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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세월호 인양 막았을까? 그 정황들
연기 또 연기 이러던 해수부 돌연 태도 바꿔
육근성 | 2017-03-24 17:34: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결정한 시점은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나 지나서였다. 이토록 결정이 늦어진 이유는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노골적인 반대와 청와대의 부정적 태도 때문이었다.


연기 또 연기… 말뿐이었던 ‘선체인양’

인양을 요구하던 유족들은 박근혜 정부 측의 악의적인 공작에 의해 파렴치한으로 내몰렸다. 어버이연합 등 극우단체들은 ‘세월호 유족은 6억 원을 받는데, 천안함 유공자 유족은 3,000만 원만 받았다’는 악성 루머를 퍼뜨리며 도심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시위를 사주한 세력이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었다는 게 특검의 조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세월호는 단지 교통사고일 뿐’ ‘아이들이 죽으면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 법’ ‘배를 건지는데 엄청난 혈세를 쓸 필요가 있나’ ‘세월호 얘기에 국민들이 진절머리 낸다’… 친박근혜 진영은 이런 얘기로 세월호 인양을 막으려 했고, 유족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2015년 4월 22일,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공식화한다.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내놓은 발표였다. 이런 정부가 인양을 서두를 리 있겠나.

정부는 인양 발표 후 4개월 만에 인양업체를 선정했다.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관련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업체이어서 선정 당시에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업체가 내놓은 인양방식은 배 아래에 리프팅 빔을 넣은 후 부력제로 배를 들어 올려 플로팅 독에 싣는 방식이었다.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렇게 쉬운데 왜 2년 동안 실패만

상하이샐비지의 시도는 실패였다. 그러자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인양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나섰다. 유족들도 인양 작업을 멀리서라도 참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요구는 모두 묵살됐다. 게다가 정부는 특조위 기간 연장 요구를 거부하면서 사무실을 강제로 폐쇄했다. 2016년 6월, 해수부는 8개월 동안 세 차례 선체 인양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상하이샐비지는 선체인양 방법을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선체 아래 설치된 리프팅 빔을 재킹바지선에서 와이어로 연결해 끌어 올려 반잠수식 선박에 얹어 육지로 옮기는 텐덤 리프팅 방식으로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미온적이던 해수부가 돌연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나섰다. 많은 이들이 놀랐다.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3월10일)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애당초 전문가들이 제안했던 그 방식대로 시험인양에 돌입했고, 이틀 만에 세월호는 물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왜 2년 동안 실패만 거듭했을까?


누가 선체인양 막았을까

그동안 정부는 인양 시점을 6차례나 연기해왔다. 이유는 ‘검증작업’ 미비였다. 작업방식, 작업일수, 안전도 등에 있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사전조사’가 완료되지 않아 인양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었다. 또 선체 잔존유 제거작업, 부력확보의 어려움, 단단한 해저토질로 인한 굴착 과정의 문제점 등의 난제가 겹쳐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2년 동안 계속 실패했던 인양작업. 그런데 지금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통령이 파면되자마자 들려온 ‘경사’다. 이 대목에서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선체인양을 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황들이 한둘 아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

올 1월, 국회에서 세월호인양대국민설명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도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세월호 인양시점을 “빠르면 4월 늦으면 6월”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정부의 얘기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정부 측에 “이번만큼은 약속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 정부가 약속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 적극 인양에 나선 것이다. 정부의 태도가 확 바뀐 셈이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이 파면당하기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인양을 앞당기려 서둘렀을까, 아니면 해왔던 것처럼 또 연기했을까?

<검찰에 소환된 박근혜>

부실 자료 제공 등 정부의 비협조

정부가 인양업체 측에 부실한 자료를 건네는 등 고의로 인양작업을 지연시켜 왔다는 지적도 있다. 인양 작업을 주도한 업체(상하이샐비지와 컨설팅 업체인 TMC) 책임자들의 주장이다.

“선체 밑 해저 상황은 장비로 들어 올리고 다이버들을 직접 투입한 후에야 실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앙 옌 상하이셀비지 부사장)

이 말을 곱씹어 보자. 정부가 해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보를 업체에 제공했다면 상당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자료 제공이 부실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유속이나 해저면 상태를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선체 인양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사이먼 버든 TMC지부장)

여기에서도 해수부가 자료 제공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이 음미된다. 정부가 유속, 해저면 상태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업체 측에 건넸다면, 인양 준비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상하이샐비지 측이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문제 삼아 항의한 적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를 방증해 주는 정황이 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해수부가 (사전 조사해서) 상하이 샐비지 쪽에 전달했던 자료가 상당히 부실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라고 정부를 질타한 바 있다.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더라면, 이때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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