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2
강진욱 기자 | 등록:2021-04-01 12:59:23 | 최종수정:2021-04-01 16:33:58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2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2. 전두환의 ‘비선(秘線)’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 C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A가 자신과는 별로 친하지 않지만 C와는 친한 B의 집에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들과 함께 B 집안의 어떤 곳을 방문하고 싶다며 아들을 먼저 보냈는데 그곳에서 폭탄이 터져 아들이 죽었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은 A가 보냈다고 말했지만 A는 “C가 범인이다!”라고 주장했다.
  
- C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박하지만, A는 평소에도 C가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주장하며 B에게 C와의 관계를 당장 끊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평소 C가 자신을 해치려 할 때 사용했다는 흉기 따위를 B에게 가져다주면서 빨리 C를 범인으로 인정하라고 재촉한다. 또 A의 돈 많은 친구 D와 E도 B를 어르고 달래며 빨리 C와 절연하고 A와 친해지라고 종용한다.

- C와 친했던 B는 A 및 A의 돈 많은 친구들의 물심양면의 공세에 당황하고 나름 고민하지만 결국 A 및 A의 친구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A와 A의 친구들이 제공하는 선물 공세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이 말을 바꿔 “C가 보냈다”고 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B는 오랜 기간 친했던 C와 절연하고 별로 친하지 않았던 A와 손을 잡는다.

A, B, C, D, E를 각각 남한의 전두환 정권과 버마, 북한, 미국, 일본으로 바꾸면 위 이야기는 곧바로 ‘1983 버마 사건’의 통설이 된다. 이 사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이렇게 단순하다. 자세히 들어보면 아귀가 안 맞는다. 엉성하다. 그러니 이 사건에 대해 나름 관심을 갖고 조금 더 세밀히 들여다 본 이들은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 실은 A의 행적이 수상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B의 집에 가겠다고 벅벅 우긴 것도 A였고, 그래놓고 B의 집에 가기 전부터 B의 집에 가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해괴한 소리를 늘어놨다. 또 B의 집에 가기 전에 대규모 경호부대를 보내 B의 집이 안전한지 아닌지를 일일이 점검했다. 그래 놓고는 B가 반대해서 안전 점검을 못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최 전 대사도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더 많은 - 더 의미심장한 - 의문을 제기했어야 하지만 최 전 대사는 지금까지 1983 버마 사건에 대해 책을 내거나 한두 마디씩 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의문을 ‘재탕’하는데 그쳤다. 그래놓고 종국에는 허접한 통설로 되돌아가 버렸다. ‘북한의 소행이 맞아요!’ 자신이 제기한 여러 의문점들을 깊이 궁구(窮究)하기는커녕 별로 설득력 없는 해설을 통해 자신이 제기한 의문점들을 스스로 덮어버렸다. 그의 의혹 제기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 이유다(1편).

최 전 대사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총리니 장관이니 대사니 한 자리 했던 이들이 제법 그럴듯한 제목의 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1983 버마 사건의 내막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어쩌면 이들의 책으로 인해 사건의 진상은 더 두꺼운 베일로 덮였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거 참 이상하네∼’ 하며 몇몇 의문점들을 나열해 놓고도, 그 ‘불편한 진실’을 가린 장막을 들춰보려 하지 않고 ‘에이, 그래도 설마 우리가 그 짓을 했겠어∼ 북한놈들이 했겠지’하는 자기 세뇌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최 전 대사도 ‘도돌이표’ 하나를 추가했을 뿐이다.

1983 버마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이 ‘우리’ 의식이다.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했겠어∼’ 오랜 기간 반쪽 국가를 ‘우리나라’라고 인식하며 나머지 반쪽을 ‘적’으로 규정해 온 탓에 전두환네 패거리를 그냥 ‘우리’의 범주 안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무식한 세계관이다.

이런 단순하고 무식한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모두가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 최 전 대사가 제시한 의문 또는 의혹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그가 찾아내지 못한 답을 찾아보자.

1983년 10월 전통(全統)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때 최 전 대사는 비공식 수행원이었다. 그는 10월 8일 순방길에 오를 때부터 버마주재 한국대사관이 서울 외무부 본부에 보낸 전문을 의심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먼저 전두환네의 버마 방문이 합당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최병효 책 26쪽)

인용문 마지막에 “좀 더 부정적 의견을 보낼 것으로 기대하였다”는 말은, 서울 본부의 보고 요청에 버마주재 한국대사관 측이 부정적인 의견을 달아 보낼 것으로 기대했다는 뜻이다. 전통이 외무장관 이범석에게 갑자기 버마에 가는 일정을 짜라고 지시하니 서울에서 버마주재 한국대사(이계철)에게 현지 사정이 어떤지 대통령이 방문할만한 지를 알아보고 보고하라는 전문(5월 20일 자)을 보냈던 것. 그런데 의외로 버마주재 이계철 대사는 바로 다음날(5월 21일) ‘노 프라블럼!’ 이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 최병효 책 26쪽)

대통령의 버마 방문 일정을 갑자기 짜야했던 최 전 대사(당시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고 회고한다. 최 전 대사는 이 대사가 전통의 버마 방문 계획에 대해 매우 불안해 하면서도 ‘대통령의 버마 방문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는 전문을 보낸 것을 두고 “스스로를 속이는 회신을 했다”고 지적한다.

( 최병효 책 50쪽)

최 전 대사는 이 대사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을 두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비선(秘線)이 개입돼 있었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자신이 영국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영국 대사였던 김영주의 책을 인용하며 박정희 정권이 “정식 외교라인 이외의 정보 소스를 활용했다”는 사실에 착안한, 나름 합리적인 추리였다.

( 최병효 책 48쪽)

이어 최 전 대사는 “제왕의 자문에 응하는 ‘막빈’(幕賓)”까지 찾아내 ‘전두환네 비선’의 존재에 대해 확언한다.

( 최병효 책 48쪽)

( 최병효 책 48쪽)
 
또 이계철 대사가 그 비선으로부터 모종의 별도 지시를 받았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 최병효 책 49쪽) 

설사 비선의 직접적인 지시는 아니었을지라도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의 버마 방문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대법원장 일행을 먼저 보내는 등 부산을 떨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사가 대통령의 버마 방문 추진에 부정적인 회신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두환네 비선 조직’이 움직였을 것이라는 최 전 대사의 추리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의 합리적 추리는 여기까지다.

전두환네 비선 조직이 움직였고 이계철 대사도 ‘대통령의 버마 방문, 노 프라블럼!’이라고 회신하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리했다면, 이 ‘비선’이 아웅산 묘소 테러와 관련된 각종 의문 및 의혹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세밀히 살펴봐야 마땅하다.

당초 서남아.대양주 순방 일정에는 없었던 버마 일정을 갑자기 끼워 넣고, 10월 8일 오후에 가기로 했던 아웅 산 묘소 헌화 일정이 다음날 오전으로 미루고, 사건 당일 이계철 대사가 먼저 행사장에 가 마치 대통령이 온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대통령 전두환은 별 시답잖은 이유로 뒤늦게 출발했다 하고, 이계철 대사가 현장에 도착한 뒤 진혼곡이 울림으로써 대통령의 헌화가 시작될 것 같은 상황을 만든 것 등등 ... 전두환네가 ‘우연’이니 ‘행운’이니 하며 얼렁뚱땅 넘어간 모든 의혹을 비선의 수상한 움직임과 연결해 깊이 사유하고 다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최 전 대사는 비선의 존재에 대해 파고드는 대신 그 비선을 매우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고작 ‘버마에 가자고 했을 뿐’ 버마에서 수수께끼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본 것이다.

( 최병효 책 46쪽) 

문제의 ‘비선’ 즉 ‘버마 방문 추진 세력’은 전두환이 네 윈의 ’상왕 통치‘ 노하우를 전수받아 정권을 내 놓은 후에도 상왕 같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충성심에서 버마행을 도모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 사건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보겠다며 그 이름도 생소한 ‘막빈’이란 직책까지 찾아 써 놓고는, 그 비선이 한 일이 고작 외무장관 등을 제치고 전두환에게 ‘각하, 버마에 가시죠’ 한 것이 전부라고? 이게 비선인가. 결국 최 전 대사가 찾아낸 것은 ‘비선’이 아닌 일개 측근이었다. 그는 우연히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다 어떤 문제의 인물을 찾아냈다며 신나게 드라마 속 장면을 묘사한다.

( 최병효 책 269)

허문도로 분한 이희도가 전두환으로 분한 이덕화에게 위처럼 이야기하자, 이덕화가 ‘아, 끄거 쪼오은 생각이꾸마안!’ 하며 기꺼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MBC 드라마 장면)

최 전 대사는 드라마 작가로부터 들었다며 이 드라마가 “여러 자료와 증언을 통해 확인한” 것이고 “버마 방문 건의와 관련하여 허문도 측의 항의는 없었다”고 부연한다.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는 뉘앙스다. 그러면서 허문도를 대단한 비선(?)이었던 것처럼 묘사했다.

( 최병효 책 270)

허 씨를 장세동 급으로 올려놓고 싶은 모양이지만 아무리 크게 그리려 해 봐야 그는 한낱 전두환 정권에 빌붙었던 부역자일뿐이다. 1983 버마 사건은 그런 부역자 한 명의 아부 따위로 만들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전두환 정권과 이 정권을 음양으로 비호하는 국내외 제 세력의 모의부터 버마의 네 윈 정권 포섭에 이르기까지 최소 몇 년 간 비밀리에 일을 꾸민 ‘거대한 비선’이 있다. 한 나라의 수뇌부와 정부 조직까지도 움직이는 일은 ‘거대한 비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최 전 대사도 ‘추진 세력’이라 하지 않았나. 그래 놓고 허문도 한 사람을 배후로 보다니!

이런 사건을 고작 ‘누가 권해서 버마에 갔느냐’는 지엽말단의 문제로 축소시켜 놓고, 그 배후로 수많은 부역자들 중 한 명을 찾아내 의기양양하는 것은 그가 이 사건의 실체를 가늠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산을 옮겨야 할 일(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일)을 나무 한 그루 옮겨 심는 일(왜 버마에 가 테러를 당했는지를 밝히는 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뒤집힌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사고 당일 수학여행을 가자고 한 사람을 찾아내 이 사람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지를 밝혀야 할 일에 그날 천안함을 사고 해역으로 출동하도록 명령한 이를 찾아내 이 사람 때문에 배가 침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후 글을 통해 최 전 대사가 찾아내지 못한 거대한 비선의 실체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보고, 이 비선이 1983 버마 사건 전반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밝혀보려 한다.

P.S.

위에서 ‘5공화국’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최 전 대사가 이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드라마 속에는 ‘사실 왜곡 의도’를 의심할만한 장면이 많다. 허문도가 버마행을 권유하자 전두환이 “버마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가?”라고 되묻는 장면은 버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허문도가 갑자기 전두환에게 버마행을 권유한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이는 전두환네가 치밀하게 준비한 버마 행각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최 전 대사가 1983 버마 사건의 실체를 살펴보는 대신, ‘왜 버마에 갔나’라는 지엽말단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 책임을 허문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과 똑같다. 2005년 제작된 드라마와 2020년 출간된 최 전 대사의 책이 이 사건을 획책한 ‘비선 세력’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허 씨를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한 자’로 묘사하는 것이 우연일까. 혹시 지금도 여전히 그 마력을 발휘하고 있을 그 ‘비선 세력’이 오도(誤導)하는 결론이 아닐까?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