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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위기론은 무책임할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준구  | 등록:2019-08-12 13:17:37 | 최종:2019-08-12 13:17: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번 올린 글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아베 정부의 수출제한조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 기업들이 당연히 새로운 여건에 적응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들었지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절한 적응은 성공적 기업의 본질이니까요.

일본의 수출제한조처에 대해 우리 기업들이 손 놓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을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우선 국산화를 시도해 볼 것이며, 그게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순 아닙니까?

우리 경제가 당장 망할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은 우리의 기술수준이 일본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설사 이것이 사실일지라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일본 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경제가 당장 모든 기술에서 일본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리고 일본이 아무리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 공급자의 위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다른 기업이 대체 공급자로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일이구요. 돈이 된다고 생각되면 지금까지 장외에서 구경하던 기업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일본 기업이 자기네 정부의 수출규제 조처로 손발이 다 묶인 상황이 그들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될 텐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기업 못지않게 일본의 소재 수출기업이 이번 조치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국 기업에 손해를 가져다줄 일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아베 총리를 3류 정치인이라고 비웃은 바 있습니다. 자기는 한국에 타격을 준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테지만, 실제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일본의 수출기업이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는 한국 기업들이 두말없이 자신의 상품을 사주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자기 정부의 조처로 인해 갑자기 판로가 막혔다고 하면 얼마나 딱한 상황이 되겠습니까? 그 동안 피땀 흘려 그 정도의 기업을 일구었는데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상황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한 전문가는 일본의 수출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 얼마든지 팔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하더군요.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게 말처럼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고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체 거래선을 찾고 그들과 협상하고 계약을 맺는 일은 하나같이 어려울 뿐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일본 수출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한국 기업과 계속 거래를 하는 게 제일 좋은 일이지요.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 수출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을 늘려 한국 기업에 공급하든가 혹은 한국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네요. 일본의 수출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런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자체 생산에 성공하거나 대체 수입선을 성공적으로 확보한다면 그들은 치명적 타격을 입을 테니까요.

해외의 많은 언론들이 아베 정부의 이번 조처를 비판적 기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유무역의 리더를 자처하는 일본답지 않은 행동이라는 비판에서 시작해 결국 자충수가 되고 말 것이라는 비판에 이르기까지요. 단지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만 아베 총리가 당연한 일을 했다는 식의 두둔이 나오고 있지요.

일부 인사들은 제2의 IMF 위기니 뭐니 해서 우리 경제가 마치 침몰 직전의 선박처럼 위험한 상태에 있다고 위기의식을 한껏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아무 때나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겠습니까?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국가신용등급은 중국은 물론 일본보다도 더 높은 것입니다. 등급 전망도 '안정적' 그대로 평가했다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보복 조치에 그다지 큰 악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전망하는 것 아닙니까?

국제적으로 이름난 신용평가기관도 별 걱정을 않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만 마치 자기 나라가 곧 망하기라도 할듯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에 하나 아베 총리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너 죽고 나 죽자"식의 무모한 확전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는 전혀 현실성이 없는 전망입니다.

물론 아직 사태를 낙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번 사태를 아무런 비용도 치르지 않고 넘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활로를 열어 나가야 마땅한 일입니다. 일본 정부와 협의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말도 절대적으로 맞구요.

그러나 일본의 보복조처로 인해 우리나라가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수긍할 수 없습니다. 무슨 정치적 목적으로 근거 없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는지 몰라도, 그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무책임한 데 그칠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기까지 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론도 위험하지만 근거 없는 위기론은 더욱 위험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실현적 예측(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말이 있듯, 근거 없는 위기론이 정말로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라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로 위기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라를 더욱 위태로운 처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준구 교수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834&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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