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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규명·명예회복
시민신문  | 등록:2019-11-05 10:03:16 | 최종:2019-11-05 10:09: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0.19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규명·명예회복
여순10.19사건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는 서동용 변호사를 만나다
(시민신문 / 박주식 기자 / 2019-11-03)

매년 10월이면 전남동부지역은 현대사의 비극 여순10.19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올해도 여순사건 71주년이 되는 해로서 지난 10월 19일에 순천 장대공원(여순사건 당시 격전지)에서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허석 순천시장, 전남동부 6개 지역 유족회, 제주4.3유족회, 한국전쟁전후전국유족회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추념식이 열렸다. 그동안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에도 참석한 서동용 변호사를 만났다.
(서동용 변호사는 본인은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도 아닌데 여순사건을 얘기한다는 게 조심스럽다며 한참 망설이다가 인터뷰에 응했다)

서동용 변호사님,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인사 한마디 하시죠

사실 저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도 아닌데 여순사건 역사를 말한다는 게 너무 조심스럽지만, 우리 지역의 아픈 역사이고 대한민국의 현대를 드러내는 역사여서 평소 관심을 갖고 공부한 만큼 들은 증언을 중심으로 아는 정도에서 말씀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양해구하며 얘기해보겠습니다.

▲서동용 변호사

1. 여순10.19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역사인지

해방 정국에서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실시를 발표하자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고, 제주도에서도 1948년 4월 3일 경찰 및 서북청년단에 의한 양민학살중지, 단독정부수립반대, 민족통일 등을 내걸고 봉기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계속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이 제주4.3사건이다. 제주 도민의 봉기가 계속 거세지자 이승만과 미군정은 전남 여수에 주둔한 14연대에 제주도 진압출동명령을 내렸고, 1948년 10월 19일 14연대 군인들은 ‘우리는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며 진압출동명령을 거부하고 총구를 돌린 것이 바로 여순10.19사건의 시작이다. 이들은 국군 및 경찰과 교전을 하며 여수와 순천을 장악하였으나 곧 막강한 화력을 지닌 진압군에 패퇴하게 된다. 패퇴한 군인들은 생존을 위해 산으로 숨어들고 그때부터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까지 군경에 의한 토벌작전은 계속되고 무수한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게 된다.

1949년 전남도 집계에 의하면 무고한 주민 1만 1131명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여순반란사건으로 부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그밖에 여순10.19사건이라고 도 하고 여순항쟁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사건의 명칭을 무어라고 하는가 는 그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사건 직후부터 ‘여순반란사건’이라는 명칭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왕조시대에나 쓰는 ‘반란’과 같은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거니와, 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의한 양민학살중지, 단독정부 수립반대, 민족통일 등을 주장하는 제주도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거부한 것을 반란이라 할 수는 없다. 반란사건이라는 명칭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제주도민들의 정당한 주장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이승만과 미군정의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항거의 성격을 강조하며 여순항쟁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명칭을 무어라 하건 간에 이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양민학살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1995년부터는 ‘여순10·19사건’ 또는 ‘여수·순천10·19사건’이라고 주로 부르고 있다.

3. 국가에 의한 양민학살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수에서 거병하여 순천으로 향한 14연대 군인들은 이내 막강한 화력을 지닌 진압군에 밀리게 되고, 생존을 위해 급기야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산은 전투를 위한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버티는 곳이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산사람들은 야음을 틈타 산에서 내려와 먹을 것을 챙겨가야 했다. 민가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이 든 ‘총이 무서워서’, 또는 그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거나 안 됐다는 생각에’ 적으나마 곡식을 내어주었던 게 선한 사람들이라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경찰과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반란군’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 먹을 것을 내어주거나 길을 안내해 준 사람을 색출했다.

밤과 낮이 극명하게 갈라진 이 상황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견뎠지만, 이를 평소 악감정이 있던 사람을 제거하는데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과 군인들이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반란군’을 색출한다며 윽박지르는 동안 겨드랑이 아래 감춘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기만 하면 그 사람의 목숨은 그날로 끝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공을 세워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욱 날뛰었고 “어느 동네에 반란군이 많다”는 제보 한 마디에 한 동네 사람 전부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죽어간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

국가공권력이 안보 내지 치안을 앞세워 행한 폭력 앞에 양민들이 덧없이 죽어간 것이다. 국가는 14연대 봉기군을 반란군으로 몰고 ‘반란군’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웠지만 오히려 주민들을 ‘잠재적 반란군’으로 낙인찍어 제거하는 데 더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고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낙인이 자식에게 전가될까 두려워 진실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그렇게 71년이 흘렀다.

▲지난 10월 19일에 순천 장대공원(여순사건 당시 격전지)에서 열린 합동추념식

4. 올해 대법원이 여순사건 재심 개시 결정을 하여 재심이 진행 중이다. 재심 개시의 이유는 무엇이고, 재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1948년 11월 14일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체포돼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 즈음 사형이 집행되었던 3명의 유족들이 2013년 재심 신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이 2016년 10월 재심개시 결정을 하였으나 검사가 항고, 재항고를 거듭하면서 재심개시가 늦어지다가 대법원이 2019년 3월 재심개시를 확정하는 결정을 하였다. 재심개시 신청부터 6년이 훨씬 더 지난 일이다.

대법원 결정문을 보면 재심개시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대법관들 사이에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재심신청을 하였던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문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기록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으나, 판결문이 남아 있지 않다보니, 이들이 실제 재판을 받고 죽은 것인지, 아니면 대다수 피해자들처럼 즉석에서 처형되거나 연행된 후 조사를 받고 즉결대상자로 결정되어 사살된 것인지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심이란 확정된 재판을 사후에 다시 하는 것이므로, 재판도 받지 않고 즉결처분으로 사망하였다면 재심재판을 열 수가 없다.

대법원이 논란 끝에 재심개시를 확정한 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재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법원은 유족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한다며 신중하게 심리하여 올바른 판결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사실 판결문도, 공소장도 남아 있지 않은 사건의 유·무죄를 다시 판단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지난 10월 28일 4차 공판준비기일에 이르러서야 검찰은 판결집행명령서와 역사적 사실 등에 의거 했다며 공소사실을 특정했다. 유족과 대책위원회가 국가기록원 등에서 입수한 판결집행명령서 등을 바탕으로 공소사실을 특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공소사실이 특정됨으로써 11월 25일 오후 2시 순천법원 316호 법정에서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유·무죄에 관한 본격 공방이 시작된다. 피고인들에게 무죄판결이 선고되길 바라지만, 유죄판결이 선고될 당시의 공소장이 아니라 나중에 새로 만들어진 공소장으로 재판을 하다 보니 검사의 공소제기가 법률규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공소기각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소기각의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 유죄판결이 없어지게 되는 효과는 있으나, 피고인들이 내란 내지 국권문란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법원의 확정적 판단을 바라 온 유족들의 피맺힌 요구에는 못 미치는 재판이 된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반란군에 동조했다’며 잡혀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된 사람의 숫자가 재판을 거쳐 처벌을 받은 사람보다 훨씬 많다. 이들의 죽음은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풀 수 없거니와,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도 않아 죽음의 진실을 알 수도 없다.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히려면 특별법을 통할 수밖에 없다.

5. 특별법 제정 요구가 계속되어 왔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활동이 중단(이명박 정권 때 조사기간 연장을 허용하지 않아)된 2010년까지 여러 사건을 조사하였는데, 여순사건의 진실 중 일부도 이 위원회의 조사로 밝혀졌다. 이런 이유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재개하여 여순사건의 진실규명을 마저 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잘 알려진 대로 제주4.3사건의 경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실규명과 피해자명예회복을 상당히 할 수 있었다. 여순10.19사건은 제주4.3사건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만큼 여순10.19사건은 제주4.3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실규명을 하여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5개의 여순 특별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어느 것 하나 상임위 심의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지만, 법률안을 발의한 의원들도 발의만 해 놓고 팔짱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갖는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법률안을 각각 발의한 의원들과 협의하여 단일안을 만들고, 법안통과에 동의하도록 정부부처를 설득하는 등 노력을 하여야 한다. 법은 국회에서 발의되고 통과되어야 결정이 되는 만큼 국회의원들의 역할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특히 그 지역 국회의원들의 책무인 만큼 발로 뛰어서 결판을 내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가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고, 전 정책위 의장인 김태년 의원도 제주4.3사건과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별도의 특별법 제정이 맞다고 확언한 바 있지만 아직 들려오는 결정타는 없다.

6. 오늘 우리는 여순10.19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나

여순10.19사건을 좌우이념대립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한다. ‘여순10.19사건은 이념투쟁이 아니라 생명살상과 인권 유린에 항거하였고 제대로 된 국가를 요구한 국민들의 외침인 대한민국 역사인 것이다. 그런 국민들이 국가공권력에 의해서 왜 죽어야 한지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학살을 당하였다. 말한 대로 이는 국가폭력에 의한 양민학살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당시의 군경도 국가에 의한 양민학살에 동원된 사람들로서 그들 중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향할 때는 국가체계를 유지하기 필요한 최소한에 머물러야 함에도, 여순10.19사건 당시 국가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잠재적 빨갱이’로 낙인찍어 죽이기에 바빴다. 그 과정에서 이웃끼리도 적이 되어 마음의 원한을 담고 71년이 지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은 개개인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인권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국가와 국민의 정의로운 역사로 바로 잡자는 것이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며,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한다.’ 하루빨리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10.19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을 이루어 상생의 지역공동체로 나아가길 바라며 저 또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출처: http://www.gycitizen.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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