜버들을 공격한다. 악의적인 프로그램 구성이었다. 격노를 그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누리꾼 수사대가 파헤치는 것에 기분이 상해 있었다.
금전의 이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유튜버들도 분명 있다. 허나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서도 이 점을 계속 놓쳐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한 곳에만 집착해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했다. 수상택시 승강장에서의 실험은 예상한 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즉 사람들이 가장 의구심을 품는 장소는 여기다!
이 수상택시 승강장은 일부 언론이 이 장소를 실족의 유력한 지점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이었고, 마침내 이 부근에서 우리는 정민 군의 시신을 강물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양말에 벌흙을 묻히고 던지면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므로 대범하게 행동할 수는 없지만, CCTV의 사각지대이기도 하다는 맹점이 있다. 한번쯤 주의깊게 조사해봐야할 곳 중 하나였다.
허나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섭외가 공정했다면, 이를 지적하는 프로파일러들이 있었을 것이다.

범죄심리학자라면 이 사건에는 조력자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도 추리해봤어야 했다.
이 사건이 실족사로 자꾸 좁혀지는 것도, 이 <조력자>라는 변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설마 있었겠느냐는 것이 우리 모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유독 이 사건에서만은 그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공정수사를 기치로 내거는 경찰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미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조력자>가 유행처럼 번져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경찰과 프로파일러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행해가야 한다.
조력자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A군의 복장과 동선이 그만큼 자유로워지면서 그가 머물렀던 시간대와 장소는 무의미하게 된다. A군보다는 그날 그 주변을 아무 이유없이 서성이던 사람들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비로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진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수사 영역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겼던 실족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차례의 긁힘도 없이 말끔히 통과하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의 해명도 가능하다. 조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의지가 있다면, 그날 그 시간대, 동선이 미심쩍은 사람들을 조사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다루어야 할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보이는 실족으로 인한 익사(만취한 사람이 경사진 뾰족한 돌밭을 단 한번의 넘어짐도 없이 무사히 통과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오!)가 아니라 그 이전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목 뒤의 자상과 뺨 근육의 파열이 된다. 그것은 타살의 정황이 의심되는, 급소와 무관하지 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자상과 파열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누구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모른다. 사인과는 상관없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만 얘기가 될 뿐이다.
그날 방송에서 깊이 패인 자상과 뺨이 파열될 정도의 충격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은 없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민 군 아버지쪽 사람들이었다면 이 점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여기에 수사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맹점을 파고드는 것이 소위 프로파일러들의 역할이다. 하나의 결론을 상정하고, 여기에 따라 논지를 정리해 나가는 것은, 전문가답지 않은 태도이다.
범죄행위는 상식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완전범죄를 꿈꾸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 시청자들은 반론도 듣기를 원했지만, 이런 일반의 범주를 뛰어넘는 가능성에 방송이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 못했음이 방송이 지탄받는 첫번째 이유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놓고, 모든 것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조력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이어서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얘기가 될 것이다.>>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객관적이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는 점에 집착하고, 방송은 여기에 맞춰 현장실험을 하는 데 그 황금 시간대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것이 알고싶다]는 종영될 때까지 민중사회의 말할 권리와 의미있는 결집을 원천봉쇄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익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더 본질적이고 중대한 탐색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민중사회가 바라는 것도, 익사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임에도 공영방송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익사보다는 정민 군 목 뒤에 나 있는 깊은 자상과 뺨 파열에 대해 더 집중적인 탐색이 있을 줄 알았다. 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숙이 찔린 것 같은 손가락 두 마디 깊이의 자상과, 뺨 파열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SBS는 다시는 전문가 섭외에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 정민 군 부모님 편에 서서 싸우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들의 말도 들어봐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민중사회를 한 편의 감동의 드라마로 잠재울 수 있다고 보았다면 크게 오판한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명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경찰의 수사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것은, A군과 그 가족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뭔가를 강하게 밀어버리는 듯한 장면, 취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 통화, 걸음걸이, 일반적이지 않은 반바지 복장 등, 그가 심야 시간대에 벌인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조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들 역시 이를 두둔하며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정상행동이 가능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고 있다. 필름이 끊어진 상태에서의 비정상의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가 없는 그들이 신기할 정도다. 그날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들의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알콜 전문가들을 따로 불러 정말 그런지 공개실험을 했어야 했다. 편파의 전형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 인간사에는 두 가지 이상의 측면이 맥동하며 흘러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바로바로 캐내고, 분석하는 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익사가 중요한 만큼, 익사 이전의 폭력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

왜 A군이 그 추운 새벽까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지(밤새도록 술을 마실 작정이었다면 긴바지 하나 정도는 챙겨야 했고, 긴 점퍼에 반바지는 사실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이를 추궁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없었다. 물에 들어가도 쉽게 젖지 않는 유일한 복장임에도 이를 놓쳤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실족사에 집착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A군이 계속 만취를 주장하며 모른다고 하기에 우리는 그날 그 시간대에 있던 모든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2차 가해라고 한다면, A군은 먼저 자신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승강장 근처에서 뭔가를 강하게 미는 듯한 장면, 편의점에서의 4인의 수상한 행적 등 많은 평범하지 않은 단서들을 찾았고, 어느 정도 수확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유튜버들의 광기라고 몰아가는 언론과 프로파일러들은 각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관찰해 본바로, 정의에 목말라하는 유튜버들이 더 많았다.

<<바로 앞서도 말했지만, 놀랄만한 단서가 하나 나왔다.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도 있는 중대한 단서였다. 역시 이 수확물은 제도권 언론이 아닌, 유튜버들의 광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A군과 그 가족이 이번 일과 무관하다 해도, 그들은 비난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에서조차도 정민 군과 그 부모에게 계속 범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범부였지만 인간이 된 이후 인간으로 계속 살아온 참<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세 유형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에 목마른 인간 유형(소위 빨갱이),
처음부터 생각이라는 것에 둔감하여 농락당하기 쉬운 보수 유형,
처음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진보 유형!
물론 세상에 보수와 진보는 없다! 인간(빨갱이)과 비인간이 존재할 뿐, 보수와 진보는 저들이 만든 인간통제의 틀일 뿐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초반에 있었지만, 늘 그렇듯 양쪽의 타협이 여기서도 역시 재현되었다. '인간유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인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광기어린 집단으로 낙익찍혀 가고 있었다. 끝까지 생각의 끈을 놓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구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보수와 진보만이 남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A라는 가족집단이 순간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A군과 가족들은 분명 지구의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허나 우리는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반격이 시작되었다. 모든 CCTV를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집과 반포대교의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

그들이 결백하다면 이것 한가지만 해 주면 된다.
A군네는 집과 주변의 CCTV를 공개하고, 경찰은 반포대교의 모든 CCTV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면 된다. 단 한번의 진실된 행동을 외면한 채 무수한 해명만을 남발하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태도이다.
보수나 진보의 통제 가능한 탈을 벗어던진 우리 정예의 '휴먼<사람>'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종들이 아니다. 언론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장악하는 세상이지만,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이 길항의 조화야말로로 인류가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진화를 거침없이 수행하고, 그것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에 힘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하고 의미깊은 무력이다! 우리는 이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수사기밀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미 선을 넘은 상태다. 공개해서 이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것이, 기밀을 유지해 혼란을 가중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옳은 결단이다.
이것을 못하겠다면, 민중사회는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한 청년의 죽음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이미 우리 사회에 타전하고 있다.
이 싸움이 불의에 맞선 응징의 성격이 되지 않기를 우리 민중사회는 호소한다.
떳떳하다면 CCTV를 공개하라, 우리의 요구는 그것뿐이다.
언론도 나서주기를 바란다. 공권력은 그 구조와 성격상 공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굳어버린 조직이다. 허나 언론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 SBS는 다시 [그것이 알고싶다]를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해 안방에 송출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공영'의 참뜻이다!

이 사건은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상적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왜곡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찰과 A군 가족측의 태도이다.
결백하다면, 모든 것을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한사코 몸을 사리며, 마치 독사가 또아리를 틀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A군 가족은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 왜 이런 소란스러움이 이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공개하지 않으니, 살인자, 조력자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공개하면 우리도 이럴 이유가 없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A군이 구토하는 CCTV장면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유리한 것은 바로바로 이런 식으로 공개가 되면서, 불리한 것은 독사가 되어 공격형으로 돌변한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그것은 다른 차원이 된다. 유독 A군과 가족의 모습에서 그것이 계속 보인다.

<<이어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앞서 말한 조력자와도 관련있는 얘기이다.>>

인내롭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청년의 죽음의 의미를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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