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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8
<마지막회> 한 교수의 ‘김현희=인간교재’론
강진욱  | 등록:2021-03-29 12:57:12 | 최종:2021-03-29 14:47:1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28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28. 한 교수의 ‘김현희=인간교재’론

전편에서 마유미를 데려오기 위해 미.일.한 3국이 긴밀하게 협잡했음을 살펴봤다. 왜 데려왔을까? 당연히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었다. 정말로 그녀가 전대미문의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었다면 엄히 죄를 물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잠시 처벌하려는 시늉만 하다 풀어줬다. 그런 뒤 반북적대 심리전 교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결국 사형을 선고 ... 그러더니 특별사면이 내려졌습니다. 살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 남쪽에서는 김현희를 죽여버리는 것 보다는 ... 살려서 반공 교육 교재, ... 인간교재죠 ... 인간교재로 활용하는 게 낫다 ... 그래갖고 살려 놨습니다. ... 김현희를 죽였으며는 .. 진짜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남쪽 안기부가 다 덮어 쓰는 거예요. 그래서 살려 논 겁니다.]

‘김현희 = 인간교재’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써서는 안 된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현안이 분단 문제이며 김현희는 이 분단을 내재화하는 즉, 남녘 주민들에게 대북적대감을 조장함으로써 분단을 심화시키는 도구라는 사실을 그가 모를까. 그렇게 만들어진 ‘반공반북 인간교재’가 그동안 남북이 화해하고 북.일이 관계를 개선하려 할 때마다 어떤 짓거리를 벌여 왔는지를 정말 모른단 말인가. 한국현대사의 최고 전문가라는 이의 역사 인식 수준이 이 정도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안기부가 김현희를 분단체제의 도구로 조작하는 과정을 보자. 안기부의 수사발표(1988.1.15) 다음날부터 김현희의 처리 및 처벌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하치야 마유미의 정체가 북괴 특수공작원 김현희(26)로 밝혀짐에 따라 김의 사후 신병 처리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통상 절차에 따른다면 그녀는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구속 → 검찰 송치 → 기소 → 재판의 단계를 밟아 사법처리된다.] (「북괴 공작원 김현희 ... 보안법.항공법 적용 땐 극형 불가피」<경향신문> 1988.1.16)

그러나 다음날부터 ‘공소 보류’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KAL 858편 폭파범 ‘하치야 마유미’의 정체가 북괴 대남특수공작원 김현희(26)로 밝혀짐에 따라 김의 사후 신병 처리 문제가 관심 ... 그러나 김의 특수신분 등을 감안, 불구속 기소한 뒤 재판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 ] (「법적으론 극형 ... 공소 보류할 수도」<조선일보> 1988.1.17)

‘김의 특수신분’이란 뜻이 무엇일까? 북한 특수공작원이어서 특수신분일까?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하치야 마유미의 정체가 북괴 특수공작원 김현희(26)로 밝혀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특수해서 특수신분일까? 아니다. 김현희의 ‘특수한 신분’이란 곧 ‘위장 요원’이란 뜻이다. ‘북한 공작원으로 위장한 요원’! 이는 남한에서 양성되는 북파공작원들이 인민군복을 입고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와 인공기를 걸어놓고 북한 말씨를 쓰며 훈련하는 이유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특수공작원’이다. ‘특수공작원’이 곧 ‘특수신분’ 아니겠나.

<조선일보>의 혜안(?)은 정확했다. 사흘 뒤 <동아일보>가 ‘불구속 기소 후 구명’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운다.

[정부관계기관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26)를 불구속 기소, 공개재판에 회부할 것을 신중히 검토 ... 김현희의 신병 처리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외무부 검찰 안기부 등 정부관계 기관은 김에 대해 △공소 보류 △기소 유예 △구속 기소 △불구속 기소 등의 네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 ... 김을 불구속 기소한 뒤 정책적 차원에서 구명하는 방안을 강구 ... 한 관계자는 “김의 범행은 무곻나 115명의 목숨을 빼앗은 국제테러로 마땅히 엄중 처벌되어야 할 사항이나 김이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자진해서 수사에 적극 협조, KAL기 폭파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고 김을 처형할 경우 북괴 만행의 유일한 산 증인을 없애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판단 ...] (「김현희 사법 처리 다각 검토 - 공개 재판 후 구명 유력」<동아일보> 1988.1.20)

( 1988.1.20 동아일보)

이즈음 김현희의 사법처리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아리따운 테러리스트’에 대한 연민을 느낀 남성들이 무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당시 20.30대 ‘수컷’들이 김현희에 대해 품었던 생각들을 소재로 ‘분단과 역사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면 어떨까). 연세대 신방과 교수도「솔로몬의 재판」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김현희 선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115명의 인명을 앗아 간 KAL기 폭파 사건의 주범인 하치야 마유미가 북괴 대남특수공작원이라는 김현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의 사후 신병 처리를 둘러싸고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 행위 자체를 중시하여 처벌하자는 명분론적 입장이나, 자신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저지른 행위이며, 전향을 유도함으로써 더 큰 국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실리론적 입장 모두 일리 있는 주장 ... 단순한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는 그녀가 저지른 엄청난 죄를 면키 어렵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김현희가 진실로 전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극형에 처해진다면, 사후에 다른 간첩 및 공산주의자들의 전향을 방해하는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 ] (<조선일보> 1988.1.22)

김현희가 안기부장 특보실로 불려가 남정네 넷과 폼 나게 사진을 박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렇듯 안기부가 안으로는 김현희를 싸고돌고 밖으로는 ‘김현희 구명’ 분위기를 조장하는 가운데 ‘김현희 연내 특별 사면’ 이야기가 유포되기 시작한다. 일본 매체를 통해서였다.

[【동경=연합】한국 정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재판에 회부한 후 빠르면 연내에라도 특별사면의 형식으로 목숨을 구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8일 소식통을 인용, 서울발로 보도했다.] (<경향신문> 1988.1.25)

김현희의 특별사면설이 먼저 <교도통신>을 통해 흘러나온 것은 안기부와 한 패인 일본 공안 조직의 언론플레이다. ‘쓰리쿠션’ 수법. 일본 매체가 보도하면 한국 언론이 그냥 베껴대는 습성을 활용한 것. 한국 언론에 먼저 ‘특사’ 얘기를 흘릴 경우 기자들부터 시비조로 기사를 쓸 수 있지만, 일본 언론을 통해 슬쩍 흘리고 이를 국내 언론이 받아쓰는 형식을 취하면 이런 위험성을 덜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쓰리쿠션 언론 공작’은 계속됐다. <교도통신> 보도 사흘 뒤, 일본을 대표하는 반북극우매체인 <산케이신문>도 김현희의 특별사면설을 흘린다. 구체적인 일정까지 나왔다.

[【동경=연합】한국 정부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오는 3.4월게 재판에 회부한 후 서울올림픽 개최 전인 금년 6.7월 께 특별 사면, 석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산케이신문이 서울의 소식통을 인용, 27일 보도했다.] (「김현희 3∼4월 재판, 6∼7월 께 특별사면」<경향신문> 1988.1.28)

그렇게 특별사면 가능성을 높여 놓고는 이후 한 넉 달 동안 김현희에 대한 보도가 없었다. 그 사이 김현희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안기부는 아마도 1988년 1월 15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전부터 마유미 영화 제작을 기획하며 배우를 물색했을 것이다. 저들은 수사발표 후 한 달 도 안 돼 마유미의 대역 배우를 찾아냈다.

[KAL기 폭파 사건의 TV.영화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김현희와 꼭 닮은 신인배우가 등장해 방송.영화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대 연영과[연극영화과] 3년 재학 중인 김영림으로 얼굴 모습, 헤어스타일 등이 김현희와 같아 분간키 어려울 정도이다. 칼 귀 모양의 귀,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이 가장 닮은 배우 김영림은 신장 163cm, 체중 54kg, 혈액형(O형)까지 같아 더욱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KAL기 김현희 쌍둥이자매가 아닙니다」<경향신문> 1988.2.11)

( 1988.2.11 경향신문)

김현희 재판 관련 소식이 뚝 끊긴 지 석 달 만인 5월말 다시 일본 극우매체 <산케이신문>이 그녀의 근황을 전한다. 김현희를 ‘한국민의 딸’이라고 칭하며 그녀가 대학 입학을 꿈꾸며 수기를 쓰고 있다는 둥 그녀에게는 이미 자유로운 삶, 찬란한 미래가 약속돼 있음을 예시했다.

[【동경=허태홍 특파원】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26)의 근황에 대해 일본 산케이신문이 29일 일본 측 공안당국이 최근 입수한 정보를 인용, 보도했다. 이에 의하면 김은 현재 짧으나마 파란 많은 반생의 수기를 집필 중이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꿈을 꾸고 있고, 텔레비전의 홈드라마를 보고 북한에 있는 육친을 생각하며 자주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는 것 ... 김은 지금 국가안전기획부가 극비리에 관리하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숙박시설’에서 안기부의 여수사원 2명과 생활 ... 여 수사원 중 1명은 김이 폭파 사실을 처음 자백하기 시작했을 때 “언니, 미안해”했다는 바로 그 여수사원 ... 실내에는 대형 TV가 있으며 자유로이 북한의 TV 방송에도 채널을 맞울 수 있도록 특별수상장치가 되어 있다고 ... 김은 ... 브라운관에서 떨어질 줄 모르며 특히 한국의 역사물에 흥미를 보이고 ... 김은 “저쪽(북한)에서 배운 한국 역사와는 전혀 달라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 김이 현재 일과로서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 수기의 집필 ... 평양 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등 일류 학교에서 공부한 재원치고는 글 솜씨가 좀 떨어져 전문편집자가 때때로 지도를 맡고 ... 수기의 공표 시기는 “금년 가을의 서울올림픽 후로 예상되는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판결 후가 될 예정”이라는 ... 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주1회의 외출 ... 선글라스를 끼고 서울시내의 번화가, 서울 근교의 농장이나 공장 등을 견학 ... 일본 공안당국은 “재판에 회부되어 집행유예 등 온정[적] 판결이 나올 공산이 크다”고 예상 ... 김은 “지금까지 왜곡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서울의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탄원하고 있다고 ... ] (「김현희 수기 쓰며 가끔 시내 외출」<동아일보> 1988.5.30)

( 1988.5.31 조선일보)

이즈음 심장이 쪼그라드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 유가족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외출하는 김현희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심정이 어땠을까. 곧이어 김현희의 두 번째 기자회견이 예고된다. 또 일본 매체를 통해서였다. 김현희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생선회를 즐겨 먹고 있었다 한다(국민들 가운데 1988년에 생선회를 즐겨먹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동경=연합】KAL기 폭파범 김현희는 이 달 말 또는 7월에 두 번째의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교도통신이 서울의 공안관계 소식통을 인용, 3일 보도 ... 이 소식통은 ... 빠르면 이달 말에, 늦어도 오는 7월에 김이 두 번째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 이송된 이후의 자신의 생활상 등에 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 이 소식통은 김에 대한 재판 회부 시기에 관해서는 당장 기소하여 재판에 회부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일기식 수기를 쓰고 있는 김은 서울에 이송된 후 6개월 동안 정신적으로 안정돼 있고 비교적 자유스런 생활을 ... 특히 생선회와 바나나 딸기를 좋아한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김현희 두 번째 회견, 월말이나 내달 초 예정」<동아일보> 1988.6.4)

이때는 이미 올림픽 분위기. 저들은 신나게 올림픽을 보고 나서, ‘기분 좋게’ 김현희 재판을 마무리할 심산이었다.

[정부당국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26)를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오는 10월 불구속 기소, 공개재판에 회부해 정책적 차원에서 사면 등의 방법으로 구명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올림픽 전에 김을 재판에 회부할 경우 북한 측을 자극해 재판 과정 뿐 아니라 올림픽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 정부 관계자는 “김이 수사에 적극 협조한 탓에 KAL기 폭파 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지만 유족과 국민들의 감정, 그리고 국내법 및 ‘항공기테러범은 반드시 처벌한다’는 몬트리올협약 규정 등 국제 관례를 고려할 때 재판 회부는 불가피하다”고 ... ] (「김현희 올림픽 뒤 재판 - 정책 차원서 사면할 듯」<동아일보> 1988.6.10)

( 1988.6.10 동아일보)

김현희는 다시 올림픽이 치러지는 기간 내내 안기부 안가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느긋함이 과했는지 김현희가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회 내무위 국정감사에서 평민당 이영권 의원이 치안본부장에게 “김현희가 올림픽 개막식을 관람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치안본부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했다. 유족들은 당연히 분개했다.

[대한항공(KAL) 유족회(회장 권귀옥.62)는 19일 KAL 858기 폭발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26)가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했다는 보도와 관련, 야권 3당 앞으로 보낸 탄원서를 통해 “선량한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김현희를 빠른 시일 안에 공개재판할 것”을 요구 ...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유족들에게 약속했던 위령탑 건립조차 이행하지 않는 정부가 폭파범 김에게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을 관람시키는 등 후한 대접을 베푸는 저의가 무엇인가”고 묻고 “김을 빠른 시일 안에 재판에 회부, KAL기 사건의 진상을 온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했다.] (「김현희 공개재판 요구 - 대한항공 858 유족회」<한겨레신문> 1988.10.20)

여러 신문들이 이 소식을 전했지만, 어느 신문에도 유족들의 항의 시위 사진은 없었다. 안기부가 사진을 싣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안기부와 노태우 정권이 김현희를 감싸고 돌자 <한겨레신문>이 사설을 통해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게 했던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은 이제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져 버렸는가? 시한폭탄으로 115명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마유미 아니 ‘김현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제는 힘없는 야인의 신세가 되어버린 전두환 씨의 파렴치를 캐내는 데는 그렇게 열성을 보이던 국회의원들도 바로 그 공화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희생자의 유족들이 가냘프게 항변을 했다. 이미 단체까지 만들어 진상 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유족들은 지난 28일 월례모임을 열고 “김현희를 공개 재판하라”고 요구 ... “김현희가 서울올림픽 개회식까지 구경했다”는 일본 <도쿄신문>의 보도를 보고 격분하고 ... ] (「‘마유미’는 어디에 있는가 - 청문회 열어 비행기 ‘폭파’ 진상 밝혀야」<한겨레신문> 1988.11.2)

곧이어 재판에 회부됐지만 곧바로 ‘정책 차원서 불구속기소 방침’ 이야기가 나왔다.

[검찰은 안기부 등 관계당국과의 협의, 내부적으로 김의 신병 처리 방침을 일단 세웠으니 일주일 정도 조사한 뒤 내주 안에 최종 방침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 그러나 검찰은 김에 대해 구속 기소 뒤 중형 선고는 피할 방침이다. 정해창 법무부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김이 현재 저지른 죄과를 반성하고 있으며, 미혼여성인 점 등을 감안, 정책적 차원에서 처리될 것”이라고 관용 방침을 분명히 ... 유가족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일으킬 것 ... ] (「정책 차원서 불구속기소 방침 ... KAL기 폭파범 김현희 검찰 송치」<한겨레신문> 1988.11.25)

<경향신문>사설 이런 해괴한 분위기를 의아해했다.

[검찰 당국이 김[현희]에 대한 처리 방법의 하나로 공소 보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납들하기 어려운 ...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재판에 회부되기도 전에, 그것도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불구속기소니, 극형 선고 후 ‘사면’이니 하는 정책적 고려를 앞세우고 ... ] (「김현희, 공소 보류 안 된다」<경향신문> 1988.11.26)

이렇게 안기부와 법무부 및 검찰이 한통속을 김현희를 싸고 도는 가운데 어느 새 사건 발생 1주년이 다가왔다. 유가족 92명이 태국 현지에서 추도식을 지내기 위해 11월 28일 방콕으로 떠났다. 어디서 추도식을 거행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방콕에서 추도식을 마치고 12월 1일 귀국한 유가족들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농성을 벌였다. 김현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유족들은 이날 농성에서 △김현희 공개 재판 통한 처벌 △사고 해역 재수색 △위령탑 건설 △사고 원인 규명 위한 국회청문회 개최 등을 요구했다. 이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신문 사회면 톱에는 김현희가 검찰에서 ‘매우 친절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검사는 “불편한 점 없느냐”고 물었고, 긴 머리에 리본을 달아 멋을 내고 출두한 어여쁜 김현희는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현재 안전기획부의 안전가옥에서 연금 상태로 있는 김은 이날 오전 9시 35분 경 안기부 직원들과 경찰의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검찰청사에 도착, 곧바로 5층 서울지검 공안1부 이상형(李相亨) 검사실로 올라가 ... 김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이 검사가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묻자 얼굴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예, 괜찮아요”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은 또 “그동안 잘 지냈느냐”라는 질문에 짤막하게 “예”라고 대답 ... 이날 김은 ...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멀에 머리핀과 진초록색 리본을 달아 멋을 냈으나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 신문을 받는 도중 내내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한 태도 ... 김은 “편한 마음으로 조사를 받으라”는 검사의 말에 고개를 속여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 (「김현희 검찰서 조사 - KAL기 폭파 1년 만에 삼엄한 경비 속 출두」<동아일보> 1988.12.2)

( 1988.12.1 동아일보 / 사진설명 “긴 머리의 김현희 - 검찰청사 5층 이상형 검사 방에서 조사를 받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 김은 이날 머리를 조금 숙인 채로 낮은 목소리로 검사의 질문에 답했다.” 이상형 검사는 2005년 국정원 진실위 조사에서도 “김현희는 영락없는 북한 공작원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현희가 검찰에 출두한 날 유가족들은 야당인 평민당사를 찾아가 청문회를 통해 KAL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김현희의 자백에 의한 정부의 발표 만으로 사건 진상을 알 수 없다”며 앞으로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의문사 유가족협의회’와 협력, 공동대처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한겨레신문> 1988.12.3). 그러나 야당은 무기력했고 청문회는 언감생심이었다.

이처럼 KAL 858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애절한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해가 바뀌어 1989년. 때 아닌 진풍경이 벌어졌다. 변호사들이 너도나도 김현희 변론을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김현희 재판을 한 달여 앞두고 이례적으로 김의 변호를 맡겠다고 자청하는 변호사들이 많아 재야 법조계의 막후경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지난 3일 서울지검 공안1부(안강민.安剛民 부장검사)가 김을 국가보안법, 항공법, 항공기운항안전법 등 3개 죄목을 적용해 기소한 직후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김에 대한 변론을 맡기 위해 로비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 30여 명의 변호사들이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합의10부 정상학(鄭相鶴) 부장판사를 비롯, 안 부장검사와 담당검사인 이상형 검사에게까지 국선변호인 문의를 해 오고 있다. 빼어난 미모에다 남북분단의 민족적 비극이 빚은 ‘역사적’인 김의 재판은 1심 첫 공판부터 국내 매스컴의 큰 관심 ...] (「“김현희 변호 내가 맡겠다” - 법조계 벌써부터 로비 치열」<경향신문> 1989.2.11)

( 1989.2.11 경향신문)

이 치열한 로비전의 승자는 안동일(安東壹) 변호사였다. 안 씨는 훗날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동아일보사, 2004년)는 책을 내지만, 그가 본 것은 김현희의 허상 뿐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재판 자체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2000년대에서 사법농단이 가능한 것이 법조계다. 1980년대는 안기부과 검찰 및 재판부가 모두 한통속으로 놀던 시절이었다. 첫 공판은 1989년 3월 7일, 서울형사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정상학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 1989.3.7 동아일보 / 사진설명 “사건 발생 1년 3개월여 만에 7일 첫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김현희. 김은 방청석에 있던 유가족들이 통곡하자 창백해진 얼굴을 숙이며 흐느꼈다.”)

이날 재판은 검사가 매우 친절하게 김현희의 혐의를 설명하고 김현희는 그네 ‘네.네’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재판이 개판이었던 이유다.
 
[피고인이 검사의 일방적인 질문에 대해 “네”하고 간단히 답변 ... 검사가 피고인의 말을 다시 해석해 “.... ... 라는 뜻이죠?” 라면서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 ... 방청석에서는 “이게 무슨 재판이냐”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짜고 하는 재판이냐” 방청석 분통」<한겨레신문> 1989.3.8)

유족들은 또 김현희가 죄수복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타난데 대해 충격을 받았다.

( 1989.3.8 한겨레신문)

2차 공판은 3월 21일이었지만 재판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김현희를 사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린 지 오래였다. 1년 3개월 동안 은폐됐던 사건의 의혹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경향신문>이 그 의혹을 정리했다.

( 1989.3.21 경향신문)

( 1989.4.4 경향신문) 

이런 의혹들을 모두 덮은 재판에서 검찰은 4월 4일 김현희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4월 25일 그 형대로 선고됐지만 모두 정해진 각본에 따른 요식(要式)일 뿐이었다. 7월 22일 열린 항소심과 이듬해인 1990년 3월 27일 상고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것도 마찬가지. 김현희는 상고심에는 출석도 안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의 사면(赦免).

이때부터 다시 김현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마유미’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기부는 또 이런저런 여성지들에 김현희의 안가(安家) 생활 등을 전하며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모두 김현희의 사면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특히 김현희의 대역으로 출연할 ‘육체파 여배우’의 면모는 김현희에 대한 동정론을 확산시켰다.

이렇게 미모의 여배우를 내세워 김현희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한 뒤 그녀를 계속 감옥에 가둬 놓을 수 있을까? 감히 사형을 시킬 수 있을까? 영화 ‘마유미’ 제작은 모두 김현희의 사면 여론을 조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 1989.11.8 경향신문)

급기야 ‘볼륨 충만’ ‘글래머’가 등장한다.

[KAL 기 폭파 사건을 영화화하는 ‘마유미’의 주인공인 김현희 역을 맡아 갑자기 화제의 주인공이 된 김서라(金曙羅) 양(21. 본명 김영림(金榮林)은 뛰어는 몸매의 글래머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현희보다 나이가 6살 아리지만 우연하게도 1월 27일 생일과 신장 163cm에 체중 54kg, O형인 혈액형까지 똑같아 행운을 안은 김서라 양은 36-24-36의 대단한 볼륨을 지닌 육체파. 시선을 아래로 깔고 오롯이 앉은 표정이나 칼귀 모양의 귀, 오뚝한 콧날과 도톰한 아랫입술, 그리고 둥그런 얼굴 윤곽 ... 신상옥 감옥을 비롯한 전 스탭진들이 혀를 내두르고 ... 이달 말께부터 해외 로케이션을 떠나 아부다비를 비롯, 태국 버마 프랑스 오스트리아 유고 터키 불가리아 헝가리 소련까지, 김현희가 거쳤던 모든 곳에 직접 가서 [사건을] 사실대로 재현하게 된다. 사진은 ‘마유미’로 픽업되기 전 본사에서 촬영한 것이다.] (「마유미역 김서라의 볼륨 넘치는 몸매」<경향신문> 1989.11.21)

( 1989.11.21 경향신문)

또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전대협’ 대표 임수경 씨(훗날 국회의원)가 이즈음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 때, 어느 날 김현희가 임 씨 앞에 나타났다. 안기부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를 보내 임 씨를 설득, 회유하려했던 것. 그런데 김현희는 안기부의 품에서 너무 긴장을 푼 탓인지 무심결에 서울 말씨를 썼던 모양이다. 임 씨가 이를 지적하자 갑자기 평양 말씨로 바꾸더란다. 임 씨의 변호인이었던 김형태 변호사가 전한 이야기다(「KAL기 폭파범 김현희, 서울말 쓴다고 하자…」
<한겨레신문> 2012.2.1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8486.html#csidx031b033cf6cc23abc5889b0dcfb6292, / 임 씨의 출소 직후 그와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기사에는 이 이야기가 훨씬 실감나게 묘사돼 있(었)으나 이 기사를 찾지 못했다).

이후에도 영화 ‘마유미’ 이야기는 계속됐다.

( 1990.1.1 경향신문)

( 1990.2.20 경향신문 / 사진설명 “영화 ‘마유미’의 주인공 김서라양. 18일 사상 처음으로 대법정에서 촬영된 재판 장면에서 김 양은 김현희가 당시 입었던 의상을 빌려 입고 출연, 눈길을 모았다.”) 

이렇게 김현희는 일약 ‘미모의 스타’로 만든 뒤 대통령 노태우의 ‘특별 사면’이 떨어졌다. 1990년 4월 13일 국무회의 직후. 노태우 정권은 김현희를 가리켜 ‘진범이 아닌 꼭두각시’라는 구실을 내세웠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정부 대변인 최병렬(崔秉烈) 공보처장관은 발표문을 통해 “이 사건은 민간항공기에 대한 테러범죄로서 ... 김에 대한 중형을 선고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김은 폐쇄사회 속에서 밀봉교육을 통해 북한 공산집단의 적화통일 책략 수행을 위해 투입한 한갓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 ... 대국적 차원에서 특별사면을 하는 것 ... 김은 늦게나마 ... 깊이 뉘우치면서 수사단계에서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 이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자백 ... 김은 이 사건의 진상을 생생하게 증언해 줄 유일한 생존자 ... 역사의 산 증인 ... 김을 대한민국의 품 안으로 과감히 수용, 조국의 평화통일 대열에 동참시키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990.4.13) 

내국인 115명을 공중폭살한 주범이라고 떠들어 놓고는, 감옥 문턱은커녕 감옥 근처에도 못 가게 싸고돌다 풀어놓은 것이다. 말은 ‘자유인’이었지만 안기부에 매인 몸. 안기부는 ‘자유인 김현희’를 반북반공의 선전 도구로 마음껏 부려먹는다.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세탁’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면 한 달만인 1990년 5월 16일 서울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김현희의 신앙 간증을 겸한 기자회견. 200여 명의 신도와 30여 명의 보도진 앞에서였다. 이날 행사는 김현희가 “1년 전부터” 이 교회 한기만(韓基萬) 목사로부터 1주일에 한 차례 설교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지만 모두 안기부의 김현희 사면 공작이었다.

김현희는 한 목사의 손을 잡고 입장했고 신도들은 큰 박수로 환영했다. 사회자는 김현희를 가리켜 “비록 큰 죄를 짓긴 했으나 이제 하느님의 품에 안긴 우리의 딸”이라고 지칭했다(<경향신문> 1990.5.17). ‘북괴 테러리스트’를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탈바꿈하기가 이렇게 쉬울수가! 김현희는 이 자리에서 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말을 슬쩍 흘렸다.  

( 1990.5.17 경향신문 / 사진설명 “16일 하오 특별사면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난 김현희 양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첫 미소를 보였다.”)

( 1990.5.17 조선일보 / 사진설명 “사형수에서 ‘자유의 몸’이 된 김현희 양이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신도들과 함께 예배를 보고 있다.”)

곧바로 영화 ‘마유미’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렸다. 김현희의 신앙 간증 행사 다음날인 5월 18일부터 ‘화제의 대작 마유미’가 곧 개봉된다는 기사가 뜬다.

( 1990.5.18 경향신문)

( 1990.5.26 동아일보)

곧이어 KBS-2TV가 ‘마유미’ 영화를 만든 신상옥 감독과 김현희 역의 김서라 양을 초대해 영화 제작 뒷얘기와 신 감독이 체험한 ‘북한의 실상’을 널리 전했고, 김서라도 신문 지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 1990.6.9 경향신문)

1990년 말에는 KBS-1TV가 김현희를 초청,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이계진 아나운서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제공했다.

( 1990.12.28 경향신문)

앞글(15편)에서 봤듯이 안기부는 영화 제작 외에 김현희의 이름으로 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1991년『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 - 1.2』를 시작으로, 1992년『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 1995년『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등등 ... 모두 ‘김현희 책 전문 출판사’ 고려원에서 나왔다. 안기부는 누군가 대필했음이 분명한 김현희의 책들은 학교와 기업, 군부대에 무차별적으로 배포했고, 영어와 일어는 물론 아랍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해 뿌렸다. KAL 858 공작의 한 축을 담당했을 일본 공안 조직도 거들었는지 일본에서는 김현희의 책이 번역되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국내외에서 받은 인세가 8억여 원이었단다. 한홍구 교수의 이야기다.

[김현희가 인제 그 후에 회고록을 썼어요 ...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 두 권째를 냈고 또 ‘사랑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립니다.’ .. 이건 몇 백만권 팔렸습니다. 그리고 영어로도 번역되고 ... 영어는 마치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닌자 복장으로 ... 칼까지 들고 ... 칼을 왜 듭니까.(웃음) (책 표지 닌자 사진) 그래서 이게 뭐 여러 나라 말로 번역이 됐어요. 러시아말로 ... 중동에서도 번역이 되고, 영어는 당연히 번역이 되고... 일본에서도 번역이 되고 ... 그랬었습니다. 수 십만 분지 .. 하여튼 어마어마하게 책이 많이 팔려갖고 ... 그 당시 돈으로 ... 어 인세를 아마 ... 8억원이 넘게 ... 10억원 가까이 인세를 받았습니다.]

한국 진보 역사학계의 대표주자라면 김현희가 쓴, 아니 김현희 이름으로 줄줄이 나온 책의 내용과 그 진위, KAL 858 사건과의 연관성을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하기는 했다. 위에서 이어지는 내용.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썼는데, 문제는 수사 .. 에서 ... 수사발표라고 낸 거, 그 다음에 법원에 공소장으로고 제출 한 거, 판결문이라고 받아들여진 거, 그리고 이 고백록 .. 디테일에서 틀린 게 몇 십 군데가 됐어요. 그러다보니까 의심하는 사람들 ... 이거이거 달른 게 조작 아니냐 ... 뭐 그렇게들 ... 그 의심의 근거가 되긴 했지요. 그래서 조작[설]이 .. 많이 나왔었고 ...]

한 교수는 김현희가 진술서와 공소장, 고백록(회고록) 등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나중에 나온 책 내용이 안기부가 만든 진술서나 검찰이 꾸민 공소장과 다르다면 왜 다른지, 무엇이 맞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 한 교수는 그럴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KAL 858 가족회와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신성국 신부는 김현희의 이름으로 나온 책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한마디로 국정원이 김현희 영웅화를 위한 전기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노태우 군사정권은 이승복 어린이처럼 또 다른 이승복 ‘반공 영웅’이 필요했지요. 반공 영웅의 상징으로 김현희를 활용하기 위해 영웅전도 써준 것이지요. 저는 김현희 책들을 읽으면서 답답했습니다. 김현희의 북한 생활과 자전적 이야기를 그렸는데 너무 추상적이고, 조잡했습니다. 특히 KAL 858기 사건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증거들이나 사실들은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내용 전체가 추상적인 표현들로 꾸며진 소설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내놓은 작품이 김현희 책들입니다.](「[KAL858기 사건 30주기] ②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진실의 길> 2017.10.7
http://www.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8&uid=64&table=sk_shin)

이렇게 안기부는 책과 영화, 나팔수 언론을 동원해 김현희를 거물급 반북반공 전사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김현희는 이미 사면된 다음해 검사(님)들을 쭉 앉혀 놓고 ‘안보강연’을 하시는 거물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지난해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된 KAL기 폭파범 김현희 씨가 오늘 3년 전 조사를 받았던 바로 그 검찰 청사를 방문해서 검사와 검찰 직원들을 상대로 해서 안보교육 강연을 가져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자)오늘 3년 만에 검찰 청사를 다시 찾은 김현희 씨. 3년 전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두려움에 떨었다며 이렇게 강연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현희 씨)“저에게도 안기부보다도 이 검찰청이 더 무서웠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인상도 더 무섭게 보이고 그랬는데 지금 보니까 너무나 부드러우신 것 같습니다.” (기자)김현희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교육받은 내용과 공작원으로 선발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현희 씨는 이어서 남한과 북한사이의 장단점을 비교해 달라고 하는 한 검찰 직원의 질문에 대해서 자유와 풍요로움이 남한사회의 장점이지만 사치와 낭비현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1991.10.26)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안기부의 역사 농단을 바로잡을 수나 있을까? 아마도 힘들 것으로 본다. 한홍구 교수 같은 이들을 진보적 역사학자로 떠받드는 한! 김현희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분단의 도구다. 한 교수는 자신이 말한 ‘인간 교재’라는 어휘가 얼마나 몰역사적이고 몰가치적인 지, 언제쯤이나 제대로 깨달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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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고양이  2021년3월30일 18시12분    
만약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가정을 하자.
자신이 피해자라면서 주장하면서 한사코 중립적인 경찰의 조사도 거부하고, 보험사에 신고도 안한다면 ?
난 개한미gook 의 자작극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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