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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김정남 사건’의 엉터리 재구성
‘김정남 사건의 내막을 재조작하기 위한 영화’라고 단언하는 이유
강진욱  | 등록:2021-08-18 11:25:55 | 최종:2021-08-19 11:46:0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
별 시답잖은 영화를 보고 나면 우선 본전 생각이 나고 조금 있으면 불쾌감이 엄습한다. ‘이따위 걸 보러 서너 시간을 허비했나?’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무릅써야 할 땐 불쾌감이 더 크다. 제작자가 ‘다큐멘터리’라고 우기고 또 일각에서 ‘독립영화’라고 잘못 부르는 <암살자들>이 그랬다.

말이 다큐지 다큐로서 갖춰야 할 객관성과 전문성을 현저히 결여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간의 각국 매체들의 엉터리 보도를 짜깁기한데 불과하다. 무릇 다큐란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 내막을 들춰내야 하며 그 목적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암살자들>은 ‘김정남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기는커녕 조작된 팩트를 재배열했을 뿐이다. 

또,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남북(한반도, 북한) 문제를 다룰 때는 더 전문적이어야 하고 더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임을 우리는 안다. 제 멋대로 써 제끼고 아무렇게나 묘사하고 표현해도 되는 대상이 바로 ‘북한’ 아닌가. <암사자들>은 이런 마구잡이 ‘북한 때리기(bashing)’의 전형이다. 다큐 흉내를 내고 ‘전문가연하는 자’의 코멘트로 과대포장을 했어도 본질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러면 ‘김정남 사건’ 다큐가 갖춰야 할 전문성 또는 객관성이란 무엇일까. 먼저 전문성과 객관성은 동일한 경지를 일컫는 두 개의 접근 방식임을 지적해 두자. 최고의 전문적 인식은 객관적일 수밖에 없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해야만 고도의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남 사건’을 객관적(전문적)으로 다루려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공간적 배경(context) 속에서 사건의 내막과 실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선(북한) 최고지도자 이복형의 비명횡사’는 북미.남북 관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북미.남북 관계라는 큰 시공간적 틀 안에서 ▲조선의 최고권력자 승계 과정과 그 전례 ▲미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대북 적대의 문제 ▲10년 간 계속된 김정남에 대한 한.미.일 정보당국의 추적과 그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이고 악의적인 보도의 문제 ▲사건 당시 말레이시아 권력 내부의 문제 등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만 놓고 보면, 이 사건에 즈음해 한.미.일 3국이 어떻게든 조선을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려 안달했고, 이 사건을 기화로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했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10년 반북적대 체제의 끄트머리, 중국에서 일하는 조선 처녀들을 납치해오다 시피 데려오고 주영조선공사 태영호를 불러들이며 ‘북한 붕괴론’을 부풀리다 자칫 이 반북적대 체제를 뒤엎을지 모를 새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때, 미국의 새 정권이 들어서 대북 강공책을 구사할 때, 조선을 다시 테러지원국 명부에 올리려 호시탐탐하는 때, 조선이 스스로 ‘나 잡아 잡숴’하며 그 빌미를 만들어 줬다? 몰역사적이기 앞서 몰상식적인 가설이다.

( 테러지원국 재지정)

미국이 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부에 올리려 획책했던 첫 사건이 바로 버마 아웅 산 묘소 자작테러였고(1983.10.9), 4년 뒤 대한항공(KAL) 858편 여객기 격추 사건(1987.11.29, 일명 김현희 사건)을 또 조작해 기어이 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는(1988년) 역사적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미국애들’이 알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또, 김정남은 김정은 총비서(국무위원장) 체제가 들어선(2011년) 뒤부터 특히 한.미.일 정보기관 및 언론의 집요한 감시와 추적에 시달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몰래 중국과 마카오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도 어떻게 알았는지 카메라 딸린 기자가 그를 찾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한.일 언론은 마치 ‘큰 건’을 건진 양 보도 경쟁을 벌이며 김정남과 김정은 사이를 이간질했다.

이런 에피소드를 넘어 남북관계의 추잡한 이면사를 조금 더 아는 이라면 이 사건이 일어난 즉시 두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파리에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살해된 사건(1979.10)과 김정남의 사촌인 이한영이 서울로 납치됐다(1982년) ‘쓸모’를 다한 뒤 살해된 사건(1997.2.14)이 그것이다. ‘김정남 사건’은 ‘이한영 사건’의 판박이라는 ‘안기부 꼭두각시’ 김현희(자칭 KAL기 폭파범)의 주장도 있잖은가.(https://www.mbn.co.kr/news/society/3146017)

(*이한영 사건에 대해서는 필자 글 참조)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4989&PHPSESSID=01415f6719e4805644ba6fa2b37c0645

‘최장수 중앙정보부장’(1963-1969)으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기둥이자 ‘충견’이었던 김형욱은 박정희에게서 떨려난 뒤 미국 청문회에 출석해 박 정권의 치부를 낱낱이 고발하다 파리에서 실종(살해)됐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기 20일 전인 1979년 10월 6일의 일. 박정희를 고발하는 회고록을 쓰던 그에게 지인들을 연달아 보내 거금을 주네 어쩌네 하며 경계심을 흐려 놓고 마침내 그를 파리로 불러내는 솜씨, 유럽의 중심인 파리에서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김형욱의 신병을 처리하는 솜씨, 김형욱을 살해한 이들은 단 한 사람도 발각되지 않고 파리를 빠져나온 솜씨 ... 그 각각의 솜씨들이 - 조금은 어설프게 - 발휘된 사건이 바로 ‘김정남 사건’이다.

<암살자들>은 이런 역사적 선례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건이 일어난 시공간적 배경을 전혀 살피지 않았다. ‘김정남이 VX 신경작용제에 의해 살해됐다’는 단편적 팩트와 반북적대 이데올로기 사이에 끼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외면했다. 나무에 묶인 강아지가 나무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 옴짝달싹 못하게 되듯이, 조작된 결론과 이념 편향에 함몰돼 스스로 정신을 잃고 나가자빠진 꼴이다. 

왜 이런 같잖은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아마추어 감독(라이언 화이트 Ryan White)의 실력이 모자라서? 아니다. 실력이 모자라서 그랬다면 최소한 만큼만이라도 이 사건의 내막에 접근했을 것이다. 눈만 제대로 뜨고 있어도 빤히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조차 못 봤다면 그것은 의도적 회피고 고의적 왜곡이다.

영화 줄거리를 온통 사건의 내막을 은폐하는 내용으로 구성한 것은 제작자 자신의 확증편향이든 누군가의 조종이든 시종일관 무언가에 의해 오도(誤導)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의와 타의가 적절히 배합됐을 것으로 본다. 

2.
우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감독의 작품이라는 선전과 달리 제3자의 주장과 시선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 워싱턴포스트 베이징 지국장의 나레이션이 그것이다. 서울에 이어 베이징에 주재하면서 평양을 12번이나 가 봤다면서 위에 언급한 ‘김정남 사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 그의 나레이션 중에서 ‘역사적 배경’이라 할 만한 것을 찾자면 ‘이복 형제들끼리 후계자 경쟁을 벌이다 급기야 이복형이 이복동생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엉터리 주장이 전부다. ‘조선 = 1인 통치 독재국가’라는 고정관념도 역사적 고찰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반북 적대적 이념 편향은 미국의 신문 기자로서 행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겠지만 너무나도 몰역사적이다. 조선의 권력 구도 속에서 ‘후계자 경쟁’이란 것이 있기나 한지 그런 것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지만, 설사 있다 해도 후계자가 정해진 뒤 다른 누군가가 그 후계자에게 위협을 가하고 그 후계자가 위협을 가한 이를 살해한다는 상상은 미 CIA나 국정원 대북공작조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조선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파이필드는 또 다른 ‘썰’을 푼다. 해외를 ‘겉돌던’ 김정남이 나중에는 CIA에 매수돼 조선의 내부 정보를 팔아넘긴 ‘죄’로 처형을 당했다는 것. 김정남이 살해되기 며칠 전 ‘한국계인 CIA 관계자’와 만났다는 미확인 팩트를 침소봉대한 것이다. 김정남의 노트북 속 정보를 USB로 빼 간 흔적이 보인다는 둥 확인될 수 없는 이야기를 마구 늘어놨다.

이런 단편적 팩트를 중심에 놓고 갖가지 설을 만들면 김정남이 김정은 총비서의 명령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어떤 사건을 이렇게 축소지향적으로, 단순 팩트 하나에 매몰돼 전체를 망각하는 것이 바로 몰역사적 사고다.

<음모자들>은 최근까지 평양을 12번이나 다녀왔다는 자의 나레이션에 80.90년대 촬영됐을 법한 인민군 열병식 장면을 포갰다. 최근에도 CNN 등을 타고 널리 공개된 화려한 열병식 장면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지금은 도서관 자료실에나 가야 찾을 수 있는 낡아빠진 영상을 붙였다. ‘조선 = 구닥다리 전체주의 국가’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악의(惡意)다. 
이런 ‘낡은 것들’에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을 오버랩하면서 ‘잔인한 1인 독재자가 이복형까지 죽여 권력 기반을 튼튼히 해 놓고 국제사회의 일원인양 행세한다’는 식의 멘트를 날린다. 교묘하고 비열하다. 추잡하고 천박하다. 미 CIA 또는 옛날 안기부나 중정이 늘 하던 여론조작질 아닌가.

파이필드가 <음모자들>에서만 이런 대북 악선전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2년 전인 2019년 여름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한 ‘김정은 평전 - 마지막 계승자’(The Great Successor)에서도 그랬다. 이 책에서 그는 ‘김정은의 형이라는 김정남의 신분’이 잠재적으로 위협이 됐고, 미국 스파이와의 만남으로 그런 위협은 더욱 부각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김정남과) 미국 스파이들의 대화를 배반 행위로 간주했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2019년 6월 10일 자 <미주한국일보>가 그와의 인터뷰에서다. 책 출간에 즈음한 북콘서트에서는 대놓고 김정남을 ‘미국 CIA의 정보원’(informant for the CIA)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차라리 소설을 쓰지 평전은 무슨 ...

<미주한국일보>에 실린 그의 대북 코멘트들을 보자 :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의 첫 번째 희생자이자 가장 큰 희생자들이다.” “김정은 북한 주민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북한은 1인 통치 독재국가다. 김정은은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교육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자신과 지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베이징지국장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단 자를 내세워 2년 새 책도 내고 영화도 만들어 조선의 통치자를 작심하고 악마화한 것은 누군가의 기획일 것이다. 이런 공작에 ‘신예’다큐 감독을 끌어들이는 것은 저들에겐 식은 죽 먹기다. 

영화 제작자 화이트는 자신이 만든 영화가 조선을 겨냥했음을 은연중 밝혔다. 영화 개봉에 즈음한 인터뷰에서다. “더 은밀히 실행할 수 있던 김정남 암살을 이렇게 대놓고 한 걸 보면, 김정은이 이 영화를 볼 거라고 예상한다. 그들도 이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영화에는 파이필드 외에 말레이시아 현지 기자(하디 아미즈, Hadi Amiz)도 등장한다. 이 자는 “말레이시아 기자들은 대부분 정부 소속”이라며 자신은 자유롭게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여러 나라 뉴스회사들이 되는대로 써제끼고 제멋대로 지껄인 것들을 ‘재탕삼탕’할 뿐이다. 말레이시아 기레기(아미즈)는 ‘언론인’, 미국 기레기(파이필드)는 ‘전문 해설자’로 각각 역할을 분담했을 것이다.

3.
<암살자들>은 사건의 실체를 교묘히 피해간다. 사건의 실체를 들춰낼 기회가 포착돼도 외면해 버린다.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Doan Thi Huong)을 범죄 그룹에 소개한 것은 그녀의 친구였다. “친구가 ‘너 영화에 출연 안 해 볼래’해서 나갔더니 ‘미스터 Y’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이 남자는 자신을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흐엉이 요구하는 ‘월 1천 달러’를 선뜻 줄 것처럼 말하며 그녀를 범행에 끌어들였던 것이다.그러면 ‘다큐’ 제작진은 마땅히 이를 지적했어야 하고 그 친구를 찾아 나섰어야 한다. <음모자들>은 흐엉의 친구를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흐엉이 Y에 대해 진술하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되지만 그녀가 Y에 대해 ‘한국인(남한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 말한 부분은 고의로 뺐다.

또 다른 실마리. 애초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인 것처럼 몰고 갈 ‘바람잡이’였던 ‘제임스’의 실종에 대해서도 <암살자들>은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제임스는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Siti Aisyah)의 핸드폰(사진.동영상) 속 인물이다. 아이샤를 범행에 끌어들인 이의 사진과 동영상이 나왔다면 사건은 반은 해결된 셈이다. 그 인물을 찾아내 체포하면 사건은 종결된다. 사건 발생 며칠 만에 범인의 얼굴이 등장한 것부터가 수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말레이시아 경찰은 끝내 ‘제임스’의 종적을 찾지 않는다.

1년여 시간을 끌던 재판이 ‘개판’이 되고 ‘나가리판’으로 끝날 때까지도 신병이 확인되지 않는 ‘제임스’는 놀랍게도 조선 국적자였다(조선국적자로 돼 있었다). 조선이 발행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공무여권과 여권 속 사진이 말레이시아 경찰에 입수됐고, 말레이시아 경찰청 청장과 부청장은 각각 기자회견까지 열고 조선인 8명이 사건의 배후인 것처럼 떠벌렸다.

말레이시아 경찰 최고책임자 둘은 제임스가 조선 공무여권을 소지한 조선인이라고 굳게 믿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 제임스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기록조차 없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난 뒤에는 사건을 원점으로 돌려 제임스의 여권을 전달한 자를 의심했어야 한다. 대체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기록조차 없는 이의 여권이 어떻게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에 전달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조선 국적자’ 제임스의 신병을 처리한 - 아마도 살해한 - 뒤 그의 여권만 뺏어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에 넘겼을 공산이 크다.

<암살자들>은 ‘제임스의 신병과 여권’를 둘러싼 이런 수수께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일조차 없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어물쩍 넘긴다.

<암살자들>은 또 흐엉이 어쭙잖은 실력으로 가수나 배우를 지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언급하면서도 그녀의 SNS 계정에는 한국(북한이 아닌 남한) 가수며 배우들의 사진이 가득했고, 그녀가 사건 발생 두 달 전 한국인 남성의 초청으로 제주도를 다녀갔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70222/83000193/1)

<암살자들>은 당연히 언급조차 못할 일이겠지만, 흐엉을 제주도에 초청한 이는 베트남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한국인 남성이었으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남자는 프랑스 파리에 가 있었다는 사실, 한국 경찰이 이 남자를 찾으려 했지만 국정원이 이를 막았다는 사실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흐엉을 제주도에 초청한 ‘한국인 가이드’는 십중팔구 국정원의 요원아니겠나.

4.
시종일관 사건의 실마리들을 외면하거나 이미 드러난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면 이는 제작진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사건을 재(再)조작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사건을 재조작’한다는 말은 이미 사건을 조작해 1년여 재판놀음을 벌였지만 누군가에 의해 사건의 내막과 그 조작의 실상이 드러나자 더 그럴듯한 작품(?)을 통해 재차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사건의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일 때와 그 재판이 종반에 들어설 무렵 등 두 차례 이 사건이 매우 교묘하게 조작됐음을 밝히는 글을 썼다.

(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622)

필자는 이 글에서 한.미.일 3국 정보당국과 각국 뉴스회사들이 어떤 식으로 조선 국적자들을 사건의 배후로 몰고 가려는지를 낱낱이 밝혔다.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를 출국한 조선 국적자 4명 중 1명(오종길)의 사진을, 흐릿한 영상의 범인 4명 가운데 1명인 것처럼 슬쩍 끼워 넣고,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를 퍼뜨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됐다. 말레이시아 재판부는 그 누구도 범인으로 지목하지 못했다. 아이샤에 대해서는 검사가 기소를 취소했고, 흐엉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은 말 그대로 ‘개판 나가리판’이 돼 버렸다.

그런데 얼마 뒤 일본 <후지TV>가 베트남에 가 있는 흐엉을 구슬러 없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한.미.일 등이 처음부터 사건의 배후로 몰고 가려 했던 조선 국적자 8명의 얼굴 사진을 세워 놓고 흐엉에게 ‘너를 데리고 다닌 사람(미스터Y)을 한 번 짚어 봐’ 했다. 그러자 흐엉은 한참을 망설이다 불분명한 태도로 8명 중 1명인 리지현 씨를 가리켰다.  “음 ... 음 ... 아마도 ... 이 사람 같아요.(Maybe...)” 아마도? 몇 달 동안 자신을 데리고 다녔던 이의 얼굴을 그 새 까먹었을까?

후지TV는 ‘쌩으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없었기 때문인지 ‘Y’가 흐엉과 함께 말레이시아 공항 안을 걷는 영상을 곁들였다. 얼핏 보면 ‘Y’의 얼굴 모습과 체형이 조선 국적자 ‘리지현’과 조금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었다. 피부색이 완연히 달랐다. ‘Y’는 한국계 베트남인이라고 흐엉은 일찌감치 진술했었다. 그랬는데도 체형과 얼굴 모습이 조금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로 조선인 리지현을 ‘Y’와 동일인이라고 우긴 것이다. 만에 하나 흐엉이 자신을 범행에 끌어들인 Y를 ‘리지현’ 또는 ‘조선(북한)인’이라고 말했다면 재판 중에 그 진술이 공개되지 않았을 리 없다. <음모자들>을 통해 뒤늦게 공개된 그녀의 육성 녹음에도 그런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흐엉은 ‘Y=리지현’ 이라고 진술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의 후지TV가 이렇게까지 무모하고 비열한 짓을 해야 했던 이유는 한.미.일 3국 정보 당국이 달라붙은 공작이 실패로 끝나게 두고 볼 수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조선 국적자 4명과 실제 범인 4명을 동일시하기 위해 각각을 짝짓기하려는 시도는 재판 중에도 있었지만, 당시에 공개된 범인 4명의 모습은 매우 흐릿하고 고의로 훼손한 흔적마저 보이는 CCTV 영상뿐이었다. 당시 재판정에서 이 영상을 본 외신 기자들은 “얼굴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the face is not clear)”라고 분명히 기사에 적시했었다(매일 외신을 베껴대는 한국 언론은 이 사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도저히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범인 넷과 조선 국적자 넷을 동일인으로 몰기 위해 조선 국적자 4명 중 한 명(오종길)의 사진을 조금 더 흐리게 만들어 범인 그룹 영상 스틸 컷 속에 슬쩍 끼워넣었던 것이다. 넷 중 하나가 동일인으로 판단되면 다른 셋도 동일인으로 간주하게 되는 ‘착시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필자는 지적한 바 있다.

후지TV가 뒤늦게 실제 범인 Y와 흐엉이 함께 걸어가는 영상을 공개하며 Y와 리지현이 동일인이라고 우긴 이유가 있다. Y의 동영상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확보했을 영상이지만 재판 중에는 그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기자들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Y가 리지현이 아니라고 썼다가는 난리가 나지 않았겠나. 그래서 재판이 끝난 다음 후지TV를 동원해 Y가 리지현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저들에게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 우매하고 생각 없는 부류들의 머리 속에 거짓말을 쑤셔 박으면 된다. 이게 바로 대북 심리전이다.

후지TV가 이런 무모한 사기극을 벌이는 목적은 필자의 폭로 글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필자는 봤다. 하여 필자는 얼마 뒤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과 미 CIA의 합작품’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대담을 통해 후지TV가 어떻게 사건을 조작했는지를 밝혔다.

( https://www.youtube.com/watch?v=SORk4qFT-Gs)

대담 말미에 필자는 “아마도 하나모리 등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일의 분단 적폐 세력은 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이 사건의 흑막을 파헤치면 새로운 인적 물적 자료를 동원해 재차 조작을 시도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암살자들>은 필자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후지TV 수준 정도를 예상했을 뿐 지구적 보급망을 가진 다큐 영화가 나올 줄은 몰랐다). 

<암살자들>이 ‘김정남 사건의 내막을 재조작하기 위한 영화’라고 단언하는 이유를 몇 가지 더 밝힌다. ①리지현의 얼굴 모습 아래 ‘미스터 Y’라고 라벨을 붙인 사진을 여러 번 제시했다. 이는 후지TV 영상에도 없던 것으로 후지TV 사기극을 보강하려는 것이다. ②사건 당일 출국한 조선인 4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리재남 씨의 사진 아래 범인 그룹 리더의 별명인 ‘하나모리’라는 라벨을 붙인 사진도 여러 번 내비쳤다. 범인 Y를 조선인 리지현과 동일시한 후지TV 사기극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보겠다는 의도다. ③실제 범인 중 한 명 인 ‘창’을 시종일관 ‘장’이라고 표현해 그가 조선인이라는 인상을 주려 했다. ④조선인 4인과 범인 4인의 행색이 다른데 대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버렸다”고 했던  주장을 재탕삼탕했지만 연속성이 없는 단편적 영상을 엉성하게 편집해 실패했다. 

5.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뭔가 건질 것이 있는 법이다. 아이샤의 변호인은 영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샤를 사건에 끌어들인 택시 운전사 ‘존’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를 두 번이나 만났는데, 말레이시아 경찰은 그의 연락처조차 모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수사가 수박 겉핥기였다”(The investigation was very shallow)고 말한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엉터리였다는 말이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아이샤의 핸드폰 속 인물인 ‘제임스’의 여권 및 여권 사진을 입수한 뒤 이 여권이 조선(북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선 국적자 8명을 사건의 범인인양 떠들썩하게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뒤늦게 ‘제임스’가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일조차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대체 누가 어떻게 제임스의 여권을 가져왔는지를 따져 묻지 않았다는 필자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흐엉과 범인 ‘Y’를 연결한 흐엉의 친구를 찾고 그를 통해 범인 Y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 역시 ‘부실 수사’ ‘짜맞추기 수사’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돼야 한다. 

<암살자들>을 통해 뒤늦게 확인한 사실도 있음을 밝힌다. 필자는 앞선 글과 유튜브 대담에서 범행에 가담한 두 여성에게서는 VX 신경작용제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재판에 출석한 말레이시아 화학무기분석센터장(라자 수브라마니암)은 흐엉의 잘린 손톱과 아이샤가 범행 때 입고 있던 티셔츠에서 VX 신경작용제의 부산물인 VX 산성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한다.

관련 기사도 있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은 필자의 불찰이다. 그러나 두 여성의 신체나 옷가지에서 VX 부산물이 검출됐건 안 됐건 이 사건이 미 CIA와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 필자의 주장을 바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끝)

강진욱 / <1983 버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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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파르티쟌  2021년8월19일 08시39분    
강진욱 기자님 좋은 분석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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