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전소통]人物論, 중국을 통치한 최초의 황후

【여치 呂雉】 출신이 미천한 평범한 여인도 황후가 되다 - 上

권모술수로 연적(戀敵)도 제거하고 권력투쟁에서도 승리했다.

중국에는 타고난 책략가나 정치가가 많다. 출신이 미천하고 특별한 점이 없는 여인도 황후가 된 후에는 온갖 책략을 써서 신하들을 주물렀다. 이 여인들은 백만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베는 장군마저 마음대로 농락하여 실질적인 황제가 되었다.

섭정(攝政)을 한 황후가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정권을 농락해도 부분적으로는 후대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런 점은 우리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나라를 개국한 유방의 아내 여치(呂雉)이다. 유방과 여치 사이에는 기이한 인연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방이 사수에서 말단 관직인 정장(亭長)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소하(蕭何)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결에 성이 여씨(呂氏)라는 사람이 원수를 피해 선보(宣父)현의 현령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지역 호걸과 향리들은 현령에게 귀빈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걷어 축하했다. 유방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귀한 손님이 왕림했으니 당연히 축하해야지.”

소하는 그가 농담한 줄로 알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축하 잔칫날에 뜻밖에도 유방이 거침없이 쳐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시 서기관에 해당하는 관직을 맡고 있던 소하는 문 앞에 서서 여공(呂公)을 대신하여 축하예물을 받고 있었는데 유방이 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큰소리로 외쳤다.

“축하예물이 1천 냥에 미치지 못하니, 아래쪽에 앉으시오!”

이에 유방은 자신의 이름과 하례금 1만 냥을 방명록에 적은 후 소하에게 건네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공은 유방의 하례 금이 많은 것을 보고 황급히 영접하여 상좌에 앉게 했다. 여공은 평소 관상을 잘 봤는데 유방이 호상(好相)인지라 더욱 예의를 갖추었다. 소하는 유방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고서는 비웃으며 말했다.

“유가 놈아! 언제나 큰소리만 칠 줄 알았지, 나를 속이려고 하냐! 돈이 정말 있느냐?”

여공은 이 말을 들었지만, 유방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여공은 눈짓으로 유방을 붙잡았다. 하객들이 모두 돌아간 후 둘이서 따로 자리를 마련했는데 유방은 조용히 술만 마셨다. 여공이 넌지시 물었다.

“저는 평소 관상 보기를 좋아해서 많은 사람의 상을 보았지만, 당신 같은 호상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대가 장가를 갔는지 모르겠군요.”

유방은 자신이 아직 미혼이라고 대답했다. 여공이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제게 어린 딸이 하나 있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당신이 아내로 삼아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유방은 기뻐하며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유방이 돌아간 후 여공의 부인이 여공에게 화를 내며 다그쳤다.

“당신이 항상 말하길 우리 딸이 고귀한 상이라서 귀한 집안사람에게 시집보내야 한다며 부자가, 청혼을 해도 모두 거절하더니, 유방같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여공은 유방이 귀한 상을 갖고 태어나서 반드시 임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여치와 유방은 부부가 되었다. 여공의 딸 여치가 바로 훗날 효혜제(孝惠帝)와 노원공주(魯元公主)를 낳은 여후(呂后)다.

진시황제가 동쪽 지방을 순행할 때 유방은 자신이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망산과 탕산 사이의 깊은 산골짜기로 도망쳐 숨었다. 유방이 숨을 때마다 여치는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유방은 기이하게 여겨, 자신을 어떻게 찾았느냐고 물었다. 여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있는 곳 위에는, 언제나 상서로운 기가 서려 있기에 그것을 따라가면 당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유방의 고향 젊은이 중에는 이 소문을 듣고 그를 따르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툴 때, 유방이 팽성에서 패하여 도주하자 그의 부친과 여치는 황우에게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황우는 나중에 이들을 풀어주었다.

여치와 유방은 신혼 초부터 고난을 함께했다. 온갖 어려움 끝에 유방이 황제가 되자 여치 또한 황후가 되었고 아들 영(盈)은 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치와 태자는 가혹한 도전을 받았다. 유방은 팽성에서 항우에 게 패하여 겨우 제 한 몸만을 이끌고 도망쳤을 때 정도(定陶)의 어느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았다. 이 집 주인이 그가 한왕인 것을 알고 딸을 그에게 주었으니 이 여인이 바로 척부인(戚夫人)이다. 후에 유방은 항우를 무찌른 후 척부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유방과 여후의 사이가 점차 소원해지자 척부인이 그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척부인은 젊고 아름다웠으며 춤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와 노래 솜씨도 뛰어났다. 또 글도 지을 줄 알았고 자상하며 남을 잘 이해해줬기 때문에 유방은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척부인은 이미 왕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이 낳은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세워달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다. 유방이 이를 거절했으나 척부인은 날마다 흐느껴 울며 아들을 태자로 세워주기를 원했다.

한편, 태자 유영은 사람됨이 인자했으나 천성이 유약했기 때문에 유방은 아들이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태자 유영을 폐위시키고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척부인이 간곡하게 청하고 또한 여의가 총명하고 의지가 굳은 점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유방은 여의의 풍모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하여 그를 몹시 소중히 여겼다.

일찍이 이런 상황을 간파한 여후는 밤낮으로 걱정에 빠졌다. 그러나 유방의 마음은 이미 척부인에게 가 있었다. 척부인은 항상 유방의 출정에 따라갔으나 여후 자신은 나이가 많아서 언제나 궁안에 있었으므로 유방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서 홀로 애만 태울 뿐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여의가 만 10세가 되어 관례에 따라 지위를 바꾸고 자신의 봉지로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척희는 이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여의가 일단 봉지로 가면 황제를 만나기 어렵고 또 조석으로 곁에서 모실 수가 없게 되어 환심을 얻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척희는 유방을 만나서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유방이 척희의 심중을 헤아리고 말했다.

“짐은 본래 태자를 바꾸어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였다. 장자를 폐하고 어린 둘째를 세우는 것은 적장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세우는 것인데 이것은 대의명분에 맞지 않으니 다시 생각해보시오.”

척희가 더 크게 통곡하여 애원하자 유방은 마음이 움직여 결국 다음날 군신들과 태자를 세우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아침, 신하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유방이 태자를 폐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신하들이 모두 놀라며 태자가 책봉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무 잘못이 없는데 별 이유 없이 폐위시킨다면 혼란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만류했다. 유방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신하들에게 재촉하여 조서를 쓰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어사대부 주창(周昌)이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친 후 급한 나머지 말을 더듬다가 한참 뒤 말했다.

“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으나 그, 그, 그것은 아니 되는 줄 아옵니다. 폐하께서 태자를 폐위하시면 신들은 그, 그것을 받들 수 없나이다.”

주창의 계속되는 “그, 그”라는 말더듬이에 유방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정에 가득한 신하들도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유방은 웃음 덕분에 노기를 풀었고 조서를 쓰라고 하지 않고 조정을 파하였다.

주창이 동쪽 행랑채 문밖으로 나갔을 때, 여후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창이 예를 갖추려 하자 갑자기 여후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까닭을 알 수 없었던 주창도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여후는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 그대가 끝까지 따지지 않았다면 태자는 아마 폐위되었을 것이오. 나는 태자를 보호해준 것에 감사하기 때문에 이렇게 예를 갖추는 거요.”

주창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저는 공적인 일을 한 것뿐입니다. 황후께서는 많은 의미를 두지 마십시오.”

그러나 여치는 유방이 언젠가 다시 태자를 폐위하라고 명령을 내릴것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자를 보호할 묘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치는 장량에게 계책을 물었다. 장량이 말했다.

“만약 어질고 재능이 있으며 탁월한 명성을 가진 사람이 태자를 보좌한다면 황제는 태자가 현명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설령 폐위하려 해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마 태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후는 어디에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량이 대답했다.

“듣건대 상산(商山) 일대에 네 분의 나이 지긋하고 속세를 등진 은자가 있는데, ‘상산사호(商山四皓)’라고 일컬어진다고 합니다. 황제가 일찍이 여러 번 초대하여 관직을 주려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들을 초빙한다면 유용할 것입니다.

여치는 사람을 보내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상산사호를 불러오게 하였다.

유방은 경포가 일으킨 반란을 평정한 후 전쟁으로 많이 지친 데다 화살에 맞은 상처가 재발하여 병세가 많이 악화 되였었다. 척부인은 밤낮으로 곁에서 간호하면서도, 만일 유방이 죽고 태자가 황제자리를 계승하면 자신이 살길이 없게 될까 걱정했다. 척부인은 유방에게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빌었다. 유방은 이리저리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자 태자를 폐위하라고 거듭 지시했다.

장량은 태자소부(太子少傅)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는 즉시 유방을 알현하러 갔다. 장량은 유방을 설득하였으나 유방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장량이 유방을 따르기 시작한 후 유방은 그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었으나 이번만은 예외여서 장량은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집에 돌아가 병이 난 척했다. 태자태부 숙손통이 이 말을 듣고 조정에 들어가 직언을 했다.

“예전에 진헌공이 여희를 총애해서 태자를 폐위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20년 동안 혼란을 겪었습니다. 진시황이 일찍 부소를 세우지 않아 진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폐하께서는 직접 보셨습니다. 폐하와 여후는 어려움을 함께한 부부이고, 한 분 계시는 태자는 어질고 효성이 지극한 것을 천하가 다 알고 있는데 대체 태자를 폐위하려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만약 소인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목숨을 걸고 간언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숙손통이 칼을 뽑아 자결하려 하자 유방이 재빨리 막으며 말했다.

“짐이 본래 말했던 바와 같이, 결코 진짜로 그렇게 하려 한 것은 아니다.”

얼마 후에 유방이 특별히 태자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상산사호가 태자와 함께 궁으로 들어갔다. 유방은 태자의 뒷자리에 눈처럼 흰 수염과 눈썹에 신선의 풍채를 지닌 네 명의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누구냐고 물었다. 노인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유방이 물었다.

“짐이 오래전부터 여러분을 초빙하고 싶었으나 오지 않았는데 혹사 지금 짐의 아들과 교제를 하고 있는가?”

노인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미천한 출신의 선비들을 천하다고 멸시하고 모욕하시니 참을 수가 없어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태자께서는 어질고 너그러우며 선비를 사랑하시니 세상의 선비들이 목을 빼고 태자를 존경하여 목숨을 바치려고 합니다. 저희는 특별히 태자를 받들어 보좌하고 싶습니다.”

유방은 이들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유방은 태자와 상산사호가 떠날 때 급히 척희를 불러 그들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태자를 후계자로 세우길 원치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태자를 보좌할 사람이 정해졌으니 폐위할 수 없게 되었다.”

척희는 절망에 빠져 비통해했다. 유방 또한 비애에 잠겼고 척희를 위해 「홍곡고비 鴻鵠高飛」라는 슬픈 음악을 지어 불렀다. (下에서 계속)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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