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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 괴기소지(乖其所之)
이정랑 | 2020-11-25 08:02: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적의 의도를 어긋나게 한다.

내가 싸우기를 원치 않을 때 땅바닥에 선을 그어 놓고 지키기만 하더라도 적이 나와 더불어 싸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적이 의도하는 바를 어긋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손자병법』 「허실편」.)

‘적이 의도하는 바를 어긋나게 만든다.’는 뜻의 ‘괴기소지’에서 ‘괴(乖)’는 ‘어긋남’을 뜻하며 ‘개변(改變)’의 뜻도 가지고 있다. ‘지(之)’는 ‘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일반적인 규칙을 벗어나 적의 의도를 어긋나게 하거나 바꾼다는 것이다.

‘괴기소지’는 두 가지 방면의 내용을 포함한다. 하나는 상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즉, 속임수로 적을 의심하게 만들어 나의 허실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또 하나는 적을 조종하는 것이다. 즉, 이득이 될 만한 것으로 유혹하여 적을 내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방어에 능한 장수는 단지 진지의 견고함만 믿고 싸우지는 않는다. 적을 흩어놓을 수 있는 갖가지 방법에 대해 늘 주판알을, 퉁긴다. 위장을 잘하는 부대는 단순히 몸을 숨기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늘 적의 생각 속에 ‘의심의 그물’을 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공격자에게 공격 목표를 선택하고 공격 시간을 확정할 자유가 있다면, 방어자는 허실을 함께 구사하여 적의 의도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어디를 지켜야 할지 모르게 하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모르게 한다.”

1877년에서 1878년 동안 벌어졌던 러시아와 터키 사이의 전쟁에서 ‘호령으로 적을 물리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 차례 격렬한 전투를 통해 공격하는, 입장을 확보한 터키군은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터키군이 러시아군 참호 앞까지 돌진하자 러시아군은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몰렸다. 이때 터키군의 호령을 잘 알고 있는 러시아 병사 하나가 갑자기 ‘퇴각’ 명령을 외쳤다. 터키군은 자신들의 지휘관에게 다른 작전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 곧바로 후퇴했다. 이리하여 러시아군은 진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터키군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기회가 사라진 뒤였다.

‘괴기소지’는 통상 ‘아군이 싸울 의사가 없는’ 열세의 입장에, 있을 때 사용하는 책략이다. 이는 적이 펼치는 수단을 역이용하여 방어 태세를 안정시키고 필요한 시간을 버는 계략이다. 혼란스러운 방법으로 적 지휘관의 신경을 흩어놓아야만 적을 잘못된 길로 들어서도록 조종할 수 있다.

1943년 5월, 미군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섬으로 진군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수송기로 공수 부대를 투하 하기로 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독일군은 비행 중인 미군 수송기를 레이더로 교란해 미 공군 기지와 수송기 사이의 통신 연락을 파괴했다. 그런 다음 독일은 폭격기를 출동시켜 돌아가면서 영‧미 연합군의 해상 함대에 폭격을 가했다. 또 독일은 무전으로 미군 수송기들에 가짜 명령을 내려 수송기들을 독일이 폭격을 가하는 영‧미 연합군의 함대 상공으로 유도했다. 독일로부터 폭격을 받은 함대는 다시 적기가 공습해오는 것으로 판단, 일제히 대공 포격을 퍼부어 많은 미군 조종사들이 얼떨결에 고기밥이 되고 말았다. (‘일전쌍조’ 참조)

독일군은 이 ‘괴기소지’와 ‘꽃을 옮겨 나무에 붙이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계략을 사용하여 영‧미 연합군이 독점하고 있던 해상과 공중을 혼란에 빠뜨려 자기편끼리 공격하는 중대한 실수를 하도록 만들었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칼럼리스트)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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