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1981년 7월 ‘오프닝 세러머니’
강진욱 기자 | 등록:2021-05-24 07:20:03 | 최종수정:2021-05-24 07:26:50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0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0. 1981년 7월 ‘오프닝 세러머니’

한국과 버마 양측에서 ‘1983 버마 공작’이 동시에 시작되기 약 한 달 전, 유학성 등 안기부 공작 책임자들이 미국에 불려갔다 온 지 한 달여 만인 1981년 7월 ‘북한에 의한 전두환 시해극’의 오프닝 세러머니같은 사건이 있었다.

전두환의 ‘3차 비동맹 외교’인 서남아.대양주 6개국 순방 중 ‘1983 버마 사건’이 일어나기 앞서 전두환의 ‘1차 비동맹 외교’인 동남아 5국(인도네시아.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 순방 중 필리핀에서 먼저 ‘오픈 게임’이 있었다는 말이다. 전두환네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사진 38-19 :『전두환 회고록-2』492쪽)

우선 위 글은 모든 팩트가 왜곡된 거짓 주장이다. 자신의 동남아 순방 계획을 미리 안 북한 공작원들이 캐나다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 캐나다 마피아 껄렁패들이 먼저 친북(반전두환) 인사인 캐나다 교포 최중화에게 접근해 정체불명의 어떤 이들을 함께 만났고, 최 씨가 통역하는 중에 캐나다 마피아들이 먼저 ‘전두환 암살’ 어쩌고 떠들면서 최 씨를 사건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 캐나다 마피아들을 움직인 것은 미국 정보기관이었다(고 본다).  

또 ‘1983 버마 사건’의 오픈 게임이 1981년에 있었다면 1982년에도 뭔가 있지 않았을까? 있었다! 전통(全統)의 ‘2차 비동맹 외교’인 1982년 8월 아프리카 4국 순방 때 가봉에서도 그 비슷한 일을 꾸미려 했다는, 사후에 조작됐을 법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두환은 ‘가봉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북한이 나를 세 번이나 암살하려 했다”고 떠벌린다. 문제는 최병효 전 대사같은 이들이 전두환의 언설을 되뇐다는 것.

[2004.5월호 <신동아> 잡지는, 김정일이 1982.8월 전두환의 아프리카 가봉 방문에 맞춰서 ‘동건애국호’로 암살단을 보내 전두환에 대한 암살을 실행하려다가 막판에 김일성에게 보고하자 아프리카 비동맹 지원 세력의 상실을 우려한 김일성이 이를 취소시킨 바 있다고 보도하기도 ... 북한은 1981.6∼7월 전두환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 중 캐나다인 두 명을 시켜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 ... 전 대통령에 대한 위해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첩보를 오스트리아 주재 필리핀 대사가 보고 ... 이 음모의 중간에 선 인물이 최중화(1955-) ... ] (최병효 책 344∼345쪽)

이렇게 한 가락 했다는 이들이 전두환네 언설에 놀아나고 있으니 ‘북한이 두 번 실패한 끝에 세 번째 성공했다’는 같잖은 말이 정설이 됐고 대한민국 역사가 돼 버렸다. 1981년부터 내리 3년 간 아시아와 아프리카 서남아.대양주를 무대로 하는 전두환의 순방외교 일정을 짰는데 그 때마다 북한이 일을 꾸몄다더라. 그렇게 두 번 리허설 비슷한 시도 끝에 마침내 3차 시기에서 성공했다더라 ... 필리핀과 가봉 및 버마 등 북한의 테러 무대가 됐던 나라의 정부 및 정보기관도 전∼혀 눈치를 못 챘다더라 ... 뿐만 아니라 남한의 안기부나 미국 CIA는 까맣게 몰랐다더라 ... 아, 신귀(神鬼)의 출몰(出沒)! 20여년 뒤에 일어날 사건의 데자뷔다. 한.미 양국( 및 이스라엘) 해군이 서해에서 반잠(反潛)훈련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북한 잠수정이 내려와 천안함 밑 정 중앙에서 어뢰를 ‘빵’ 터뜨려 배를 두 동강 내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반북 적대 놀음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이 나라의 역사가 된 것은 범죄조직이나 다름없었던 전두환 정권이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고 언론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마구 퍼 나르고, 학자.연구자. 교수 부류가 이런 소설같은 이야기를 사실인양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 전두환 정권 이후 들어선 정권이 전두환 정권의 반인륜적 패악질을 차마 들춰낼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젓이 이 나라 역사의 한 토막으로 자리잡은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지 보자. 1981년 7월에 있었다는 필리핀에서의 ‘전두환 시해 모의’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2년 2월 26일. 캐나다 경찰 당국이 2월 24일 하오(한국시간 25일 상오)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 위해 음모 사건 관련자인 캐나다인 2명을 토론토에서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국내 신문들마다 큰 지면을 할애해 장문의 글을 써댔다.

[캐나다 경찰은 24일 전두환 대통령 위해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2명의 캐나다인을 체포하고 북한으로 도주한 캐나다 거주 한국인 최중화(崔重華.28, 태권도 사범)와 다른 한 명의 캐나다인 등 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발표했다. 도주한 최는 전 한국군 장성이며 전 말레이시아 대사였던 최홍희(崔泓熙.64, 전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의 아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홍희도 범행 음모가 드러난 후 캐나다를 탈출, 북한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캐나다에서 ‘제임스 최’로 알려진 최중화가 몇몇 북한인들과 공모, 3명의 토론토 거주 캐나다인들에게 암살 대가로 6만8천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왕립 경찰의 로스 오크 대변인은 [강조]“우리는 최가 한국 태생으로서 몇몇 북한인들과 함께 일해 온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음모의 배후에 대한 결론은 당신들 스스로 내릴 수 있을 것”[강조]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구체적 요인 암살 기도가 어디서 단행될 계획이었는지 말하지 않았으나 캐나다에서는 전 대통령이 지난해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수상의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캐나다를 곧 방문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아 왔다. 경찰 당국은 지난 6개월 간 캐나다 수사관들이 유럽과 카리브해 지역에서 조사를 진행했으며, 미국과 프랑스, 서독,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마르티니크 및 한국의 경찰이 공동수사에 참여한 결과 24일 2명의 캐나다인을 체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경찰에 의하면 [강조]이번 수사는 토론토의 한 변호사가 캐나다 국립경찰에 전 대통령 위해 음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작[강조]되었다고 말했다. 왕립경찰과 온타리오주 경찰청의 공동발표문은 [강조]캐나다인들이 지난 1월 1일 이후 이번 주까지 수 명의 북한인들과[?] 전 대통령 위해 음모를 꾸몄[강조]으며 [강조]그 후 암살 음모를 실행에 옮기지 않기로 결정[강조]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자가 지난 1월 북한으로 돌아갔으며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 위해 기도 혐의로 체포된 캐나다인들은 토론토 거주 찰스 스티븐 야노버(36)와 알렉산더 제롤(33)이라고 말했다. 야노버와 제롤은 또한 토론토 거주 네이선 이스라엘 클레저만(52)과 함께 최에 대한 사기 혐의 및 범죄 자금 불법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한편 경찰 소식통들은 이 전 대통령 위해 음모 사건이 성공했더라면 60만 달러가 범인들에게 추가 지불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 위해 북괴 음모 적발 - 캐나다 경찰 발표 - 캐나다인 3명 고용 모의 6개월」<동아일보> 1981.2.26)

( 동아일보 1982.2.26)

글을 둘로 나눠 봐야 한다. 전반부는 전두환의 ‘견찰’(犬察) 치안본부가 쓴 소설같은 이야기고, 후반부가 캐나다 경찰의 발표 내용이다. 우선 캐나다 경찰은 이 엉터리 전두환 시해극의 주인공을 ‘최중화’라고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캐나다 경찰은 단지 자국민 셋이 ‘북한으로 돌아간 캐나다 시민권자’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중시했다. “야노버와 제롤이 ... 클레저만(52)과 함께 최에 대한 사기 혐의 및 범죄 자금 불법 소지 혐의로 체포 ... ” 이렇게 발표한 것을 치안본부가 최중화와 그의 아버지가 ‘친북’이네 어쩌네 하며 사건을 ‘북한이 캐나다 교포를 사주한 사건’으로 부풀린 것이다.

캐나다 경찰과 전두환네 치안본부는 나름 치밀하게 공조했겠지만 두 기관은 사건의 개요조차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치안본부는 ‘전두환 시해 음모’로 몰고 가려 했겠지만 캐나다 경찰의 발표만으로는 야노버와 최중화 등이 언제 어디서 전두환을 시해하려 했다는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캐나다 경찰은 이 구체적 요인 암살 기도가 어디서 단행될 계획이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래놓고 최중화와 그의 부친 최홍희가 ‘반한친북’ 인사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우리는 최가 한국 태생으로서 몇몇 북한인들과 함께 일해 온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 음모의 배후에 대한 결론은 당신들 스스로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까지밖에 할 수 없으니 나머지는 니네가(한국 또는 미국이)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최중화의 범행이 명명백백했다면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고 굳이 그와 그의 부친의 친북 행보를 들먹일 이유가 없다. 다음 날 나온 기사에도 캐나다 교포 최중화 등의 구체적 범행 내용이 없었다.

[현지에서는 요인 암살 기도가 어디서 단행될 계획이었는지는 공표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수상의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전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던 만큼 전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때 이를 결행하려 했음이 분명한 것 같다는 것이 관계전문가들의 판단 ... ] (「북괴의 교란작전 - 제3국인까지 동원, 캐나다 국제 요인 암살 기도 사건의 충격 ... 최홍희, 평양 방문해 김일성도 만나」<연합통신> 1982.2.27)

캐나다 국적의 최홍희 부자를 잡기 위한 음모에 캐나다 경찰 당국도 어쩔 수 없이 가담은 했지만, 한.미가 주장하는 ‘최중화의 범행’을 납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미국 측에 의해 ‘어거지로’ 만들어졌음을 캐나다 측이 은연중 시사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토론토.UPI.연합】전두환 대통령 위해 음모 가담 혐의로 체포된 캐나다인 찰스 스테판 야노버(36)는 지난해 미국 백인 과격단체인 쿠클럭스클랜(KKK)와 공모, 카리브해의 도미니카공화국 정부를 전복하려 한 혐의로 2주 전 체포, 구속돼 있다가 보석으로 석방되어 있던 중 24일 다시 체포되었다고 캐나다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토론토의 한 식당 주인인 야노버가 지난 10일 토론토의 쿠클럭스클랜단 지도자 제임스 알렉산더 매퀴와 함께 체포되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캐나다 당국이 정보 수집을 위해 캐나다 주재 미국 기관들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았으나 미 중앙정보국(CIA)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두환 대통령 위해 음모 가담 혐의로 체포된 캐나다인」<경향신문> 1982.2.26)

“캐나다 주재 미국 기관들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았으나 미 중앙정보국(CIA)은 개입하지 않았다.” 캐나다 당국이 이처럼 ‘외세의 개입’을 시사하는 등 사건 전개에 소극적으로 나오자 곧이어 ‘캐나다 정부 고위 관변 소식통’이 등장해 “음모자들’(?)이 전통(全統)의 동남아 순방 때인 1981년 6월 동남아 모처에 머물고 있었다”고 밝힌다. 신문 방송이 지금도 애용하는 ‘현지(다른 나라) 정부 소식통’은 99.9% 현지 한국대사관에 있는 해외공작관(안기부 공사 등)이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위해 음모는 처음부터 전 대통령의 해외여행 중에 실행하도록 계획 됐었다고 캐나다 정부의 고위 관변 소식통이 26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전 대통령이 작년 6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순방했을 무렵 암살 모의자들이 동남아에 체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조]캐나다 경찰은 암살 음모자들이 어디에서 전 대통령의 위해를 실행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강조] 말하고 그러나 전 대통령의 위해 음모는 작년[1981년] 1월부터 금년[1982년] 2월 22일 사이에 진행됐었다고 밝혔다.] (「캐나다 암살 모의자들 작년 1월부터 줄곧 흉계 꾸며 - 전(全) 대통령 해외여행 중 실행 계획 - 음모자들 실행보다 돈에 더 관심」<연합통신> 1982.2.27)

위 글 내용도 둘로 나눠 봐야 한다. 전반부는 캐나다 관변 소식통을 빙자한 어떤 자의 말이고 후반부는 캐나다 정부 당국의 입장이다. 우선 캐나다 측은 음모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캐나다 경찰은 암살 음모자들이 어디에서 전 대통령의 위해를 실행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고 ... ” 야노버 패거리가 제 발로 변호사를 앞세워 자신들이 뭔가를 꾸몄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물까지 갖다 바치니 일단 체포는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사해 보니 이들이 1981년 1월부터 이들이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말이다.

캐나다 측은 이런 입장이었지만, 어떻게든 사건을 조작하려는 전두환네 안기부나 치안본부 등은 ‘이들이 전통(全統)의 동남아 방문 때 필리핀에서 그를 암살하려 했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마치 캐나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인 것처럼 꾸며 기자에게 흘린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최중화네들이 권총으로 살해하려 했다’는 ‘썰’(說)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필리핀은 즉각 이 ‘썰’을 부정했다.

[필리핀 당국은 필리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려던 어떤 계획도 아는 바 없다고 정부 소식통들이 26일 말했다. 소식통들은 전 대통령의 지난 7월 필리핀 방문 기간 위해를 가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토론토로부터의 보도에 논평, 그같이 말했다.] (「“전 대통령 위해 음모 아는 바 없어”... 필리핀 소식통, 캐나다 보도에 논평」<연합통신> 1982.2.27)

한국과 캐나다 측의 동시 발표에 필리핀 정부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7개월여 전 한국 대통령이 자국을 국빈방문할 때 그를 시해하려는 음모가 있었다는 말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이야긴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만찬 장소를 옮길 것이 아니라 만찬을 취소했거나 방문단 일행이 급거 귀국했을 것이다. 또 사건 당시나 그 후 뉴스로 전해졌을 것이다. 이런 일은 아예 없었다. 일을 꾸민 자들이 만든 각본에만 있었을 법한 일을 뒤늦게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캐나다 경찰 당국이 “캐나다인들이 지난 1월 1일 이후 이번 주까지 전 대통령 위해 음모를 꾸몄다”고 한 것부터가, ‘전두환이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1981.7) 그를 시해하려 했다’는 각본이 범죄 혐의를 구성할만한 것이 못 됐다는 반증이다. 캐나다 경찰은 자국 마피아들이 최중화를 끌어들여 만든 ‘필리핀 음모’에 대해 다 알고 있었지만 그 음모라는 것이 너무도 허접하고 유치해 차마 범죄로 규정하지 못 한 것이다.

또 캐나다 경찰의 첫 발표에는 중요한 팩트가 빠져 있다. “수사가 토론토의 한 변호사가 캐나다 국립경찰에 전 대통령 위해 음모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시작됐다”와 “전 대통령 위해 음모를 꾸몄으며[나] 그 후 암살 음모를 실행에 옮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이에 들어갈 팩트. “전 대통령 시해를 모의했던 야노버와 제롤이 제 발로 변호사를 찾아가 최중화와 만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대화를 녹음한 음성테이프 등 자신들이 수집한 증거자료들을 제공했다. 그래서 수사가 시작됐다.” 1991년 3월 캐나다 검찰이 작성한 최중화 소장(訴狀)에 나온다.

[야노버는 81년 봄에 최에게 접근해 석탄 거래를 하겠다며 북한인들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야노버]는 최의 통역을 통해 은근히 한국의 전 대통령을 암살해줄 수도 있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 야노버는 자신의 친구인 마이클 제롤과 함께 필리핀 현지를 답사한 뒤 다시 빈에서 최를 통해 북한인들과 만나 구체적인 암살 계획을 논의했다. 이때 야노버는 소형녹음기를 감추고 들어가 대화 내용을 녹음했으며 제롤은 야노버를 경호하면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야노버와 제롤은 이때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사실 야노버와 제롤은 전 대통령을 암살할 의사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들은 북한으로부터 성공적으로 거금을 사취하려고 했다. 야노버와 제롤은 81년 7월 중순께 캐나다에서 평소 잘 안면이 있는 변호사를 만나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을 설명했다. 그는 북한인들과의 대화 녹음테이프와 사진, 필름 등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이 아무도 살해할 용의가 없다고 변호사에게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 당국이 그 음모를 알아차리고 전 대통령의 일정을 바꿀 수 있도록 어떤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최와 북한인들과 접촉을 계속하면서 변호사를 통해 연방경찰 및 합동수사본부등에 가서 확실한 정보를 제공했다. ... 81년 9월 야노버는 다시 최를 통해 북한 당국에 편지를 보내 “자금이 부족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 거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야노버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돈은 모두 미화 60만 달러에 달한다.] (「북한, 국제테러꾼들에 60만 달러 사기당해 - 한국 대통령 암살 음모 사건 기소문 요약」<연합통신> 1991.3.14 / 최중화 씨는 사건 발생 후 10년 간 이북과 유럽 등지를 돌아다니다 부친의 권유로 1991년 3월 귀국해 캐나다 경찰에 자수하고 이후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실제로는 1년만 살다 나온다.)

위 내용은 ‘북한이 캐나다 교포 최중화를 사주해 캐나다 마피아를 끌어들여 전두환을 살해하려 했다’는 스토리와 배치된다. 캐나다 경찰은 자수한 야노버와 제롤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밝히는 순간 야노버와 제롤이 최중화를 끌어들인 뒤 자기들은 단순 사기(갈취) 혐의로 빠지는 사건의 전모가 빤히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이 사실을 슬쩍 뺀 것이다. 캐나다 경찰 당국은 이 사실을 발표했지만 이 내용이 기사화되는 과정에서 누군가 뺐을 수도 있겠다.

‘북한인들’은 ‘북한인들로 가장한 배우들’로 미국이나 한국 정보기관이 고용한 자들일 것이다. 최중화 씨는 1980년 9월 10일부터 열흘 간 부친 최홍희 씨와 함께 태권도 시범단 10명을 이끌고 방북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가 이북의 통일전선부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고 이들을 실제로 만났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북측이 계약서를 쓰고 청부살인을 요청했다거나 돈가방을 건넸다는 ... 소설을 써도 좀 현실감 있게 써야 하지 않을까. 또 실패한 거사에 왜 60만 달러를 건넬까? 도무지 소설 줄거리가 맞지 않는다. 캐나다 경찰이 1982년 2월 25일 처음 이 사건에 대해 발표할 때 “결행 후 60만 달러 지불 예정”이었다. 그랬던 것을 “60만 달러를 지불했다”로 슬그머니 바꾼 것이다.

[최중화(28)가 몇몇 북괴인들과 공모, 캐나다인들에게 암살 대가로 6만8천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히고 결행 후에는 거액인 60만 달러를 지불할 예정이었으므로 ... ] (<연합통신> 1982.2.27)

‘최중화 사건’은 미국 정보기관이 이스라엘계 캐나다 마피아 몇몇을 시켜 조작한 ‘북한에 의한 전두환 시해 모의’일 뿐이다. 시나리오 줄거리조차 제대로 아귀를 못 맞춘 웃기는 이야기를 사건으로 만든 것이고, 이런 식으로 시작된 어설픈 ‘북한에 의한 전두환 시해 모의극’이 ‘1983 버마 사건’이라는 희대의 끔찍한 자작테러로 발전한 것이다. (11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