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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의 사회학
해커 없는 세상보다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사회가 더 인간적
김홍열 | 2015-12-31 10:23: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2월 15일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유튜브 (YouTube) 에서 IS (Islamic State, IS)에 선전포고를 했다. 어나니머스 대변인이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가면을 쓰고 IS에게, 어나니머스는 인류의 편이며 IS의 행위를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IS가 그동안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행위를 생각하면 어나니머스의 선전포고가 고맙기만 하다. 실제 어나니머스 도움으로 IS 가 소탕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그리고 다시는 IS와 같은 범죄 조직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늘 여기저기서 불법조직이 만들어지고 활개를 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범죄 조직 IS에 선전포고를 한 어나니머스 역시 실정법 차원에서 보면 불법단체다.

시선을 돌려 반 IS 가 아닌 친 IS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소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IS는 일종의 의적이다. 영미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의해 문화도 종교도 경제적 환경도 다 파괴되었다고 믿는 이슬람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IS는 악의 축이 아니라 후천개벽의 미륵보살이다. 이런 관점은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에도 해당한다.

어나니머스는 해커들의 느슨한 국제 조직이지만 이 단체의 회원들은 그동안 특정 국가의 ‘반정부’ 역할을 여러 차례 수행해왔다. 인터넷 검열을 자행하는 국가, 권력의 힘으로 개방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억제하는 국가는 모두 이들의 공공의 적이다. 특정 국가 기관의 서버에 들어가 데이터를 해킹하고 프로세싱을 마비시키는 일들을 여러 차례 해왔고 계속하고 있다. 어나니머스에 당한 나라들에게는 어나니머스나 IS나 모두 불법 조직일 뿐이다. 이런 나라들은 어나니머스가 소멸되기를 바라고 있다. 어나니머스가 IS 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해서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나니머스나 IS 같은 대항권력 세력과 흐름은 늘 있어 왔다. 왕조시대나 국민국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권력의 속성상 대항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권력은 포섭과 배제의 반복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배제의 정도가 심한 특수한 사회적 국면에서는 그런 대항권력이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이 경우 대항권력이 지배권력으로 위치 이동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나 대항권력은 바로 기존 지배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저항권력에 직면하게 된다. 권력의 본질적 속성은 결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집행과 권력의 속성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권력에 대항하는 대항권력의 흐름은 지배권력에 비해 더 유연하게 작동된다. 지배권력의 견고한 메커니즘을 우회하여 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네트워크 시대에는 대항권력의 그런 속성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봉건왕조시대에 지배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은 소규모 집단에 의한 저항적 무력행사였다. 일시적으로 또는 지역적으로 중앙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서 봉기하여 지역 주민들의 환심을 얻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홍길동이나 임꺽정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의적들이 그 사례들이다. 이 영웅들은 민중의 생활고를 보다 못해 부의 적절한 분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주변에서 의기투합하는 사람들을 모아 탐욕스러운 지주나 관리들을 공격한다. 의적들의 목표는 단순하다.

물질의 공정한 분배 또는 그런 분배가 가능한 최소한의 절차뿐이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더 이상 봉기를 연장할 이유가 없다. 이들은 권력이 실현되는 정치나 행정에 적절한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물질적 결과물에 대한 합리적 분배를 요구할 뿐이다. 이런 요구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미약해 보이지만 미분화된 봉건사회임을 감안하면 실현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봉기는 좌절되고 영웅들은 참수되거나 홍길동처럼 율도국 같은 신세계로 떠나게 된다.

의적의 요구를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인정되면서 네트워크 간 인터페이스는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전제된다. 반면 현대판 의적이라는 해커의 경우에는 네트워크의 확장성이 어느 순간에도 중단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네트워크를 인위적으로 차단하거나 통제하는 모든 권력에 저항한다. 이들은 늘 연결되어 있으려 하고 연결되어 있을 때 권력의 민주적 행사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해커들은 지배권력보다 더 네트워크적이다.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지배권력은 폐쇄적 네트워크 안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해커들은 지배권력의 배제와 포섭의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중세의 의적들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거나 단독 의거일 경우가 많아 지배권력 메커니즘에 진입할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해커들은 처음부터 글로벌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태어났고 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저항 권력이 되어왔다. 네트워크 측면에서 통찰하자면 해커들이 지배권력을 포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분배가 아니라 소통을. 이것이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해커의 사회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통적 권력의 속성은 배제와 포섭의 반복이다. 항상 개방될 수 없다. 그러나 해커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상시 개방성과 확장성에 대한 해커들의 요구는 끈질기다. 이 순간 권력은 두 가지로 대응한다. 하나는 폐쇄적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점진적으로 네트워크의 확장성을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권력은 이 둘을 교차적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긴 안목에서 보면 네트워크의 개방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권력의 재래적 속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네트워크를 해커보다 더 치밀하게 구축하고 더 상시적으로 활용한다. 네트워크 대 네트워크의 투쟁으로 전환시킨다. 사람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커의 사명은 이 무관심을 끊임없이 환기시켜 권력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구성이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 또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래도 해커 없는 세상보다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사회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된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 정보사회학)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1&table=hy_kim&uid=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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