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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0
전두환, 이범석에게 버마 방문 강요
편집국  | 등록:2021-11-04 11:39:17 | 최종:2021-11-05 08:42: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20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20. 전두환, 이범석에게 버마 방문 강요

‘1983 버마 공작’은 1981년 8월 시작된 ‘812 계획’으로 시작됐지만 그 음모는 전두환 정권과 레이건 정권 핵심 인사 몇몇만 아는 수준에서 매우 은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1982년 10월 9일 버마 외상을 부르고 1983년 4월 버마 교통체신부 장관과 철도청장을 데려와   ‘버마에 대한 체신 사업 지원 및 차관 제공’을 논의할 때까지, 5월 중순 버마 군 정보국장을 쳐내 버마 정보 권력을 무력화시킬 때까지도 전두환네와 미국이 획책하는 음모는커녕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계획 자체가 비밀이었다.

이렇게 물밑으로만 진행되던 전두환의 버마행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전두환이 이범석 외무부장관에게 자신의 순방 계획에 없던 버마 일정을 끼워 넣을 것을 지시하면서부터였다. 이때서야 비로소 전두환의 버마행을 위한 형식적 외교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버마 군 정보국장 틴 우가 숙청된 날이 5월 17일, 대통령 전두환이 이범석 장관에게 서남아.대양주 순방 일정에 버마를 끼워 넣을 것을 지시한 날이 5월 20일이다. 이범석은 이날 저녁 버마 주재 한국대사관에 대통령의 방문 가능 여부를 알아보라는 친전(親電)을 보냈고, 바로 다음날인 5월 21일 버마주재 한국대사 이계철은 ‘노 프라블럼’ 취지의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닷새 뒤인 5월 25일 대통령이 10월 8∼11일 버마 국빈방문 문제를 버마 정부와 협의하라는 급전이 가고 다시 닷새 뒤 버마 정부가 ‘오우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렇게 버마 내부 권력의 진공을 만들고 그 틈에 버마와 한국 두 나라 핵심 권력을 움직여 매우 신속하게 중대 사안을 결정짓게 만듦으로써 버마 음모를 현실화하기 위한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이다.

이범석 장관이 5월 20일 전통의 최종 결재를 받기 위해 들고 간 서남아.대양주 순방 계획(안)은 최병효 전 대사(당시 서남아과 서기관)가 작성해 장관 결재를 거쳐 총리(김상협) 결재까지 받아 놓은 것이었다. 이렇게 완성한 순방 계획에 버마를 끼워 넣으라고 지시를 내린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최병효 책 44쪽)

( 라종일책 68쪽)

『초강 이범석 평전』을 쓴 이영섭은 버마 방문 결정을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아웅산 폭파 테러를 떠나서도 미얀마 방문 계획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 ...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만 난무할 뿐 확실한 답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 계획 수립에 근접했던 당사자들이 극구 언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 책 50∼51쪽)

이범석은 전두환의 이런 난폭한 지시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면서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앞글(4편)에서도 살펴봤지만 ‘1983 버마 사건’의 흑막을 비추는 중요한 한 장면이니 다시 보자.

( 최병효 책 51쪽 / 이범석의 대통령 보고 자리에는 함병춘 비서실장과 장세동 경호실장 및 그의 육사 동기(16)인 정순덕(鄭順德) 정무1수석 등이 배석했을 것이고, 이런 분위기에서 대통령의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범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정부의 의사결정 체계를 유린하는 방식으로 시작된 전두환의 버마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평소 일처리가 굼뜨기로 유명한 버마 정부가 전례 없이 신속하게 전두환의 국빈방문 의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지 한국대사관 측이나 서울 외무부 관계자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상했다’고 증언한다. 당시 버마대사관 참사였던 송영식 씨의 증언.

[국가원수를 해외에서 모시는 일은 외교관으로서 최고로 영광스런 일이다. 그러나 1975년 대사관을 개설한 이래 국무총리는 고사하고 외무장관, 심지어 외무차관급 인사도 방문하지 않은 나라에 갑작스레 국가원수의 방문은 무리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 특히 이 대사는[이계철 주버마대사] 먼저 각료급이나 총리급 인사의 방문을 통해 국가원수가 방문할 정도의 기반이 착실하게 조성되지 않은 상태인 점을 꺼림칙하게 생각해 몇 차례나 우려를 표시했다.] (송영식 책 161쪽)

그는 또 이계철 대사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송영식 책 227쪽)

서울 외무부도 마찬가지였다. 최 전 대사 자신도 이 ‘기습 결정’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 최병효 책 46쪽)

정확한 지적이다. 정당한 이유로 버마에 가려 했다면 그렇게 은밀하게 추진하다 어느 날 갑자기, 다 된 밥에 재 뿌리듯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 지시를 내릴 이유가 없다. 최 전 대사는 또 전두환의 이런 난폭한 지시에 이범석 장관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부득불 버마주재 한국대사관에 ‘대통령의 방문 가능 여부’를 묻는 친전을 보낼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최병효 책 25 쪽)

( 최병효 책 26 쪽)

뿐만 아니라 최 전 대사는 이계철 대사가 불안감을 감추고 그렇게 빨리 본국에 회신을 보낸 데 대해 놀랐다며 이는 “스스로를 배신하는 결정”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최병효 책 26 쪽)

(최병효 책 50 쪽)

최 전 대사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그는 수행단 일원으로 버마행 비행기에 탈 때도 문제의 서류들을 가방에 넣고 갔다고 밝혔다.

( 최병효 책 27 쪽)

최 전 대사는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버마행이 결정된 이유를 ‘비선’(秘線)에서 찾았다.

( 최병효 책 46 쪽)

누군가 비정상적으로 버마행을 결정했다는 최 전 대사의 통찰은 나름 예리했다. 그러나 그의 예리함은 여기까지. 그가 찾은 비선은 고작 허문도 한 사람이었다. 나무 한 그루를 보는 눈은 있지만, 그 옆에 무슨 나무가 서 있는지, 또 그 옆으로 어떤 나무 군락이 펼쳐져 있는지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가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못 본 것이 또 있다. 이영섭(李英燮)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국정자문위원단이 1983년 5월 25∼28일 나흘 간 버마를 방문한 사실에 대해서다.

[【랭군=로이터.연합】이영섭 국정자문위원(전 대법원장)을 단장으로 한 한국 정부사절단 4명이 25일 버마에 도착했다. 이 사절단은 남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유대 강화를 모색하기 위해 버마를 첫 기착지로 방글라데시.인도.파키스탄 등을 순방한다. 이 사절단은 4일 동안 버마에 머물면서 산 유 대통령과 마웅 마웅 가 수상 등 정부 고위 관리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이영섭 국정자문위원 등 4명 남아시아 순방길 첫 버마 착(着)」<경향신문> 1983.5.27)

최 전 대사는 전두환이 이범석 장관에게 버마 방문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이들 자문위원단의 버마 방문이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위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고는 쓴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 최병효 책 20쪽)

당시에는 모든 정황이 불명확했고 그 누구도 ‘버마 흉계’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이들의 버마 방문은 그저 외유성이려니 했단다.

( 최병효 책 29쪽)

그러나 38년이 지난 지금 최 전 대사는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우선 이들의 버마 방문에 대해 현지 한국대사관 측이 서울 본청에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은 이유를 이상히 여긴다.

( 최병효 책 31쪽)

그는 책 출간 뒤 여러 신문들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버마 한국 대사관 참사관이 통역 지원까지 했어요. 그때 외무부 몰래 버마 방문을 허문도(당시 문화공보부 차관)와 협의하고 있던 전두환 쪽에서 보고하지 말라고 했겠죠.”] (<한겨레신문> 2020.12.29)

최 전 대사는 또 이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 관련 문서가 사라졌다는데 대해서도 의문을 갖는다.

( 최병효 책 29쪽)

이처럼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은 전두환의 버마 방문 계획과 마찬가지로 온통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 베일이 얼마나 두터운지 지금도 당시 대법원장 일행이 버마에 가 누구를 만났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들의 버마 방문을 책임지고 안내했던 송영식 당시 버마대사관 참사는 이들이 네 윈을 만난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들을 인솔했던 김두영 (金斗永)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이들이 만난 이는 네 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최병효 책 30쪽)

이에 대해 최 전 대사는 송영식 참사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며 김 전 비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 최병효 책 30쪽)

최 전 대사의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다. 버마가 순방국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 대법원장 일행이 버마에 가는 일정이 먼저 잡히고 곧바로 대통령이 버마 방문을 지시한 내막은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최 전 대사의 의구심은 여기까지다. 그는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의구심을 스스로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한다. 전두환의 버마 방문 목적을 ‘네 윈의 상왕 노릇 따라배우기’로 왜곡한 것처럼,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 목적도 그것 때문일 것이라고 눙쳐버린다.

( 최병효책 31쪽)

( 최병효책 32쪽)

( 최병효책 32쪽)

진주로 가다 삼천포로 빠진 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 전 대사는 버마 정보국장의 숙청된 때에 맞춰 전두환이 이범석에게 버마 방문을 지시한 사실 등 여러 수상한 정황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수상쩍은 일들과 동시에 진행된 이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 역시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넘길 밖에! 좀 제대로, 자세히 들여다보자.

최 전 대사는 국정자문위원들의 버마 방문을 주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은 “대통령의 버마 방문 추가 지시를 받은 5월 20일보아 열흘쯤 전”(29쪽) 또는 “그 십여 일 전쯤”(20쪽)이라고 책에 썼다. 이 전 대법원장 등이 버마에 도착한 4월 25일은 전두환이 이범석에게 버마행을 지시한 지 닷새만이고, 이계철 주버마대사가 본국에 ‘대통령 방문 노 프라블럼’ 이라는 답신을 보낸 지(4월 21일) 나흘 만이며, 대통령이 10월 8일 버마에 도착해 11일 출국하는 국빈방문 일정을 협의하라는 이 장관의 두 번째 친전이 발송되기(5월 26일) 하루 전이다.

그렇다면 전두환네와 미국은 ‘버마 자작테러 각본’을 1983년 5월 초 최종 확정한 뒤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버마 정보 체계를 마비시키는 공작에 착수해 5월 17일 버마 국무회의에서 정보국장과 그의 측근들을 숙청한 것이고, 그럼으로써 버마의 정보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다음 한국 외교부와 버마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형식적으로 버마 정부와 전두환의 방문 절차를 밟은 것이다.

( 최병효 책 29쪽)

이런 뒷공작이 없었다면 한국 총리나 외무장관보다 먼저 한국 대통령이 오겠다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요구에 버마 정부가 너무나도 신속하게 “오우케이” 했을 리 없다. 

( 최병효 책 28쪽)

( 송영식 책 164 쪽)

이렇듯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 방문은 전두환의 버마 방문을 성사시켜 끔찍한 자작테러를 벌이기 위한 정지작업 즉 ‘기름칠’이었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과 홍경만 전 대한변협 회장, 고재필(高在珌) 변호사(전 국회 법사위원장, 보사부장관) 등 3인을 들러리로 앞에 세워 놓고 은밀하게 뒷공작을 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인솔하고 버마에 다녀 온 김두영 청와대 비서관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이영섭 전 대법원장 일행이 네 윈 대신 산 유를 만났다는 그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하릴없이 소일하는 국정자문위원들이 누굴 만난들 그게 무에 중요하가. 중요한 것은 이들을 버마에 보낸 목적이고 이들을 데리고 간 이의 역할이다. 최 전 대사는 김두영 비서관의 역할을 허문도의 심부름 정도로 평가절하한다.

( 최병효 책 31쪽)

전 대법원장 일행이 전두환의 퇴임 후 상왕 놀이를 위해 버마 헌법을 연구하러 갔다는 투다. 최 전 대사는 전두환과 이영섭 전 대법원장 일행의 버마행이 어떤 비선의 작계(作計) 때문임을 간파했지만, 그 비선의 실체를 파고드는 대신 어떤 한 사람(허문도)을 지목할 뿐이다. 희대의 국가조작테러를 획책한 ‘물괴’급 비선을 찾는 대신 단지 전두환에게 ‘버마에 가셔야죠’라고 알랑거렸을 법한 이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투미하게 사태를 파악할 일이 아니다. 이영섭 일행의 버마행은 전두환의 버마행과 무관하다고 강변하는 김두영 전 비서관의 말을 뒤집고 또 뒤집어 봐야 한다.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김 전 비서관은 ‘대통령 3대를 근접 보좌한 이’로 통한다. 1990년 12월호 <월간조선> 글과 1991년 8월호 <가정조선> 인터뷰에서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 3인(박정희.최규하.전두환)의 ‘인간적 면모’ 찬양할 때부터 그의 역할은 그렇게 규정됐다. 그렇게 규정됐다는 말은 그가 박정희나 전두환의 ‘인간적 면모’ 외에는 어떤 것도 발설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성심껏 보좌한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아는 그에게서 우리 역사의 귀태(鬼胎)인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위 두 잡지 인터뷰 이후 20년 가까이 거의 은둔자처럼 지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9년부터 박정희와 육영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박정희 신화’ 부활에 앞장섰고, 박근혜 시절인 2014년『인간 육영수』를 출간했다. 누군가 그에게 부과한 역사적 과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가까이에서 본 인간 전두환, 인간 이순자』(가제)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에게서 전두환 정권의 반역적 국가조작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83년 5월 말 그와 전 대법원장 일행이 버마에 간 것은 ‘1983 버마 사건’ 결행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추리할 수 있다. 이들의 버마 행각을 여러 각도에서 의심했던 최 전 대사도 마땅히 그렇게 추리했어야 한다. (21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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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RI  2021년11월5일 00시38분    
!
(18) (-10)
 [2/2]   stevan  2021년11월7일 17시14분    
마침 위에서 인용한 책이 모두 있어서 하나하나 대조.확인해 가며 읽어 보았는데, 강 기자님의 관찰력과 추리력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최 전 대사가 <1983 버마>를 논박하기 위해 쓴, 이른바 <순국>이 오히려 <1983 버마>의 논지를 더욱 굳혀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1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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