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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니어도 되는 사회
평범한 청년에 불과한 그들을 다시 일터로 보내줬으면 좋겠다
최원영  | 등록:2020-08-26 12:02:52 | 최종:2020-08-26 12:05: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영웅이 아니어도 되는 사회
평범한 청년에 불과한 그들을 다시 일터로 보내줬으면 좋겠다

트위터 | 최원영 간호사 | 2020-08-23

며칠 전 전공의 파업을 두고 쓴 글 때문에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이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희생이 생길지 너무 눈에 보이고 그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이 파업을 누군가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뿐인데, 그리고 그 브레이크에 좀 더 가까운 것이 복지부인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에게 외모 비하부터 인신공격까지 온갖 욕을 퍼부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분노해가며 나를 욕하는 걸까? 휴일 내내 곰곰이 생각해보니 파업을 멈출 수 있는 건 복지부라고 하는 나의 주장이,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파업을 하는 전공의들의 편을 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이 파업에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들에게 의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긍정적인 단어를 말해 보라고 하면, 아마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사명감’, ‘희생’, ‘헌신’일 것이다. 그렇다. 저 세 단어가 문제다. 나는 의사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저 세 단어가 갈등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의사의 모습과 그 실체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실체(?)를 좀 더 잘 아는 나와 달리 그런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파업은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 매달 병동에 오는 전공의들이 바뀐다. 그래서 병동에 따라 1년 동안 적게는 10명 미만, 많게는 3~40명의 의사들이 거쳐 간다. 한 달 내내 새로 온 전공의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이 어떤 인간인지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하게 된다.

당연히 병원 경력 10년차인 나도 무수히 많은 의사들을 봐왔다. 그중에서 ‘정말 저 사람은 진정한 의사다, 진짜 좋은 의사다, 내가 아프면 저런 의사한테 치료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만실인 호텔에 가서 졸린 국민을 위해 어떻게든 손님들을 설득해서 내보내고 빈방을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텅 빈 버스에 타서 어차피 나밖에 없으니 다리 아픈 국민을 위해 집 앞까지 가서 내려달라고 한다면 어떨까? 셋 다 당장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

물론 의료를 단순하게 다른 서비스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고객의 만족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설령 희생정신이 1도 없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희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훨씬 더 많다.

심폐소생술 도중에 ‘배고프니까 일단 밥 먹고 와서도 환자가 살아있으면 마저 합시다’라고 하거나, 환자가 피를 토하면서 넘어가는데 ‘내 담당 환자 아닌데요?’하면서 가버리는 의사나 간호사는 정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환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래서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도록 하려고 다들 자신을 조금씩 희생하곤 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일의 특성상 이미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로 코로나 병동에 자원한 사람도 있겠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통보식으로 지금 당장 병동을 비우고 코로나 확진 환자를 받으라는 상부의 명령에 엉겁결에 코로나 전사가 된 사람들도 있다.

혹은 자원하긴 했지만 병원 내에서 자신의 위치나 직급상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없어서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의료인들이 이미 하고 있는 희생에서 더 많은 희생을 해주길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충분한 인력이 고용되어 있다면 누군가 희생하지 않아도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다.

사실 의사 간호사들이 희생을 요구받는 순간은, 굳이 따지고 들자면 인건비를 아끼는 효과가 가장 크다. 두명이서 8~9시간씩 나눠서 하면 될 일을, 혼자서 코피 흘리며 17~18시간씩 일하게 하여 한 명의 인건비를 아끼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의사들과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사명감 넘치고 희생정신 투철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환자들을 혼자 담당하느라 간밤에 2시간밖에 못 자고 비몽사몽하는 의사보다 적정한 수의 환자만 보면서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고 맑은 정신으로 처방을 제대로 내는 의사가 더 좋을 것 같다.

서울대병원에 들어오는 전공의들 중 많은 수가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근데 우리나라 상위 0.01% 정도의 수재들만 간다는 서울대 의대를 나온 사람들인데 가끔 진짜 멍청한 오더를 넣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항응고제 처방을 한다거나, 반코마이신같은 독한 약을 한 번에 슈팅해서 주라는 식의 그런 멍청한 오더들을 거르면서, 내가 그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학창시절부터 비상한 머리로 전교 1~2등만 했던 그들이라면, 그들이 주당 88시간이 아니라 나처럼 주당 40시간만 일한다면, 수술예정인 환자의 처방을 복사 붙여넣기 할 게 아니라 수술 전이니 항응고제 처방을 지울 것이고, 반코마이신은 희석해서 주도록 처방도 꼼꼼히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웅들로 이뤄져야만 돌아가는 사회는 시스템이 부재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소방관들이 맨몸으로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어도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사회, 소방관이 진화작업을 할 때 안전한 방화복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영웅들의 선의에 기대어 유지되는 병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일해도 환자가 잘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어야 한다.

의사들의 실체(?)를 다 아는 사람 중 하나로서, 나는 의사들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스스로를 영웅으로 포장하려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으로서 최소한의 식욕, 수면욕이 충족되는, 최소한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이 평범한 청년들에게 영웅의 굴레를 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글을 쓰면 전공의 편드냐고 또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무례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애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이 파업이 빨리 중단되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물러날 곳이 없는 그들에게 파업을 멈출 구실을 주고, 영웅이 아닌 평범한 청년에 불과한 그들을 다시 일터로 돌려 보내줬으면 좋겠다. 설령 “환자들을 볼모로 잡고” 배수진을 친 그들이 어리석었다고 해도, 그들을 밀어서 바닷속으로 빠트리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사람들이 젊은 의사들을 영웅이 아닌, 자신과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해준다면, 오히려 환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따뜻한 영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출처 : 최원영 간호사 트위터 (twitter.com/angnuite)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5011&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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