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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홍콩의 벤처이야기 “캘리포니아 냉장고” 14
대한민국 최초 중공 시장 (No Frost Type) 냉장고 수출실화
향암 | 2019-08-08 08:49: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4. 완치불가

결국 노보특과장은 설날이 지나고 나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주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피 한 방울도 안 흘렸고 외상이 없을 때에는 오히려 안 좋으므로 반드시 뇌 검사를 해서 나중에 라도 뇌혈관이 막히지 않게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를 해서 매제가 근무하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홍콩 어드벤티스트 병원에서 촬영한 X-Ray Film을 가지고 갔다.

홍콩 어드벤티스트 병원에서는 360도 회전 방식의 X-Ray 촬영을 한 결과 늑골이 2개 다쳤다며 잘 쉬면 특별한 치료를 안 받고도 낫는다고 했던 그 필름을 그대로 흉부외과에서 보더니 늑골이 4개 금이 갔는데 문제는 어깨뼈라며 흉부외과에서는 어깨는 못 보니 정형외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막퇴근하려는황수봉 교수를 붙잡고 그 필름을 보여드리니 늑골이 7개 금이 갔다고 하며 당장에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노보특 과장은 “무슨 수술까지요?”라고 독백하듯이 말하니, 황 교수는 ‘의사가 안 해도 되는 수술을 하라는 것인가? 농담이 아니고 홍콩에서 왔다고하니 수술은 해줄 테니까 입원이나 해보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매제에게 불어보니 보니, 특진도 입원도 수술도 모두 정상적으로는 각각 3개월을 기다려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빽 없으면 죽는구나.’ 라고 생각되었다.

노보특과장은 회사에 보고하러 다녀오겠다고 말 하고 황수봉 교수를 만나게 해준 매제에게 입원 병실을 꼭 잡으라고 당부했다. 회사에 수술하게 된다고 알리고 병원에 돌아오니 다행히 특실병실을 구해서 저녁에 입원을 하였더니 우선 푹 재우는 것이었다. 노보특과장은 그렇게 한참을 잔 것 같았다.

누가 이마를 톡톡 건드려서 눈을 뜨니 손짓으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X-Ray를 촬영할 것인데, 살살 걸어가자는 것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한 밤중에 누가 톡톡 깨우기에 보초 나가라는 줄 알고 일어났더니 어둠 컴컴한 화장실 뒤로 끌고가서 졸병 때에 동기들을 모두 달밤에 세우고는 그림자 숫자로 인원점검을 하고 고참에게 몽둥이질 맞던 때의 묘한 느낌이 들었다.X-Ray촬영기는 홍콩의 360도 회전 자동촬영기와 달리 어릴적 국민학교 마당에서 보건소차가 와서 찍었던 소형의 간이 촬영기였다.

촬영기 앞에 등을 대고 서라 더니 양 손목에 2갤런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50센티미터 끈을 묶어 쥐게 하더니 자기가 하나-둘-셋! 하면 두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놓으라는 것이었다. 자다 말고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시키는 대로 했는데 물통이 떨어지면서 순간 어깨가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렇게 두 시간 간격으로 그 밤에 두 번 더 새벽까지 촬영했다.

아침 회진을 도는데 따르는 간호사들이황수봉 교수는 대퇴부 절단 환자도 현미경으로 봉합수술해내는 한국에서 최고의 정형외과 의사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노보특 과장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간밤에 찍은 X-Ray필름을 보여주며 늑골이 7개 금이 간 것은 안 움직이면 붙을 수 있으나 어깨의 빗장뼈 인대가 늘어났는데, 이 간격이 2mm 정도이면 휴식을 취하면 원위치 될 수 있는데 4mm이상이면 수술을 해서 보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환자는 지금 6mm가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며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그렇게 듣고, 그런 줄 알았던 수술이 사실은 내용이 달랐다. 입원 수속을 해준 매제에게는 어깨의 빗장뼈가 바스러진 것 같은데 부서진 뼈 가루를 제거하지 않으면 골수암이 될 수 있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3시간의 전신 마취로 집도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바로 황수봉 교수가 예상했던 그 자리에 고스란히 뼈 가루가 있어서 제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취에서 깨어난 노보특 과장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이 안 보인다고 소리를 질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수술실에 들어갔던 의사들이 놀란 목소리로 수술은 어깨를 했고 얼굴은 보자기로 덮었는데 왜 눈이 안 보인다고 하느냐? 며 소란했다.

나중에 달려온 황수봉 교수는 제자 의사들에게 나무라면서 환자가 회복하기 전에 오랫동안 눈꺼풀이 정지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으니 눈에 안약을 넣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취되면 죽은 사람처럼 눈이 떠져 있었을 텐데 안 보이게 했기에 미리 안약 넣는 걸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안과로 급히 이동하여 확인한 결과 마취를 깨면서 눈을 뜨는 순간에 윗 눈꺼풀이 각막과 붙어 있었기에 각막이 찢어졌다는 것이며 문제는 그냥 두면 안된다고 하면서 물 안약과 소염제를 처방해주는 것이었다. 눈은 다음날부터 아프지 않고 잘 보이기 시작했다. 왕방울 같은 눈이 다쳐서 안 보였다는 것이 어깨 다친 것보다 더 무서웠던 노보특 과장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의 회진에 나타난 황수봉 교수가 묻기를,
“자네 공대 나왔다고 했던가?”
“예!”라고노보특 과장이 대답하니,
“그럼 수학의 등식을 알겠군. 다치기 전과 후가 등식이 성립하는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인 노보특과장은 바로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래, 의사로서 [완치불가]라는 말을 하기가 유감이나 다치기 전과 같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되 특별사항은 없고 지금은 젊으니 괜찮겠으나 나중에 늙으면 많이 아플 것인데 그런 것을 안 죽고 살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운명’인 셈이지. 의사가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미안하나 입원할 때에 보았듯이 병실이 모자라므로 빨리 퇴원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른팔을 거의 쓸 수 없으며 올리기도 힘 드는 것은 차차 좋아질 것이고 왼쪽 팔을 올려 귀에 닿듯이 오른팔도 그렇게 되려면 사우나나 물리치료 아니면 수영을 부지런히 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저는 집이 홍콩이고, 회사 일하다가 다친 공상인데 제대로 치료받고 좀 더 있다가 퇴원하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황 교수는 단호하게 “여기는 병원이지 호텔이 아니다.”라고 했다.

입원해서 몸도 추스르고 오랜 만에 병실이지만 치료를 겸하고 쉴 수 있을까 했는데 퇴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퇴원하면 홍콩으로 바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퇴원하기 위해서 감마선 촬영을 혈관주사를 맞고 30분 후에 촬영한 결과 늑골이 12 두개나 척추를 따라 2센티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수직으로 금이 갔다고 했고 빗장뼈 끝이 엄지 손톱만큼 1.5센티미터나 가루 되어 망실되었다는 것이었다.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그걸 드러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마치 6.25전쟁에 학도병으로 군산에서 자원 입대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죽겠다는 결심으로 참전했던 노보특 과장의 아버지가 낙동강변 왜관부근에서 전투를 이기고 부대가 경북 영천지역으로 이동하여 밤 새도록 수류탄 부대와 싸우고 다 이긴 팔공산자락 전투에서 고지를 되찾은 승리를 점검하려고 새벽에 정찰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참호속의 두 인민군 중에 한 명이 쏜 총에 맞아 오른 팔뚝에 총알이 관통되었기에 후송되었고 죽지 못하고 비록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는 했지만 불구자로 인정되는 상이용사 신체검사를 안 받고 국가원호 성금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평생을 살았듯이노보특 과장도 비록 의사는 완치불가라고 했지만 진단서도 장애인 등록 따위도 더군다나 회사에 대해서 보상요구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족들이 기다리는 홍콩으로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여기었다.

그러면서 혼자 병원의 천정을 보니 어느 새 입사한 지 11년이 되었다. 다시 10년 후를 생각해보니 잘 하면 상무 아니면 인사제도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지라 이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다쳤다고 생각되었고, 특히 살이 아닌 뼈를 다치면 오래도록 아프고 활동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말들을 들었기에 과연 혈기 왕성하게 일을 계속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이미 보고 겪었듯이 실적이 인격이라는 조직의 해외영업부문에서 과연 누구 하나도 챙겨주거나 봐주는 사람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잘 견뎌낼 수 있을까?를 거듭 생각하며 홍콩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두 아들을 떠올리며 건강 회복부터 해야 한다고 여기었다.

기업의 조직은 이익목표를 위해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이윤추구를 위한 영리활동에만 초점을 맞추기에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속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아왔기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별사업부제 전세계 일등 주재원이라고는 하지만 회사는 실적만 챙기는 집단이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 친목단체는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뼈가 부러지고 바스라 졌건만 회사에서 상관들은 와 보지도 않았고 전화도 없었고, 심지어 입원비 중간 결산을 해야 한다는 데 인사부는 바빠서 세브란스병원까지 다녀갈 사람이 없다고 하며 인사과장은 짜증을 부렸다.

서울시내 중구에서 서대문구까지 택시로 십여분의 멀지 않은 거리를 올 사람이 없어서 환자가 병원으로부터 입원비 정산을 독촉을 받기에 이르자 매제는 이름만 거창한 상상 그룹이지 이런 세브란스병원 노조만도 못한 회사라고 탓하는 것이었다.

병원이나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경기가 하강하고 실적이 부러지고 제품 판매가 안 되는데 그럴 때의 분위기와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인간적인 일에 마음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기업은 경제전쟁터에서 이겨야만 하는 전투가 우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반드시 승리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원리를 모를 것이다.

병원에 근무하는 매제는 무슨 대기업의 직원 챙기기가 이러냐며 해외 근무 중인 간부가 공상으로 본국에 후송되듯이 입국해서 수술까지 했는데 와 보는 사람이 없다며 상상그룹은 노조가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렇게 쌀쌀 하냐며 부러워할 회사가 못된다고 대놓고 타박을 했다.

모두 일이 바쁘니까 그런 것이라고 설명은 했지만 새삼 일이 먼저가 아닌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그런 때에 김행수 대리의 아내와 어머니께서 신입사원시절부터 특진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노보특 과장인지라 아들을 대신하여 병실을 찾아 주셨고, 입사할 때부터 평소 아우처럼 부품수출과에서 신입사원 시절에 OJT를 해주며 가르쳤던 금병윤 대리 부부가 일요일 병실에 위문을 다녀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끝내 노보특 과장의 아버지는 자동차가 전주를 들이 받고 세 바퀴나 굴렀다는 교통사고였는데 사람이 온전 하겠느냐며 붕대로 칭칭 감은 모습이 연상되어 도저히 볼 수 없다면서 끝내 군산에서 서울에 올라오지를 못하셨다.

중국에서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자동차가 세바퀴나 굴렀고 전봇대를 들이 받았다는 연락에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는 그 말을 들은 이후 심장이 빨리 뛰어 가라 앉지를 않으니 안정제를 복용하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집안의 기둥이라 여긴 장남이 쓰러졌으니 아버지의 상심이 오죽했을까~!

그렇게 2월 중순에 홍콩에 혼자 돌아온 노보특과장은 많이 다치었기에 병가 3개월이 인정되어 집에서 쉬게 되었다.

주위에서 병가를 3개월 받으면 당해 년도에 진급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그런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죽을 사고에서 천운으로 안 죽은 것이 다행이지 진급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면서 이제 덤으로 받은 생명처럼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었다.

그래서, 비디오 가게에서 한 달 동안 꼬박 모든 월남전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 보았다. 모든 전투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둑해질 때에 야간전투에 투입되어 밤새도록 총탄과 포탄 속에서 전쟁을 치르고 아침에 동이 트면 점호를 해서 신체의 사지가 붙어 있다면 부상되어도 다시 전투에 임하게 하나,사지가 한 군데라도 망실되었다면 아무리 본인이 남아서 전투를 하겠다고 주장해도 후송시키는 것이었다.

회사는 군대 같은 조직이고 조직은 매일 밤처럼 전투하듯이 수주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노보특과장은 뼈를 다쳤으니 피를 흘리고 살을 찢어 수술한 것보다 훨씬 깊이 그리고 많이 다쳤다고 여기면서 이제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종전처럼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속력과 속도가 부족해질 것 같고 아무리 회사에서 휴식과 조기 진급을 얘기해도 그것은 자칫 월급도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신이 스스로 최선을 다 할 수 없으면서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라고 여기었다.

그 때에 회사는 노보특 과장이 가지 못했던 출장일정을 공장의 오구광 과장과 수출부의 김행수 대리를 한 조로 편성하여 홍콩과 해남도 SANYA시와 COUNTIFARM과 함께 광서성 LIUZHOU시를 가려던 일정에 출장을 가게 했다.

출장결과는 판매현장과 냉장고 SKD조립 실태를 파악한 정도로 마치고 돌아온 셈이었다. 그래도 노보특 과장은 자신이 가려다 못 간 출장을 대신 다녀왔기에 새벽 2시에 광동성 주해로부터 자동차로 홍콩에 도착됐다는 전화를 받고 두사람을 만나러 택시를 타고 나가서 그 시간에 배고프다고 해 한국 라면 끓여주는 KONDO Club을 안내하여서 라면에 양주까지 맛보게 하고 돌아왔다.

또한 그 자리에서 김행수 대리로부터 서울과 대만의 기기 묘묘한 비밀 같은 얘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오구광 과장으로부터 공장의 실상을 낱낱이 들을 수도 있었다.

함께 해남도 출장을 갔던 가전수출부의 금충복 부장님은 여전히 목 덜미가 뻣뻣하다고 매일 침을 맞으러 나가거나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고했고, 냉장고설계실의 복국성 실장은 오른쪽 뺨을 자동차유리창에 충돌순간에 맞은 듯 부딪쳐 오른쪽 치아 한 개가 깨졌다고 들었다고 오구광 과장이 들려주었다. 그런데 첫 중공 출장 중 에피소드를 자랑하는 오구광 과장의 입에서 매우 실망스런말을 듣게 되었다. 동료와 자기 직속상관이 교통사고로 해남도에서 쓰러져 못 마친 출장을 대신 가서 본연의 임무인 세일즈보다 처음 들어간 중국에서 유흥업소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태극기를 꽂았다는 말을 자랑할 때에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보다 여흥에 치중한 믿을 수 없는 동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간 실망이었다.

냉장고 공장은 노보특 과장이 모두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냉장고 수출 주문이 그립다 했고 앞으로 중공시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수출주문은 물론 합작프로젝트까지 동시에 모든 불이 꺼져 버렸기에 춥다고 표현했다. 노보특 과장은 그 자리에서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두사람 모두 현재 홍콩 항구에 죽치고 있는 2,000대의 냉장고 SR-198에 대해서 나중에 CY보관료와 화물 값이 같아지면 선박회사가 냉장고를 경매시킬 수 있으니 마냥 기다리지 말고 서둘러 SHIPBACK을 건의 추진하라고 당부했다.

거듭 SHIPBACK을 홍콩지점장께 보고 건의해도 역적같은 해결 방법 제안이라고 들으려 하지 않는데 아무리 훌륭한 상부의 정책이나 방침도 실무자의 의견을 무시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 해주었다.

서울에 수술하러 가기 전에도 회사에 출근해서 붕대로 팔뚝을 묶은 채 왼 손으로 전화기 핸드셋을 들고 통화를 하고 홍콩 여직원 미스 카렌을 통해서 불러주어 타자해서 팩스를 교신하며 일을 했으나 그런 상태로는 근무로 인정 않으려 하여 지금은 병가로 집에 있지만 속은 끓고 있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다음날, 홍콩지점장으로부터 노보특 과장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상상전자가 내부적으로 상상반도체 관계사를 통합하려고 주총을 열게 되어 인사발령이 예년과 달리 5월이 아닌 3월 중순에 두 달 앞당겨 발표되는데 본사로 발령을 받아 서울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현재 병가 중이니 그 기간 동안 유보할 수 없겠냐고 물으니 곤란하다고 했다. 일단 발령 신청을 하면 실제로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래야 좋은 자리를 알아봐 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말 하고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았다. 어차피 몸도 많이 다쳤고, 회사로부터 거듭 발견되고 발생될 실망감에 도전보다는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누구는 회사 일 하다가 다쳤으니 모두 보상 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회사가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서 일을 제대로 못 한다면 회사에 짐이 되거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이장봉 대리가 전화로 본사와 홍콩지점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어서 무엇이 무엇인지는 노보특 과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회사에 잡음이나 누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점장께 전화를 걸어서 “회사 사정이 정 그러하다면 서울로 발령을 내 달라”고 했다.

한 달이 좀 지나 4월 중순이 되어 홍콩지점장은 노보특 과장의 집을 방문해서 몸은 어떻냐고 물어 봐주고 본사에 얘기 잘 되어 냉장고수출과로 발령이 나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젠 반도체와 합병으로 홍콩지점도 법인으로 승격되고 법인장은 자신이 홍콩지점장에서 초대법인장으로 취임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장봉 대리로부터 발령사항에 대해 들은 바가 있기에 사실과 다름을 알고 있었으나 언급도 안 했고 개의치 않기로 작심했다.

노보특 과장은 그냥 홍콩지점장께 공손히 “감사합니다.”라고만 말씀드렸다. 홍콩지점장은 발령이 났으니 속히 본사로 귀임하기 위해 이삿짐을 싸라고 하는 것이었다. 현재 이 몸으로는 뭐 하나 들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이삿짐을 싸고 풀 수 있겠냐며 좀 더 시간여유를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회사 일이므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홍콩지점장은 공과 사를 환기시켜 주길래, 노보특 과장은 회사 일 하다가 다쳤고 어차피 당장은 출근도 어려우며 현재 3개월 병가중이니 재고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니까 실적만 챙겼을 뿐 누구도 어찌 지내고 있으며 어찌 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노보특 과장의 향방을 지켜볼 뿐인 듯하였다.(나중에 노보특 과장은 모든 기록이 홍콩에서 들었던 것과는 달리 처리되었고 그 사이에 홍콩지점장과 본사 해외본부 관리부 공추일 부장이 서로 짠 농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본사 관리본부와의 사표처리 과정에서 그리고 비서실의 기록을 전해준 사람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다.)
 

향암 자작시집 나는 오늘도 웃었다

그 날밤 뜻밖에도 노보특 과장을 홍콩지점으로 잘 발령 받게 해주고 자신은 상상전자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예전 최석봉 가전수출 5과장이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왔다.

“작은거인노보특, Compressor처럼 단단하고 조용하고 중요하게 돌고 돌아야 할 사람이 교통사고정도로 멈추어서 어쩌나? 상태는 어때?”하고 물어왔다.

“아이고, 최 사또님! 이렇게 전화를 주시고 감사합니다. 온몸이 내 몸 같지는 않지만 입은 살아 있고 눈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리나 오른쪽 어깨를 많이 다쳐서 글씨는 쓸 수 없습니다. 미국 생활은 어떻습니까?”라고노보특 과장이 반갑고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먼저 상상전자를 사표 내보았기에 자기 경험을 들려줄 테니 지금 고민할 때에 함께 참고하라면서 들려준 얘기는, “주재원 생활하다가 본사에 들어오게 되면 많이 답답해질 것이고,가정생활도 자칫 예전 보다 힘 들어 질 수 있으니 괜히 헛바람 안 생기게 마누라 단속 잘 하고 귀국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노보특 과장은 특히 스스로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므로 그래서 홍콩지점에 발령 날 때에도 많이 불안했는데, 그 이유는, 나도 당시 미국으로 곧 이민 갈 거라서 그랬었는데, 이제 홍콩을 떠나게 되는 본사 발령을 받았다고 하니 많은 문제나 실망이 눈 앞에 나타날 거야. 잘 생각해서 결심하고 만약에 회사를 나오게 된다면 아무 것도 양보하지 마. 전부 다 찾아 먹으라고. 나오면 눈 밭에 옷도 없이 눈보라 맞는다 여기고 1원도 아쉬우니 따지고 싸워서 찾아 먹으라고~특히 홍콩으로 발령 낼 때도 그랬지만 지금 홍콩에서 본사로 발령내는 것도 금장국 지점장을 믿지말고!!”

청천벽력 같은 사연과 조언이 믿는 사람으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노보특 과장은 내친 김에 평소 자주 연락은 안 하지만 마음을 서로 읽어줄 수 있는 주남수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의 답답한 심정이 과거에 선배가 동경지점 주재원을 마치고 돌아올 때 서울에 집이 없어 셋방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던 검소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고 특히 노보특 과장이 결혼할 때에 스스로 나서서 해외본부 축의금을 챙겨주었는데 주남수 선배는 지금 많이 아프고 돈도 없고 서울에 들어가 살 집도 없다는 말에 한마디로‘서울에 이삿짐 풀 집도 없으면 차라리 들어오지 말고 홍콩에서 살아볼 궁리를 해보라’고 도전 정신에 불을 붙여 주었다. <계속>

향암 (香庵)

홍콩 2B1 Limited 회장
홍콩 A-Dragon Corporation 창업, 1989.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과학기술산업융합 최고전략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SPARC 수료 논문 [출판시장의 변화와 전자책의 미래연구] 발표로 장영실상 수상, 2018.8.

필명: 향암香庵~작품속 가명 노보특 (Robert영어이름 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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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그들의 속셈
                                                 
[이정랑의 고전소통] 가탁왕명(假...
                                                 
이제 눈을 들어 국가경영 전체를 ...
                                                 
[칼기노트 11] 비행기는 거짓말을 ...
                                                 
안병하 공직자 바로 세우기 운동본...
                                                 
[오영수 시] 자재암 부처님
11511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과 ‘유엔...
9510 강제징용 귀국선 1호 폭침, 원인은...
8678 네티즌이 나경원 고소에 대처하는 ...
8412 [오영수 시] 자재암 부처님
8222 기사가 아닌 소설(?) 쓰다 네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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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3 故 안병하 치안감과 경찰청 이야기...
4910 [연재] 위안부가 있었던 시대 - 2...
3778 조국 사퇴 ‘교수 시국선언’ 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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