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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철학, 고장난 문고리에서 시작하다
耽讀  | 등록:2015-01-24 08:57:15 | 최종:2015-01-24 09:30: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86년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눈길을 끈 과목은 ‘철학개론’이었다.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가니 ‘철학개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은 수없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제목부터 철학개론이듯 목차와 내용도 거기서 거기였다.

대학생이랍시고 철학을 배우기 위해 ‘철학개론’을 공부했지만 이내 철학에서 멀어지게 했다. 물론 소광희, 이석윤, 김정선 공저인 <철학의 제문제>를 통하여 철학의 ‘ㅊ’자는 알았지만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철학입문서와 개론서는 만나기 힘들었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삶’과 별 관계 없이 철학을 논하고,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을 ‘삶’과 함께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조금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자: 국가의 발전과 제국의 형이상학>, <장자의 철학: 꿈, 깨어남 그리고 삶>이라는 책을 펴낸 강신주가 지은 <철학, 삶을 만나다>는 쉬우면서도 가볍지 않는 책이다. 강신주는 철학과 삶이 견우와 직녀처럼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고, 그래서 철학은 삶과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이 없는 삶이 맹목이라면 삶이 없는 철학은 공허한 것이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삶에 철학의 차가움을 제공하고, 철학에 따뜻함을 부여하고 싶습니다.”(17쪽)
 
강신주는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서 철학이 결코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제2부에서는 우리가 친근하거나, 친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랑’, ‘가족’, ‘국가’, ‘자본주의’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제3부는 우리 삶을 어떻게 철학적으로 성찰할 것인지 말하고 있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한 이후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받아 들였다. 하지만 강신주는 생각 앞에 ‘항상’을 놓으면 문제는 달라진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갈 때를 보자. 어제까지 이상이 없던 문고리가 열리지 않고, 변기 뚜껑이 부서져 있다면 우리는 ‘이건 뭐야 물건을 뭐 이따위로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고리는 무의식 속에 열었지만 오늘 문고리가 고장 남으로써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문고리가 고장 나지 않았을 때는 무의식 속에서 친숙했지만 문고리가 고장 남으로써 ‘낯섦’ 찾아오면서 인간은 생각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 말한다.

“세계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낯설게 다가올 경우, 오직 이때만 우리는 생각이란 말에 걸맞게 사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건과 마주치며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내뿜는 기호와 무의미 속에서는 우리는 낯섦을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 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바로 이 낯섦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려는 삶의 무의식적인 의지로부터 기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47쪽)
 
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고리와 변기 뚜껑이 고장 나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철학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삶에서 철학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따위 위대한 철학가들만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가진 모든 이는 철학이라는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고 강신주는 강조한다.
 
철학자들이 사유하고 조망했던 그 봉우리들을 우리의 삶과 사유를 통해서 조망할 수 있고, 그들이 올랐던 그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철학자들만 생각과 사유를 통하여 위대한 철학 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과 조망, 사유를 통하여 그들이 올랐던 위대한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철학자들이 올랐던 정상을, 그들의 안내에 따라 직접 올라가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다리는 튼튼해지고, 우리의 균형 감각도 단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이런 훈련도 결국 여러분만의 산봉우리를 찾기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입니다.”(76쪽)
 
결혼을 앞둔 대부분 예비부부들에게 사랑은 ‘둘’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둘’을 끈덕지게 유지하는 것일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부부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배웠다. 하지만 강신주는 산과 등산가를 비교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바깥에 있는 사람임을, 그래서 만약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자 은총이라는 사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진리이자 ‘둘’의 진리라고 강조한다.

“산에 올랐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산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산’과 ‘우리 자신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서 구성되는 ‘둘’의 관계를 무한히 펼치게 될 뿐입니다. 산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등산가들은 항상 산을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며, 산을 알기 위해서 다시 산을 찾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산은 ‘둘’이라는 사랑의 관계를 끊임없이 발산하면서 그들을 매혹시키기 때문입니다.”(131쪽)
 
국가는 무엇인가? 과연 국가는 인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국가는 인민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하지만 국가가 생긴 이래 국가가 인민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해왔을 뿐이다. 요즘 이명박 정권도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정치학>에서 “국가는 전체이며, 개인은 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은 고립되어서 자족적일 수 없으므로 전체에 모두 같이 의존해야 한다고”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국가에 대하여 강신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소중한 자유를 양도해버리고 국가권력에 복종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런 메커니즘에 완전히 적응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자유인을 죽일 수는 있어도, 그 자유인으로부터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163쪽)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체제라고 칭송하지만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이 지배한다. 강신주가 바라본 자본주의는 인간을 상품으로, 화폐를 신으로 만든 체계라고 일괄한다. 결국 인간은 삶의 대부분을 돈을 벌기 위해 산다면서 자본주의 속에는 애초부터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살 만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그리고 화폐를 신으로 만드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고단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 소비의 자유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오직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학원에 나가지만, 역사 강의를 듣는다거나 혹은 판소리를 익히기 위해서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학원에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역사, 문학, 철학, 판소리 등을 배워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구매할 산업자본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97쪽)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고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얻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도 이 땅의 노동자들은 30원때문에 생명도 끊고, 파업도 해야 한다. 최손한의 인간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도와줄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맑스는 말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철학은 불편하고 불쾌한 학문일 수 있다. 강신주는 행글라이더를 타 본 일이 있는지 묻는다. 행글라이더를 타면 온갖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난다. 하늬바람, 마파람, 강한 바람, 산들바람 따위를 만난다. 바로 그 바람 하나하나를 타게 되면서 처음 내리고자 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내릴 수 있듯이 예상치 못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삶을 꿈꾸라고 한다.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진단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결국 자신을 존중하고, 자유를 무한히 사랑하면서 물질이라는 노예가 되지 않아야 사람이다. 여기에 이르는 길을 가기 위한 첫걸음은 의외로 간단하다. 철학은 고장난 문고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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