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전소통] 외불피구(外不避仇), 내불피친(內不避親)

밖으로는 원수라 하여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척이라 하여 피하지 않는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기해(祁奚)는 도공(悼公) 때 ‘중군위(中軍尉)’라는 벼슬을 지낸 정직하고 공평무사한 인물이었다. ‘사기’ ‘진세가 晉世家‘ 에는 이 인물과 관련하여 이런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기해는 나이가 많아 퇴직하려 했다. 도공은 그의 청을 받아들이는 한편, 그의 후임으로 재능 있는 인물을 추천해보라고 했다. 기해는 서슴지 않고 해호(解狐)를 추천했다. 도공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호? 그 사람은 당신과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오.?”

기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에게 재능 있는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개인적인 감정이 있건 없건 저는 그런 점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도공은 해호를 기해의 후임으로 발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해호가 일을 맡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도공은 기해에게 다시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도록 했다. 기해는 망설임 없이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이번에도 도공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오? 기오는 당신 아들이 아니오?”

“적절한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아들이든 아니든 저는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도공은 즉시 기해의 아들 기오를 후임으로 발탁했다.

이 이야기는 ‘좌전’ 양공(襄公) 3년조 (기원전 570년)에도 기록되어 있다.

봉건사회에서 인사 관리는 군주의 말 한 마디면 그만이었다. 진나라 도공은 자진해서 신하에게 의견을 물었고 기해도 공평무사하게 추천했으니 후대의 칭찬을 받기에 충분하다. 도공이 취한 행동은 비교적 수준 높은 통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기해의 추천은 도공의 의지에 부합했고 도공의 묵인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통치자는 자신을 위해 힘쓰는 인재를 망라해야 한다. ‘인재를 천거할 때 밖으로는 원한을 꺼리지 않고 안으로는 친인척이라 해서 꺼리지 않는다’는 외거불피구(外擧不避仇), 내거불피친(內擧不避親)‘도 이런 전제하에서만 비로소 통할 수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능력 있는 간부 선발과 활용은 이미 개인의 인상을 표준으로 삼던 것에서 과학적인 시험과 면접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선발과 임용 제도가 완전히 갖추어진 다음에라야 제대로 사람을 알고 적절한 인물을 뽑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는 간부 임용 때 자신의 개인적 감정을 개입시키게 되어 ‘외불피구’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며, ‘내불피친’ 또한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파를 짓게 하는 구실로 작용하기 십상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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