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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까?
이진우  | 등록:2016-11-14 13:08:25 | 최종:2016-11-14 13:28: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선거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합 주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앞서고 있어 낙승이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소위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북동부 공업지대(펜실베니아,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 등)에서 트럼프가 전통적 민주당 표를 잠식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언론과 선거 전략가들이 이 중 오하이오 주를 초 접전 주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펜실베니아, 미시건과 위스콘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 공업지대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민주당이 자리매김해왔는데 이를 상징하는 지역에서 모두 패배한 것이다. 과거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 빌 클린턴도 버락 오바마도 모두 이곳에서의 승리를 발판으로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그만큼 민주당과 힐러리에게는 충격적인 패배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선거 막바지에 터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스캔들' 재조사가 선거 결과를 뒤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당초 초 접전 주로 분류되었던 오하이오 주에서 트럼프가 예상을 뛰어넘는 9%차 낙승을 거두었고, 흑인 및 히스패닉 인구 비중이 높은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까지 거머쥔 것을 감안할 때 그와 같은 평가는 갈수록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초 접전 주에서 참패를 거둔 것도 모자라 전통적인 텃밭마저도 내주는 상황에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체 유권자 득표율에서 힐러리(47.7%)가 앞섰는데 대통령선거인단(트럼프 306 VS 힐러리 232)에서 트럼프(47.4%)가 앞선 것을 두고 민의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LA, 시카고 등에서 트럼프 당선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소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야말로 미국의 대통령선거인단 제도가 그 빛을 제대로 발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의 경우 득표율에 있어서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인 반면, 힐러리의 경우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힐러리 62% VS 트럼프 33%)와 뉴욕(힐러리 59% VS 트럼프 38%)에서의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중서부와 남부 대다수 지역에서 대패를 거두었다. 트럼프가 민주당 강세지역인 동부와 서부에서 40%대 득표율로 선전한 것과 큰 대비를 이룬다.

미국 제헌의회 헌법 입안자들이 인구가 많은 대도시 지역에서의 몰표를 기반으로 백악관에 입성하여 대도시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선거인단 제도(Electoral College)와 승자 독식 제도(Winner takes it all)를 만든 것을 감안할 때 힐러리보다는 트럼프가 헌법정신에 부합되는 승리를 거둔 셈이다.

결론적으로, 힐러리는 트럼프가 미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초유의 끝내기 역전승(Big Upset)의 주역이 되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을 뿐 아니라 명분과 실리마저도 모두 트럼프에게 빼앗기는 사상 최악의 패배를 거두고 말았다.

이제 상황은 급변하여 도리어 힐러리가 민주당 정신을 훼손했고, 민주당 지지기반을 붕괴시켰다는 비난과 책임에 휩싸이는 국면에 놓여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공화당이 어떻게 바뀔 지도 흥미롭지만, 힐러리 패배 이후 민주당이 어떻게 추스를 것인지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정치가 대변혁의 입구에 서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당선 이후의 미국은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달라질까?

한국과 관련하여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대목은 두 가지이다. 한미동맹의 성격을 변화시켜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 비율을 높이는 것,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해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주요 산업분야에 있어서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 때문에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트럼프 표 '갑질 외교'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러나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기조가 백악관이 아닌 의회에서 결정되고, 한미동맹과 한미 FTA 모두 미 상원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장 이 부분에 있어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비록 공화당 소속이라 할지라도 의회 내 반 트럼프 기조가 여전히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성공한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다. 따라서 그의 출신과 성장 배경을 감안할 때 미국 의회와 길고도 지루한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보다는 그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기선을 제압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개발에 있어서 규제와 논란이 많은 곳에 집착하여 시간을 자금을 낭비하기보다는 규제의 문턱이 낮으면서 수익성이 높은 곳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그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 큰 무기를 갖고 있다. 첫째, 주한미군과 전술핵을 통한 한반도 핵우산 정책이며, 둘째,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역파트너로서의 위상이다. 거래의 속성을 잘 아는 트럼프는 이 같은 무기를 십분 활용하여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우선 북미 간 직접대화 가능성을 흘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방침을 압박하면서 THAAD 배치에 있어서의 미국정부의 협상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의 장기주둔과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보류를 약속하며 한국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증가를 압박할 것이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미국 의회가 아닌 백악관이 지속적인 주도권을 잡고 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 재조정도 우리 입장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 및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온 사안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인권 문제이고, 둘째는 북한 핵개발에 대한 입장 차이다. 인권 문제와 관련 중국과는 티베트 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러시아와는 크림반도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또한, 북한 핵개발에 있어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핵 동결(freeze) 쪽에 가까운 반면 미국은 핵 폐기(혹은 비핵화 disarmament) 입장을 견지해왔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큰 기둥은 ‘내정간섭 배제’와 ‘역할 축소’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중 “크림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으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입장을 드러내 구설수에 올랐다. 그의 메시지 속에서 ‘내정간섭 배제’라는 대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림 반도의 러시아 편입도 내정의 일환이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내정의 일환이니 간섭하지 말자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외교에 대한 트럼프의 폄하도 ‘(미국의) 역할 축소’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대한 ‘무임승차론’ 비판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 비판 또한 같은 맥락이다. 역할을 할 거면 제 값을 받고 하고, 그렇지 못할 거 같으면 역할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전시 작전통제권 위양을 지렛대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려는 그의 시나리오 또한 그 맥락에서 기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재조정 가능성이 부각된다. 만일 트럼프가 내정간섭을 이유로 인권 문제에 대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북한 핵개발 또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 봉쇄에 초점을 맞춰 폐기가 아닌 동결 쪽으로 선회한다면 이들과의 갈등 상당부분은 일시에 해소된다. 뿐만 아니라 북한 또한 핵무기 폐기가 아닌 동결을 전제로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논의가 시작된다면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미·중·러 대타협 기조 속에 북미 관계개선이 가시권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축으로 한 유럽 집단안보체제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축으로 한 동북아 집단안보체제의 핵심은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약속(Commitment)’이라는 측면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의미에 대해 한마디로 평가 절하한다. 실속도 없이 퍼주기만 하는 허풍쟁이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트럼프의 동맹외교 기조는 ‘계약(Contract)’ 쪽에 더 가깝다. 충분히 실속을 챙기면서 결코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는, 힘을 앞세워 손해 보지 않는 길을 걸어온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길을 가겠다는 거다.

국제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외행보에 있어서 대척점이 없어진 만큼 미국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 앞에 놓여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트럼프가 과연 자신의 뜻대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공화당의 전통적인 대외정책 기조가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며,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및 팽창 가능성을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 여전히 힐러리의 정치적 친구들이 상당수 포진해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가 않으며 극심한 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러시아와는 대외정책 기조에 있어서 큰 갈등 요인이 없는 반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통상마찰과 무역 분쟁이라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 축소주의와 고립주의로 가는 만큼 중국과의 갈등 요소가 전반적으로는 줄어들겠지만, 보복관세, 덤핑규제, 환율조작국 선포 등 중국을 자극하는 조치가 발동될 경우 중국과의 통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에스컬레이션 될 수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무역과 통상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벌어지는 갈등이기 때문에 심각한 안보 갈등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트럼프의 새로운 대외정책 기조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 국내정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역할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것을 전제로 새로운 대외정책 기조를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미국과의 동맹외교 약화에 따른 정치 역학구도의 재편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반기문 대세론'의 약화와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야권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됨에 따라 한일관계 또한 협력보다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방향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토분쟁에 대한 미국의 거중 조정자 역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 쿠릴 열도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분쟁, 독도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에 있어서 미국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조정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이로 인해 남중국해에 있어서의 중국의 영토패권에 지속적인 제동이 걸렸고, 일본의 독도 강탈 기도도 일정 수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내정간섭 반대를 이유로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면 해당지역에서의 외교적, 군사적 긴장은 고조될 것이며 국지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S(이슬람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제테러집단 소탕 작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견지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무슬림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을 갖고 있는 트럼프이지만 대외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내정간섭 금지와 고립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만큼 IS 문제는 그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심각한 딜레마다. IS 소탕작전에 몰두하면 할수록 미국의 역할과 영향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고, 그냥 방치하자니 정치적 배신과 공약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한 아웃사이더 출신으로 전혀 대통령 감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트럼프에게는 내년 1월 취임까지 두 달의 시간이 남아있다. 대통령으로서의 데뷔를 앞두고 뼈를 깎는 이미지 트레이닝과 실전 훈련을 할 수밖에 없도록 미국정치 시스템이 본격 가동될 것이다. 미국 의회 또한 새로운 대통령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며, 그와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 정치는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교과서이며, 그 민주주의야말로 오늘날의 ‘아메리칸 드림’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강력한 엔진이다.

미국의 위대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되었기에 정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연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수호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균열과 붕괴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인가. 트럼프의 리더십만큼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도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진우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KPCC)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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