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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상기이행(相機而行)
이정랑 | 2019-10-22 10:27:2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타이밍에 맞추어 행동한다.

화공(火攻)은 천시(天時)를 장악해야 한다. 이른바 천시란 날씨가 건조한 날을 가리킨다.

불을 놓는 데는 때가 있다. … 때란 건조한 날을 말한다.(‘손자병법’ ‘화공편(火攻篇)’.)

이는 손자병법 중의 화공에 관한 대목인데,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도 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 불을 놓는 때가 다르면 상대방의 반응도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상대방의 정서가 쉽게 불붙을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는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확 타버리지만, 그 반대로 불을 붙이기 어려운 상태라면 불씨를 당기기조차 힘들어진다.

통치자는 이러한 시기의 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일이라 해도 시기가 적절한가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누구나가 경험한 바일 것이다. 같은 일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기를 합리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초나라 왕이 아끼는 신하 가운데 단(段)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특별한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가문과 혈통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매우 높은 지위에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어느날 단은 강을(江乙)이라는 지자(智者)로부터 이런 충고를 듣는다.

“재물을 통해 쌓은 우정은 재물이 다 떨어지면 끝장이 납니다. 여색을 이용한 교제라면 그 꽃이 시들 때 감정도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른바 애첩이니 총신이니 하는 사람 사이의 관게도 모두 순간적인 것입니다. 공께서 지금 권세를 누리고 계시지만, 왕의 감정이 일단 변하면 권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왕과의 관계를 좀더 돈독히 하심이 어떨는지요.”

“어떻게 말이오?”

단은 솔깃해서 물었다.

“먼저 왕께 왕이 돌아가시면 함께 죽겠다는 뜻을 나타내십시오. 그러면 초나라에서 공의 지위가 더욱 굳어질 것입니다.”

“정말 그렇겠군요 내 그대로 하겠소이다.”

그런데 단은 3년이 지나도록 강을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이에 강을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제가 말씀드린 건의를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셨군요. 저의 계책을 채용하시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더 이상 저를 찾지 마십시오.”

“선생의 가르침을 내 어찌 잊을 리 있겠소? 다만 아직 좋은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오.”

그로부터 얼마 후 초나라 왕은 이전에 운몽택(雲夢澤)이라 불리던 호수 지역으로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이곳은 장강 중류에 위치한 동정호 부근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총집결해 있는 곳으로, 이름 그대로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의 사냥은 수천 필의 말이 이끄는 화려한 수레가 형형색색의 깃발을 휘날리며 하늘과 땅을 뒤덮는 그야말로 거창한 행차였다. 초왕은 친히 활을 잡고 들소를 사냥했다. 그러다가 초왕은 하늘을 향해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즐겁구나, 이번 사냥이! 그러나 천년만년 이런 쾌락을 누릴 수는 없겠지….”
이때 옆에 있던 단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지금 신은 곁에서 대왕을 모시고 있사옵니다만, 천년만년 후에라도 대왕을 따라 곁에서 모시며 충성을 다하고 싶사옵니다.”

초왕은 이 말에 감격해서 즉시 단에게 땅을 주고 그를 안릉군(安陵君)에 봉했다. 『전국책』에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난 다음 그 뒤에다가“군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강을이 좋은 계책을 일러주었다면, 안릉군은 때를 알았다고 할 것이다.’고 평했다”는 구절을 덧붙여놓고 있다. 이 이야기는 보잘 것 없는 속임수 같아 보이지만, 큰 인물이 죽으면 따라 죽는 순장의 풍습이 남아 있던 당시로서는 초왕의 마음을 확실히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만약 안릉군의 이런 이야기가 왕이 불쾌할 때 나왔더라면 반응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입맛이 당기지 않지만, 배가 고프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는다. 모든 일은 그 자체에 남을 부릴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감추고 있게 마련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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