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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생존자‘ 허구를 통해 보여주는 우리의 현실
권종상  | 등록:2019-08-08 11:31:36 | 최종:2019-08-08 11:35: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때로는 그냥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해 보이는 드라마 하나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들놈이 가입한 넷플릭스 덕에 한국 드라마들이나 영화들도 종종 볼 수 있게 됐는데, 요즘 보는 '60일 지정생존자'가 그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미국 드라마의 한국판이고, 장면장면이 미국판 지정생존자의 한국판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판에서 볼 수 없는 긴박감과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분단된 국가라는 현실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어느정도 감정이입이 가능하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도 많이 나오겠지만, 그 드라마적인 설정이란 장치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면 저는 그 의도가 성공이라고 봅니다. 제작사가 드라마 시작 전 이것이 드라마일 뿐이며 현실과는 상관없다는 전제를 깔아두지만, 시청자들이 현실상황의 오버랩 없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도 저녁 먹고 아내와 함께 이 드라마를 시청하며 손에 땀을 쥐었으니, 저는 감정이입이 더 쉬운 것일까요? 어쨌든 어제 에피소드 말미에서, 국정원 대테러센터의 한나경 요원은 박무진 대행에게 "테러의 이유를 알았다"며 보고를 합니다. 테러의 목적은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다시 냉전 상황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

이 드라마에선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VIP'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요인들에 대한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조직과 힘을 가진 인물이고, 군 출신의 무소속 의원을 대통령 대행으로 앉힐 수 있는 인물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절대로 바라지 않고, 냉전상황을 그대로 유지시켜 이익을 보는 인물. 우리 안에 그런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지금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과의 대화를 하라며 실질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우리 내부의 인물들이 겹쳐 보이지 않습니까?

극 초반에 극우단체 회원들과 가상의 사법권력인 '특경대' 대원들이 국회에 가해진 테러를 빌미로 새터민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국판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이슬람들에게 그런 폭력들이 가해지지요. 국가의 안전을 빌미로 행해질 수 있는 국가폭력의 내용은 저를 섬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일 북미가 지금까지 쌓아 온 신뢰를 모두 깨고 최악의 경우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미국으로 쏴 버리는 상황을 가정해 보지요. 혹시 그게 미국 본토로 날아오거나, 아니면 최소한 하와이나 괌이라도 타격한다고 상상하면, 여기에 사는 재미 동포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코리아타운은 아마 폭동에 준하는 광란이 휩쓸 것이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2차 대전 때, 미국은 스스로 그럴 수 있는 나라임을 보여 줬었습니다. 시애틀과 그 인근에서만 해도 7천명에 달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들의 재산은 시민권 소유 여부에 관계 없이 몰수당했었습니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대략 맞을 겁니다. 단지 Korean 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 테러가 횡행할 겁니다. 9.11 직후 이슬람 신도라는 이유로, 단지 터번을 썼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거나, 심지어는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이슬람이 아니라, 인도 펀잡 주 출신의 시크교도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인들의 무지가 엉뚱한 사람을 죽인 겁니다.

아베의 목적은 한반도에서 냉전을 유지하는 겁니다. 한국을 견제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저들은 북미간의 평화, 남북한간의 평화가 정착될 경우 그들이 시대에 뒤쳐질 뿐 아니라 그들의 '정상국가화'라는 이상한 야욕을 현실화하려는 그들의 목적에 방해가 될 것을 걱정하는 겁니다. 어제 본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쯤에서 임시 대행인 오영석 장관이 미국의 입맛에 맞게 이지스 함 항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치 강정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오버랩시켜 놓은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우리가 강정을 잊은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문득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베와 싸우는 건, 그렇게 정치권력을 입법권력까지 완전히 교체하려는 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직 우리는 강대국의 입김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더라도, 이 땅의 새로운 주체가 되어 더 이상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임을,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서 진정한 상수가 돼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임을 우리가 스스로 인식해야 합니다.

아무튼, 다음 주 초, 드라마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군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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