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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원교근공(遠交近攻)
이정랑 | 2019-04-29 11:01:5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먼 곳과 교류하고 가까운 곳을 친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은 범저(范雎)가 진(秦)나라 소왕(昭王)에게 제안한 것으로, 전국책 ‘진책(秦策)’과 사기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나온다.

범저는 원래 위(魏)나라 사람이었는데, 수가(須賈)의 모함을 받아 재상 위제장(魏齊將)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후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바꾸어 진나라로 가서 소왕에게 유세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대외적으로 “원교근공 책을 쓰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왕의 땅이 된다”고 했으며, 대내적으로 귀족 세력을 대표하는 외척인 재상 위염(魏冉)을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소왕은 그가 제시한 정책을 받아들였고, 기원전 266년 그를 재상으로 발탁했다.

당시 진나라는 장평(長平-산서성 고북 북쪽) 전투에서 백기(白起)가 조나라 군을 대파했다. 백기의 공을 시기한 범저는 음모를 꾸며 백기를 죽이고, 자신이 이름을 바꾸고 진나라로 들어오는 데 도움을 준 왕계(王稽)‧진안평(陳安平)을 임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진안평은 싸움에 패해 조나라에 항복하고, 왕계는 제후들과 모반을 꾀하다가 피살당하고 말았다.

‘원교근공’은 지리적 조건을 따져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책략이다. 『36계』에서는 “지리적 조건의 제한을 받을 때는 가까운 적을 취하는 것이 먼 곳의 적을 취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불길이 위로 치솟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 대책에는 각기 차이점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가까운 곳에 이해가 서로 얽혀 있다면 변화가 쉽게 발생하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대해서 공격책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략은 상호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시대의 형세에 적응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이웃과의 화목’이 ‘근공’에 비해 국가의 안녕과 번영에 훨씬 유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적 특징이 새롭게 변함에 따라 ‘외교’와 ‘공격’을 확정하는 표준은 더 이상 ‘멀고’ ‘가까움’에 얽매일 수 없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외교와 안보의 주된 명제였던 원교근공 원칙의 빛은 바랬다. 지리적인 원근에 의한 적과 동지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이제는 경제적 이해에 따라 원교근공책이 동원되고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많다는 것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가깝다는 뜻이다. 상품을 팔 수 있어야 우리가 살 수 있으니 가깝고, 상품의 유입을 막아야 우리가 경제적 피해를 덜 보니 가깝다. 가까운 것, 즉 경제적 이득을 위해 나의 진출은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상대의 유입은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모든 원리와 외교력과 협상력을 동원한다. 이것이 근공이다.

원교란 무엇인가? 경제적 이해관계가 많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우리 실생활과는 소원하다. 그럴 나라도 없겠지만 만약  양고기 수입을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나라가 있다한들 우리가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 교역량이 연간 백만 불도 안 되는 나라와는 긴장할 필요가 없다. 우리생활과 거리가 먼 것이다. 이 경우는 양국 간의 이해 증진이니 하는 따위의 외교적인 수사만으로 족하다. 사이가 좋은 정도면 그만이고, 유사시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하고 나서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근공은 물론 원교도 국가적 목표 달성의 일환이다. 근공은 당면 문제이자 원교를 위한 디딤돌이 된다. 그러나 근공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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