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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人物論 동양 의술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다
이정랑 | 2021-09-09 09:12: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편작 扁鵲】 몸 안의 병까지 들여다본 당대 최고의 신의(神醫)

춘추전국시대 자기 비움의 겸양지덕으로 세상에 의술을 펼쳤던 의학계의 開祖.

편작(扁鵲)은 발해군(渤海郡) 막읍(鄚邑) 출신으로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어서 남의 객사(客舍)에서 관리인으로 지냈다. 객사의 손님 중에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은자가 간혹 머물렀다. 그런데 오직 편작만이 장상군을 특출한 인물로 여겨 언제나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장상군 역시 편작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장상군은 그가 객사를 드나든 지 10여 년이 되었을 때 은밀히 편작을 불러 자기 앞에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비전(祕傳)의 의술(醫術)을 알고 있는데, 벌써 늙어서 그대에게 전해주려 하네. 그러니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 말게나.”

이에 편작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장상군은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 그 속에 든 약을 편작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약을, 복용할 때에 깨끗한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빗물에 타서 마신 후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네.” 그러고는 비전의 의서(醫書)를 전부 꺼내어 편작에게 주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아마도 보통 사람이 아닌듯했다.

편작은 장상군의 말대로 약을, 복용한 지 30일이 지나자 담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게 되었다. 이런 능력으로 병자를 진찰하니 오장(五臟) 속 병근(病根)이 있는 부위를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맥을 짚어서 아는 척했다. 그는 의원(醫員)이 되어 제(齊)나라와 조(趙)나라를 왕래하며 병을 치료했다. 조나라에 있을 때 ‘편작’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진(晉)나라 소공(昭公) 때에 대부(大夫)들의 세력은 강해지고 공족(公族)의 세력은 약해졌다. 대부 조간자(趙簡子) 앙(軮)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느 때에 조간자가 병이 들어 닷새 동안이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자 진나라의 대부들이 모두 걱정했다. 그리하여 편작을 불러 살펴보게 했다. 편작이 조간자의 병세를 살펴보고 나오니, 조간자의 가신인 동안우(董安于)가 뒤따라가 편작에게 조간자의 병세를 물었다. 이에 편작이 대답했다.

“조공의 혈맥(血脈)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그리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옛날 진(秦)나라의 목공(秦穆公)도 이런 증세를 보였는데, 7일 만에 깨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깨어난 날에 목공은 공손지(公孫支)와 자여(子輿)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제(天帝)가 계신 곳에 가서 매우 즐겁게 지내고 왔다. 내가 거기 그렇게 오래 머물렀던 까닭은 마침 천제의 명을 받았기 때문이오. 천제께서 내게 말씀하신 바로는 장차 진(晉)나라는 큰 난(亂)이 일어나 5대(五代)에 이르도록 안정되지 못하다가 뒤에 영명한 군주가 출현하여 천하의 패자(霸者)를 칭할 것이라고 했소. 그러나 그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고, 그 아들이 천하를 호령하게 되며, 진나라는 남녀 간에 구별이 없어진다고 했소.’라고 말했습니다. 공손지는 이 말을 잘 기록해 보관해, 두었다고 하는데 진나라의 앞날을 예측한 ‘진책(秦策)’은 이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진(晉)나라의 헌공(獻公) 때에 내란이 일어났고, 문공(文公) 때에 패주가 되었다. 그리고 문공의 아들 양공(襄公)이 효산(殽山)에서 진(秦)나라 군대를 섬멸하고 돌아온 후 음란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 조공의 병도 이와 같으니 사흘 안에 좋아질 것이고 깨어나면 반드시 여러 대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이윽고 이틀 반이 지나자 드디어 조간자가 깨어나 대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천제가 계신 곳에 갔었는데 매우 즐거웠소. 하늘에서 여러, 신선들과 노닐었는데, 천하의 모든 춤과 더불어 광락(廣樂)을 아홉 번이나 연주하는 것을 감상했소. 그것은 옛적 하(夏), 상(商), 주(周) 삼대(三代)의 춤과 노래와는 달라서 그 소리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소. 그런데 곰 한 마리가 나를 잡아가려 하니 천제께서 나에게 곰을 활로 쏘라 하시기에 맞혀 죽어버렸소. 그러자 큰 곰이 또 나타났는데, 내가 또 쏘았더니 명중해서 큰 곰까지 죽었소. 천제께서 기뻐하며 내게 대나무 바구니 두 개를 하사, 하셨는데 모두 한 쌍이었소. 또 천제 옆에 내 아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천제께서는 내게 적(翟) 땅의 개 한 마리를 주면서 ‘네 아들이 장성하거든 이 개를 주도록 하라’고 말했소. 또 천제께서 나에게 ‘진(晉)나라는 세월이 갈수록 점차 쇠약해져서 7대(七代)에 이르면 망하고 말 것이다.”

영씨(贏氏)가 강성해져 주나라 사람들을 범동안우가 편작이 한 말을 조간자에게 고하니, 조간자는 편작에게 전답 4만 무(畝)를 상으로 주었다.

그 후 편작은 괵(虢)나라를 지나가는데, 그때 마침 괵나라 태자가 병에 걸려 죽었다. 편작은 괵나라 궁궐 문 앞에 가서 방중술을 좋아하던 중서자(中庶子)를 만나 물었다.

“태자께서 무슨 병에 걸리셨습니까? 온 나라 안에서 태자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소란합니다.”

중서자가 대답했다.

“태자의 병은 혈기(血氣)가 제대로, 돌지 않고 뒤엉켜 꽉 막혀서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몸속으로는 내장을 해쳐서 생긴 것입니다. 정기(精氣)가 사기(邪氣)를 누르지 못해 그 사기가 체내에 쌓여 발산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陽)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음(陰)의 움직임이 급해져서 돌연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죽게 되었습니다.”

편작이 “언제쯤에 돌아가셨습니까?”라고 묻자 중서자가 “오늘 새벽 첫닭이 울 때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편작이 또 “입관(入棺)은 하셨는지요?’라고 묻자 중서자는 ”아직 안 했습니다. 돌아가신 지 아직 반나절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편작이 말했다. “저는 제(齊)나라 발해(渤海)의 진월인(秦越人)이라는 사람입니다. 발해의 정읍(鄭邑)의 집에 살면서 이제까지 태자를 존경했는데, 아직 뵈옵지도 못했습니다. 태자께서 불행이 돌아가셨다고 하나, 제가 태자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에 중서자가 말했다. “선생은 허황된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됩니다. 어떻게 죽은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듣자니 옛날 유부(兪跗)라는 의원이 있었다는데, 그 의원은 병을 고치는 데 탕액(湯液), 예쇄(醴灑), 참석(鑱石), 교인(撟引), 안올(案扤), 독위(毒熨)를 사용하지 않고 잠시 옷을 풀어헤쳐 한 번 진찰해보는 것으로 병의 증후를 살폈으며, 오장(五臟)에 있는 수혈(輸穴)에 따라, 피부를 가르고 살을 열어 막힌 맥(脈)을 통하게 하고 끊어진 힘줄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척수(脊髓) 뇌수(腦髓)를 누르고 고황(膏肓)과 횡격막(橫膈膜)을 바로 하고 장(腸)과 위(胃)를 씻어내고 오장을 씻어내어 정기(精氣)를 다스리고 신체를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선생의 의술이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했다면 태자께서는 다시 살아날 수 있겠지요. 그렇지도 못하면서 태자를 다시 살려내려 한다면, 막 웃기 시작한 갓난아이에게조차 믿겠습니까?”

중서자의 말을 들은 편작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이렇게 한탄했다. “대부께서 말한 의술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서 하늘을 보고 좁은 틈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보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저, 진월인의 의술은 환자의 맥을 짚어내 기색을 살펴보고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그 병이 어디에 생겼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병증이 양(陽)에 있으면 그 음(陰)을 미루어 알 수 있고, 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양에 대해 증상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의 증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굳이 천리 먼 곳까지 가서 진찰하지 않아도 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구태여 한쪽만 쳐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께서 저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시험 삼아 저로 하여 태자를 한번 살펴보게 하시지요. 마땅히 태자의 귀속에서는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태자의 두 다리를 더듬어 올라가 음부(陰部)에 이르면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증서자는 편작의 말을 듣자 멍해져 눈 한번 깜박이지 못하고, 혀는 오그라져 붙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는 궁궐 안으로 들어가 편작의 말을 괵나라 군주에게 전했다. 괵나라 군주는 몹시 놀라워하며 궁정의 중문(中門)까지 달려 나와서 편작을 보고 말했다.

“평소 선생의 인술(仁術)에 대한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존안을 뵐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선생이 우리 이 괵과 같은 작은 나라에까지 왕림해주시어 태자의 병에 관한 소견을 말씀해 주셨으니 변방의 작은 나라 군주와 신하들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지금 선생이 오셨으니, 죽은 태자가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선생이 오시지 않았더라면 제 아들은 버려져 계곡에 묻혀 영원히 죽어 다시는 살아나지, 못 할 뻔했습니다.”

괵나라 군주는 미쳐 말을 끝내기도 전에 비통한 표정을 지었는데, 가슴이 막히고 정신이 혼미한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얼굴 모습도 일그러져 있었다. 편작이 그를 보고 말했다.

“태자가 걸린 병은 ‘시궐(尸蹶)’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가 위(胃)를 움직이고 경맥(經脈)이나 락맥(絡脈)을 막히게 하고 한편으로는 또 삼초(三焦)와 방광(膀胱)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렇게 양맥(陽脈)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맥은 위로 올라가 양기와 음기가 모이는 곳이 막혀 통하지 않게 됩니다. 음맥은 위를 향해서 올라가고 양맥은 안을 향해서 내려갑니다. 그래서 양맥은 안으로 내려가 고동(鼓動)하지만 일어나지 못하고, 음맥은 밖을 향해 올라가 끊어져서 음기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몸 위에는 양기가 끊어진 락맥(絡脈)이 있고 아래에는 음기가 끊어진 적맥(赤脈)이 있습니다. 음기가 파괴되고 양기가 단절되어 혈색이 없어지고 맥이 어지러워, 진 까닭에 몸이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태자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무릇 양기가 음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살고, 음기가 양기로 들어가 오장을 누르는 자는 죽습니다. 대체로 이러한 것은 모두 오장의 기가 몸속에서 역상(逆上)할 때 갑자기 일어납니다. 명의(名醫)는 이러한 증세를 잡아내지만 평범한 의원은 의심하고 위태롭게 생각합니다.”

이에 편작은 제자인 자양(子陽)에게 침(鍼)을 숫돌에 갈게 하여 그것으로 몸 표면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한참 지나자 태자가 소생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 자표(子豹)에게 오분(五分)의 고약을 바르게 하고, 팔감(八減)의 방법으로 약제(藥劑)를, 섞어서 달인 다음 이것을 양 겨드랑이 아래에 번갈아 붙이게 했다. 마침내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음기와 양기를 조절해 탕약을 스무날 동안 마시게 하자 태자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인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편작은 자기가 태자를 살린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겠는가? 이는 다만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내가 일어나게 해준 것뿐이다.”

편작은 제(齊)나라로 갔는데, 제나라 환후(齊桓侯)가 편작을 빈객으로 받아들였다. 편작이 궁정에 들어가 환공를 배알(拜謁)하고 말했다.

“군주님께서는 피부와 근육 사이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시면 점점 깊이 들어가 중해지실 것입니다.”

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에게는 병이 없소.”
편작이 물러가자 환공은 좌우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의원이 이익을 탐해 병도 없는 사람을 가지고 병이 있다고 하여 공을 세우려 한단 말이야.”

그로부터 닷새가 지나자 편작이 또 환공을 배알하고 말했다.

“군주님의 병이 혈맥(血脈)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시면 더욱, 깊은 곳까지 이를 것입니다.”

그래도 환공은 듣는 등, 마는 등 하며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과인에겐 병 같은 것은 없소.”

또 닷새가 지나 편작이 환공을 찾아 말했다.

“군주의 병이 내장에 있으니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것이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환공는 여전히 편작의 말을 무시하면서 오히려 그에게 반감을 느꼈다. 다시 닷새가 지나 편작이 환공을 찾아갔지만, 곧장 발길을 돌려 되돌아갔다. 환공이 이상해서 사람을 보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의 병이 살갖에 있을 때는 탕약과 고약으로 치료하면 되고, 혈맥에 있을 때는 침자(鍼刺)나 편법(砭法)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병이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주(藥酒)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骨髓)에까지 들어가 버리면 설령 목숨을 관장하는 귀신이라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군주의 병은 골수에 있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이 지나 환공의 병이 발작했다. 그는 편작을 불러오라고 사람을 보냈지만, 편작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린 뒤였다. 얼마 후, 환공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성인(聖人)은 병의 증후를 예견해 명의(名醫)로 하여 일찍 치료하게 할 수 있다면 병도 나을 수 있고 몸도 살릴 수 있다. 사람이 걱정하는 것은 병이 많은 것이고, 의원이 걱정하는 것은 치료 방법이 적은 것이다. 이 때문에 여섯 가지 불치병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첫 번째 불치병은 교만하여 도리를 논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불치병은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을 중히 여기는 것이다. 세 번째 불치병은 의식(衣食)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네 번째 불치병은 음(陰)과 양(陽)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五臟)의 기(氣)가 안정되지 못한 것이다. 다섯 번째 불치병은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불치병 중 하나라도 이에 해당한다면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

의술이 뛰어났기에 명의의 상징으로 남아 후세 사람들이 뛰어난 명의에 대해서 편작으로 비유했다. 병이 위중한 상태를 가리켜 “편작이 여럿 와도 고치지 못한다.”라는 비유를 할 정도였으며, 때로는 명의를 초월, 신의(神醫)로 칭송되었다.

드디어 편작의 명성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갔을 때 그곳에서는 부인들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듣고 곧 부인과(婦人科)의원이 되었다. 낙양(雒陽)에 가서는 주(周)나라 사람들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곧 귀와 눈 그리고 마비 등 노인과 의원이 되었다. 다시 진나라의 수도 함양(咸陽)에 들어가서는 진나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소아과 의원이 되었다. 편작은 이렇게 각지의 인정 풍속에 맞추어 진료 과목을 바꾸었다.

편작의 연로한 부친은 천식(喘息)으로 무척 고생했는데 천하의 명의로 이름난 편작이 그까짓 천식 하나 못 고친다는 게 말이 되냐며 그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의술을 자랑할 요량으로 처방을 주어 단번에 완치시켰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편작이 펄펄 뛰며 제자들에게 “이제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라고 나무랐다. 이유인즉 천식 따위야 얼마든지 고칠 수 있으나 명의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건강해진다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여 거리낌 없이 행동하여 결국은 큰 병을 앓을 것이니 일부러 천식을 치료하지 않아 아버지가 매사에 조심하기를 바란 것인데 제자들이 그것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예견대로 편작의 부친은 천식이 낫자마자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다가 얼마 안 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편작은 삼형제의 막내였는데, 어느 날 위(魏)나라 왕 문후(文侯)가 편작에게 그의 두 형과 편작의 의술을 비교하면 어떠하냐고 묻자, 의술로는 맏형이 제일 으뜸가며 그 뒤를 작은형이, 잇지만 자신은 가장, 못하다고 대답했다. 문왕은 다시 편작의 형들이 의술이 그토록 뛰어나다면, 어째서 편작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지느냐고 묻자 편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맏형은 환자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표정과 음색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미리 치료하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또 둘째 형은 병이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하므로 그대로 두었으면 목숨을 앗아갈 큰 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들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 탓에 제 형님들은 가벼운 병이나 고치는 시시한 의술로 평가받아 이름이, 고을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저는 이미 병이 크게 될 때까지는 알지 못해 중병을을 앓는 환자들이 법석을 떨며 치료하니 제명성만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편작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로 두 형이 편작보다 더 뛰어난 명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악화한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과 초기 치료를 중요시하고 있는 현대의학의 관점에서도 만고에 경종을 울리는 의학훈(醫學訓)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자각증상이 없는 암은 초기진단이 어렵고 뒤늦게 진단된 후에는 치료가 매우 어려운 상태다. 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19는 예방만이 유일한 방법임을 감안 할 때, 예방을 강조했던 그의 선견지명과 의술은 신(神)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들이 결코 과언이 아님을 말해준다.

진(秦)나라의 태의령(太醫令) 이혜(李醯)는 자신의 의술이 편작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자객을 보내 편작을 찔러 죽였다.

그러나 편작은 죽었지만, 그의 의학 경험과 기술은 중국 의학의 재산이 되어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그의 의학 이론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정리되어 『난경 難經』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 의학의 귀중한 문헌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편작을 추모하여 약왕(藥王)이라 부르고 또 전통적 중국 의학의 개조(開祖)로서 높이 숭앙하고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전해지는 맥법(脈法)은 모두 편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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