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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백마비마(白馬非馬)
이정랑 | 2018-06-04 07:54:3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송나라에 예열(倪說)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피리의 가락처럼 능수능란하게 말을 잘 했다. 그는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이론으로 제나라 직하궁(稷下宮)의 말 잘하는 학자들을 전부 굴복시켰다. 하지만 그는 백마를 타고 세관을 지날 때,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는 이론으로 납세를 면하지는 못했다.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이 이야기는 말로 온 나라 사람을 다 이기는 자라도 사물의 본질에 근거하여 고찰하면 단 한 사람도 속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공허한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필자)

국정의 최고책임자는 보통사람과 입장이 다르다. 보통 사람이 공허한 말에 속으면 자기 한 몸의 손실에 그친다. 하지만 일국의 통치권자가 공허한 말에 속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라까지 해를 입는다.

어떤 사람이 연나라 왕에게 장수(長壽)와 불사(不死)의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나랏일에 바빴던 연왕은 신하를 보내 자기 대신 그 방법을 배워오게 했다. 그러나 그 신하는 불사의 방법을 손에 넣지 못했다. 가르쳐줄 사람이 마침 죽었기 때문이다. 격노한 연왕은 신하를 죽여 버렸다.

연왕은 불사의 방법을 가르쳐준다던 자에게 속은 것도 모르고 배우려 보낸 사람이 너무 늦은 것만을 탓했다. 그는 불사의 방법을 아는 자가 어떻게 죽을 수 있으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보지 못한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정말 실화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군주가 공허한 말을 믿어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흔히 존재한다. 문제는 군주가 통찰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약을 초나라 왕에게 바쳤다. 시종이 그 약을 갖고 궁궐로 들어가려는데 호위병 하나가 그에게 물었다.
“이 약은 먹을 수 있는 건가?”
시종이 먹을 수 있다고 하자 호위병은 대뜸 빼앗아 그것을 먹어버렸다. 대노한 초왕은 그 호위병을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시종이 먹을 수 있다고 하여 그 약을 먹은 것이니 죄가 없습니다. 또한 저는 불사의 약을 먹은 몸인데 대왕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그 약은 죽음의 약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게다가 대왕께서 정말 저를 죽이시면 다른 사람에게 속았음을 인정하시는 것이니 대왕 뜻대로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초왕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라는 명을 거뒀다. 다소 풍자적인 이 이야기는 초왕이 결국 불사의 약에 대한 공허한 말을 믿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초나라에 진주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좋은 진주 하나를 팔기 위해 목련나무로 정교한 진주함을 만들어 계피향(桂皮香)을 입히고 겉에 옥과 비취 장식을 달았다. 그는 그 진주를 정나라 사람에게 팔았다.그런데 그 정나라 사람은 뜻밖에도 곧바로 그에게 진주를 되돌려 주었다. 본래 정나라 사람이 마음에 들었던 건 진주함이지 그 속의 진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진주를 팔던 초나라 사람은 진주 장사보다는 진주함 장사를 더 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고사는 묵가(墨家)의 제자 전구(田鳩)가 초나라 왕에게 들려준 것이다. 이 고사에서 초나라 사람이 만든 정교한 진주함은 화려한 언어를 뜻하며, 진주함만 사고 진주는 되돌려준 정나라 사람의 행동은 화려한 언어가 말한 사람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음을 이야기 한다.

물건을 사고 판 두 사람을 겨냥한 고사 자체의 비판은 사실 화려한 언어를 일삼거나 언어의 화려함만을 따지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곧 군주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말 속에는 듣기만 하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군주는 언어의 표상을 통해 그 말이 가지는 실제적인 효용을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언어라도 실용적이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삶은 더없이 실제적이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언어 속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탁상공론이 과녁을 세우지 않고 화살을 쏘는 것처럼 헛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 왜 끊임없이 탁상공론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원인은 군주에게 있다. 군주가 그런 말들을 좋아하면 신하와 백성들은 군주의 기호에 영합해 탁상공론을 일삼게 된다.

탁상공론이 난무하면 군주는 기만당하기 쉽고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올바로 판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나라와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오늘날 백성들 모두가 정치를 논하는데도 정치가 불안하고 살림이 가난한 것은, 마치 경작 법을 아는 이는 많은데 실제 경작에 종사하는 이는 드문 것과 같다. 또한 백성들 모두가 병법을 논하고 집집마다 많은 병서를 소장하고 있는데도 군대가 더 허약해지는 건 병법을 운운하는 이는 많은데 갑옷과 무기를 갖고 전장에서 피 흘리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라의 법령도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통치자가 탁상공론을 좋아하고 그런 말에 능한 자들을 기용하는 건 그것으로써 어떻게든 명예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통치자에게 심리적 만족을 주는 것 말고는 오직 백해무익할 뿐이다.


* 본 기사는 서울의 소리에도 게재됩니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4&table=jr_lee&ui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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