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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3
강진욱  | 등록:2021-04-05 08:10:22 | 최종:2021-04-05 08:22: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3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3. 이계철 대사는 왜 불안해 했을까?

앞글(2편)에서 버마 주재 이계철 대사가 전통(全統)의 버마 방문 계획에 대해 매우 불안해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선’ 또는 ‘버마 방문 추진 세력’의 위세에 눌려 대통령의 버마 방문이 적절하지 않다는 말을 못 한 정황을 살펴봤다. 이계철 대사를 불안케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의 불안이 ‘북한의 공격 개연성’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최 전 대사도 그렇고 이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체 왜 전두환네가 버마에 가게 됐는지를 나름 고민한 이들 모두가 그렇게들 이야기했다. 이계철 대사와 함께 버마대사관에서 일했던 송영식 당시 참사가 2012년 출간한 회고록『나의 이야기』에 그런 식으로 씌어있고, 그 이듬해 나온『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라종일), 2019년 출간된『초강 이범석 평전』(허영섭. 2019) 및 최 대사의 책이 송 참사의 책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계철 대사 역시 반공반북 적대 이데올로기에 찌든 남한 외교관으로서 전두환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떠들어대는 ‘북괴의 공격’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계철 대사의 불안이 ‘북한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단세포적 발상이다. 그렇게 볼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송 전 참사도 이 대사가 “불안해 했다”고만 썼을 뿐 그가 왜 불안해 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버마와 북한이 친했다는 둥 이 대사의 불안이 ‘북한 때문’이라고 여.기.게.끔. 책을 썼을 뿐이다.

이 대사와 송 참사가 전통의 버마 방문을 준비하는 중에는 북측이 어떤 움직임도 감지된 것이 없었다. 송 참사가 쓴 것은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자행되고 이 사건이 이북의 소행으로 조작된 뒤의 결과론적 해설이다. 다른 이들 역시 이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송 전 참사의 회고록 속 인상(뉘앙스)을 분별없이 인용(認容)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계철 대사가 마치 ‘이북이 남한 대통령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에서 본국 정부가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추진해서 불안했다’는 그릇된 해석이 나온 것이다. 반쪼가리 나라 전체가 반공반북 이데올로기 병동(病棟) 비슷하다 보니 이런 엉터리 해석이 두루 통했고 지금도 통한다.  

정신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1980년대는 코흘리개 아이들로부터 한 자리 한 이들에 이르기까지 거개가 반공반북 적대 이데올로기의 포로 신세였다지만, 오랜 외교관 경력을 가진 이 대사가 ‘북한(의 공격 개연성)’ 때문에 그렇게 불안했을까. 정작 그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상쩍은 일 때문이 아니었을까. 총리는커녕 외무장관조차 간 적이 없는 버마에 갑자기 대통령이 가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수상한 일이었다. 송영식 참사의 회고.

( 송영식『나의 이야기』)

이 대사의 불안은 ‘북한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버마 방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왜 전두환이 버마에 오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수상한 움직임과 함께 평소답지 않은 버마 정부의 신속한 움직임도 이계철 대사를 불안케 했다.

( 송영식 책 164쪽)

송 전 참사는 버마가 너무도 신속하게 전통의 방문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이유를 이 대사의 인맥 관리니 버마가 한국의 발전상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했지만, 아전인수고 견강부회다.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다.

그는 먼저 자신들이(이계철 대사와 송영식 참사) 왜 그렇게 신속하게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는 회신을 하게 됐는지를 설명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솔직한 고백 없이 이 대사가 ‘북한 때문에’ 불안해 한 것처럼 책을 쓴 것이다.

이 대사가 북한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 있다. 전통의 내리먹이기식 버마 방문 계획을 처음 인지했을 때 “씁쓸하게” 웃었고, 이범석 장관의 전문을 버마에 보낼 때는 이계철 대사에게 부정적 의견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려고까지 했던(2편 글 참조) 최 전 대사는 버마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최병효 책 132쪽)

“북한이 이 먼 곳에서 삼엄한 경호망을 뚫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갔다.” 황망한 가운데서도 최 전 대사는 냉정한 사고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온전한 사고력을 지닌 이라면, “북한이 이 먼 곳에서 삼엄한 경호망을 뚫고 그런 짓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만이 아니었다. 함께 있던 국정원 소속 Y 서기관도 이북의 소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 최병효 책 133쪽)

이처럼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또 사건이 일어난 직후에도 이 사건을 북측의 소행으로 볼 근거는 전무했다. 따라서 이계철 대사가 ‘북한 때문에’ 불안했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모두 사후에 지어낸 이야기다. 송영식 당시 버마대사관 참사는 회고록을 다시 써야 한다. 이계철 대사가 왜 불안했는지 추리해 보자.

이북(북한)이 버마에서 남한 대통령을 시해하려면 ①네 윈 정권이 치안 및 안보 권력이 완전히 무력화되고 ②버마의 치안 및 안보 기관을 이북(북한)이 완전히 장악하고 ③대통령의 버마 국빈방문을 추진하는 남한 및 남한의 배후에 있는 미국이 앞의 두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른 체 해야 한다. ①∼③은 이북이 1983 버마 사건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객관적 조건이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북한의 주체적 의지가 더해져야 한다. ④버마와 친한 이북(북한)이 버마를 배신하고 버마와 철전지 원수지간이 되고 테러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이들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됐다고 확인되지 않는 한 이북이 1983 버마 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네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절.대.불.가.능.한, 어떤 경우에도 상.상.할.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조건 ①은 충족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네 윈 정권의 치안 및 안보 권력이 묘하게도 아웅 산 테러가 일어나기 직전에 무력화된다. 군정보국장(틴 우 중장)이 숙청되면서 군정보국의 기능이 마비되는 지경에 처한 것이다. 1983년 5월의 일이었다.

바로 이때 전두환의 청와대가 외무장관 이범석에게 갑자기 버마 방문 일정을 추가하라고 지시(강요)했다. 5월 20일 이범석 장관이 이계철 대사 앞으로 친전을 보내고, 이 대사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바로 다음날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신하고, 그로부터 여새 뒤인 5월 26일 대통령의 국빈방문 일정을 잡으라고 이 장관의 친전이 또 오고 ... 이때부터 이 대사와 송 참사는 이리뛰고 저리뛰며 정신이 없었겠지만, 전두환 정권이 왜 갑자기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추진하는지에 대해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더 이상한 것은 이후 5개월 동안 전두환 정권은 버마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많은 사절단을 버마에 보냈다. 대법원장을 단장으로 한 고위 사절단, 새마을운동 홍보단, 불교 승려단, 민속무용단, 국가영화제작소 촬영단, 기자단 ... 이때부터 이 대사는 전두환 정권이 무슨 일을 벌이려 하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 송영식의『나의 이야기』에서. 사진 한 가운데 흰 양복에 선글라스를 쓴 이가 이계철 대사. 그 위 우측에 송영식 참사. 사진 설명 : “국빈방문 홍보 공연을 위해 방문한 민속무용단과 함께(1983년 9월)”)

이계철 대사의 불안을 가중시킬 일은 또 있었다. 대통령의 방문을 위한 경호 문제 협의가 안 된 것이다. 갖가지 구실로 이런저런 방문단을 정신없이 버마에 보내놓고, 정작 중요한 경호 문제는 “버마 국가정보국이 해체돼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라 제대로 협의조차 못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송영식 전 참사나 최 전 대사 등 1983 버마 사건을 다룬 책 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해괴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왜 벌어질까? 북한 때문이야? 이 대사가 보기에 뭐가 수상했을까? 북한이, 아니면 전두환 정권이? ...

그런데도 이 대사가 불안했던 이유가 ‘북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이 사건의 배후가 이북이라고 떠든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조건 중 ④에 대한 강한 믿음 즉, 북한이 절친 국가 버마의 신뢰를 짓밟고 스스로 테러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할 각오를 하고 전두환을 죽이려 했을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맹신 때문이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찌든 정신병동 환자들’다운 망상이다. 당시 버마와 이북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보면 ‘정신병동 환자들’의 생각이 실제 현실과 유리된 망상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버마대사관 참사였던 송영식 씨의 회고.

( 송영식 책 167쪽)

( 송영식 책 156쪽)

당시 버마는 이북 외교관들이 부부동반으로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였고, 전두환 정권이 갑자기 대통령의 버마 국빈방문을 하겠다고 나오자 버마 지도부가 이를 수락한 뒤 절친 국가인 이북에 외무차관 등을 보내 양해를 구했다는 이야기다. 또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꼭 1년 전인 1982년 10월 9일 한국에 온 버마 외무장관은 곧바로 평양을 방문해 방한 사실과 그 내용을 설명했다 한다.

( 최병효 책 85쪽)

버마는 자칫 섭섭해 할 지도 모를 북측에게 충분한 예를 갖춰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남한에서 자꾸 대통령이 온다고 하니 (또 미국이나 일본 등이 옆에서 계속 그렇게 부추겨대니) 차마 거절은 못하겠고 해서 일단 허락했다. 그로 인해 우리(버마)와 조선(북한)과의 관계가 손상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지 않았겠나.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이랬는데 북측이 버마에 가서 남한 대통령을 죽이려 했다고? 이건 정상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다. 이는 반북 적대 이데올로기에 세뇌되다 미쳐버린 어떤 정신병동 환자들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 그런데 36년의 외교관 경력을 자랑하는 최 전 대사가 그렇게 주장한다.

( 최병효 책 85쪽)

북한이 버마를 가까운 우방으로 여기는 ‘버마의 친북 성향’이, 북한이 마음 놓고 버마에서 남한 대통령에 대한 암살 테러를 자행할 수 있는 바탕이다? 이 말은 북측이 자신에 대한 버마의 신뢰를 완전히, 철저히 짓밟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앞에서 논한 ‘버마에서 북한이 남한 대통령을 암살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 ①과 ②가 동시에 충족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간다고 먼저 설친 남한과 남한의 둘도 없는 동맹 미국이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본 것이다. 조건 ③이다. 전통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떼로 몰려와 버마 내정을 살폈을 안기부나, 안기부의 대형 CIA가 그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최 전 대사는 정상적인 사유와 판단을 포기한 채 1983 버마 사건을 이북의 소행으로 조작한데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쓴 것이 분명하다. 사건 직후 ‘북한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런 짓을 했을까’ 의심했다는 그도 결국 사후 전개된 무차별적인 대북적대 놀음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이다.

이계철 대사의 불안의 원인이 ‘북한 때문’이라는 착각은 이런 식의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상식적인 허구적 상상의 소산이다. 허상과 착각은 또 다른 허상과 착각을 낳는다. ‘북한은 이미 남한 대통령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데 왜 버마에 가 그 일을 당했는가?’ 제법 그럴듯한 이 화두는 사실무근의 두 개의 오류로 구성돼 있다. ‘북한은 이미 남한 대통령을 해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와 ‘안 가도 되는 버마에 괜히 가서 그 일을 당했다’.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관념의 유희 즉, 허구적 상상이다.

최 전 대사는 버마에서 일어난 수상쩍은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고도 그 내막을 속속들이 파악하려 하지 않고, 이 대사가 ‘북한의 테러 준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 또는 오류를 범한 것처럼 책에 썼다. 책 제목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는 이처럼 오류가 또 다른 오류를 낳는 착종의 결정판이다. 별 의미도 없는 황당무계한 화두를 물고 늘어지다 비어져 나온 신음이 바로 ‘순국’이다. ‘순국’은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의 표현일 수 없고, 망자에 대한 진정한 예일 수 없다.

P.S.

착각에 착각이 겹쳐 중대한 역사적 오류를 낳는 가운데 최근 출간된 최 전 대사의 책이 그 오류의 정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은 은폐되고 사건의 내막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치유’와 ‘완성’을 향해 흘러야 하는 시간(時間)이 ‘고통’과 ‘미완’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시간’도 아닌 우리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은 분단체제의 모순이 사회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사유와 판단을 저해하는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증좌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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