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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장수선무(長袖善舞)
이정랑 | 2019-05-28 08:38: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소매가 길어야 춤이 예뻐 보인다.

한비자 ‘오두(五蠹)’를 보면 “속된 말로 소매가 길어야 춤이 예뻐 보이고, 장사가 되려면 밑천이 두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비자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인용한 속어일 뿐이다. 춤을 추는 사람은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추어야 날아갈 듯한 자태로 아름다운 모습을 쉽게 연출할 수 있고, 장사를 하는 사람은 밑천이 많아야 사업을 쉽게 펼쳐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기(史記) ‘범저채택전(范雎蔡澤傳)’에도 인용되어 있다. 범저(范雎)와 채택(蔡澤)은 전국시대 말기의 이름난 인물들이다. 범저는 위(魏)나라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위나라 중대부(中大夫)인 수가(須賈) 밑에 있다가 수가에게 죽도록 얻어맞고는 진(秦)나라로 도망가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바꾼 후, 진나라 소왕(昭王)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유명한 외교 정책을 건의하여 객경(客卿)과 상국(相國)을 거처 응후(應侯)로까지 봉해진 인물이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일찍부터 조(趙)‧한(韓)‧위(魏)를 돌아다니며 유세했으나 등용되지 못하다가 역시 진나라에 와서 소왕을 만나 의기투합, 객경이 된 다음 상국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진나라 머물고 있던 10여 년 동안 소왕을 비롯하여 효문왕(孝文王)‧장양왕(庄襄王)을 거처 진시황 때까지 줄곧 신임을 받았고, 강성군(綱成君)이라는 명예스러운 지위에 봉해지기까지 했다.

이 두 사람은 이른바 말을 잘한다는 ‘변사(辯士)’로서, 말과 논리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진나라에서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전국시대를 통틀어 변사가 상당히 많았는데, 어째서 유독 이 두 사람이 잇달아 진나라 왕들의 신임을 얻어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가? 사기의 작자인 사마천(司馬遷)은 “한비자가 ‘춤이 예뻐 보이려면 소매가 길어야 하고, 장사가 되려면 밑천이 두둑해야 한다’고 한 말이 확실히 일리가 있구나!”라고 평가했다. 범저와 채택은 춤을 추는 사람이 더 아름다운 무용복을 가지고 있듯, 또 상인이 두둑한 자본을 가지고 있듯, 남들보다 한결 강력한 말재주의 소유자들이었다.

옷소매가 길면 춤이 한결 돋보이고, 본전이 두둑하면 상인은 여유 있게 장사를 할 수 있다. 이는 보편적이고 정확한 이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폭넓은 의미를 가진다. 정치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풍부한 학식과 뛰어난 정치적 두뇌를 갖추어야 한다. 군사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위로 천문에 능통하고 아래로 지리를 잘 알아야 하며, 밖으로 적의 정황을 안으로 민심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기업계에서 남보다 앞서 가려면 소식과 정보에 민감한 큰 귀와 장래를 내다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지고, 적시에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여 정확하게 시장의 추세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무용수의 ‘긴 소매’에 비유될 수 있다. 춤을 돋보이게 하려면 긴 소매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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