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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19
버마 군정보국 해체의 수수께끼
강진욱  | 등록:2021-10-19 10:19:38 | 최종:2021-10-19 11:57: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19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9. 버마 군정보국 해체의 수수께끼

전두환이 레이건과 암호와도 같은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83년 북괴 테러’ ‘10월 IPU 방해 테러’를 발설하던 5월, 버마에서는 군(軍)정보국) 국장 틴 우(Tin U) 중장이 숙청되고 그 조직이 해체되면서 정보 및 보안 체계가 마비되는 지경에 처했다.

전두환네가 1981년 8월 비밀리에 ‘북파공작 812 계획’을 개시할 즈음 네 윈의 대통령 양위(讓位) 공작으로 시작된 버마 권력 진공화 작업이 버마 군 정보국 해체로 완결된 것이다. 버마 권력 진공화 작업의 완결은 ‘1983 버마 사건’을 조작하는데 필요한 충분조건의 완성 즉 음모를 꾸민 자들이 한 판 놀아 볼 멍석이 깔린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판을 까는’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판을 짜는’ 작업이 시작된다. 전두환의 서남아.대양주 순방 일정에 예정에 없던 버마를 끼워 넣은 것이다. 이렇게 ‘공수 협잡 음모’는 바야흐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버마에 판이 깔리는 작업 즉, 버마 군 정보국장 숙청부터 보자. 버마대사관 참사였던 송영식은 이렇게 회고한다.

( 송영식『나의 이야기』 228 쪽)

송영식 전 대사는 또 “틴 우와 휘하 정보국 간부들이 줄줄이 제거됨으로써 미얀마의 정보망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나 짐작한다”고 강조했다(위 책 211쪽). 사건 당시 외국 언론이나 버마 주재 외교관들도 틴 우의 숙청이 없었다면 아웅 산 묘소 테러는 일어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 강진욱 책 79쪽)

버마 현지 신문들도 틴 우 국장의 숙청에 주목했다.

[버마 신문들은 네 윈 직계로 제2인자로 부각됐다 실각한 틴 우 재판에 많은 지면을 할애 ... 틴 우 준장은 버마 국가정보국(NIB) 국장 겸 버마 유일 합법 정당인 사회주의계획당(BSPP) 총서기, 국회의원, 산유 대통령 군사보좌관 등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다 부정부패 혐의로 지난 5월 숙청 ... 그의 동조 세력인 보 니 내무종교상, 군 정보처장 칸 니운트, 랭군 군사령관을 지내다 군병참감이 된 미오 아웅 준장, 수산축산상 틴 세인 소장, 주태국대사 소에 민트 등도 제거됐다. 틴 우 세력의 제거로 국가정보 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아웅 산 폭발에 비쳐 본 오늘 버마 - 흔들리는 정정(政情)」<동아일보> 1983.10.20)

<뉴욕타임스>도 “틴 우 중장 숙청으로 인해 버마의 정보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짚었다.

( 강진욱 책 79쪽)

‘버마 전문가’ 버틸 린트너(Bertil Lintner)는『Outrage - Burm’s Struggle for Democracy』(분노 - 민주주의를 향한 버마의 투쟁)에서‘ 틴 우 중장의 숙청 날짜가 5월 17일이라고 밝히면서 “틴 우가 숙청되지 않았더라면 아웅 산 묘소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린트너 책 65∼66쪽을 요약한 것이다.
 

( 강진욱 책 80쪽)

한국 신문 기자들도 보기에도 버마 현지 신문이나 현지 외교관 등과 마찬가지로 틴 우의 숙청과 폭파 사건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 강진욱 책 81쪽)

혹시, 틴 우의 숙청이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조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까. 예정에도 없던 버마 방문이 갑자기 결정된 것도 전두환 또는 그 패거리 누군가의 돌발 제안 때문이고, 전두환의 비서실장(함병춘)이 버마 대사(이계철)의 차를 타고 싸이카를 대동해 대통령 행차를 연출하고 전두환과 그의 경호실장 장세동은 늦게 출발해 화를 모면한 것 등등을 모두 ‘우연’이니 ‘천우신조’라 하듯이 틴우의 숙청도 그냥 우연으로 볼 수는 없을까. 아니다. 버마 군 정보국장 숙청과 정보국 해체는 분명 ‘1983 버마 사건’을 위한 정지 작업이었다. 그런데 최 전 대사는 틴 우 숙청과 버마 사건과의 연관성을 애써 부정한다.

( 최병효책 134 쪽)

최 전 대사는 틴 우 숙청이 아웅 산 묘소 사건을 유발했다는 지적을 ‘일개 주장’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준비하는 동안 “양국 간 경호협조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써 놓고는 “경호협조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 정보국장의 해임에서 연유한 것인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발을 뺀다. 왜 그럴까. 당시 버마 주재 외교관들이나 현지 언론 및 미국 신문들까지 틴 우의 숙청이 아웅 산 묘소 사건 발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한 사실을 왜 외면할까.

최 전 대사는 버마 측이 경호 문제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버마 외무장관이 조문 사절로 서울에 와 “한국 측이 현장 점검을 다 했다”고 한 이야기를 직접 들은 이가 바로 그다. 그가 책에서 직접 밝힌 이야기다. 그런데도 “경호협조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틴 우 숙청과 아웅 산 묘소 테러의 연관성을 짚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피상적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그 이유는 빤하다. 그렇게 하면 종국에는 이 사건이 북측의 소행이라는 ‘정해진 결론’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정해진 결론을 맹신한 상태에서 책을 쓰다 보니 그 결론과 상충하는 정황이나 자칫 그 결론을 허물 수 있는 증거들을 부정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최 전 대사가 틴 우 국장의 숙청일(5월 17일) 명시하지 않고 두루뭉술 표현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1983.5.18자 주버마대사 보고에 의하면 네 윈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버마 국가정보국장 틴 우 장군이 1983.5월 부정부패로 사임했다”(134쪽),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 직전인 1983.5월 초에 당시 제2인자인 틴우 장군이 숙청되면서 ... ”(264쪽)

틴 우 숙청에 관해 버마대사관이 5월 18일 문건으로 보고했음을 확인하고도 틴 우가 사임 시점을 “5월”이라고 쓰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서술이다. 대사관 보고 문건에도 분명 5월 17일 버마 국무회의 결정 사항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틴 우 장군의 숙청일을 정확히 짚고 뒤이어 일어나는 수상한 정황을 들여다보면 이 사건의 배후가 전두환 정권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다음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전두환이 이범석 외무장관에게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 일정을 추가하라고 하명한 날이 틴 우 숙청 사흘 뒤인 5월 20일이다. 이 ‘사흘’에 착안하면 전두환네가 - 그리고 미국이 - 버마 권력의 진공 속으로 틈입(闖入)했다는 인식이 싹트고 곧바로 왜 그랬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여기에, 최 전 대사도 너무 잘 알고 있듯이, 버마 정부와 전두환 정부 사이의 경호 문제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 최 전 대사가 보고 듣고 확인했듯이, 사건 당시 현장 점검은 모두 전두환네 경호팀이 했다는 사실이 더해지면 ‘1983 버마 사건’은 전두환네 자작극이라는 결론을 피해 갈 수가 없다.

사건의 전후 맥락과 새로이 드러나는 정황들을 세밀히 관찰하면 결국 자신의 믿음을 부정할 수밖에 없기에 최 전 대사는 그런 인식의 모험을 마다한 것이다. 그가 흘려버린, 그러나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팩트가 있다. 틴 우 중장이 숙청되고 ‘버마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약 5개월 동안 하급 장교(대령)가 버마 정보계의 수장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다.

( 최병효 책 264쪽)

군 정보국장 자리에 아웅코에 대령을 앉혔다가 버마 사건이 일어난 뒤 그를 날려버리고 새로 국방정보국(DDSI)을 만들어 그 자리에 중장급 인사를 앉혔다? 순간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어야 한다. 국가정보국을 해체했다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국방정보국으로 재편했다는 말은 결국 국가정보국이 관장하던 정보 및 치안 업무를 일시적으로(5개월 동안만) 마비시켜 그 새 외부 세력이 테러를 조작할 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준 것이고, 그 기간에 대령급 인사를 임시직으로 앉혀놓은 것 아닌가. 여기에 국가정보국장이 숙청된 틈에 전두환의 버마 방문 일정이 급조됐다는 엄연한 사실을 더하면 전두환네와 버마가 - 미국의 원격조정에 따라 - 공수협잡의 자작테러 음모를 꾸몄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이렇게 차츰차츰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을 그저 누가 숙청됐고 누가 새로 임명됐고 그 사이에 테러사건이 일어났고, 또 뭐가 없어지고 뭐가 새로 생겼다는 단편적 사실들만 나열하면 아무런 결론에 이를 수 없다. 최 전 대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단편적 사실들 사이에 숨겨진 역사의 행간을 재대로 읽었다면 그가 알고 있는 단편적 사실과 직접 연관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숙청당한 틴 우 중장 등과 버마 사건의 범인 강민철을 킨 뉸 중장이 특별관리했다는 사실을!

이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우연적이었다. 누가 드러내거나 밝히려 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꽁꽁 숨기고 감춰뒀던 것이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 첫 계기는 사건이 일어난 지 약 5년 뒤 버마에서 ‘88 민중 봉기’(1988년 8월 8일)가 일어났을 때 잠깐 나돈 강민철의 탈옥.석방설이었다. 강민철 등이 갇혀 있던 인세인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불이 난 틈에 강민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그 해 8월 30일 “강민철이 인세인교도소 폭동의 혼란을 틈타 탈옥했거나 버마 당국에 의해 석방됐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아웅산 테러범 강민철 탈옥.석방 가능성」<연합통신> 1988.8.30).

그러나 한국 정부는 곧바로 강민철이 다른 교도소로 이감됐다고 밝혔다. 강민철이 탈주했다는 보도에 대해 “현지 공관이 확인한 결과,버마 내무당국이 이같이 알려왔다”는 것이다(「아웅산 범인 강민철 탈주 안 해」<연합통신> 1988.8.31). 그렇게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났던 강민철의 탈옥.석방설의 정황이 2년 뒤인 1990년 출간된 린트너의 책『Outrage ... 』에 자세히 실려 있었다.

( 린트너 책 표지)

린트너는 “당시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버마 정보국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폭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2∼3일 전 강민철과 틴 우, 보 니 등 ‘버마에서 가장 유명한 특급 죄수 3명’(Burma's three best-known top security prisoners)이 인세인 교도소에서 야이 키 아잉(Yay Kyi Aing) 교도소로 조용히 옮겨졌다(quitely transferred)”고 밝혔다(120쪽). 

최 전 대사는 이런 사실도 그저 단편적 팩트로 넘겨버렸겠지만, 이 팩트는 버마 사건의 흑막을 들춰 낼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여는 열쇠다. 우선, 버마 사건이 일어나기 5개월 전 숙청된 틴 우와 보 니, 그리고 버마 정보 체계가 마비된 틈에 아웅 산 묘소 천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강민철 등 셋을 버마 당국이 ‘특별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특급 죄수 3인’을 특별히 관리하다 “조용해 다른 곳으로” 옮긴 이는 누구일까. 강민철 등의 ‘작업’ 직후 국가정보국장이 된 킨 뉸 중장이다. 물로 이런 판단은 1988년 버마 민중 봉기 당시 정보국장이 킨 뉸이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8년 국정원 해외담담 차장 라종일이 킨 뉸을 만나 한국 국정원 측과 강민철의 면담을 주선했다는 사실(라 씨의 증언)이 더해져야 가능하다.

킨 뉸은 ‘88 버마 민중 봉기’로 전.현직 대통령인 네 윈과 산 유가 공식석상에서 물러나고  새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네 윈의 피후견인(protege)’ 소리를 들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8년 민중 봉기로 물러난 네 윈이 이후에도 계속 실질적 버마 지도자였는지 아니면 그런 행세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킨 뉸은 이때부터 한창 때의 네 윈과 다름없었다. 2002년 네 윈이 죽은 뒤에도 킨 뉸은 승승장구, 2003년 8월에는 총리가 돼 군사정부의 감시 아래 있는 아웅 산 수 치를 상대로 정치적 흥정을 벌인 것을 보면 그렇게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일세를 풍미하다 2004년 10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나고 잠시 숙청설에 가택연금됐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말년에는 버마 미술계의 큰 손 행세를 하며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 킨 뉸 사진)

이처럼 킨 뉸이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을 계기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배경은 1958년과 1962년 미국을 등에 업고 두 차례 쿠데타를 벌인 네 윈이 오랜 기간 버마 지도자 행세를 한 것과 같을 것이다. 킨 뉸 뒤에는 버마 정권을 통째로 움직이는 막강한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며, ‘1983 버마 사건’을 총연출했을 이 세력이 킨 뉸 뒤에서 강민철 등의 신병을 관리하면서 ‘1983 버마 사건’의 내막을 은폐했을 것이다.

그러면 킨 뉸의 파트너가 있었을 것이다. 버마 사건은 공수 협잡 구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강민철에 대한 관리와 감시는 전두환네가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버마가 깔아 놓은 판에서 한 판 놀아줄 선수들을 보낸 것은 전두환네였을테니까.

킨 뉸의 파트너는 버마 사건이 정리된 뒤인 1984년 1월부터 1987년 4월까지 버마 대사를 지낸 이상렬(李相悅) 전 안기부 해외공작국장이었을 것이다. 이상렬은 1979년 말 파리 공사로 재직하며 자신이 모셨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로 유인해 살해할 때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을 받는 이다. (* 역사적 사실 고증이 엉망인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차지철의 밀명을 받고 김형욱을 살해하려던 이로 등장하는 ‘유동훈’이 바로 이상렬이다.)

김재규의 반역으로 중앙정보부 과장급 이상 40명이 사표를 낼 때 살아남은 7명 중 한 명이 었고, 중정이 안기부로 이름을 바꾼 뒤 해외공작국장으로 영전해 1982년 유학성 안기부장을 따라 미 CIA 본부에 다녀왔으며, 그 해 말 미 대통령 부시가 지시했다는 ‘모(스크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9편 참조). 그 후 외교안보연구원에 약 1년 간 들어앉았다 버마 공작이 일단락되고 사후관리 체제로 전환될 시점인 1984년 1월 버마대사로 갔다.

사건 직후 킨 뉸을 버마 국가정보국장에 앉히고, 약 두 달 뒤 이상렬을 버마대사로 보내면서 전두환 정권과 미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자작테러의 증인인 강민철을 관리하고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민철에 대한 한국 측의 관리가 느슨해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강민철은 계속 킨 뉸의 감시와 통제 아래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명한 뒤 해외담당 차장에 임명한 라종일 씨는 킨 뉸과 접촉해 “한국 측 외교관”과 강민철의 만남을 주선했으며, 그 접촉선이 2004년 킨 뉸 실각 때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242∼243쪽).

뿐만 아니라 이 “한국 측 외교관”은 강민철에게 ‘안기부 테러리스트’ 김현희가 썼다는 책과 김밥, 초콜릿, 김치, 라면까지 챙겨주고 용돈까지 넣어줬다고 라 씨는 이야기한다. 또 “강민철에게도 김현희와 같은 삶을 영위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를 국내로 송환하려 했고, 국내 송환이 어렵다면 제3국으로라도 빼내기 위해 김장환 목사 등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이들과 접촉했다고 라 씨는 공공연히 밝혔다.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알뜰살뜰 챙겨주며 정성스럽게 옥바라지를 한 것이 조선이 아닌 한국이라면, 또 한국의 정보 조직이 어떻게든 그를 빼 내 김현희처럼 ‘반북적대 놀음의 노리개’로 써 먹으려 했다면, 강민철은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가 보낸 공작원인 것이다. 합리적으로 의심할 줄 알고 정상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결론을 피할 수가 없다.

1983년 5월 버마 정보국장이 숙청됐다는 사실을 그저 단편적 팩트로 치부해서는 그 숙청과 ‘1983 버마 사건’ 사이의 상관관계, 이 사건 덕에 졸지에 출세해 네 윈처럼 20년 넘게 버마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던 킨 뉸의 정체, 강민철과 한국 정보 조직을 이어주는 그의 역할 등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최 전 대사는 버마 정보국장이 숙청되고 5개월 뒤 폭파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때 킨 뉸이 정보국장이 됐다는 사실의 역사적 함의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킨 뉸의 찬란한 정치적 이력이 보일 리 없고 그가 강민철을 특별히 관리했다는 사실을 간과했으며, 한국 측이 강민철의 옥바라지를 하며 그를 빼내려 무진 애를 썼다는 라종일 씨의 놀라운 증언을 애써 외면했다. 그가 역사적 맥락을 간과하고 실로 엄청난 증언을 외면한 이유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 맥락과 증언들은 ‘아웅 산 테러 = 북한의 소행’이라는 항설 또는 정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로 안기부와 국정원이 조작하고 언론이 퍼뜨리는 ‘공식 역사’를 주축으로 ‘1983 버마 사건’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또 한 편의 3류 소설일 수밖에 없다. 이 역사적 사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소중한 경험이 이 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역사 은폐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이 안타깝다.

P.S.

위에서 틴 우 정보국장 숙청 때 ‘칸 뉸’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함께 거세됐다고 썼다.

[틴 우 준장은 ... 지난 5월 숙청 ... 그의 동조 세력인 보 니 내무종교상, 군 정보처장 칸 니운트 ... 등도 제거 ... 틴 우 세력의 제거로 국가정보 기능이 거의 마비 ...](「아웅 산 폭발에 비쳐 본 오늘 버마 - 흔들리는 정정(政情)」<동아일보> 1983.10.20)

‘니운트’는 ‘뉸’의 오독(誤讀). 필자는 ‘칸 뉸’을 ‘킨 뉸’의 오기(誤記)로 보고『1983 버마』에서 틴 우 중장이 숙청될 때 함께 숙청됐던 그가 다섯 달 뒤 정보국장에 임명됐다고 썼고 그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최 전 대사는『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에서 칸 뉸의 영문명(Kan Nyunt)까지 부기해 둘이 별개 인물임을 강조했다. : “1983.5월 초에 당시 제2인자인 틴우 장군(동명이인)이 숙청되면서 ... 군 정보국장이었던 칸뉸트(Kan Nyunt)대령도 물러났다.”(264쪽)

최 전 대사는 칸 뉸의 영문명을 어디서 확인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버마주재 한국대사관에 보낸 보고 문건인지, 국정원 정보 파일인지 ... 구글에 ‘Kan Nyunt’을 치면 ‘Khin  Nynnt으로 검색하라’는 알림이 뜬다. 또 버마(미얀마) 군정(軍政)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한 린트너의 책『Outrage...』에도 칸 뉸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이 책 색인에서도 Kan Nyunt은 없다.

그럼에도 본고에서는 최 전 대사가 칸 뉸의 영문 이름까지 부기한 사실을 중시해 틴 우 중장이 숙청될 때 함께 숙청됐던 이가 다섯 달 뒤 정보국장에 임명됐다는 식의 서술을 피했다. (20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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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파르티쟌  2021년10월19일 14시45분    
강진욱기자님 좋은 분석글 항상 감사합니다~~~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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