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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
탁류  | 등록:2020-06-24 09:02:11 | 최종:2020-06-24 09:02:3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통일은 미꾸라지였다. 한반도는 흙탕물이 뒤범벅된 논이었다. 잡아도 손가락 사이로 통일은 매 번 미끄러져 나갔다. 통일은 술안주로도, 신세 한탄의 원흉으로도, 막연한 미래의 희망으로도, 그리고 지킬 필요가 없는 상투적 약속으로 오르내렸다. 통일은 우리 주변 들판 어딘가에서 나뒹굴고 있었지만, 누구에 의해서도 제대로 해석되지 않은 화석이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통일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빛을 비춰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 기다려도 오지 않는 통일 열차

통일은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일이라는 상품이다. 그런데 그 상품을 구매하려면 공인인증서를 요구한다. 그러나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으려면 보안프로그램의 설치를 요구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인인증서를 만들었다 싶으면 다른 종류의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놈을 만들어 놓으면 또 일 년마다 갱신하라고 한다. 지쳐서 공인인증서를 없애라고 했다. 그랬더니 여러 종류의 공인인증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상품(통일)은 언제 내 손에 들어올 것인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 열 마지기 논바닥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젠 사람들이 통일에 신물이 났다. <통일 안 해도 좋으니까 그냥 따로 살자> 여기까지 왔다. 이젠 상품을 보내주겠다고 해도 그 상품이 정상적으로 결제가 되었는지, 집까지 무사히 배송될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러나 쇼핑몰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맨날 개소리를 한다. 왜 통일은 지지부진하고 모호하며 어지러운가? 누군가가 통일을 가지고 사기를 쳤기 때문이다.

2. 통일은 사기다

통일은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떨어지는 음료수가 아니다. 통일이라는 시원한 음료수를 먹으려고 투입구에 동전을 넣으면 안내 문구가 뜬다. <공인인증서를 넣으십시오> 그리고 공인인증서를 발급받는 방법이 쭈욱 나열된다. 자판기는 음료수를 팔지만 자판기가 취급하지 않는 다른 종류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음료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의 폐기 그리고 주둔군의 점령지 반환, 피점령지에 뿌리내린 지배 시스템의 해체, 괴뢰 정부가 이식한 구성원들에 대한 역사인식의 전면적인 수정이 그 전제 조건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분단과 통일이라는 문제를 던져주었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풀어야 한다. 남과 북은 이 민족문제의 당사자다. 그러나 남쪽은 아메리카의 괴뢰 정부로 기능하는 것을 선택했으므로 당사자의 지위를 상실했다. 자격 조건을 상실한 자가 통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기다.

3. 남한 정부가 이해하는 통일

조선, 남한, 아메리카가 있다. 통일은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면 물리적으로 분단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통일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면 괴뢰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통일의 전제 조건이 되는 점령군의 점령지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이 바닥에서 통일이 가능할까? 한국의 정치인들이 바라는 통일은 지가 계속 정치를 할 수 있는 바탕위에서의 통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통일된 한반도의 정치적 주체로서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주체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통일은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지향하는 통일과는 전혀 다른 통일이다. 고양이(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생선(통일)을 맡긴 격이다. 그러면 통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통일이라는 결과물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은 자치의 주체다. 남쪽은 괴뢰다. 남쪽에 있어 통일은 분단 상태의 종식이 아니라 괴뢰성의 지속을 의미한다.

4. 남한 정부의 두려움

가만히 있는 흰 공(미국)을 빨간 공(조선)이 친다. 지금까지 노란 공(남한)은 빨간 공과 흰 공 사이에서 얼쩡거렸다. 빨간 공이 흰 공을 직접 타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빨간 공의 질량과 속도에 따라 흰 공은 거의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갈 수도 있다. 노란 공 때문에 빨간 공이 흰 공을 직접 타격하지 않고 빗겨 치게 되면 흰 공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빨간 공이 튕겨져 나갈 수 있다. 현재 조선은 노란 공 위를 타넘어 가격하든 벽면을 우회하든 직접 흰 공을 타격할 모든 기술을 갖추고 있다. 즉 빨간 공은 흰 공을 밀어내고 흰 공이 있던 자리에 완전히 멈춰 설 수 있는 기술적 단계에 도달했다. 남한 정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경계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조선의 힘이 미국의 힘을 대체하는 상황, 이것을 그들은 가장 두려워한다. 자신들의 가면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5. 남한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그동안 한 일은 이랬다. 뒤에서 귀순이니 탈북이니 원점타격이니 수뇌부제거니 한미연합훈련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앞에서 평화니 번영이니 하는 실체도 없는 이야기를 진지한 자세로 떠들어댔다. 관계개선을 목표로 한다면서 뒤에선 험담을 늘어놓았다. 앞에서 미소 지으며 악수해놓고 뒤에선 한미연합훈련을 벌려놓고 미제 무기를 사들였다. 실제로는 대결을 지향하면서 통일이니 평화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가면을 썼다. 우리 사회는 북녘과 가까워지려는 시늉만 할 뿐 실제로는 북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통일을 꿈꾸지 않는다. 2019년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한미 양국군 주요 지휘관을 불러 “한미동맹은 결코 한시적인 동맹이 아니라, 계속해서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해 가야 할 영원한 동맹이며 한미 양국의 위대한 동맹을 위해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말했다. 남한 정부는 아메리카가 설정한 허름한 울타리가 무너져도 타고 넘을 수 없다. 남쪽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의 울타리를 허물지 못하는 것과 같다.

6. 맺음말

아메리카는 남한 정부에 있어 절대적인 신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성경이다. 괴뢰 정부의 국회 구성원들은 여/야로 나뉘어 있는 듯 보이나 모두 한미동맹이라는 신앙을 공유하는 종교인들이다.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은 미국이 한국에 이식하고 구축한 안전한 대리통치 시스템을 그냥 이용하기만 하면 되지,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 필요가 없다. 이건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의 군인들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은 모두 정치적 능력이 미비하거나 작전 수행능력이 형편없다. 그들은 미국이 마련해 놓은 정치군사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성장하거나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

통일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통일을 얻기 위해 구성원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때 가능한 상상이다. 그 선결조건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통일에 따른 이익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기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그 선결조건이란 고구마 줄기처럼 퍼져 있다. 하나를 해결하려면 다른 하나를 해결해야 하는 양파 벗기기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 할 정치적 주체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통일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 이제 통일은 우리의 외부로부터 강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선결조건이라는 난제를 처리할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뜻이다. 조선은 남한 정부가 가진 정체성을 가리고 있는 가면을 벗겨버릴 방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나 정의롭고 착한 놈이예요>라는 사기를 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잘못을 저지른 자 앞에 펼쳐진 길은 두 갈래다. 반성하고 뉘우치는 길이 그 하나다. 이 길은 자신의 정체성을 수정하는 길이다. 나머지 하나의 길은 합리화하고 위선의 가면을 쓰는 길이다. 이 길에선 분리된 자아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조선은 가시밭길을 걸으며 그들에게 부과된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남한 정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그들에게 부과된 중대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본 적이 없다.

탁류 / 서프라이즈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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