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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병하 치안감과 경찰청 이야기 ④
안호재 | 2019-08-01 11:50: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980년 경찰에 의해 강제해직되고 1988년 80년 후배 군인들의 손에 고문 받아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2005년에서야 경찰에 의해서 재조사로 2006년에 순직인정 받은 안국장. 2017년에서야 최고의 경찰로 선정되고 치안감으로 추서.

과연 안국장은 하늘에서 평온히 영면하고 계실까?

돌아가시기 전 세 가지 일을 가슴에 묻고 돌아 가셨다.

1.80년 전남경찰은 힘이 없어 광주시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2. 나를 무조건 따르던 부하를 지켜주지 못했다.
3.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했다.

80년에 경찰 수뇌부가 신군부의 부당한 지시를 모두가 거부했다면, 80년5월 광주가 참혹한 피해를 입었을까?

80년 신군부의 부당한 지시를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경찰수뇌부 어느 누구 하나 역사적 심판을 받았나?

80년 5월 광주시민과 공직자의 명예를 지킨 전남경찰관들은 누구의 손에 의해서 파면 당하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 강제해직 당하고, 누구의 손에 의해서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나?

그들은 80년 신군부의 권력에 협조했던 자신의 안위만 생각했던 경찰 수뇌부가 아니 였던가?

경찰청은 39년 전에 바른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나 명예회복에 어느 정도 노력을 하였나?

나는 아버님이 가슴 아파하며 고뇌하시던 모습을 8년간 지켜보았다. 어느 작자들은 이야기 한다. 80년에는 자기들이 어쩔 수 없어서 신군부세력에 가담했다고.

안국장도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안국장도 80년에 52세의 앞날이 창창한 공직자 였다.
안국장도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경찰의 본분을 소신껏 하려고 30여 년 간의 공직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무리 해야 했다. 80년 치안 본부는 이런 경찰관을 위로하기는 커녕 냉정하게 강제해직 시켰다. 그리고 그 들은 승승장구하였다. 지금도 자신의 안위와 사욕을 취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만 주장하고 자신들이 버린 국민과 국가에 대한 반성이 하나도 없다.

안국장은 그나마 순직으로 결정 나고 경찰의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안국장을 따르던 경찰관은 39년이 지난 지금도 파면자 강제해직자 상태이다. 상황이 이러니 어느 후배 경찰관이 자신을 희생하며 경찰의 본분을 다해 공직자의 명예를 목숨 걸고 지킬까?

어제는 어머니와 만나서 저녁도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를 최고의 경찰영웅 미망인이라 하면서 과연 경찰청은 미망인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힘든 삶에 대해 대책을 세워준 적이 있나. 경찰에 의해 피해 본 것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나. 형식적인 것에 예우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예우에 대해 생각해 주길 바란다.

경찰에서 최고의 영웅 예우를 받는 안국장 유족이 이러니 다른 경찰 유족에 관해서는 상상이 갈 것이다.

전남 경찰청에서는 80년 선배 경찰들의 업적을 조사하고 명예를 추진 한다고 했는데, 8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나 있는지 한심스럽다. 경찰청에서 여러 차례 약속을 했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80년 전남경찰관들에 대한 명예회복에 동조해주셔서 감사하다.

행사장에서 80년 경찰관 유족을 만나면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님은 나보다 더 마음 아파하실 것이다.

1,2년 사이에 경찰청에서 故 안병하치안감 추모사업을 성대히 진행하였다. 하늘에 계신 故 안병하 치안감이 자신을 많은 사람이 추모해 주심에 기뻐하실까? 행사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오늘도 하늘에 계신 아버님께 죄송한 말씀을 올린다.

“제가 힘이 없어 부하분들 명예를 찾지 못하고, 목숨으로 지킨 위민 정신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5&table=c_hojae&uid=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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