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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 106
(339~342일) 농부의 억척스러움과 완주를 향한 본능적 몸부림
강명구  | 등록:2018-08-23 09:56:06 | 최종:2018-08-23 09:59: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제 오아시스 마을이 아니라 황허를 따라 생겨난 도시와 마을을 지난다.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중웨이'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자연친화적으로 개발된 조용한 도시이다.

이곳을 달릴 때 서울의 청계천처럼 도시 한가운데 길게 뻗어있는 호숫가의 버들가지가 얼굴을 기분 좋게 때린다.

▲ 8월 5일 만난 중웨이 연못공원에서

주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한가롭다. 새색시의 얼굴만큼 크게 피어나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린 연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초로의 남자가 한구석에 앉아 중국의 퉁소의 연주 소리가 애잔하여 내 발길을 잡아끈다.

▲ 8월 5일 만난 중웨이 연못공원에서

8월 초 벼는 고개를 곧추 세우고 한낮의 태양과 정분을 나누며 제 안 사랑의 씨알을 익혀간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에 옥수수는 제법 속이 꽉 찼고, 해바라기 밭 해바라기들은 서로 질투도 하지 않고 해만 바라보고 서있다. 벌써 밀밭은 수확이 끝나 텅 비었다. 울밑 대추나무는 다닥다닥 맺힌 대추열매의 무게가 힘겨워 가지가 부러질 지경이다. 콩밭에는 콩을 수확하는 여인들의 저고리가 땀에 젖는다. 수로에 물고랑을 돌리려 삽을 들고 전기 삼륜차를 타고 지나가는 두 젊은 부부의 모습 또한 정겹다.

▲ 황허와 황허에 기댄 논과 밭

하! 농부들의 땀내가 밴 흙냄새가 매혹적이다. 척박한 땅을 기반으로 끈질기게 살아내는 중국인 모습을 본다. 들판의 곡식은 농부들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라고 무르익는다고 한다. 이 지역은 황하가 옆으로 흐르지만 아직은 반사막 기후이다.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이곳 땅은 중국인들의 끈기와 기질, 의지를 말해주고 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 땀방울 하나하나가 중국이라는 깊고 거대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무뚝뚝한 이곳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에는 예술적이기까지 한 아름다움이 깃들어있다.

아름다움이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보이는 특별한 것이다. 그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작품이 펄 벅의 <대지(大地)>가 아닐까 한다. 정주민들의 삶이란 흙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평생 땀 흘려 농사짓는 일 말고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땅을 갈아 밀과 벼를 심어 추수하는 일 외에는 모르는 왕릉의 우직하며 억척스런 모습이 이곳을 달리면서 겹쳐진다.

펄 벅의 <대지>는 중국 어느 북부 지역 시골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왕룽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소설은 빈농 왕룽이 황부잣집 하녀 오란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왕룽과 그의 아내 오란, 그리고 그들로부터 비롯되는 가족의 역사는 어느 왕조의 역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의 흥망과 자연재해, 죽음, 사랑, 질병, 전쟁, 혁명의 서사시를 펼쳐낸다.

왕릉에게 있어 땅은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 기근이 닥쳐 남쪽으로 내려갈 때도 끼니는 거를지언정 땅을 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땅은 그의 모든 것이며 왕룽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땅을 가졌다는 자존심이 있었고, 땅으로 인해 굶주리기도 하고 부유해지기도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땅에 바쳤고 땅은 그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왕룽은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신앙처럼 자신에게는 땅이 있다는 것을 되뇌며 용기와 희망을 얻곤 한다. 왕릉은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도 땅이 곧 생명이라는 진리를 외친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땅을 갖고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대지>에서 농부의 삶은 땅에 모든 것을 바쳐 땅에서 모든 것을 얻고 결국 땅 앞에서 늙어 쇠락해가는 것이다. 땅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집착과 집념, 끈기 같은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 농부 모습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노벨 문학상까지 타게 된 펄 벅이 한국에 와서 한국 농부에게서 깊은 철학적 깨달음을 얻고 간다.

어느 황혼 무렵, 일을 마치고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가 볏단을 반은 소달구지에 싣고 반은 자신의 지게에 지고 가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 모습은 아주 이상하고 바보스러운 장면이었다. 소달구지에 볏단을 다 싣고 자신도 달구지에 올라타고 가면 그만인 것을 말이다. 펄 벅이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소달구지를 타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농부의 답이 참으로 철학적이었다.

“에이, 어떻게 달구지에 타고 갑니까? 저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는데요. 그러니 짐도 나누어서 지고 가야지요.”

그녀는 이 모습을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 밭두렁에서 일하는 사람들.

오늘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밭두렁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두 부부가 점심 도시락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대지 또한 인간에게 언제나 땀 흘린 것만큼 소출을 내어주진 않는다. 홍수와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 메뚜기 습격 같은 해충피해 등이 시시때때로 몰아치지만 그런 하늘의 심술을 인내로 감내하고 나면 다시 대지는 풍성한 열매를 내어준다.

농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 부족함을 자각하고 겸손해하며 하늘을 경외하고 늘 감사한다. 농부의 마음과 깊은 교감을 나눈 내게 폭염과 고열 따위는 이제 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사실 심각한 고려 없이 뛰어든 길인지도 모르지만, 하고 싶은 건 못 참는 성격이 나를 이 길로 내몰았다. 일단 길 위에 뛰어든 이상 살아서 완주해야 한다는 본능적 몸부림이 나를 야생의 표범처럼 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질 설사로 밤새 다 쏟아냈다. 아침과 점심 만두 한 개 달걀 프라이로 때우고 저녁 한 끼만 제대로 먹고도 다음날 42km를 거뜬히 뛰었다.

▲ 2018년 8월 5일에서 8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중웨이와 다른 도시

▲ 2018년 8월 6일에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강명구선수의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강명구

북미대륙 5,200km를 유모차에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뛰었으며, 지난해 6월 6일부터 24일까지 제주강정에서부터 광화문까지 ‘사드철회와 평화협정을 위한 평화마라톤’ 을 뛴 평화마라토너다.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의 헤이그를 출발해서 유라시아 대륙 16,000km를 뛰어, 11월에 북한으로 들어와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들어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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