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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금소통] 당인불양(當仁不讓)
이정랑 | 2019-07-01 12:08: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어진 일을 앞에 두고는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이 말은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어진 일을 할 경우가 닥치면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주희(朱熹)는 이에 대해 “어진 일을 할 경우라는 것은 그 어진 일을 자신이 책임진다는 말로, 비록 스승이라 해도 사양해서는 안 된다. 용감하게 반드시 행해야 한다”고 주를 달았다. 요컨대 도의에 합당한 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교에서 ‘당인불양’을 견지한다는 것은 나라의 체면을 유지하는 중요한 측면이다. 그것은 물러섬으로써 나아가고 돌아감으로써 뻗어나가는 각종 계략과 함께 어울려 완전함을 이루게 한다.

1945년 7월, 중‧미‧영‧소 4국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 회담을 열어 극동 국제군사법정을 설립, 일본의 수도에서 전범 재판을 진행했다. 중국은 접수국의 하나가 되었고, 매여오(梅汝璈)는 중국의 법관으로 재판에 참가했다.

1946년 봄, 극동 국제군사법정에 출석할 11국의 법관들이 모두 도쿄에 모였다. 우선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법정에서 각국의 법관이 앉을 자리의 배열과 순서였다. 연합군의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지정에 따라 재판장은 오스트레일리아 의 명망 높은 법관이 맡게 되었다. 재판장 외에 미‧영‧중‧소‧캐나다‧프랑스‧싱가포르‧네덜란드‧인도‧필리핀의 10개국 법관들이 참석했다. 재판장은 당연히 가운데에 앉았고, 재판장의 왼쪽자리는 미국법관으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오른쪽 자리는 어느 나라 법관에게 배정되어야 하나? 법관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재판에서 자리의 순서가 그 법관의 소속된 국가의 지위를 표시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인의 자리를 논하는 것이라면 저는 근본적으로 신경도 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의 나라를 대변하느니만치, 저로서는 본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매여오의 이 말에 참석자 모두는 깜짝 놀랐다. 법관들 모두가 본국의 지시를 받는다면 어느 세월에 토론을 벌이고 재판을 진행한단 말인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동료 법관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매여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저는, 법정의 자리 배열은 일본이 항복했을 때 항복을 받아들인 국가가 서명을 한 순서대로 앉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전범들의 심판을 앞둔 지금, 중국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고 항전 기간이 가장 길어 희생 또한 가장 컸습니다. 따라서 8년간 피를 흘리며 싸운 중국이 이치상 당연히 두 번째 자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일본의 무조건 없었다면 오늘의 이 재판도 없었을 테니, 항복을 받아들인 나라들이 서명을 한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합니다.

중국 법관은 여기까지 말한 다음 잠시 한숨을 돌리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농담까지 곁들였다.

“물론 각국의 친구들이 이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체중계를 가져다가 몸무게 순으로 앉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중국 법관의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각국 법관들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재판장 웹이 가볍게 응수했다.

“당신의 건의는 매우 좋습니다만, 그건 운동 경기에나 적용되는 것 아닙니까?”

매여오도 곧장 응수했다.

“만약 서명한 순서대로 자리를 배열하는 것에 반대할 경우에 체중에 따라 정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게 된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며, 조국도 제 의견을 존중할 것입니다. 만약 본국에서 제가 제일 끝자리에 앉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저보다 뚱뚱한 사람을 대신 보낼 것입니다.”

그는 이 말로 다시 한 번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웃음은 웃음으로 돌아오는 법.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재판장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탁상을 두드리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떠나갈 듯한 웃음의 물결이 한바탕 법정을 쓸고 지나가자, 재판장은 입장 순서를 미‧영‧중‧소‧프랑스‧캐나다 등의 순서로 선포했다. 그런데 만족할 줄 알았던 중국 대표 매여오는 즉시 이 결정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항의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법관을 상징하는 검은 법복을 벗으면서 ‘리허설’참여를 거부했다.

“오늘 ‘리허설’은 많은 기자들과 영화 제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언론보도를 통해 사실이 발표될 것입니다. 제 건의에 대해 동지들 사이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 해도, 저는 제 건의를 표결에 부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리허설에 참석하지 않고 귀국하여 정부에 사표를 낼 것입니다.”

재판장은 법관들을 소집, 이 안건을 표결에 부쳤고 그로 인해 리허설이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어졌다. 입장 순서는 중국 대표 매여오가 제안한대로, 미‧중‧영‧소‧캐나다‧프랑스 등의 순서로 정해졌다.

10국 법관들과 벌인 매여오의 설전은 실로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법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는 정신적인 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가장 강력한 이유를 여러 사람들에게 환기시켰다. 하나는 이 법정이 일본의 전범들을 재판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중국이 ‘가장 오래 항전하면서 누구보다도 처참한 희생을 치른’ 나라라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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