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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상계엄’에 숨겨진 음모
김정남 살해 사건과 분단체제 고착화
강진욱  | 등록:2019-11-13 16:14:19 | 최종:2019-11-13 16:29: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내란음모? 진보(종북) 압살 음모!>

▲출처:임태훈(가운데) 군인권센터 소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계엄령 수사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한국일보 서재훈 기자

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이 ‘北(북) 급변사태 시 긴급명령 관련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의 지시에 따라 신기훈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중령)이 작성했다.(군인권센터 기자회견, 2019.11.6). 
   
군인권센터가 ‘희망계획’이라고 지칭한 이 문건의 주요 내용은 △남한에 직접적 무력 충돌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 급변 사태가 남한의 행정, 사법 기능을 마비시키지는 않으므로 비상계엄 선포가 어려울 수 있으나 △북한이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이므로 북한 급변 사태를 빌미로 한반도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때 이를 어떻게 저지할지, 국무회의는 어떻게 운영할지 등을 담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북한에 급변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군이 준비한 데프콘(전투준비태세)을 발령하고 대응하면 된다”며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느닷없이 북한 급변을 이유로 한반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무력화할 방안을 검토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도 그렇듯 많은 이들이, 2017년 2.3월 박근혜 탄핵국면 타개를 위한 비상계엄선포 음모에 앞서 청와대가 2016년 10월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비상계엄을 논의한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일당이 단지 ‘촛불 정국’ 타개를 위해 ‘북한 급변사태’를 빙자해 계엄을 선포하려 했던 것일까?
   
저들의 비상계엄 논의는 단지 박근혜의 탄핵을 모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위 ‘진보세력’ - 박근혜 일당은 이들을 ‘종북세력’이라고 지칭했다 - 을 살상(殺傷)하면서 전쟁과 테러의 분위기를 조장해 이 땅의 분단체제를 고착화시키려는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었다.
   
저들은 김정남을 살해하고(2017.2.13) 이 사건의 책임을 북한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북한 지도부를 패륜적 망나니 집단으로 매도해 ‘북한 급변사태’를 조작하려 했다. 2016년 10월 ‘북한 급변 사태’를 가정한 비상계엄 논의는 이 끔찍한 음모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의 탄핵을 ‘인용’함으로써(2017.3.9) 박근혜의 청와대 복귀와 박근혜를 앞세운 계엄선포는 무산됐지만, 저들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데는 성공했다. 저들은 또 김정남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함으로써 남녘 주민들의 대북 적의를 심화시켰다. 그렇게 저들은 이 땅의 분단체제에 또 한 자락 마의(魔衣)를 휘감은 것이다.
  
<박근혜 일당, ‘북한 붕괴’ 맹신>
   
임 소장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에 정말 급변사태가 있었는지 아니면 급변사태를 핑계로 불법 계엄을 검토한 것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임 소장이 궁금해 하는 ‘북한 급변사태’는 없었다. 박근혜 일당은 북한 급변 사태를 조작하려 했을 뿐이다.
   
2016년 10월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장. 당시 대통령 박근혜는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이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의 ‘탈주’를 종용한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이는 내정간섭이고 침략행위다.  
   
박근혜는 그러면서 ‘북한 정권의 종식’을 떠벌렸다. 그는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 주민들 모두를 품에 안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근혜는 또 “굶주림과 폭압을 견디다 못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있고 북한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마저 연이어 탈북을 하고 있으며, 북한 군인들의 탈영과 약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떠벌렸다.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북한 군인들의 탈영과 약탈도 빈번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있었을까? 없었다. 모두 헛소리였다. 박근혜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북한은 곧 망했어야 한다.
   
박근혜는 이어 북한이 “내부 동요를 막고 우리 사회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사이버 공격과 납치,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DMZ) 등에서의 무력시위와 같은 다양한 테러와 도발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 역시 근거 없는 헛소리였다. 북한은 곧 붕괴할 것이니 그 주민들은 자유대한의 품으로 오라고 말하면서, 북한이 붕괴에 직면해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공포심을 조장한 것이다.
   
북한이 곧 망할 것처럼 떠드는 허풍은 북한이 곧 어떤 사건을 저지를 것처럼 선전하기 위한 전제였을 것이다. 이때 이미 박근혜는 국정원 등이 벌이는 김정남 살해 공작에 대한 암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테러와 도발’ 운운은 과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북한의 테러’를 조작할 때면 늘 써먹던 수사(修辭)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주변에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 숱한 간첩 조작 및 국가조작테러 사건들에 관여했던 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 군사독재 정권의 잔당들이 군사독재자의 딸이자 허수아비 대통령인 박근혜의 눈과 귀를 가린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북한 급변 사태’를 조작하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있지도 않은 ‘북한 급변 사태’를 있는 것처럼 떠벌린 것은,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령부 등이 ‘북한 급변 사태’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연달아 조작한데 따른 것이다. 그렇게 수상한 사건들을 조작하면서 대통령 박근혜로 하여금 ‘북한 급변 사태를 맹신하게 했고, 북한의 도발과 테러를 예언하도록 만든 것이다.
   
박근혜가 “북한 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마저 연이어 탈북을 하고 있으며, 북한 군인들의 탈영과 약탈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떠벌린 근거는 고작해야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공사 탈북(2016.8.17 입국)과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 식당 여종업원 12명 납치(2016.4.7 입국) 정도였다. 침소봉대를 넘어 과대망상에 의한 허언증 수준이다. 
   
또 “북한 정찰총국의 대좌 출신 고위 장교가 지난해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한국일보 2016.4.12)했다거나,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표부 소속 간부가 가족과 함께 탈북해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016.10.5) 등등 사실무근의 보도도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들이 떠돌 때마다 국정원과 통일부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서 ‘믿거나 말거나’식 답변으로 언론을 오도했다. 그렇게 뉴스 찌라시를 돌리면 교수니 연구원이니 전직 국정원 간부니 하는 이들이 그 허접한 찌라시들을 인용하며 연일 ‘북한 급변 사태가 임박했다’고 떠들었다.
   
일부 부화뇌동도 있었겠지만 청와대와 국정원 등의 움직임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국정원과 정보사령부 등이 ‘탈북공작’에 잇달아 성공한 뒤 박근혜의 계룡대 발언이 나왔고, 그 직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계엄 문건이 작성됐다.
   
또 계엄군이 발동되면 합동수사본부장이 될 기무사령관 조현천은 박근혜 탄핵 소추 논의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15일과 12월 5일, 탄핵소추가 가결되던 12월 9일,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2017년 2월 10일 등 모두 네 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2016년 12월 5일에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을 면담한 뒤 박근혜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조현천은 2017년 3월3일 국방장관 한민구에게 계엄문건을 보고했다 한다.
   
그런데 비상계엄을 선포할만한 ‘북한 급변사태’란 것이 고작 태영호와 류경식당 종업원들 - 및 몇몇 탈북자들 - 뿐이었다. 뭔가 2% 부족하지 않나?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황장엽)가 탈북한 적도 있다. 국정원의 꼭두각시로 활동하는 외교관 탈북자도 몇 명 있다. 이런 마당에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한 명 갖고 ‘북한 급변사태’ 운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정적인 ‘한 방’이 있어야 했다. 북한의 내분을 연상할 수 있는 ‘결정적 한 방’. ‘김정남 살해 공작’이 그것이었을까?

<조작의 결정판 ‘김정남 사건’>
   
그랬다. 김정남이 살해되고 나자 ‘북한 붕괴론’ ‘북한 급변사태론’은 최고조에 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북한 지도부를 아예 테러집단으로 매도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김정남 살해 사건이 정말로 북한의 소행이었다면 이는 박근혜 정권과 미국 매파 세력이 학수고대하던 ‘북한 붕괴’ 또는 ‘북한 급변 사태’의 결정적 징후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어떤 나라 지도부가 그 최고지도자의 이복형을, 그것도 백주에 외국 공항에서 살해했다면 그 나라는 이미 ‘막장’에 다다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마찬가지로, 이런 해괴망측한 발상으로 끔찍한 사건을 조작한 세력이 있다면 그들의 운영 역시 이미 ‘막장’인 것이다).
   
놀랍게도, 박근혜의 청와대와 국정원은 ‘김정은이 김정남을 살해하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몇 년 째 유포해 왔다. 그 말이 맞는[았]다면 박근혜의 청와대와 국정원은 참으로 놀라운 정보력을 갖고 있는 것이고, 놀라운 예지력을 바탕으로 기상천외한 대북정책을 수립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책결정력을 발휘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박근혜가 국군의 날에 ‘북한 급변 사태’와 ‘북한의 테러와 도발’을 들먹인 것이라면, 또 국정원과 정보사가 태영호와 북한 식당 종업원들을 꼬드기거나 납치해 데려온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믿어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들이 말하는 ‘북한 급변사태’란 모두 국정원과 그 방계 조직의 ‘대북공작’과 정보조작이 만든 환영(幻影)이었다. 백보를 양보해 태영호는 자발적 망명이라고 쳐도, 류경식당 여종업원들은 납치해온 것이 분명하지 않나.
   
문제는 또 있다. 류경식당 여종업원들마저도 자발적으로 집단 탈북한 것이라면, 그래서 정말로 통일부가 떠벌렸듯이 ‘북한 엘리트 자녀들의 집단 탈북’이 맞는다면, 북한 체제는 정말로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어야 하고, 북한은 지금쯤 ‘붕괴’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모두 남한으로 탈주해 왔어야 한다. 웃기는 소리였다. 박근혜 일당의 선전이 온통 거짓부렁이었다는 말이다.
   
저들은 그렇게 거짓부렁을 남발하며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비상계엄을 획책한 것이다. 그랬기에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박근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2017년 2월 10일 마지막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고, - 그로부터 사흘 뒤 김정남이 살해되고 -  김정남 사건을 활용한 대북 심리전이 고조될 때인 2017년 3월3일 국방장관 한민구에게 계엄문건을 보고하는 등 일사분란하게 ‘북한 급변사태 계엄’ 음모가 착착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17년 2월경부터는 촛불 집회를 ‘급변 사태’로 상정한 계엄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프레시안> 2019.11.6)는 분석도 있지만, 2017년 2월은 북한 급변사태(김정남 살해)와 일련의 폭력 사태를 조작한 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시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한편, 박근혜 일당이 비상계엄 운운하고 막판에 김정남을 살해하면서까지 북한 급변사태를 조작하려 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미국과 남한의 수구세력이 한 몸이 돼 욕망했던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그것이었다. 미국과 박근혜 일당이 김정남을 살해해서 얻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북 테러지원국 재지정 욕망>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본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1983.10.9) 직후였다. 당시 레이건 정권은 일본의 나카소네 정권, 한국의 전두환 정권과 함께 소련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고 봉쇄하기 위해 매우 공격적이고 무모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자산(asset)과도 같은 대한항공(KAL) 여객기가 소련 군사시설 이 밀집된 곳에 들어가 첩보를 수집하다 격추돼 2백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하고(1983.9.1), 미국의 대북 비동맹외교전에 동원됐던 우리 측 인사 17명이 버마 아웅 산 묘소에서 살해되는(1983.10.9), 해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이유다. 이들 사건은 소련에게 ‘악의 제국’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는 미 군산복합체의 반인륜적 욕망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자작테러였다(졸저 <1983 버마>(박종철출판사) 참조).
   
그러나 이 사건에 쏠리는 갖가지 의혹 때문이었는지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지 못했고, 4년 뒤인 1987년 다시 전두환 정권과 함께 ‘제2의 버마 테러’인 KAL 858편 폭파 테러(일명 김현희 사건)를 조작한 뒤에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는데 성공한다. (1988).  
   
이후 북한의 정치외교적 공세 속에 미국은 부시행정부 말년인 2008년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지만, 그 해 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뒤부터 다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재개됐다. 이후 천안함 침몰(2010.3.26)과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2015.8) 등 ‘북한의 테러’ 이미지를 조작하려는 듯한 수상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이런 일련의 수상한 사건들에 이어 발생한 사건이 바로 김정남 살해 사건(2017.2.13)이다.
   
김정남 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 뒤 미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을 겨냥해 ‘화염과 분노’(fire & fury)라는 말로 협박했고, 다시 석 달 뒤인 그 해 11월 미 국무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미국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동안 한-미-일 정보기관과 기레기 언론이 거짓정보를 유포하며 여론을 호도했음은 물론이다(졸고 <‘김정남 사건’, ‘북한 배후설’의 실체를 밝힌다>(2018.2.12, 통일뉴스), <[김정남 사건] 조작+억지+허위의 ‘꼴라보’>(2018.8.13, 진실의길) 참조).

<‘북한 붕괴론’ = 대북 심리전>
   
박근혜의 ‘북한 급변사태’ 또는 ‘북한 붕괴’ 언동의 데자뷔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한 것이 그것이다. 자신과 정상회담을 하려던 김일성 주석이 회담 예정일(1994년 7월 25일)을 약 보름 앞두고(7월 8일) 급서한 지 1년 반이 지난 1995년 12월 1일의 일이었다.
   
북측은 최고지도자의 서거에도 불구하고 그 해 10월 보란 듯이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매듭짓는 등 대내외 정책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와대나 정보기관 및 국내외 전문가들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의 ‘고장난 비행기’ 발언은 그런 정보 오류의 결과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12월 1일 오후 국방부에서 열린 통합방위중앙회의에서 조순 서울시장 및 국방부관계자 등과의 대화에서 “북한은 김일성 사후 1년 6개월이나 됐는데 아직 후계자도 없는 등 고장난 비행기가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정일 총비서가 부친의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북맹’(北盲)의 전형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고장난 비행기가 물에 떨어지면 좋겠지만 서울 등에 불시착하면 밑에 있던 사람들이 죽는다”고 말했다. ‘서울 불시착’은 ‘북한의 우발적 행동’ 또는 ‘북한 급변사태’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대통령마저 무지와 ‘무지에 의한 공포’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김일성 주석 서거 후 한 달여 만인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체제 경쟁은 끝났다. 언제 갑자기 통일이 눈앞에 닥쳐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 붕괴론’ 또는 ‘통일대박론’은 박근혜만의 것이 아니라, 남한의 정보기관이 시시때때로 발신하는 희망 섞인 대북 전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미국과 남한 정보기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체로 북한 지도자의 중병설 또는 사망설이 나돌거나, 실제로 사망했을 때면 반드시 북한 붕괴론을 유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2011.12.17)와 장성택의 처형(2013.12.13) 등 북한 지도체제 재정비 시기에 박근혜 정권이 북한 붕괴론을 다시 퍼뜨린 것은 전례에 비춰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김영삼 정권의 ‘북한 붕괴’에 대한 맹신은 1997년 2월 황장엽의 망명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를 데려온 김영삼 정권은 황장엽을 ‘북한 최고위직’ ‘주체사상의 대부’라고 부르며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황장엽이 ‘서울 도착 성명’(1997.4.20)에서 “북조선은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상태에 들어갔다”고 말한데 고무됐던 것일까. 
   
자신의 조국을 배신한 이의 말이라면 그 신뢰도는 한 50%는 반감해야 옳거늘, 김영삼 정권은 황장엽의 말을 200% 과신했다. 이 땅의 분단체제가 강요하는 대북 적대감은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력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또 이 땅 남녘의 정책결정자 또는 오피니언리더라는 자들은 동물적 감각만으로도 능히 배우고 익혔을 ‘학습효과’마져 거부한다. 고작 태영호같은 이 한 둘 데려와 놓고 또 허접한 북한 붕괴론을 떠벌렸던 것이다.

<이한영 사건은 김정남 사건의 데자뷔>
   
이성과 오감의 마비 속에 잊힌, 그러나 ‘남북관계’를 입에 올리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제대로 알아야 할 사건이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 살해 사건(1997.2.15)이다.
   
1982년 “미국으로 가려다 납치되다시피 안기부에 의해 서울로 끌려왔다”(소설가 황석영 씨 2002년 전언). 10수 년 간 그럭저럭 조용히 지내다 어느 날부터 기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납치’(?)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나라 정보기관의 미움을 산 이한영은 황장엽이 주중한국대사관에 찾아와 망명을 신청하고(1997.2.12), 그 다음날 그의 망명 소식이 대서특필된(1997.2.13) 지 이틀 뒤 ‘총기를 소지한 괴한들’에 의해 살해됐다.
   
안기부와 경찰은 이한영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살해됐다고 발표했지만, 그것을 입증할 단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의혹 투성이였다. 저들은 - 이한영을 살해한 조직은 - 이한영 살해(1997.2.15)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바치는 생일(2월 16일) 선물’이라고 선전했다. 북한의 공작원들이 최고지도자의 인척들을 살해하면 그것이 최고지도자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끔찍한 발상! 동족을 원수로 여기도록 철저히 세뇌된 조직원들의 뇌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땅 남녘을 지배하는 자들은 언제든 ‘북한 급변사태’를 조작하고 비상계엄 선포를 획책할 수 있다. 또 비상계엄이 아니어도, 저들은 호시탐탐 자국민의 일부를 ‘종북세력’으로 몰아 적대시하며 말살하려 한다. 통진당 해산은 지난 70년간 수없이 반복되고 재연된 ‘종북 척결 공작’의 한 예일 뿐이다. 이미 물꼬를 튼 남북관계마져 틀어막는 자들이 바로 저들이다. 항시 누군가를 적으로 몰아 살상하기를 즐겨하는 저들은 이 땅의 분단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저들은 외친다. ‘이대로! 분단된 채로!’ (끝)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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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때리고 국회 난입 시도 조원...
                                                 
천안함의 진실을 지킨 사람들과 박...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증명
                                                 
[이정랑의 고전소통] 장능이군불어...
                                                 
이제 눈을 들어 국가경영 전체를 ...
                                                 
[칼기노트 21] 팬암 103편 사건과 ...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자재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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