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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4
당시 경찰 수뇌부의 행태는 우리 경찰의 수치이다.
안호재  | 등록:2019-06-21 13:38:55 | 최종:2019-06-28 23:05: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20년이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故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그는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故 안병하 치안감의 아들 안호재씨의 비망록 이야기를 기획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3) 김대중씨 구속으로 자극

안병하 국장은 전남 치안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80년 초부터 광주 학원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인근에 동원 가능한 경찰력을 광주에 모아 시위진압 훈련과 적응 훈련을 하였다. 경찰은 그 지역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막강한 정보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다.

5.18항쟁 기간에도 광주시내에 있는 경찰 정보조직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보면 경찰의 정보조직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경찰일지나 자료 등을 살펴보면 80년 당시 학생들의 시위 양상이 계엄 철폐 등 반정부 시위였다.

그런데 5.18 항쟁기간 중에 김대중 선생님 구속이야기가 시민들을 자극 하여 어린 학생들과 나이드신 분들, 장사하시던 분들이 장사를 내 팽개치고 시위에 합류했다?

광주 일원에 통신이 두절되는 바람에 모든 소식은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5월17일 광주는 경찰이 볼 때 매우 평화로웠다.

그러나 18일부터 광주는 혼란에 빠졌다.

왜 계엄군은 광주를 혼란에 빠트렸을까?
왜 학생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왜 시민들 앞에서 학생들을 폭행해서 시민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왜 시민들을 흥분시키는 루머가 난립했을까?
왜 군 정보기관원들이 시위군중 무리에 대거 투입되었을까?
왜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경찰에 책임을 떠넘겼을까?
왜 안병하 국장은 시위진압이 주된 업무인데 그것을 거부했을까?

안병하 국장은 공직생활 32년 만에 상부의 명령을 처음으로 거부하였다. 이것이 안 국장의 공직생활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 지시 거부가 되었다.

80년 전남경찰관들은 나름대로 광주 시민 한 사람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80년 당시 광주에서 많은 공직자가 나름대로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광주시청, 전남도청, 사법부 공직자는 80년 5월 광주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아버님이 언제가 서운함을 나타내신 적이 있다.

80년 5월이 지난 후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80년 전남경찰관 안병하 국장을 비롯한 많은 경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80년 많은 공직자가 신군부에 잘 보여 개인의 영달을 추구할 때, 전남경찰관들은 고문 후유증의 고통에 시달리며 강제해직까지 당하여 공직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해야 했고, 그로인해 가족 모두를 생활고에 시달리게 하는 무능한 가장이 되었다.

경찰청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모두 강제 해직이 아니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고.

나는 반문한다. 40대 후반 50대 초반 경찰간부들이 자진해서 사표 쓴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재조사해서 알려 준다고 한 지 일 년이 지났다. 당신들의 선배인 80년 전남경찰관은 공직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버렸는데, 후배 경찰들의 작태가 한심스럽다.

광주시청에 묻는다.

광주시청은 80년 전남경찰이 광주에서 광주시민을 지키려 목숨을 걸었다는 것은 인정하는가? 80년 전남경찰의 업적을 광주시가 인정한다면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 80년 전남경찰의 업적을 기념할 조약돌 만한 기념비 하나라도 있는가?

2018년, 그러니까 재작년 5월17일, 전남경찰관 유족대표로 5.18 공식 행사에 참석 하라고 전화가 왔다. 38년 만에 처음으로 5.18행사에 초청받은 것이다. 광주시청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매년 초청장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광주시청은 올해 5.18행사에 초청하지 않았다. 작년에 광주시청이 한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알고 5.18행사 당일 본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구묘역에서 행사를 만들어 주고 동참하신 유공자 분들께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한다.

80년 5월21일 전남경찰국직원들은 계엄군이 철수한 전남 구도청에서 초조하게 대기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재집결지로 소규모 단위로 철수하였다.

왜 치안본부는 경찰 철수 명령을 늦게 내렸을까?
왜 계엄군은 비무장인 경찰만 남겨 놓고 자기들만 철수했을까?
왜 군인이 철수하고 경찰 병력만 남은 구도청에 무장한 시민군이 무리하게 진입하지 않았을까?
왜 계엄군이 철수할 때는 과격성을 보인 시민군이 경찰이 철수할 때는 우호적이었을까?
왜 2천 정도의 경찰이 철수하고 재집결 했을 때 부상자 한 명 없이 무사했을까?

도청이 시민군들에게 접수되었을 때 안 국장 사무실도 시민군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안병하 국장이 26일 광주 송정리 비행장에서 보안사에 압송되었으니, 24.25일로 추정된다.

아버님의 지시로 어떤 경찰관이 구도청 경찰국장 사무실에 가서 아버님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아버님은 사무실에 있는 권총을 걱정했다고 한다. 사무실에 가니 책상 위의 명패도 그대로 있고, 서랍도 만진 흔적이 없다고 하였다. 권총도 실탄과 같이 그대로였다고 한다. 서랍에 돈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80년 광주 시민군을 폭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지가 아닌가? 시민군이 구도청을 접수했던 기간 중에도 시민군의 동의하에 경찰들의 출입이 가능했다는 기록들이 있다. 시민군은 단지 계엄군들의 위협에 대비했던 것이다.

치안본부는 자신들의 지시를 듣지 않는 전남경찰관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들의 부하 2천여 명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의 안위에 해가 될까봐 신군부의 눈치만 볼 수 있을까?

그런 치안본부 수뇌부 누구 하나 질책을 받았는가? 시민을 구하고 공직자의 명예만 지킨 80년 전남경찰관들만 39년째 불명예를 안고 억울함 속에서 살고 있다.

계엄군이 자기들만 도청을 철수 했을 때 경찰들은 크게 동요했다고 한다. 안 국장이 다급하게 치안본부에 철수 요청을 했으나, 치안본부는 정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급함에 육사 동기인 전남 계엄소장에게 보고하고 철수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경찰 수뇌부의 행태는 우리 경찰의 수치이다. 자기 부하들의 목숨이 위급한데, 자신의 출세를 위해 신군부 눈치만 보던 비열한 작자들…

안호재 / 故 안병하 치안감 아들

【안병하 치안감 프로필】

○ 1928년 강원도 양양 출신
○ 육사8기 김종필 김형욱 강창성 윤필용 유학성 이희성 등과 동기
○ 한국전쟁 당시 포병 중위 시절 춘천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으로 화랑무공훈장 수훈.
○ 1962년 총경으로 경찰 투신
○ 부산중부경찰서장
○ 1968년 서귀포 간첩사건 육상작전 지휘, 중앙정보부장 표창 수상.
○ 화랑무공훈장 2개, 녹조근정훈장 3개 수훈.
○ 1971년 43세의 나이로 경무관 승진
○ 치안국 방위과장, 소방과장, 강원도경국장, 경기도경국장
○ 1979년 2월 운명의 전남도경국장 부임
○ 1980년 전남경찰기동대 안전수칙
“공격 진압보다 방어진압을 우선하라”,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을 잘 지켜라”, “시위학생들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고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학교 안으로는 진입하지 말라.”,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잡혀온 시민들에게도 식사를 정상적으로 지급하고 가혹행위하지 마라.” 라고 특별지시를 내리는 등,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었다.
● 1980년 5월 25일 광주를 방문한 최규하 당시 대통령 앞에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명령 거부.
● 1980년 5월 26일 전남도경국장 직위해제 및 보안사 연행 후 8일 동안 혹독한 고문.
● 1988년 10월 10일 고문후유증으로 8년간 투병 중 어느 내과병원에서 별세.
○ 2003년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정
○ 2005년 국립 현충원 안장
○ 2006년 순직 인정
○ 2015년 8월 이달의 호국인물 선정
○ 2017년 11월 22일 경찰영웅 선정 및 전남경찰청사 흉상 제막
○ 2017년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
○ 2018년 국립현충원에서 치안감 추서식 거행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1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2
故 안병하 치안감 비망록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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