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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평전 16, 2부 대한민국 ‘경찰 영웅’이 되다
안호재 | 2021-07-15 08:32:2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 대한민국 경찰영웅 제1호

2006년 국가는 고 안병하 국장을 공무를 수행하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었고, 합동수사본부의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고 판정하여 순직으로 인정했다. ‘공직자의 양심적 저항권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미흡하나마 순직이 인정됨으로써 경찰로서의 명예가 회복됐다. 유족의 지루하고도 치열한 노력의 결과였다. 하지만 국가 기관을 상대로 명예회복을 이뤄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국가의 민 낯을 보게 됐다.

아직도 1980년 5∙18 직후 신군부에 의해 안병하와 함께 직장에서 쫓겨난 전남경찰관들 중 누구도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안병하 국장의 명예회복에 힘입어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만 유족들이 나서서 재심 등 명예회복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215 그때 강제해직된 다른 경찰관들은 명예회복에 대하여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경찰국장의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났던 전남경찰관들은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광주시민과 공직자의 명예를 지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가는 40년 동안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216

반면 1980년 신군부에 붙어 자신의 안위만 챙기고 영달을 누렸던 당시 경찰 수뇌부는 누구 하나 처벌  받지 않았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 안병하의 진실에 대한 2권의 『경찰보고서』

늦게나마 경찰청은 안병하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적에 대해 주목했다. 2005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자세하게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안병하 전 전남국장, 5∙18 관련 순직 진상보고』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 편, 전남지방경찰청 엮음, 2005. 9.),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수집 및 활동조사 TF, 2017. 10.) 등 2권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두 권의 보고서에는 1980년 5∙18 당시 안병하 도경국장의 행적은 물론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찰 관계자들과 피해당사자인 광주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기에 증언한 수십 명의 당시 전남지역 경찰관들은 물론 5∙18 관련 피해자자들까지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안병하에 대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 두 권의 보고서는 우리나라 경찰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는 중요한 기초사료다.

아쉬운 점은 이 보고서에서도 지적하듯 5∙18 당시 경찰 자료의 부실 문제다. ‘경찰역사편찬 업무규칙’에 따르면 경찰기관은 경찰사 편찬 자료가 될 주요사항을 빠짐없이 충실히 치안일지에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문서집중관리소에 영구히 보존하도록 되어 있다. *217 그러나 5∙18 당시 전남경찰국은 물론 경찰서의 치안일지나 상황일지 내용은 매우 부실하고, 심지어 상당부분이 조작돼 있다. 당시 경찰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5∙18이 끝나고 국보위 조사를 받는 등 복잡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경찰에 불리하거나 민감한 사안들은 빼 버린 것”, 혹은 “보안사 등에서 예민하게 지켜보아 무기 피탈과정 등 일부가 삭제되거나(실제와 다른 사실들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218 이와 같은 원본 공문서의 변조나 폐기는 불법이다. 경찰뿐 아니라 군 문서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자주 발견된다. 5∙18 왜곡을 주도했던 보안사령부, 혹은 511위원회와의 연관성이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219 특정 정치권력과는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2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 하에서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경찰 조직의 속성 상 정권으로부터 중립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안병하 비망록」은 부당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이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찰을 이용하려 할 때 책임 있는 경찰지휘관이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17 경찰청 훈령 제506호, 2009. 7. 31.
*218 『전남경찰의 역할』, 82쪽, 2017.
*219 경찰법 제3조(국가경찰의 임무) ①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
*220 헌법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 명예회복이 늦어진 이유

5∙18이 역사적인 평가를 거쳐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안병하는 한동안 역사의 뒷전에 묻혀 있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안병하에 대하여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첫째, 신군부 잔존세력의 지속적인 5∙18 왜곡 속에서 안병하는 ‘직무유기를 한 경찰지휘관’으로 폄훼되어 왔다.

둘째, 5∙18 이후 치열하고 지난한 민주화과정에서 경찰은 과거 군부독재시절과 별다른 차이 없이 정권 수호의 파수꾼 노릇을 했고, 경찰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태에 대하여 국민들의 불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 경찰 수뇌부는 정권의 눈치를 보며 5∙18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안병하 국장과 그의 가족들을 외면했다. 6월항쟁을 불러왔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정치사찰 등 해서는 안 될 인권침해 사건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정권의 이해에 따라 경찰력 집행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흐름이 지속됐던 것이다.

셋째, 광주시민들 역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안병하 국장의 역할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 5∙18 분열공작에 경찰이 앞장섰고, 이 과정에서 5∙18 기간 중 형성됐던 광주시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2017년 ‘촛불혁명’의 성공으로 정치상황이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당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민주정부가 성립되면서 5∙18 당시 안병하 국장과 4명의 순직 경찰관에 대한 행적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족과 안병하를 추모하는 시민단체 ‘SNS시민동맹’으로부터 시작됐다. *221 이후 경찰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무궁화클럽’(공동대표 김장석), ‘안병하를 사랑하는 사람들’(차명숙), ‘안병하기념사업회’(이사장 이용빈) 등이 함께 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 참석하여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으로,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임을 천명했다. ‘안병하 국장’에 대한 언론의 재조명도 활발해졌다. 5∙18 당시 시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권력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위민정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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