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식인의 처신, 어때야 하는가
이기명 기자 | 등록:2021-05-17 10:38:42 | 최종수정:2021-05-17 10:45:18


[칼럼] 지식인의 처신, 어때야 하는가
누가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가


춘원(春園) 이광수가 ‘친일 작가’로 낙인찍히기 전, 나는 그가 쓴 역사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읽었다. 중학생인 나는 단종의 슬픈 운명에 많이도 울었다. 단종이 죽임당할 때는 책을 놓았다. 그 후로 세조는 제외다.
 
사육신(死六臣.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의 단종 복위 거사가 꼭 성공하기를 나는 빌었다. 그때 나오는 인물이 김질(金礩)이다. 그는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변절, 세조에게 밀고(고자질) 했고 사육신은 역사에 기록된 대로 죽었다.
 
김질(金礩)은 친구인 박팽년을 찾아 회유를 권했다. 그때 김질이 받은 선물은 가래침 한 덩어리. 그는 친구로부터 인간 제외 선언을 받은 것이다. 과연 김질은 배신자인가. 아니 세조가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이다. 김질은 그 보상으로 최고의 벼슬을 거쳤다. 역사는 뭐라고 하는가. 언급을 피한다.
 
초딩 때 고자질 잘하는 녀석이 있었다. 애들이 선생님 흉보면 꼭 이른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안 했다. 나중에 듣기로 고자질쟁이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고자질은 나쁜 짓이라고.
 
■ 도둑이 제 발 저리다.
 
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한 마디로 지식인이다. 학위도 받고 글도 잘 쓴다. 나와는 뜻이 맞아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기로 약속했었다. 이 친구의 이름이 언론에 보도됐다. 나와 약속한 지도자가 아닌 다른 지도자를 지지하는 무슨 동호회의 발기인이 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됐으니 이해해 좀 해 달라는 것이다.
 
“그거 때문에 전화를 하셨소?”
 
“배신자라고 오해를 하실까 해서”
 
“배신했다는 생각이 드시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자신이 누구의 동호회원이 된 것을 나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한 듯하다. 무리도 아니다. 왜냐면 그는 누군가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배신자로 여길 것으로 생각했다면 날 몰라도 한참 모르는 친구다. 내가 사람 잘못 봤다. 까놓고 얘기하자. 그가 동호회원으로 등록한 사람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내게 전화한 그 친구,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날 한참 잘못 봤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의 대통령 꿈은 당연하다. 김영삼 대통령도 중학생 때 책상 위에 대통령이라고 써 붙였다지 않은가. 물론 요즘은 쥐나 개나 대통령 타령이라 후보 값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이 지사 정도면 지극히 당연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지지율 최고다. 벼슬에 꿈이 있는 사람이면 줄을 대려고 할 것이다. 다만 시류에 편승, 한 다리 걸쳐놓는 처신은 정치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익 추구뿐이라면 칭찬할 수가 없다.
 
■ 비난과 비판은 다르다.
 
비판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승만 시절에 ‘지당 장관’이란 말이 있었다. 이익흥 내무장관이 이승만 대통령과 낚시를 갔는데 대통령이 방귀를 뀌었다. 그때 이익흥 입에서 나온 말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이래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는 아첨의 대명사로 회자됐다.
 
이 지사의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국민의 가려운 부분을 잘 짚는 정책발표는 놀랍다. 일부에서 즉흥적이니 좁은 안목이니 비판하지만, 트집 잡으려면 며느리 발꿈치가 달걀처럼 예뻐도 흉이라고 했다. 충고로 받아들이고 잘하면 된다. 시류에 너무 영합한다는 비판 역시 충고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그는 사람 귀한 이 나라의 지도자가 틀림없다. 경쟁하되 보호해야 한다.
 
■ 인간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
 
인생 80을 넘겼으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먹은 거 자랑하려면 남보다 빨리 죽는 거밖에 더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오뉴월 볕이 하루가 무섭다는 말이 있지만 익어가는 벼에게 햇볕은 경륜이다. 인간도 같다.
 
나이 젊은 거 탓하는 거 아니다. 요즘 정의당 의원들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그들의 처신이 비판받는 걸 보면서 경륜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경륜은 무엇인가. 과거의 경험이다. 매도 맞아 본 놈이 무서운 걸 안다. 독재도 겪어 본 사람이 고약한 것을 안다. 물론 총이야 맞으면 죽으니까 모른다. 대신 목격자들이 안다.
 
이낙연 대표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낀다. 경험은 산교육이다. 그가 겪은 기자 경험과 의원 생활. 도지사, 국무총리, 당대표 등등. 오랜 경험이 가슴에 녹아있다는 사실과 결코 교만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이낙연 대표가 ‘사면론’과 관련해서 사과했다. 그동안 몇 번인가 사과했지만, 오늘처럼 가슴에 다가오긴 처음이다. 가슴에 남아 있던 체증이 싹 가신다. 오래간만에 느껴본다. 참 기분이 좋다.
 
오랜 작가 생활과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은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끼고 인정도 받는다. 이낙연 대표와 대화를 나누며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신뢰다. 그에게서 신뢰를 느끼지 못했다면 벌써 그를 떠났을 것이다.
 
벼슬 욕심도 정치할 욕심도 없는 내가 신뢰하지 못하는 이 대표와 함께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그를 돕기 위한 최선을 노력은 오로지 그를 신뢰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내 조국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또한 나의 직관과 국민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내 남은 인생을 바친다. 내 자식들의 삶을 지켜주는 사람을 위해 내 몸을 던진다.
 
벼슬도 재물도 약속하지 못하지만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드는데 함께 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정의입니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